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하는 사람들
눅19:28-40
2026년3월24일(화)
기동찬
28.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29.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30.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1.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32.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33.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34.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35.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36.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37.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9.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30.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하나님, 제자들은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토를 달지 않는 영성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전에 “왜요?”라고 하는 질문을 던지며 상황을 먼저 고려하곤 합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순종했습니다.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30절). 제자들은 주님의 이 말씀에 그건 잘못된 것 아닙니까, ‘다른 사람의 나귀를 그냥 가져오는 것은 계명에 어긋나지 않겠습니까?’ 라고 반문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순종했습니다. 자신들의 상식보다 주님의 권위를 더 앞세웠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맞은편 마을로 가라”(30절)고 하시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가보지 않은 맞은편 마을, 아직도 만나보지 못한 나귀의 주인, 그리고 남의 가축을 그냥 끌어와야 하는 난처한 상황임에도 “맞은편 마을로 가라”(30절)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제자들은 ‘맞은편 마을로 가면 나귀가 진짜로 있을까,’ ‘주인이 안 준다면 어떡하나?’ 라는 생각도 들 수 있었겠지만 그 의문을 주님께 묻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확신 속에서 순종했다기 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기에 순종했습니다. 자신들의 상식과 생각보다 주님의 말씀을 더 앞세우고, 그 말씀에 더 권위를 두고 순종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게 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맞은편 마을로 가라”(30절)고 하셨을 때, 제자들 또한 자신들 나름대로의 생각이 다 있었겠지만 자신들의 의견을 내려놓고, 주님이 말씀하셨기에 순종했음을 선포합니다.
“맞은편”은 지금 제자들이 서 있는 곳과 반대되는 편입니다. “맞은편”은 제자들의 생각과 반대되는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맞은편”, 편안한 곳이 아닌 전혀 생각하지 못한 “맞은편 마을로 가라”(30절)고 하시는 말씀에 제자들은 순종했습니다.
이 순종으로 인해서 스가랴 9:9절의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9:9).
순종의 결과 제자들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32.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제자들이 발을 떼어 순종하기 전까지는 걱정이었지만, 막상 “맞은편 마을”에 도착하니 주님의 말씀은 실제가 되었습니다. 순종하는 자만이 주님의 말씀이 실제가 되는 사건을 목격할 수 있음을 선포합니다.
주님, 오늘 제게 “맞은편 마을”은 이해되지 않지만 가야 하는 어떤 자리일 수 있습니다. 제가 이해되지 않지만 선뜻 내어놓아야 하는 시간과 물질일 수 있습니다. 제가 사과하기가 어색한 누군가와의 관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에 제자들이 순종했을 때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32절)의 실제가 일어났습니다.
또한
33.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34.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사실, 모든 소유의 진짜 주인은 주님이심을 선포합니다.
모든 소유의 진짜 주인은 주님이라고 인정할 때 조금도 갈등하지 않고 진짜로 주인이신 주님을 위하여 즉시로 내어 드릴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제가 가진 모든 소유의 진짜 주인은 주님이심을 인정할 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나귀의 주인이
33...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라고 물었을 때, 제자들은 구구절절 상황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34.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는 말씀만 대언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사역의 현장에서 나의 논리로 설득하려고 하기보다, 주님의 권세 있는 말씀을 그대로 대언할 때 환경의 문이 열리고 마음의 문이 열리고 닫혔던 모든 문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너의 기도시간을 내가 좀 쓰겠다. 네가 가진 그 재능을 복음위해 좀 쓰겠다. 네가 아끼는 그것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좀 쓰겠다. 라고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실 때, “왜요?”가 아니라 “아멘”으로 화답할 때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실제적인 사건을 보게 될 줄 믿습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35.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36.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주님, 제자들과 무리들이 자신들의 겉옷을 주님이 가시는 길에 펴 드리는 것을 봅니다. 주님, 저의 가장 귀한 겉옷, 나의 자존심, 나의 소유, 나의 계획까지 주님의 발밑에 펴 드리는 제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 하루도 주님의 손에 올려 드리며
제 삶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Declaration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제 삶에 막혔던 모든 문은 열리고, 그 말씀은 제 삶에 실재가 되고 기적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임을 선포합니다.
I declare that when I obey the Lord's word, every closed door in my life will be opened, and His word will become a living reality and a miracle in my life.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