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6 연중 제21주간 월요일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3,13-22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3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14)·15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16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너희는 말한다.
17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 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는 또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단 위에 놓인 예물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19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예물이냐, 아니면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사실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고,
21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성전과 그 안에 사시는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며,
22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하느님의 옥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서울에서 레지오 마리에 단원 다섯 분이 우리 생태복지마을 기도하며 봉사하는 프로그램에 함께 하기위해 찾아 왔습니다. 아침 9시에 우리 밥집에 도착하여 한 시간 동안 봉사자들과 함께 야채와 생선 손질 봉사를 하였습니다. 이어 우리 밥집 온천목욕봉사 차량인 11인승 스타리아를 타고 해파랑길 종점이자 DMZ 평화의 길 종점인 남고성 통일전망대에 도착하였습니다. 북고성 금강산과 해금강을 바라보는 평화의 성모상 앞에서 남북한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이어 해파랑길 고성 구간에 있는 교우촌 산북리 공소터와 옹기굴, 학야리 공소, 교암 공소를 방문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까리따스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용촌리 마태오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을위해 기도하고 다시 우리 밥집으로 돌아와 우리밀 라면 정식으로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원로 신부님이 살고있는 설악동 중도문 옹기마을 공소터를 방문하고, 마지막으로 양양 부소치리 성 글라라 관상수도원에서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우리의 기도하며 봉사하는 하루 프로그램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님을 구세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이방인 동방박사들과 거부하는 헤로데의 대조로 시작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대조시키면서 거부하는 이들의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거부하는 이들의 중심에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끈질기게 예수님을 반대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권위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죽이려고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간은 얼마 남지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실체를 보여주시고, 종말의 때 그들이 겪게될 불행을 보여주시면서 회개를 촉구하고, 종말론적 삶에 관해 말씀하십니다.(마태 23-25장은 마태오 복음서의 5 개 담화문 가운데 마지막 것으로 종말에 대한 담화문입니다.)
예수님의 종말에 대한 설교는 먼저 부르심을 받았으나 거부하고 오히려 반대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나쁜 행실을 꾸짖으시고, 그들에 대한 불행 선포(23,13-36)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맞게될 불행을 종말의 표지로 보여주십니다. 먼저 그들이 불행한 이유, 곧 그들의 나쁜 행실을 8 가지로 나누어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그 이유 마지막에 종말의 표지가 될, 그들에게 닥칠 불행을 보여주십니다.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는 그들이 자비로운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죄와 죽음의 한계 속에 살아가는 나약하고 부족하고 불완전한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줄기차게 섬김을 받으려고 하고 자신을 높이려고 합니다. 그들은 잘난 체하고 우쭐거리고 남을 업신여기는 교만, 오만, 거만에 차있습니다.(23,1-12 참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들입니다. 가면을 쓴 모습과 가면 아래 본래의 모습이 다른 위선자들. 그들은 탐욕스럽고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눈먼 인도자들입니다 그들은 불행을 자초합니다.(23,13-22 참조)
이런 어리석은 유다인들에게 예수님께서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23,12)
율법과 예언서의 본래의 모습인 섬김과 봉사의 실천으로 참 하느님께로 다시 돌아오기를 요청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구원에 들어갈 의인의 모습을 '섬기는 사람'으로 선언하십니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8)
예수님께서는 '섬김'의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많은 이들의 구원을 위하여 아무 조건없이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을 내어주심으로써 진정한 섬김이 무엇인지 보여주십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 처럼 공감과 연대와 나눔으로 섬기는 사람,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은 온 율법과 예언서의 핵심이요 요약인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늘 나라의 참된 행복과 기쁨, 평화와 자유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곧 섬김과 겸손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늘 기쁘고 즐겁게 삽니다. 아름다운 이 세상을 "소풍가듯 소풍가듯 웃으며 행복하게 삽니다." '소풍같은 인생'을 삽니다.(소풍같은 인생, 추가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