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8-04 오전 7:45:00 [스포홀릭]
무더위 속에서도 요즘 야구장엔 찬바람이 쌩쌩 분다.
시계는 저녁 6시를 가리키고 있다. 정확히 경기 시작 30분 전. 원래 이쯤 되면 최소한 응원석만큼은 가득히 차 있어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이젠 그렇지 않다. 직접 야구장에 가본 사람은 느낄 것이다. 특히 '500만 관중 시대'를 열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그 시절을 기억하는 팬이라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신화의 열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그때만 해도 참 분위기 좋았다. WBC 열풍을 발판 삼아 각 구단들은 올 시즌 관중 동원 목표를 지난해보다 높였고 모두 합산해보니 400만 명이 넘었다. 그런데 지금은 300만 명도 넘기기 힘들어 보인다. 오히려 지난해보다 후퇴하는 모습이다.
변명도 가지각색이다. 어떤 사람들은 날씨 탓으로 돌린다. 개막 초반엔 황사가 불어닥쳤고 황사가 빠져나갈 무렵 때 이른 무더위가 시작됐다. 그리고 어느덧 장마철이 다가왔다. 한마디로 하늘이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독일월드컵 때문이라는 사람은 물론 심지어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 때문이라는 '구차한 변명의 진수'를 보여주는 사람도 있다.
야구가 싫어서 외면한 것이 아니다
지난 4월 29일 KIA 타이거즈는 파격적인 이벤트 하나를 준비했다. 당시 모 회사가 일반석 입장료를 모두 후원한 입장권 13,000매를 선착순으로 배포하는 행사였다. (지정석은 원래대로 판매했다.) 이날 광주 구장은 정확히 14,012명이 들어왔다고 집계됐다. 마침 이날 경기에선 양팀 합계 18안타 14득점이 터지는 불꽃 튀는 타격전이 전개됐다. 모처럼 광주 구장에 모인 팬들은 1회부터 9회까지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야구를 즐길 수 있었다.
그렇다. 그들은 야구를 싫어한 게 아니었다. 단지 낙후된 시설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게 아까웠을 뿐이었다. 제 아무리 공짜라도 야구가 싫었다면 야구장에 들어올 생각 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반 사람들이라면 최신식 시설을 자랑하는 멀티플렉스 극장과 낙후된 야구장 중 하나를 택하라면 십중팔구 극장을 택할 것이다. 극장이나 야구장이나 지출 비용은 비슷하기 때문에 같은 선상에서 놓고 본다면 좀 더 편하고 깔끔한 극장을 찾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야구장 시설 개선은 오래전부터 거론된 문제이지만 아직까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신상우 KBO 총재는 취임과 동시에 최대 현안이라 할 수 있는 돔구장 건설에 대해 자신감을 드러내며 머지않아 결실을 맺을 것으로 호언장담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단계로 진입하지도 못한 상태다. 돔구장부터 이러니 지방 구장 개선에 진척이 있을 리 만무하다.
물론 최신식 돔구장을 짓는다는데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나라도 어려운데 비싼 돔구장이 웬말이냐'고 말하는 그들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가장 즐기는 문화생활의 공간이 60년대식이라면 이런 말은 쉽게 내뱉지 못할 것이다.
KBO, '윈윈 전략' 만들어라
야구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것만큼 야구팬들을 기쁘게 하는 일도 없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부지 선정과 자금 조달 등 모두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나서야할 일들이다. 그런데 지자체의 반응이 영 미덥지 않다. 건설 자금에서부터 골치 꽤나 썩는데다 그만큼 수익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KBO가 가만히 팔짱만 끼고 있어선 안 된다. 지자체도 수긍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구장에 대해서는 다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시즌에는 콘서트와 같은 다채로운 이벤트를 개최할 수 있어 문화 발전의 장이 될 수도 있다.
주위에 상가 지역을 조성해 새로운 수익 창출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처럼 KBO가 적극적으로 나서 지자체와의 '어깨동무'를 통해 구장 신축에 한 발짝 다가가야 한다.
5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던 1995년 당시와 지금은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제 사람들은 '환경'을 생각한다. 얼마나 편하고 쾌적한지를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야구장은 예전 그대로 멈춰있다. 하루빨리 멈춰 있는 시계에 '야구장 신축'이란 배터리를 끼워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