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는 스스로를 고려(고구려)라 불렀다. 중국만이 발해라 불렀다.
고구려가 망했다고?
고구려는 망하지 않았다.
고구려는 지금도 살아있다.
고구려는 [발해]로 부활하고
다시 [근세고려(태조왕건 고려)]로 부활했다.
그리고 끝내 [고구려의 염원]이었던 [(고)조선의 부활]에 성공했다.
그것이 바로 [(근세) 조선]
즉
고구려는 망한 것이 아니라 [(고)조선의 부활]이라는
그들의 염원을 결국은 성공시킨 것.
고구려의 부활인 고려는 조선 속에 살아있었고
지금도 대한민국 속에 살아있다.
[발해]는 스스로를 [고려(高麗)] 또는 [대진국(大震國)]이라 불렀다.
고려는 [고구려]를 뜻하고,
대진국은 [고조선(의 진한)]을 뜻한다.
[고구려]는 원래 이름이 [고려(高麗)]다.
고대 역사책에도 고구려는 [고려(高麗)]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나온다.
그래서 [발해]는 스스로를 [고려(高麗)]라 불렀던 것.
즉
[고구려도 고려]고 [발해도 고려]고 [근세고려도 고려].
제1고려 - 고구려
제2고려 - 발해
제3고려 - 근세고려

중국 입장에서 고구려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고구려가 부활해서 나라를 세우고 (대조영 임금)
그 나라를 고구려와 똑같은 [고려]라 불렀지만
고구려의 부활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중국은
후고구려를 발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이는 그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고구려의 부활을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당시 중국의 입장일뿐
발해가 스스로를 발해라 부른 근거는 전혀 없다.
발해라는 나라이름 자체가 중국사서에 써있는 것일 뿐.
(발해 스스로의 역사책은 전쟁 중 불태워지고
나중에 조선시대에도 중국왕조의 압력에 의해서 수거되어 불태워지고 해서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런데 상식적으로도 발해가 그들의 나라이름을
서해 위쪽 바다를 뜻하는 [발해]로 불렀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는 마치 대한민국이 나라이름을 황해 또는 서해로 부르는 것처럼 이상한 일.)
[발해]를 [발해]라고 부른 것은 중국일 뿐.
발해는 스스로를 [고려(고구려)]라 불렀다.
일본의 역사책인 [속일본기(續日本紀)]에 보면
759년 정월 발해문왕은 사신 양승경을 일본에 보내서
'고려국왕 대흠무가 말한다' 고 하면서 일본왕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한다.
그 전까지 일본은 중국의 영향으로 [발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으나
발해문왕의 말을 전달받고 [발해]라는 이름을 [고려]라는 이름으로 바꾼다.
일본의 순인왕은 사신 양승경이 발해문왕의 의사를 전달하자
답신에서 문왕을 고려국왕으로 표기했다.(속일본기)
즉 발해문왕도 자신을 [고려(고구려)국왕]이라 불렀고
일본왕도 발해왕을 [고려(고구려)국왕]이라고 불렀다는 것.
[속일본기]는 758년 9월과 759년 10월 각각 일본에 도착한 발해사신 양승경, 고남신을
[고려사신]으로 부르고 있다.
북한 사회과학원에서 발간하는 계간 학술지 '역사과학'(2003년 3월)도
이러한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연합뉴스가 인용보도)
( 당나라가 고구려인 포로 2십만을 끌어갔다 하나
고구려 영토안에는 고구려인 대부분 (최소한) 수백만이 남아있었고
끌려간 포로도 많은 수가 탈출한다.
[고구려영토]에서 [고구려인이 세운 나라]가 [고구려(고려)]인것은 당연한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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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발해를 [고려]라 부른 증거 중 또 하나

발해를 `고려`라고 표현한 나라(奈良)시대 일본의 목간(木簡)
위 유물 상세설명 - http://emuseum.go.kr/sch/full.cgi?v_db=3&v_doc_no=00075436&v_ltype=1&LF=N
첫댓글 빌려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