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참고말씀: 왕하23:29; 대하35:24,25; 사1:8; 요16:33; 19:37; 딛3:5
읽을말씀: 슥12:1-14
주제말씀: 슥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첫째, 예루살렘과 유다를 구원하리라!
“그 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이방 나라들을 그 날에 내가 멸하기를 힘쓰리라.”(슥12:8,9)
본문은 어떤 말씀입니까? 이스라엘에 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이라...”(슥12:1 상) 하나님을 경고에 앞서서 자신을 어떤 분으로 소개하셨습니까? 천지를 창조하시고 또 사람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1절 하)
그 하나님께서 무엇을 경고하셨습니까? 사면의 모든 민족이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유다에까지 쳐들어올 것입니다.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 모든 민족에게 취하게 하는 잔이 되게 할 것이라 예루살렘이 에워싸일 때에 유다에까지 이르리라.”(2절) / “...천하만국이 그것을 치려고 모이리라.”(3절 하)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를 보고만 계시지 않고 어떻게 해주실 것입니까? 이스라엘은 돌보시나 그들을 치려고 모여든 모든 대적들을 엄히 치실 것입니다. “...유다 족속은 내가 돌보고 모든 민족의 말을 쳐서 눈이 멀게 하리니.”(4절 하)
즉 예루살렘을 무거운 돌이 되게 하셔서 그것을 드려는 자들을 모두 상하게 하시며, “그 날에 내가 예루살렘을 모든 민족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니 그것을 드는 모든 자는 크게 상할 것이라...”(3절 상) 유다 족속을 화로와 횃불 같게 하시어 주변 모든 민족을 불사르게 하실 것입니다. “그 날에 내가 유다 지도자들을 나무 가운데에 화로 같게 하며 곡식단 사이에 횃불 같게 하리니 그들이 그 좌우에 에워싼 모든 민족들을 불사를 것이요 예루살렘 사람들은 다시 그 본 곳 예루살렘에 살게 되리라.”(6절)
그러므로 그날에 유다의 지도자들은 무엇이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까? ‘만군의 여호와로 말미암아 승리하였다’고 입니다. “유다의 우두머리들은 마음속에 이르기를 예루살렘 주민이 그들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었다 할지라.”(5절)
한편, 하나님은 누구를 먼저 구원하시겠다고 하셨습니까? 유다의 장막입니다. “여호와가 먼저 유다 장막을 구원하리니...”(7절 상) 누구보다도 앞서 그리 하실 것입니까? 다윗의 집이나 예루살렘 주민입니다. “...이는 다윗의 집의 영광과 예루살렘 주민의 영광이 유다보다 더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7절 하)
이는 무엇과 대조됩니까? 역사적으로 이방 나라가 침입하면 항상 유다의 나머지 성읍들은 먼저 함락되나, 예루살렘이나 다윗의 집은 최후의 보루처럼 남게 되는 점입니다.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사1:8) 그러니 본문은 무슨 말씀입니까? 예전처럼 예루살렘이나 다윗의 집만 겨우 구원해주시지 않고 오히려 유다 족속과 함께 모두를 구원해주시겠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 주민들을 보호하시되 어떤 식으로 보호해주실 것입니까? 그 중에서 약한 자를 다윗 같게 하시고, 다윗의 족속을 여호와의 사자나 하나님 같게 하심으로써 입니다. “그 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이방 나라들을 그 날에 내가 멸하기를 힘쓰리라.”(8,9절)
이를 통해서 무엇을 깨닫게 합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할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돌보시고 구원하시며 보호하시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하) 그러니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어떠한 위기나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이 때문에 낙담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계속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둘째,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리라!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슥12:10)
이 같은 구원의 날에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무엇을 부어주신다고 하셨습니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입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10절 상)
이는 무엇을 가리킵니까? 우리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는 ‘성령’의 사역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 이처럼 성령이 부어질 때에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됩니까? 자기의 죄를 깨닫고 사죄의 은총을 간구하게 됩니다.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10절 중)
그런데 이 같은 역사는 오직 누구를 바라볼 때 가능하게 됩니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입니다.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10절 하) /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요19:37)
이 대목에서 어느 때에 있었던 애통의 사건이 소환되고 있습니까? 므깃도 골짜기에서 있었던 요시야 왕의 죽음입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11절) 당시 유다의 마지막 종교개혁자이며 선정을 베풀었던 요시야 왕이 므깃도 골짜기에서 전사하자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애통해했고 선지자 예레미야 같은 경우는 애가를 짓기도 했었습니다.
“요시야 당시에 애굽의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맞서 나갔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났을 때에 죽인지라.”(왕하23:29) / “...그가 죽으니 그의 조상들의 묘실에 장사되니라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예레미야는 그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며 모든 노래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은 요시야를 슬피 노래하니 이스라엘의 규례가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라.”(대하35:24,25)
한편, 이 같이 애통하는 회개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개별적이라는 점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는 회개는 개별적이며 대신할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하여 “따로”라는 단어를 11번이나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온 땅의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며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12-14)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일대일의 관계로서, 각 사람이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사죄의 은총을 간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오늘도 우리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시되,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해주시도록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