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5월16일 약혼식 사진, 소공동 허바허바 사장에서...
42년 전 그 때 그 시절
엊그제 컴퓨터가 먹통이 되는 바람에 본체를 들어내야 했다
본체 바로 오른쪽에 책상같은 받침대가 있고 프린터가 올려져 있다
받침대 아래쪽에 수납공간이 있는데 거기 이런 저런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평소에는 컴퓨터 본체가 막고 있어서 뭐가 들어있었는지도 잘 몰랐었는데
먼지를 닦아내고 하나씩 둘씩 들어내다 보니 위의 사진액자가 나왔다
2009년 2월에 재입주했으니까 14년 정도 처박혀 있었던 셈이다
엊그제 시인님께서 신혼시절 사진을 올려 주신 생각이 나서
액자를 꺼내어 잘 닦은 후 거실에 진열했다가 오늘 아침 사진을 찍었다
1981년 내가 30세, 집사람이 26세 때 올렸던 약혼식 사진이다
3월29일날 시청앞에 있는 플라자호텔 커피숖에서 선을 보았다
돌아가신 아버님의 외숙모, 내게 할머니뻘 되시는 분의 소개로
이북에서 피난을 나오지 못하신 할머니 집안의 둘째 딸과 선을 보았다
처갓집 족보에 보면 가까운 곳에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 함자가 나온다
우리 부모님과 장인어른은 황해도 평산이 고향이고 장모님은 연백이 고향이다
장모님과 집사람, 그리고 할머니와 나 그렇게 네 사람이 만났다
당시에 플라자호텔에서 선을 보면 성사될 확률이 높다는 속설이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약속장소를 플라자 호텔로 잡았던 것이다
일요일이었는데 커피숖에 손님들이 바글바글 만석이라
아래층 제과점의 빈 자리를 잡아 그리로 내려가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집 쪽에서 어머니와 누님
그리고 처가쪽 장인어른과 장모님과 다시 한번 만났다
어머니가 매우 흡족해 하셨고 5월 달에 결혼식을 올리자고 하셨다
장인어른께서 이쁘게 봐 주셔서 감사하지만 시간을 좀 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5월16일 우선 약혼식을 하고 결혼식은 9월6일 날 치르기로 결정됐다
어머니께서 2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 추석 차례 전에 식을 치르고
추석차례에 며느리가 참여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었다
결혼식을 올리고 1주일 쯤 지나서 추석이었다
약혼식은 백병원 옆에 있던 파인힐에서 했고
결혼식은 한국일보사 강당에서 치렀다
유명 결혼식장이 모두 예약이 꽉 찼었기 때문이었다
신혼여행은 제주도로 갔었는데
서귀포에서는 이승만대통령 별장이었다는
허니문하우스에서 잤고 제주에서는 그랜드호텔에서 묵었다
허니문하우스에는 방이 10여개 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위의 사진은 허바허바 사진관이라고 소공동에 있었던 유명한 곳이었다
결혼 6개월 후에 내가 회사를 옮긴 후에는 소공동으로 출근을 하게됐다
조선호텔 바로 앞에 있던 복창빌딩이라고 1층에 노스웨스트 항공사
한국대리점인 샾트래블이 있었다. 고려증권 지점도 거기 있었고...
허바허바 사진관이 조선호텔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빛이 바랜 사진이지만 그 시절이 생각난다
서둘러 결혼을 하느라 대단히 바쁜 시간을 보냈고
결혼하고 나서 바로 회사를 옮기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몇 년 간이나 가고싶어 했던 외국인 회사였는데,
몇 번 인터뷰만 하고 뽑지 않다가 갑자기 다시 연락이 와서
새로 부임했다는 키 197cm의 지사장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바로 다음 날 함께 일해 보자는 통보를 받았다.
Donald A. Morris, 내게는 일생의 은인이신 분이다.
그 다음 날 복창빌딩으로 가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여러 페이지나 되는 영문으로 된 계약서를 자세히 살펴 보면서
희망에 부풀어 가슴이 벅차 오르던 생각이 난다
연봉도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고 모든 대우가 다 좋았다
당시 마이카시대가 도래했었는데 포니2 승용차도 한 대 받았다
차는 조선호텔 지하주차장에 주차했다.
자연스레 조선호텔이 나의 주 활동무대가 됐다.
점심도 저녁도 조선호텔 갤럭시 부페에서 하는 일이 잦았다
아침 약속이 있을 때는 1층에 있던 Ninth Gate에서 주로 만났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입버릇처럼 집사람이 받을 복이 있다고 하시며
매우 기뻐하셨고 내게 늘 집사람에게 잘 하라고 당부하셨다.
결혼 6개월 후 바라던 외국인 회사에 취직하고 나서부터 내 인생이 바뀌었다
전직 이후 일도 열심히 했지만, 대과없이 탄탄대로를 달렸다고 볼 수 있다
회사에 다니면서 서강대학교 부설 영어회화 교육원에도 다녔다
광화문에 있던 교총회관에 자리하고 있었다. 퇴근 후 매일
거의 4개월 간 거길 다니며 최고급과정을 수료하였다
모두 나를 발탁한 신임 지사장의 배려였다
우리 동물약품부에는 나와 다른 분이랑 둘이서 일했고
농약부에 다섯 명, 인체약품부에 캐나다인 포함 다섯 명이 일했다
재정담당 한 명, 비서 한 명, 보조 여직원 두 명, 운전기사 한 명
지사장까지 모두 18명 밖에 되지 않는 단촐한 식구였다
여직원 들과 기사 그리고 나의 동물약품부 동료직원만 빼고
나머지 남자 직원들은 모두 대학 동문 들이었다
한국 박사가 세 사람, 미국 유학한 사람이 두 사람이었다
나보다 10년 선배(61학번)로부터 2년 후배(73학번)까지 있었다
비교적 단촐한 인원으로 많은 한국회사 들을 관리하며
연간 매출을 꽤 많이 올렸던 미국 다국적 제약기업의 한국지사였다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며 보람찬 나날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위에 올린 사진이 바로 그러한 모든 변화의 시발점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의 반전이 시작된 계기가 바로 저 때가 아니었나 싶다
내게 시집을 와 준 집사람에게 늘 고맙게 생각한다
[릴리에 관한 보충자료]
2위 로슈사와 4위 릴리사가 내가 근무했던 회사들이다
릴리의 한 부서였던 동물약품 전문회사 엘랑코는
이제 따로 독립하여 뉴욕증시에 독립법인으로 상장되었다
그리고 근년에 스위스의 노바티스, 그리고 독일 바이엘의
동물약품부를 인수, 합병하여 세계2위의 동물약품회사가 됐다
동물약품 1위 기업은 미국의 화이자이고
현재 화이자 그룹 전체의 회장은 화이자의 그리스 지사에서
동물약품을 담당했던 사람이다
코로나 창궐 이후 백신사업으로 대박을 쳤다
화이자가 동물용 백신제품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18위 바이오앤테크가 화이자의 코로나백신을 개발한 회사다
터키 이민자 출신의 부부가 일궈낸 독일회사다
올해 글로벌 제약사 시총 순위 요동…존슨앤드존슨 1위 (medipana.com)
2022년 순위에서는 릴리가 2위로 뛰어 올랐다
내가 갖고있는 릴리사의 주식 가치도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Eli Lilly는 1876년 릴리사를 창업한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의무장교의 이름이다
로슈사의 순위는 7위로 내려 앉았다
코로나가 가라앉으며 진단키트 매출이 줄어든 탓이다
화이자의 순위도 코로나가 잠잠해 지며 조금 가라앉았다
존슨앤존슨은 의약품 외에 화장품과 의약부외품 판매가 아주 많다
이 들을 제외하면 아마도 릴리의 순수의약품 부문에서의 순위가
세계1위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근무했던 릴리 본사의 메인빌딩이다
내가 근무했던 릴리 인터내셔날은 4층에 있었다
미국 인디애나 주의 주도인 인디애나폴리스 중심가에 있다
부지가 아주 넓고, 메인빌딩 뒷쪽으로 여러 동의 건물 들이 있다
사진 앞쪽으로는 아주 넓은 직원용 노상주차장 들이 있다
Stock Quote & Chart | Eli Lilly and Company
첫댓글 옛날생각이 새록새록
나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멋지세요.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청솔님~
키가 정말 크시네요
청솔님도 4살 차이 나는군요
42년전 사진이지만 깨끗하게 잘 보이는군요
두분 천생연분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제가 178이고 집사람이 168입니다
네 용띠, 원숭이띠 그렇습니다
그래도 사진이 빛이 많이 바랬습니다
네 그런대로 잘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멋진 모습 잘 보았습니다. 저도 아버지 고향선배의 사돈처녀(며느리 동생)를 소개받아 3개월만에 결혼했습니다. 갈수없는 이북고향의 인연으로 결혼한 셈입니다.
네 그러셨군요
저도 아버님 인연으로 결혼했지요
장인어른께서 양쪽집안을 잘 아시는 분께
저에 대해 미리 알아 보셨다고 합니다
아무개 아들이 사윗감이라고 했더니
그 양반 반만 닮았으면 사람구실 할거라구
그래서 결정하셨다구 합니다
나중에 결혼식에 오셔서
양쪽 집에 다 부조하셨지요
돌아가신 아버님 덕을 봤습니다 ^^*
40여젼 전이면 80년대인데
그때 외국인 회사에 다녔으면 가히 엘리트라 해야겠네요.
그당시 고등교육을 받고도 법적 절차도 없이 불법 도미해서
밑바닥 생활을 하던 인사들도 많았는데요.
키도 크신데, 저도 170이었지만 점점 줄데요.
그 당시 외국인회사 들어가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한번 들어가면 대우는 꽤 좋았구요
한국 대기업과도 천지차이였지요
나중에 본사근무차 미국에 가서
불법이민생활하시는 분들 보았습니다
영주권 따기위해 무지 애쓰시는 모습들도...
저더러 쉽게 딸 수 있는 조건인데 왜 안 하느냐구
맞습니다. 저도 지금은 177입니다 ^^*
멋진시절....이네요....
저때가 제일좋은 시절인데........ㅎ
물론 지금도 더 없이 좋은 모습이겠지만......
참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가진 건 별로 없었지만 희망이 있었지요
청운의 푸른 꿈을 꿀 때입니다
지금은 그저 유유자적하며 지내려고 합니다
더 이상 욕심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건강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감사합니다
두분 멋지십니다
과거를 돌아보는 이순간
추억이 아름답습니다
행복하세요.
예쁘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때만 해도 애들이네요
청담골님도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하루 보내시길 빕니다
아이고 같은 동향이시네요 저흰 황해도 신천입니다
글구 결혼식두 제군대 제대날 이런우연도 ㅎ
아 신천이시군요.
예전 중앙정보부장 하셨던 김형욱씨가 신천인데...
신천이랑 평산이랑 아주 가깝습니다
반갑습니다
아고 제 결혼식날 제대를 하셨다구요?
참 기가 막힌 우연이로군요 ㅎㅎ
@청솔 ㅎㅎ아부지직계선배셨어요
어릴적 우리집에 자주 오시고
@지존 아 그러셨군요
제가 학창시절 김형욱씨를 좋아했지요
자서전을 읽고 반했습니다
그래서 중앙정보부에 지원했었습니다
합격했었는데, 선배님 만류로 못 갔습니다
그냥 전공을 찾아 먹게 됐지요
@청솔 성님!
그러니까 83년
김경제씨통해서 미국에서 김형욱 회고록이 나와 한국에 들어와 저희동네 제분소에서 몰래 발간되었을때 1.2.3부 모두 그때 읽었답니다
@지존 그러셨군요
저도 나중에 그 책 들이 모두 수거되어
폐기됐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다 읽었습니다
맨 처음에 한 권으로 나왔던 회고록
아주 두꺼웠습니다
책이 아주 고급스러웠습니다
오래오래 보관하고 심심하면 읽곤 했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네요 ㅜㅜ
어머님 말씀이 맞네요
집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 오면서 복을 듬뿍 갖고 오셨군요
미인부인이 복이 많으십니다 어머니가 많이 이뻐 하셨겠지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결혼 후에 살림이 확 피었습니다
미인은 좀 그렇고 마음이 착한 사람입니다
어머니도 그러셨지만
첫째, 둘째 큰아버님께서 예뻐하셨습니다
막내인 고모님도 아주 좋아 하셨지요
이북에서 못 나오신 할머니랑 같은 집안에다
할머니도 키가 아주 크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 분께서 진외가에서 며느리가 왔다고
집사람을 아주 많이 이뻐해 주셨습니다
특히 키가 크셨던 둘째 큰아버지께서
아주 이뻐하셨지요
지금까지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두분다 잘어울리 십니다 멋있게
보이시구오ㅡ ᆢ늘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회장님도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와우 !! 허바허바 사장 참 오랜만에 듣게 되네요 기쁜소리사는 동네마다 있었던것 같구 허바허바 사진관은 그당시에 최고의 사진관 이었지요 그시절 조선호텔 앞엔 고급양복점도 많았었지요 조선 아케이드도 있었구 다 고급집만 있었지요 그시절 서울의 거리가 생각 나네요 청솔님은 성공하신 인생을 살아 오신거 맞네요 그시대에 영어 능통자가 어디 있었나요 이력서가 화려 하시겠네요
네 저 사진이 꽤 크고 멋진 사진이었는데
세월이 지나니 색깔이 많이 바랬네요
맞습니나. 조선호텔 근처에
이런저런 고급상점들이 있었습니다
어디 가면 제 양복이 참 멋지다고 했습니다
조선아케이드를 거쳐서
조선호텔 주차장으로 출입했었습니다
차를 세차해 주는 분 들도 있었습니다
비교적 순탄하게 인생을 살았습니다
제대하고 외국인회사로 옮길 때까지
한 6년 정도 아주 호되게 고생을 했지만요
장앵란님 말씀하신대로
영어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그 때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이후로 이런저런 업무를
계속해서 바꿔가며 수행했지요
교육도 끊임없이 많이 받았습니다
동물약품, 인체약품 : Lilly
동물용비타민, 인체용비타민 : Roche
미국 Lilly사에서
스위스 Roche사로 한번 옮겼구요
IMF외환위기 이후 다시 Lilly사로
돌아와서 은퇴할 때까지 일했습니다
그때 잠시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명한 이목구비가 뛰어나기에
탄탄대로인가 봅니다
수도권에서의 삶. 만만찮을건데
능력자이십니다
이쁘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저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경제적으로 쪼들린 기억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능력자이신 청솔님
탄탄데로 잘 살아 오셨네요.
노력한만큼 이루셨으니 이젠
편안한삶이 되시겠습니다.
두분 너무 잘 어울리시고
미모의 부인께선
내조도 잘하신듯 합니다.
두분 행복하세요.
허바허바 사진관은
아직도 있나요?
평범하게 봉급쟁이로 잘 살았습니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다 열심히 살지요
예쁘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집사람 도움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집안 일은 다 알아서 해주니까요
유리안나님도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나날이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검색해 보니까 허바허바사장 아직 있네요
강남구 역삼동 국기원 들어가는 입구
강남역 12번 출구에서 역삼역 쪽으로 가다가
국기원 입구로 들어가면 되네요
그런데 사진값이 많이 비싸네요
증명사진들의 가격표입니다.
비자: 4만, 공무원증:4만, 반명함: 3만,
여권용:4만, 명함판:4만, 출입증:4만 입니다.
여기에 디지털사진 파일 원본을 원하는 경우
12,000원 추가로 내야합니다.
예전에도 비쌌습니다
허바허바 빌딩도 있습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drone101&logNo=220666182563
@청솔 넵,
검색까지 하셔서
알려주시는 친절함에
청솔님의 품격이
돋보입니다.
옛날 워낙이 알려진 곳이라
여쭤 봤어요.
전 부산에 오래
살아서 여기 온지는 몇년 안됐거든요.
감사합니다.
@유리안나 저도 궁금했습니다
그러셨군요. 부산분이시로군요
사진은 아주 잘 찍는 사진관입니다
색은 바랬지만 저도 약혼사진 좋아합니다
1946년부터 사업을 했다고 하네요
아마도 일본인이 버리고 간 사업인 듯합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네요
전혀 모르고 살았습니다.
바쁘게 살다보니...
기회되면 한번 가봐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