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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허구의 경계읽기_ Fiction and Nonfiction ● 서울시립미술관은 가을, 독서의 계절을 맞이하여 미술을 감상하는 하나의 예로 ‘미술읽기’를 소개한다. 작가들의 문학적 사고가 미술작품을 이해하려는 관람객들에게 전달되어 공감대가 형성되고, 개념미술의 이해에서 출발해 표현되어지는 ‘미술읽기’의 방식들이 어떠한 형태로 표출되는지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통해 이해하고자 마련하였다. ● 이 전시는 현실과 비현실, 실제와 허구, 개념과 이미지 사이를 교묘하게 교란시키는 작가들의 감수성이 드러나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사진이나 영상 매체가 이제는 단순히 기록의 범위를 넘어서 이미지를 조작하고 상황을 새롭게 연출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현실을 의도적으로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매체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이는 반응하는 작가들의 시도, 바로 21세기의 다원화된 문화현상과 사회구조 그리고 개인적 감수성을 토대로 형성된 잠재된 이야기들을 수면위로 끌어올려서 작품으로 표현한 작가들의 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이번 전시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전환되어질 수 있는 상황연출로써 ‘현실과 허구’의 관계이다. 픽션과 논픽션의 접점에서 작업하는 작가들, 픽션인지 사실인지 애매모호한 작품들을 다룬다. 사진과 영상으로서의 다큐멘터리가 픽션과 만나서 개인사적, 사회적, 역사적 이야기를 초월한 새로운 의미의 이야기로 재탄생되어진다. 이러한 시도는 다양한 매체의 활용과 장르 간 협업을 통한 현실의 다양성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한 예로 조각의 확장된 영역으로서 ‘설치’의 의미는 설치를 위해 사용된 오브제 그 자체가 아니라 결과적으로 재현 영역에서 그것이 암시하는 상황에 관계함을 통해 드러난 현실의 반영이다. 여기서 우리는 제시되어진 다큐멘터리식 미장센(연출)이나 연출된 이미지를 통해 현재의 상황이나 부조리를 초월할 수 있는 예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의 미술을 바로 ‘픽션과 논픽션’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일반인들에게 이 전시를 통해 대상을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예를 위트 있게 제시하면서 작가들의 작품 스타일을 통해 장르 간, 매체 간의 경계에 대한 담론은 물론 현실과 가상, 나아가 ‘실재와 시뮬라크르(복제)’에 대한 논의 또한 다각도에서 해석해 볼 수 있는 기회의 전시이기를 바란다. ● 남서울분관의 전시공간을 고려해서 한 공간에 한 작가의 작품세계가 펼쳐지도록 구성했으며, 일반인들이 조금이라도 쉽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방마다 키워드를 제시했다. 제시되는 단어 뒤에 붙는 ‘되기’와 ‘하기’와 같은 보조단어는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이해하는 이정표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러한 제안은 작가의 창작의지가 관람객들에게도 전달되어서 함께 공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물(事物)과 놀기 ● 안규철은 사회비판적 의식과 문학적 감수성을 토대로 1980년대 중반부터 오브제 작품과 텍스트 설치작품 등을 통해 시각미술에서 개념미술로 발전시키며 그 깊이를 축적시킨 작가이다. 작가는 사물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개입을 통해 내러티브 미술로 발전시킬 수 있었고, 오브제 제작에서 설치미술에 이르기까지 상황에 관계되어 재현되어지는 시각문화의 폭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번에 전시된 「상자 속으로 사라진 사람」은 지시문과도 같이 텍스트로 구성된 드로잉 13점과 함께 놓인 3개의 상자를 통해 현실과 허구의 모호한 관계를 확인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 텍스트를 순서대로 읽고 실행에 옮기면 과연 정말 사라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 남자의 가방」에서도 보여준 소설 같은 이야기이지만 어릴 적 산타할아버지가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것처럼 가방 속에 ‘천사의 날개’가 있을 수 있다는 가정은 우리의 믿음을 자극한다. 왠지 미술관이라는 속성이 그러한 현상을 용납하지 못할 것이란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작가는 이 마술과도 같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제안함으로써 믿음의 부재와 상상력의 부재를 깨닫게 한다. 바로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요구되어지는 상상력이 현실 속에서, 바로 눈앞에서 제안되어질 수 있음을 위트 있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작가는 작품을 통해 사실인지 허구인지 알 수 없는 미묘한 상태를 만들어버림으로서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상태를 자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상상력의 실체를 눈앞에 펼쳐놓고, ‘믿을 것인가’ 아니면 ‘믿지 않을 것인가’ 혹은 ‘상상할 것인가’ 아니면 ‘상상하지 않을 것인가’를 되묻고 있는 것이다.
다시, 부르기 ● 서른이라는 나이에 접어들면서 작가 정혜경은 인생에서 꿈보다는 현실의 무게가 크게 느껴짐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면서 가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곡을 떠올리고 다시 듣기 시작했다. 작가는 이를 계기로 80년대와 90년대의 감성을 대변했던 가수 김광석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제작했다. 김제동, 신은영, 유민호, 이보성, 연영석 등 김광석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세대들로부터 인터뷰를 하고 이를 편집해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상「김광석 보고서」을 통해 작가는 과도기적 세월을 경험한 세대와 바로 김광석을 열광했던 세대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누구보다도 일탈을 꿈꾸고 노마드적 감수성을 간직한 작가 정혜경이기에 김광석의 멜로디는 창작을 위한 모티브가 되어주었다. 작가는 모성애를 발휘하듯 평소 오토바이를 사서 세계일주를 꿈꾸던 가수 김광석을 위해 기타로 만든 오토바이 「Touch Me」와 스테인리스 스틸로 된 오토바이 「세계일주」를 만들었다. 작품「CHAOS」에서 작가는 오토바이에 김광석을 태우고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보내준다. 대중문화와 조형예술의 접점을 찾아가는 작가는 본인의 작품이 세대를 초월해 남녀노소 서로 간에 소통하고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작품이기를 희망한다. 바로,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대중적 음악을 통해 일탈을 꿈꾸는 작가 정혜경에게 픽션은 같은 세상에서 함께 공감하고 꿈꾸는 것이 아닐까.
추리하기 ● “제 2일 나는 나의 방에 가서 밤새 나 하나를 꾀어내어 바다를 보여주겠다 하였더라. 다른 나는 좋다 하며 나를 따라갔더라. 내가 다른 나를 바다로 밀어내며 말하기를 바다에 어울리지 않는 자가 너이니 네가 죽어야겠다. 다른 나가 나에게 말하기를 내가 아직 죽는 것이 아니요.”남화연작. <바다의 역사」 중에서 2007년 8월에 발생한 ‘보성 어부 살인사건’은 작가 남화연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만들어진 「바다의 역사」는 살인사건을 바다라는 공간에 가둠으로써 작가는 은유적으로 사건의 모호함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에게 바다는 무엇일까. 작품 속에서의 ‘나’와 ‘어부’는 서로 ‘바다를 보여주겠다.’며 유혹하고, 바다에 도착한 이들은 서로 ‘죽어야겠다.’며 위협하는 이중적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작품 속 은폐된 이야기, 그 정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유혹적인 바다의 힘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작가는 이 사건을 통해 부조리한 인간의 심리적 갈등을 유혹의 대상인 바다를 통해 발견하고, 재현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현실과 허구의 접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 사건을 통해 작가는 작품을 재구성했지만 탐정의 역할로서가 아니라 바다라는 상징적 매개를 통해 개개인에게 내재된 심리적인 충동과 갈등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다시 말해 작가는 호기심의 대상이며 매혹적인 공간이자 동시에 죽음의 장소가 되어버린 ‘바다’라는 매개를 통해 이중적 모순 속에서 파생되어지는 실재와의 관계를 복제된 ‘나’와 복제된 ‘어부’를 통해 인간에게 내재해 있는 심리적 갈등의 요소로 증폭시키며 드러내는 것이다.
동시에 읽기 ● ‘대개 진실은 우리 눈앞에 놓인 표면적인 사실 뒤에 존재한다.’마미 카타오카, 일본 모리 미술관 큐레이터 김홍석은 진짜 같은 허구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전달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작품들은 현실의 조건을 강요하는 허구들의 제시로 해석할 수 있는데 가상의 대상을 통해 진실을 노골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진실은 무엇일까. 작가는 특히 비윤리적인 상황이나 터부시하는 부분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작품 속 이야기는 실존 인물의 경험담은 아니지만 있을 수 있는 현실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직설적이고 때론 우려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This is Coyote」는 코요테 인형 옷을 입고 연기하는 김전일씨라는 인물(가상의 인물)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이 사람은 일본정부에 망명을 신청한 상태이고, 이 전시를 위해 잠시 고용되었다. 작가는 친절하게도 김전일씨가 연기를 잘 할 수 있게끔 격려해 주고 방해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다시 밝혀두지만 이 이야기는 진짜가 아닌 픽션이다.) 이러한 작가의 제시는 다원화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김전일씨와 같은 사람들이 이 공간에 함께 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사회의 약자를 통해 사회의 특정 부분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세계와 소통을 꾀하는 작가만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디즈니랜드와 같은 세상, 모든 것들이 얽히고설킨 시뮬라크르의 세상, 상상할 수 있는 가상의 세상,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속에서 발견되어지는 너와 나의 관계를 작가는 블랙 코미디처럼 작품 속에서 구현하고 있다.
추억하기 ● 박화영은 소소한 일상 속에서 발견되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단절된 개체들 간의 소통을 시도하는 작가이다. 이번에 출품된 「드라이브」는 우연히 재개발 아파트 단지 공터에 버려진 낡은 피아노를 발견하면서 전개되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피아노를 매개로, 소위 ‘소비되고 쓸모없어진 피아노’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드라이브」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혼재하는 4채널 비디오, 8채널 오디오 작업으로 ‘제 기능을 상실한 악기’를 통해 ‘기억과 상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 채널은 마치 서로 다른 악기가 각각의 음색과 선율을 연주하듯이 독립적으로 펼쳐지면서, 또한 합주하듯이 서로 교차하고 충돌하게 된다. 4개의 영상은 ‘인터뷰’, ‘청소’, ‘운전’, ‘채취’라는 4가지 테마로 분류되어 동시에 상영된다. ‘인터뷰’에서는 피아노를 발견한 사람을 통해 신체에 대한 기억을 듣는다. ‘청소’에서는 세월의 먼지를 털어내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운전’에서는 부서진 피아노를 싣고 서울 시내를 달리면서 형성된 피아노 소리를 듣게 된다. 여기서 길의 굴곡은 악보가 되고 자동차는 달리는 악기가 된다. 마지막으로 ‘채취’에서는 30여년 된 피아노 속에서 발견된 물건들을 단서로 에피소드를 형성한다. 작가는 버려진 악기를 매개로 기억과 상상의 이중적 요소를 동시에 만들어나간다. 다시 말해 작가는 피아노를 통해 현실 속에서 상상을 하고 허구의 세계를 추정함으로써 피아노의 에피소드를 실재하게끔 하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읽기 ● 오용석은 다양한 시간이 교차하는 공간을 연출하고자 영화의 한 장면과 작가 자신이 촬영한 실제 현실을 뒤섞어 불분명한 시공간을 만들어내는 작가이다. 작가의 기존작품인「드라마」시리즈의 제작 방법은 동일한 공간 속에서 서로 다른 시간대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 공간을 기억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방식이자 파편화된 기억의 조합으로 존재의식의 한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과거와 현재, 기억과 추억들을 쫓아가는 작가의 노력은 허구의 공간과 실제 상황이 만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으로 이어진다. 이번에 전시한 「러브레터」라는 작품은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란 영화에서의 한 장면과 현실 속 이미지가 중첩되어 보이는 작품이다. 배우 오드리 헵번이 창가에 앉아 ‘Moon River’를 부르는 장면과 한 남자(작가 본인이)가 창가에서 사랑의 내용이 담긴 편지를 비행기로 접어서 날리는 장면이 동시에 상영되면서 하나의 영상처럼 보이는 작품이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영화 속으로 개입하는 작가는 관람객의 시지각을 교란시키며 매혹적으로 현실과 허구의 접점을 만들어내고 있다.
제2의 공간 읽기 ● 함경아는 정치, 경제, 사회현상에 주목하는 작가다. 지난 개인전에서 작가는 “게임문화(Such Game)”라는 테마로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은유적으로 묘사하면서 자수, 병풍, 도자기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작가만의 조형적 감수성을 특유의 방식으로 소개한 바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Gold rush」와 「View with Persian Carpet」 역시, 자본화된 사회현상을 꼬집는 작품들이다. 1848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 시초가 되어 이러한 현상을 ‘골드러시’라고 부르게 되었다. 작가는 최근 투기를 목적으로 미술시장에 몰리는 현상을 자본주의 사회의 현상으로 이해하고 작품 「골드러시」를 제작하게 되었다. 작가는 노골적으로 발광하는 금덩어리 작품을 만들어 소개한다. 우리는 이 유혹적인 작품을 통해 그 외형적 가치 못지않게 고민해야 할 문제를 제시받게 된다. 작가는 진실과 허구의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며, 바로 허구 속에 감추어진 진실의 의미를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다. 다음으로 「페르시아카펫이 깔려있는 광경」은 페르시아 카페트의 상징적인 의미와 가치를 통해 카펫(석유)을 차지하고자 하는 강대국들의 열망을 소개하는 작품이다. 지금은 거실이나 사무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카펫이지만 한때에는 페르시아의 상징이자 많은 이들이 소유하고 싶어 했던 물건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그 의미가 상실되었지만 작가는 페르시아 카펫의 의미를 그 지역의 생산물인 석유로 대치시킨다. 석유 찌꺼기로 그린 페르시아문양의 카펫과 거울 너머로 이어지는 카펫의 이미지는 허상의 이미지로 끝없는 욕망 속에 존재하는 카펫의 이미지, 석유의 이미지 바로, 물질적 허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치유하기 ●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사건, 엑손 발데즈 선박 기름 유출사건, 조승희 총격사건, 캐나다 픽톤 농장 살인사건 등과 같이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들은 작가 박윤영에게 작품의 모티브가 되어왔다. 평소, 미스터리한 사건을 재구성해서 단서를 제공하고, 얽히고설킨 작가의 상상력은 추리소설과도 같이 몽환적 내러티브로 재탄생되어 펼쳐지는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Downtown Eastside」작품은 스토리뿐만 아니라 매체의 다양성을 드러내며 소개된다. 하얀 병풍과 투명 아크릴, ‘픽톤 농장 살인사건’이 보도된 신문자료, 주홍색 페인트로 칠해진 좌대가 함께 전시되어서 신비로운 느낌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마틴 루터 킹의 암살에 사용된 총, 기름을 유출한 유조선인 엑손 발데즈호를 병풍 속에 그려 넣고 비극적 행위 혹은 사건을 멈추게 하는 의미로 원주민들이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하는 식물들(일종의 환각을 일으킨다고도 함)을 함께 그려 넣었다. 이러한 시도는 정화의 의미를 가진 자연식물들이 비극적 사건의 문젯거리인 ‘총’, 바로 물리적 방아쇠를 제어함으로써 치유의 공간으로 안내함을 의미한다. 작가는 이 공간을 욕망하는 것이나 사랑하는 것들을 버려야 갈 수 있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익슬란(IXTLAN)’을 제시하게 된다. 작가는 인간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과거와 현재, 현실과 몽환의 세계에 비유하며 실제 사건들을 모아서 재구성한 작품을 통해 ‘익슬란’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다.
변신하기 ●김범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사물의 의미를 위트 있게 전복시키는 예로 알려진 작가다. 현실과 허구의 접점에서 창작하는 작가로서, 현실에서 발견되어지는 사물을 변형시키거나 이야기를 전복시키는 작품들을 주로 선보여 왔다. 2002년도에 제작된 「무제(뉴스)」는 1분42초 동안 상영되는 영상작품으로서 사건, 사고를 전달하는 아나운서들의 목소리를 재조합해서 만들어졌다. 즉,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재편집되어서 단어들의 조합으로 새로운 문장이 된다. 정보전달의 의미를 지닌 뉴스를 통해 작가는 새로운 메시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아나운서는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간다. ‘세상엔 놀랄만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여러 가지 일들이 쉴 새 없이 일어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런 일들에 대해 말하거나 들을 때마다 반드시 놀란 표정을 짓거나 소리를 지르는 것은 아닙니다. ...(중략)’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청사진” 연작은 모눈종이를 이용한 설계도다. 그 중, 「무인목성탐사선」은 우주탐사를 목적으로 탑승한 원숭이를 위한 설계도면이고 「환각성 흉악범과 공격성 맹수의 합치건물 설계안」이란 작품은 흉악범과 맹수를 함께 가두는 건물의 설계도면이다. 작가의 감수성은 어린아이와도 같이 천진난만하다. 하지만 언어학적, 사회적, 심리적, 문학적인 부분까지 작품 속에 드러내면서 관찰되어지는 작가의 예리한 통찰력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이름 짓기 ● 다큐멘터리 영상작가로 잘 알려진 김세진의 이번 작품들은 사회제도 안에서 규정되어지는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작품 「닉네임」은 ‘허풍쟁이’, ‘광신도’, ‘미혼모’, ‘게이’ 등등 각각의 초상화에 매겨진 호칭으로 픽션이다. 이 사실을 모르고 사진 속 얼굴을 본다면 누구나 ‘이 사람은 허풍쟁이구나’라고 생각하고 믿어버릴 것이다. 그럼, 닉네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작가는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이미지이자 현상으로 이해한다. 바로 인간의 편견과 오해로 인해 편하게 다가가지 못하고 상대를 너무나 쉽게 평가하고 선입견을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붙여지는 것이 닉네임이라고 이야기한다. 바로, 보이지 않는 계급, 집단의 이기심으로 개인의 가치를 저버리는 예를 표현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혹, 우리가 너무나 쉽게 타인에 대해 신뢰와 믿음을 저버리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것을 제안한다. 그럼, 작가는 현실과 허구의 어떠한 측면을 드러내는 것일까. 바로 눈으로 보는 것만이 실제가 아님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현실과 허구의 양면성, 왜곡되거나 평가 절하되어서 감추어진 진실, 바로 보이지 않는 진실을 드러내는 작업이 허구와 같이 보일지라도 그것이 진실일 수 있음을 제시하는 것은 아닐까. 작가는 이렇게 기록적 의미를 가진 사진이나 영상매체를 통해 픽션처럼 보이는 사실을 기록해서 소개하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입증하기 ● 황우석박사의 줄기세포사건, 신정아씨의 학위 위조사건은 작가 박재영에게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작가는 이 사건을 계기로 거짓된 이야기들이 어떻게 형성되어 현실 속에서 우리를 자극해 왔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사람들이 TV, 인터넷과 같은 정보매체를 통해 아주 쉽고 빠르게 사건에 주목하고 믿어 버리는 것을 보면서 작가는 쉽게 믿을 수 있는 과학적 근거와 증명서 등을 만들어낸다. 바로 ‘보카이센’이라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를 찾아내 그럴듯하게 미화하고 과학이라는 학문을 이용해 증명해 보이고 학위와 같은 증명서를 만들어 인증된 것처럼 꾸며 가상의 동물을 실제화 시킨다. 바로 작가의 「보카이센 프로젝트」가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를 한편의 실화처럼 빈틈없이 구성하여 만들어낸 공상과학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것들은 하나의 작품이기 보다는 그 상황을 증명해 주는 장소이다. 작가에게 픽션의 의미는 현실에서 발견되어지는 사건이 어떠한 대상을 통해 드러나고, 이러한 상황을 각색하고 변형시킴으로서 만들어진 허구의 공간을 통해 더욱 진지해지는 허구적 현실을 제안 받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진실한 허구를 만들어내고 이것을 통해 우리가 왜 믿게 되었는가를 되묻게 하는 역설의 논리를 펼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접촉하기 ● 김해민은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미디어아트를 꾸준히 발전시켜온 작가다. 특히 형식적인 매체의 가능성보다는 매체의 속성을 이해하고 매체의 활용을 통해 한국적 정서를 담아내고자 노력해 왔다. 이번에 출품된 「접촉 불량」은 2006년도에 제작된 것으로 90년대 초에 선보인 「TV 해머」와 같은 맥락의 작품이다. 모니터의 안과 밖에서 작용하는 힘의 논리를 다룬 점이 같은데, 「TV 해머」는 모니터 내부에서 이루어졌다면 이 작품은 모니터 밖에서 조정하는 것이 다르다. 접촉이 불량한 TV 모니터를 물리적 힘을 가해서 영상이 제대로 나오게끔 하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TV를 타고 흘러나오는 장면들 또한 정상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세상의 다양한 이미지들 중에서도 전쟁장면, 분단의 아픔, 이산가족, 욕망, 종교문제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부조리한 이미지들이 흘러나온다.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세계를 담고 있는 TV모니터를 작가는 열심히 건드려보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인간의 손을 통해 안과 밖이라는 분리된 공간에서 관계하려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실상, 작가에게 모니터의 안과 밖은 어느 것이 허구이고 현실인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작가는 영상매체의 기술적 측면을 통해 사실인지 허구인지 모호한 상황을 연출하지만 모니터의 안과 밖의 공간은 바로 우리의 현실을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 강효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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