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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영(許京寧, 1947년 7월 13일[1][2]/1950년 1월 1일?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자신의 IQ가 430이다, 자신이 양보해서 반기문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었다는 둥의 황당해 보이는 발언을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박정희의 정통성을 가장 잘 계승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제 2의 박정희'를 자처하고 있다.
15대 대통령 선거인 1997년 대선 때 민주공화당 후보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7대인 2007년 대선에 또다시 출마하였다. 그만의 특이한 정치이력과 참신한 정책으로 '스타 대통령 후보'가 되어 대선이 끝난 이후에도 인터넷 정책홍보, 한국방송 개그 콘서트, 연예가중계등의 TV프로 출연등을 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허본좌'라고 부를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다.
허경영이 스스로 밝힌 이력에 따르면, 허경영은 1950년 초 겨울 서울 중량교 다리 밑 가마니 움막에서 출생하였다. (호적 상의 1947년생은 호적상 생일일 뿐이라고 한다.) 이에 대한 이야기가 아래의 이야기이다.
그의 자서전적인 책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에 그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가 자세히 실려 있다. 이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인 허남권(許南權. 1918 ~ 1950)은 훗날 GS 그룹의 일가가 되는 허정구의 조카(라고 허경영이 주장한다.)로 원래는 부유하였으나, 물려받은 전답을 소작인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준 후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한국 전쟁 발발 사흘 전인 1950년 6월 22일 처형당한다. 허경영이라는 이름은 그의 아버지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당하기 직전 "서울을 세계의 중심이 되게 해서 가난한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허경영은 어머니인 조계식(趙桂植)이 아버지의 면회를 위해 중량교 다리 밑 가마니 움막에서 살고 있었을 당시에 태어났다고 한다.(그의 책에 따르면, 1950년 1월 1일이 실제 생일인지는 불확실하나 1950년 겨울 때 태어난 것만은 확실하다고 한다.)그때 어머니는 겨울 날씨 때문에 산후병을 얻었으며 병을 이기지 못하고 허경영이 4살 때 죽었다고 한다.
이처럼 한국 전쟁의 틈 속에서 전쟁고아가 되어 지리산의 농부의 양아들이 되어 그 밑에서 여러가지 유교 서적을 배웠다.
사춘기가 된 1964년에는 다시 서울로 올라와 수유리 화계사의 중이었던 이행원의 양아들이 되어 팔만대장경을 공부하였다. 1966년에는 광화문 내수동교회의 홍근섭 목사의 양아들이 되어 성경을 공부하였다.
1968년에는 삼성의 이병철 회장의 양자가 되었다고 하나, 사실 여부는 판단할 수 없는 상태이다. 각 종교계 인사와 유명 기업인의 양아들이 된 허경영은 1969년부터 박정희가 사망할 때까지 비공식적인 정책보좌역을 맡았다고 주장한다.[3]
허경영은 한국 주요 재벌 기업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병철의 양아들이라는 주장은 물론, LG그룹과 GS 그룹의 창설 과정에도 허경영이 자신의 조부에게 아이디어를 낸 것이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경제공화당의 총재이다. 제4공화국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밀정책보좌를 맡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1970년-1979년), 현재도 전 대통령 박정희의 이념을 그대로 추진한다.
사실 허경영의 정치 역정 초기에는 "조선왕조의 부활"을 천명하였으나 10.26사건으로 갑작스럽게 서거한 박정희의 이념을 계승하는 공화당으로 방향을 전환한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허경영의 인상은 이후에 지속된다.
그는 소련 브레즈네프 서기장과 담판을 지어 핵기지를 인수했으며, 정권을 잡으면 엄중히 처단할 3000명의 명단을 이미 살생부에 정리했으며, 차후에 아시아 연방을 추진할 것이라고 하기도 하는 등 다소 비현실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 딴지일보의 장난 같은 인터뷰 이후 매우 유명해졌고 이후 딴지일보는 수차례의 인터뷰를 통해서 역설적으로 그를 선전해주었다. 허경영과 언론과의 관계는 "주간현대"류의 소위 황색 저널리즘이라고 불리는 대중적인 상업지부터 비매품 로또 복권 신문등으로 유명한데 특히 로또 복권 신문의 경우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사업 비판과 대안으로 유명하다.
2000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식에서 부시 대통령과 함께 환담을 가져 UN본부를 판문점으로 옮기는 제안을 하였다고 하였으나, 그 근거로 제시한 부시대통령과 함께 촬영한 사진은 합성사진으로 의심되나 허경영 측에서 반박자료로 관련 뉴스 동영상을 제시하였다. 최근 영혼복제술 개발에 대한 소회를 딴지일보에 한 적이 있다.
허경영은 2007년 2월 기자 회견을 통해 2006년 7월 열린우리당에 기간당원으로 입당하였으며 열린우리당 대선 경선에 참여하여 딴지일보를 포상하고 경복궁에 탱크를 진격시킬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다. 그는 또 2000년 부시 취임식 당시 유엔본부를 판문점으로 옮기자는 제안을 했으며 이에 부시가 허경영을 유엔사무총장 후보로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자 본인은 대선에 출마할 계획이기 때문에 사양하겠다고 하고 반기문을 추천해 2006년 반기문을 유엔사무총장의 자리에 올렸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인 경우 전직 대통령이나 현직 재벌의 가족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 합법적, 비합법적인 제재를 받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허경영의 경우 삼성 그룹의 초대 회장인 고 이병철의 양자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위라는 등의 말을 운운 하는 것을 용납하는 것을 보면 기업이나 정치인들이 그의 다소 허황되게 보이는 말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의 관계를 언급한 부분에 대해 박근혜 전 대표측이 2007년 12월 13일 공식적으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2007년 12월 19일, 17대 대선 기호 8번 경제공화당 후보로 선거에 참여했으며, 0.4% 득표로 7위를 했다. 이명박 정동영 이회창 등의 주요 후보들과 함께 토론회에 다수 참여했던 이인제 후보가 0.7% 득표를 한 것을 감안하면 꽤 높은 득표율이다. 이러한 높은 득표율은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과 냉소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있다.[16]
첫댓글 ㅎ2
이인제 대굴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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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어제 피디수첩 보닌깐 완전 싸이비교주개새끼던데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완전개씨발놈임
이제알았냐
이인제 계속 갖다붙이네 근데 이인제 이자식도 불쌍하군 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