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몽골군을 격파한 선조들의 자존과 기개! 그 거친 숨소리가 서려있구나
9월 산성학교는 안성 <죽주산성>과 용인 <처인성> 답사 후 정몽주의 <충렬서원>, 조광조의 <심곡서원> 등 탐방
9월, 삽상한 가을 문턱에서, 산성학교(교장 최연. 역사유적과 풍경답사 전문가, 전 서울학교·고을학교 교장) 제6강은 세계 최강 몽골군의 침략에 맞서 승리를 쟁취한 안성 <죽주산성>과 용인 <처인성>을 답사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시대는 달리하지만 큰 뜻을 품었으나 미처 펼쳐보지도 못하고 비명에 생을 마감한 포은 정몽주와 정암 조광조의 유적지도 둘러볼 예정입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우리나라는 '산성의 나라'라 할 만큼 산성이 많습니다. 최연 교장샘은 그중 역사적 가치가 높고 이야기가 풍부하며 풍광이 빼어난 대표 산성들만 엄선해 일단 12강을 목표로 강의를 진행 중이십니다. 회원님께선 이번 소중한 기회를 꼭 잡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선조들이 세계 최강 몽골군을 격파했던 경기도 안성 <죽주산성>에 가을이 물들어온다.Ⓒ국가유산청
▶최연 교장선생님의 <산성학교를 열며>
산성학교 제6강은 우리 선조들이 세계 최강 몽골군을 격파했던 경기도 안성 <죽주산성>과 용인 <처인성>을 답사한 후 정몽주의 <충렬서원>, 조광조의 <심곡서원> 등 유적지를 탐방합니다. 2026년 9월 20일(일요일) 열리며 오전 7시 서울을 출발합니다. 정시 출발하니 출발 시각 꼭 지켜주세요. 오전 6시 50분까지 서울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6번출구의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 정문앞에서 <산성학교> 버스(온누리여행사)에 탑승바랍니다. 아침식사로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여는 모임에 이어,
이날의 답사 코스는 서울-안성(죽주산성)-용인(처인성/충렬서원/정몽주묘역·신도비/심곡서원/조광조묘역·신도비)-서울의 순입니다.
▲안성 <죽주산성>, 용인 <처인성> 답사와 정몽주의 <충렬서원>, 조광조의 <심곡서원> 탐방 안내도Ⓒ산성학교
*코로나19와 독감 등 감염병 예방을 위해 참가회원님은 항상 차내·실내 마스크 착용, 손소독, 거리두기를 잘 챙겨주시기를 권합니다.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안성 <죽주산성>, 용인 <처인성> 답사와 정몽주의 <충렬서원>, 조광조의 <심곡서원> 탐방에 대해 설명을 듣습니다.
죽주산성(竹州山城)은 삼남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충지에 세워졌습니다.
죽산은 경상, 전라, 충청의 삼남과 서울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군사 전략적 요새였습니다. 또한 서울에서 영남 쪽으로 가는 영남대로의 추풍령길과 조령길이 갈라지는 분기점이기도 합니다. 이런 연유로 이곳에는 방어 목적의 산성이 14곳이나 있었습니다. 죽주산성을 비롯하여 북쪽으로 설봉산성, 동쪽으로 설성산성, 동남쪽으로 망이산성 등이 인접하고 있습니다.
죽주산성은 비봉산(391m) 동쪽에 연접한 해발 250m봉에 있으며 서쪽은 비봉산에 막혀 있지만, 다른 쪽은 원거리까지 조망이 됩니다. 성벽은 부정형의 외성이 있고, 성안의 가운데 산 능선을 따라 중성을 쌓아 돈대로 활용하였습니다. 현재 성벽은 일부 복원되었는데 외성 둘레는 1,688m 정도이고, 중성 길이가 790m 정도로, 전체 성벽 길이는 2,480m입니다. 성벽은 산기슭에 의지해서 바깥쪽을 쌓은 내탁식이고 높이는 2∼5m 정도입니다. 죽주산성에는 동, 서, 남, 북 4면에 성문이 있고 연못터 2곳, 치성, 포루터도 있습니다.
남쪽 성벽의 양쪽 끝과 동쪽 성벽의 북쪽 끝에는 성벽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쌓은 치성이 남아있으며, 남문 쪽 성 바깥에는 당시에 팠던 도랑의 흔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북문 옆에는 네모진 주춧돌과 기와조각이 흩어져 있어 이곳에 지휘대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출토된 유물은 초기 철기시대의 토기류와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토기류 고려 시대의 기와, 조선 시대의 백자조각들과 기와류 등이 있습니다.
▲죽주산성은 경상, 전라, 충청의 삼남과 서울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충지에 세워졌다.Ⓒ지역n문화
죽주산성은 신라에서 조선까지 걸쳐 쌓은 3중성입니다.
죽주산성은 중부지역을 남북으로 통과하는 길과 동서 방향의 서해로 연결되는 길이 서로 만나는 교통과 군사의 요충지를 통제하기 위해 삼국시대에 쌓아서 조선 시대까지 사용한 산성으로, 중성(본성), 외성, 내성으로 구성된 3중성입니다. 이는 군사적 중요성 때문에 여러 시기에 걸쳐 고쳐서 쌓으면서 만들어진 구조입니다.
가장 이른 시기에 쌓은 중성은 그 높이가 6∼10m에 달하며, 성벽 바깥으로 도랑을 파서 방어력을 높였습니다. 한강 유역으로 북진한 신라가 6C 후반 이후에 죽주산성을 쌓았고, 이후 몇 차례 고쳐 쌓았습니다. 1236년(고종 23)에 몽골군이 죽주산성을 공격하자 죽주 방호별감 송문주 장군이 15일 동안을 싸워 적을 물리쳤는데, 이때 삼국시대에 초축된 성벽을 수축한 것으로 보입니다.
외성은 고려 초에 축조되었는데, 신라 산성의 북벽에 새로 성벽을 쌓아 규모를 넓혔습니다. 임진왜란 기간인 1593년(선조 26)에는 황희 정승의 5대손인 충청병마절도사 황진이 죽주산성에 주둔한 왜군을 물리치기도 하였습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죽주산성의 방어력을 높이고자 중성 내부의 높은 지점에는 내성을 쌓아 최종적으로 3중성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중복된 산성의 구조뿐만 아니라 성벽을 쌓은 방식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모두 4개의 문이 설치되었고, 남벽의 양 끝에는 각각 1개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으며 치성은 돌로 하단부를 60도 정도 경사지게 쌓아 올렸는데,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일본이 한반도 남부지역에 쌓은 왜성의 축조기법을 적용한 결과입니다. 또한 중성에는 조선 시대 화약 무기의 발달에 따른 새로운 군사 시설인 포루가 설치된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죽주산성 내부의 계곡에는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물을 저장하는 계단식 집수장 여섯 개가 확인되었는데 이처럼 산성에 집수장을 여럿 설치한 경우는 죽주산성이 유일합니다. 산성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물 자원과 관련된 전통 토목 기술과 조경의 중요성을 보여주고자 원형을 참고하여 집수시설의 모습을 복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