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단상(斷想)
김 홍 우
가을이 오면 영락없이 추락하고 싶다.
하양. 보라. 다홍 날개를 펴고 빙글빙글 돌아 추락하고 싶다.
바지랑대보다 높이 고추잠자리보다 멀리 날아 추락하고 싶다.
처가에 가는 길에 박달재 산마루 긴 터널을 지나 봉양읍이 가까워지면 아내는 으레 한마디 던진다. 30여 년이 지났어도 한결같다.
“여기까지 코스모스를 심으러 왔었네. 그때는 왜 그랬나 몰라.”
모르기는, 구불구불한 신작로에 꽃길을 만들고 아이들의 마음에도 꽃씨를 심으려 했겠지. 꽃향기 같은 해몽이다.
괴산댐 아래에 있는 학교에 다닐 때다. 봄이면 십리 길 칠성까지 해마다 코스모스 꽃모를 심고, 늦가을이면 또 꽃씨를 거두러 다녔으니 그 시절은 아마 온 나라가 고사리손을 빌리지 않았을까 싶다.
흙먼지 날리는 메마른 신작로에서 코스모스의 한들한들한 손짓은 덜컹대던 완행버스의 운전사나 멀미나는 손님들에게 큰 위안이었을 것이다. 시오리 통학길의 아이들이나 이십 리 삼십 리 장길의 장꾼들에게도 코스모스는 하늘하늘 아는 체를 하였다. 코스모스의 천진스런 미소는 그들의 지친 발걸음에 힘이 되어주고 고단한 길을 줄여 주었을 것이다.
코스모스는 1945년 광복 전후에 귀화한 꽃이라고 한다. 원산지는 멕시코다. 18세기 후반 스페인의 탐험대에 의해 유럽에 퍼졌고 우주를 뜻하는 ‘코스모스’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코스모스는 질서와 조화, 아름다움과 장식의 의미도 함께 지녔다고 한다.
코스모스는 아름다운 만큼이나 슬픈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유럽의 한마을에 사는 예쁘고 마음씨 고운 아가씨가 가난하지만 착한 나무꾼과 서로 사모하고 정이 깊어 결혼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인근의 포악한 사냥꾼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니 나무꾼도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는 애잔한 전설이다. 그래서였을까, 코스모스의 꽃말은 ‘소녀의 순결, 순정, 애정’이다.
코스모스는 신께서 인간 세상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처음으로 만든 꽃이라고 하는데 꽃대는 여리여리 바람에 흔들리고 꽃 색은 이 색 저 색 여러 색이다. 그러할망정이지, 전설이나마 아리고 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청군, 백군 모자를 나눠 쓰고 우르르 운동장으로 달려 나가 선생님의 호각 소리에 발을 맞출 때면 가을 초입이다. 머잖아 송이송이 알밤이 벌고 조롱조롱 대추도 붉어질 것이다. 할머니는 둥시감을 우려낼 것이고 맷방석에는 엿질금을 펴 너실 것이다.
곧 추석이다. 추석 다음 날은 언제나 만국기 펄럭이는 운동회 날이었다. 누가 이르지 않아도 인근의 모든 마을 사람들은 학교 운동장에 모여들었다. 그들도 코스모스 핀 학교 가는 길에 물들었던, 크레파스 같은 추억을 그리워하리라.
눈을 감으면 서울까지 인천까지도 코스모스길이 펼쳐진다. 꽃길에는 까까머리와 상고머리의 해 맑은 웃음꽃도 함께 피어난다. 다시 눈을 감으니 꽃길은 대전을 지나 광주로 또 진주로 나 있다. 그 길에 머문 단발머리는 꽃잎처럼 살랑살랑거리고 갈래머리는 도리도리를 하고 있다.
코스모스 꽃잎은 여덟 잎이다. 꽃 한 송이를 따서 꽃잎 사이사이 한 잎씩 떼어내면 네 꽃잎이 남는다. 이걸 엄지와 검지 또는 엄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고 꽃대를 힘껏 돌려 튕겨 버리면 빙그르르 프로펠러처럼 돌며 날아간다. 고작 한두 발짝이나 그 나름이지만 색 고운 꽃잎이 빙그르르 돌며 날아가는 모습은 일품이어서 가히 황홀한 지경이다.
동무들과 집으로 가는 길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걸음을 멈추고 서로서로 멀리멀리 헬리콥터를 날려 보냈다. 그럴 때면 하얀빛 헬리콥터가 푸드드드 날아가다 동무의 검정 고무신 코로 추락했다. 다홍빛 헬리콥터는 씨잉씨잉 어깨 질끈 동여맨 책보 위로 날아 가기도 했고 더러는 나의 보랏빛 헬리콥터가 사뿐사뿐 붉은 댕기 갈래머리를 향하여 날아갔다.
코스모스 그림자가 석양빛에 이울었나 싶더니 산들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눈부시게 푸른 가을 하늘 어느 날에, 희끗해진 귀밑머리가 날려도 좋을 가을바람 부는 어느 날에, 다시 한번 동무들과 함께 코스모스 길을 걸으며 코스모스처럼 웃고 싶다. 코스모스 헬리콥터에 알밤 한 움큼 대추 한 움큼을 싣고 유년의 가을 어느 날 추억 속으로 아롱다롱 날아가 추락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