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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길어요. 다 읽기 싫으면 빨간 줄만 보셔도 ----)
좌, 우 진영 관계 없이 “기생충” 의 오스카 수상을 놓고 천지개벽이라도 한 것 같은 호들갑들이다.
수주 전에 애들이나 마누라한테 속 좁은 좀팽이로 여겨지는 것이 싫어 거의 강제 당하다시피
기생충을 보았다. 칸 영화제 수상이라는 유혹도 있었지만. 그 이후 이런 저런 비평가들의
매혹적인 블랙 코메디니, 슈퍼 리얼리즘이니 하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재미(감성)나
각성(이성)보다 마치 역겨운 시궁창에 얼굴 처박고 나온 것 같은 구역질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그래서 어제, 오늘 미디어를 도배하는 보도들을 보면서 나만 달아나는 가치관에 뒤쳐지거나
진화하는 감성에 따라가지 못하고 우물 안에 빠진 것인가 하는 당혹감과 자괴감을
떨치지 못하겠다. 이는 나만의 우환인가? 느려지는 걸음걸이처럼 시대에 뒤 떨어진 꼰대가 된 것인가
하는 좌절감도---
그렇다면 따라붙어 보자.
뉴 노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새롭게 나타난 세계경제의 특징을 통칭하는 말로 저성장, 규제 강화,
소비 위축, 미국 시장의 영향력 감소 등을 주요 흐름으로 꼽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새롭게 나타난 세계경제의 질서를 통칭하는 말로, IT 버블이 붕괴된
2003년 이후 미국의 벤처투자가인 로저 맥나미(Roger McNamee)가 처음 사용하였다. 이 용어가
처음 나왔을 때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세계 최대
채권운용회사 핌코(PIMCO)의 최고경영자 모하마드 엘 에리언(Mohamed A. El-Erian)이 그의 저서
《새로운 부의 탄생 When Markets Collide》(2008)에서 저성장, 규제 강화, 소비 위축, 미국 시장의
영향력 감소 등을 위기 이후의 ‘뉴 노멀’ 현상으로 지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2008년 이전까지는 규제 완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증권화 및 파생상품시장 확대 등의 금융혁신으로
금융산업이 큰 폭으로 성장하며 고위험 투자가 증가한 시기였다. 이러한 고위험 투자의 확대는
경제성장의 동력이 되기도 하였으나 이로 인한 부동산의 가격거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오는 주요한 원인이 됐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세계경제는 금융 규제가 강화되었으며, 금융기관들은 고위험 투자를 축소하였다.
또한 환경 문제 개선을 위한 저탄소 경제체제 등이 등장하면서 세계경제는 저상장 국면에 진입하였으며
미국 중심의 세계경제 질서에서 벗어나 신흥국들이 시장에 적극 참여함에 따라 세계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는 등 새로운 경제 질서가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을 통칭하여 ‘뉴 노멀’이라 부른다.
뉴 노멀의 시대에는 전 세계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진입함에 따라 가계들은 부채를 줄이고, 소비와 투자도
축소하였다. 2005년까지 1.4%까지 하락하였던 미국의 저축률이 2009년에는 4.9%까지 상승하였으며,
전반적인 수요 둔화로 인하여 신규 설비투자가 큰 정체를 맞았다. 또한 위기 이후 미국과 중국 간 교역
불균형 문제가 부각되어 통상 갈등이 추가적인 교역 위축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세계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심화되었다.이러한 세계경제의 새로운 움직임으로 금융시장에서는 탐욕보다는 절제로, 고속 성장보다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주 관심으로 떠올랐다. 또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하여 그간 경제학이 가정해
온 합리적 인간, 경제의 효율성이 큰 도전을 받았으며, 위기의 원인이 인간의 탐욕, 정부의 지나친 시장 방임
등에 있다는 지적에 대한 대안으로 경제학에 심리학 등을 접목시킨 행동경제학이 새롭게 부상하였다. (이상 두산 백과)
2. 영화의 리얼리즘.
영화는 리얼리즘의 예술이다. 영화의 움직이는 이미지는 현실을 '그럴듯하게' 모방하고 재현한다. 리얼리티의
환상은 이데올로기적인 동시에 미학적이다. 할리우드의 고전적 리얼리즘 영화는 폐쇄적 내러티브 관습을
통해 현실의 모순을 '봉합'한다. 반면 네오리얼리즘, 사회적 리얼리즘 등 다양한 진보적 리얼리즘 영화들이
존재한다. 리얼리즘의 미학은 역설적이다. 그것은 객관적 현실의 주관적 재현이다. 디지털 시대의 영화는
리얼리즘의 역설을 강화한다.
리얼리즘은 현실의 모방과 재현이라는 예술의 정의와 관련이 있다. 플라톤은 예술의 본질을 미메시스(Mimesis)로
규정했다. 현실은 이데아라는 이상적 관념의 모방이며, 예술은 모방된 현실의 모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예술의 본질을 현실의 모방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그는 플라톤과 달리, 예술이 감정의
카타르시스와 함께 교육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갖는다고 보았다.
서양 예술사에서 문학과 미술을 중심으로 확고한 예술사조로서 리얼리즘 활동이 전개된 것은 산업혁명 후
근대 시민 사회가 형성되는 18세기 이후로 추정된다(Larkin, 1977). 문학에서 대니얼 디포(Daniel Defoe),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스탕달(Stendhal) 등이, 미술에서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등이 이성과 합리주의 사상에 기반을 두고 객관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는 리얼리즘 경향을 선보였다.
서양에서 리얼리즘 예술은 신에 대한 종교적 맹목성이 지배하던 중세시대 이후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인간중심주의, 주체 중심의 원근법 도입에 의해 확고하게 정립된다. 이에 대해 조너선 크래리
(Jonathan Crary)는 근대적 시각 체제로서 리얼리즘이란 '관찰자'라는 근대적 주체의 형성과 연관된다고
말한다(Crary, 1992). 리얼리즘이란 주체 중심의 근대 사상과 이를 뒷받침하는 원근법의 단일 시점을
전제로 한다. 역사적으로 리얼리즘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부르주아 상승기의 산물이다.
1895년 탄생 이래 영화는 가장 강력한 리얼리즘 예술이 되었다. 필름의 사진술은 현실을 기계적으로
복제했다. 영화는 현실의 살아 있는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줄 수 있는 최초의 기술적 예술이 되었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영화가 예술인지 아닌지가 문제가 아니라 영화로 인해 예술의 성격
자체가 변화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Benjamin, 1935). 영화는 고전 예술의 고고한
'아우라'를 붕괴시키고 기술 복제에 근거한 대중예술의 시대를 열었다.
또한, 영화 리얼리즘의 강력한 주창자 앙드레 바쟁(Andre Bazin)은 영화가 자연과 세계를 완벽하게
모방하고자 하는 "완전 영화의 신화(Bazin, 1967)"를 달성했다고 주장한다. 영화야말로 죽음을 넘어
현실의 시간과 공간을 영원히 보존하고자 하는 리얼리즘 예술의 구현체라는 것이다.
리얼리즘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모방하고 재현한다는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수잔 헤이워드(Susan Hayward)는 영화 리얼리즘에 두 가지 형태가 있다고 말한다(Hayward, 2006).
하나는 이데올로기적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미학적 의미다.
이데올로기적 의미에서 리얼리즘은 영화 장치에 의해 만들어진 '리얼리티 효과'일 뿐이다. 영화 속의
현실이란 필름과 스크린에 의해 만들어진 '그럴듯한(verisimilar)' 환영이다.
미학적 의미에서 리얼리즘은 촬영과 편집 등 기술 장치에 의한 조작과 변형을 최소화한다. 리얼리즘
미학은 현실의 진실성(authenticity)을 보존하기 위해 영화 장치의 조작 개입에 반대한다.
할리우드 영화의 고전적 리얼리즘 기법은 영화의 환영적 이데올로기를 보여 준다. 영화 속 허구의
스토리텔링에 관객을 묶어둠으로써 현실의 모순과 대립을 은폐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폐쇄적
스토리 구조, 180도 촬영 규칙, 이음매 없는 연속 편집 등에 충실한 내러티브 관습을 확립한다.
할리우드 영화들은 영화 속 환상과 관객의 동일시를 통해 '자연스럽게' 지배 이데올로기를 전파한다.
다른 한편, 진보적 관점에서 다양한 리얼리즘 미학이 존재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네오리얼리즘이다.
네오리얼리즘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의 참담한 현실을 리얼리스틱하게 묘사한다. 자연 조명,
거리 촬영, 핸드헬드 카메라, 아마추어 배우, 객관성을 강조한 롱숏 등 카메라의 개입과 조작을
최소화한 채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묵묵히 드러낸다.
특히 현실의 '순수한' 모방을 강조한 바쟁은 리얼리스트 영화 미학의 핵심으로 딥포커스와 롱테이크를
강조했다. 그는 현실을 조각내어 이어붙이는 몽타주 기법에 반대했다. 딥포커스와 롱테이크 기법이
현실의 전체성과 진실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기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바쟁은 장 르누아르(Jean Renoir)의 〈게임의 규칙(The Rules of the Game)〉,
오손 웰즈(Orson Welles)의 〈시민 케인(Citizen Kane)〉,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ica)의
〈자전거 도둑(The Bicycle Thief)〉같은 작품들을 리얼리즘 미학의 대표 사례로 극찬한다.
리얼리즘 영화 미학은 켄 로치(Ken Loach)의 사회적 리얼리즘 영화, 그리스 테오 앙겔로풀로스
(Theo Angelopoulos)의 롱테이크 미학, 인도의 사트야지트 레이(Satyajit Ray),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Abbas Kiarostami), 바흐만 고바디(Bahman Ghobadi) 그리고 다양한 제3세계
민중영화 운동 등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리얼리즘 영화 미학은 다양한 다큐멘터리 운동과 연결된다. 1895년 뤼미에르의 최초의
영화 〈열차의 도착〉,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등은 대중의 일상생활을 있는 그대로 촬영한
짤막한 다큐멘터리들이었다.
1922년 미국의 로버트 플래허티(Robert Flaherty)는 최초의 장편 다큐멘터리 〈북극의 나누크
(Nanook of the North)〉를 만들었다. 1929년 〈유망어선(Drifters)〉을 만든 존 그리어슨
(John Grierson)은 영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선구자가 된다. 러시아의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는
〈카메라를 든 남자(The Man with a Camera)〉(1929)를 통해 사회주의 혁명 이후 인민의 활기찬
생활 모습을 담았다. 1920년대와 1930년대 다큐멘터리 영화들은 할리우드 극영화의 폐쇄적
내러티브 관습에 맞서 자연과 인민의 진솔한 삶을 포착하고자 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영국의 프리 시네마, 프랑스의 시네마 베리테, 미국의 다이렉트
시네마 등 다큐멘터리 영화 운동이 이어진다. 작가의 의도된 연출이나 편집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따라 표현 방식의 차이는 있었지만, 이들 다큐멘터리 영화들은 사회 현실과
민중의 일상생활을 진실하게 묘사했다.
1980년대 이후 비디오와 디지털 영화의 시대를 맞이해 다큐멘터리 영화의 미학은 대중의
직접 참여에 기초한 퍼블릭 액세스, 비디오 액티비즘 등 실천적 리얼리즘에 근거한 액티비스트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영화이론가들은 리얼리즘이 영화 예술의 본질이라고 간주해 왔다. 특히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Siegfried Kracauer)는 필름의 사진술이 '물질적 현실의 구원'이라고 했다(Kracauer, 1960).
앙드레 바쟁은 영화가 움직이는 현실을 모방하고 복제하고자 하는 인류의 오래된 미학적
열망을 달성했다(Bazin, 1972)고 평가했다.
다른 한편, 영화의 리얼리즘은 또 다른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다. 카메라 촬영과 편집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영화가 모방하고 재현하는 현실은 객관적이라기보다
제작자나 감독의 주관에 따라 '선택'된다.
이런 맥락에서 1960년대와 1970년대 '정치적 모더니즘' 이론가들은 리얼리즘 미학의 한계를
지적한다. 피터 울른(Peter Wollen), 콜린 매케이브(Colin MacCabe) 등은 할리우드 고전 리얼리즘
영화의 연속적이고 폐쇄적인 내러티브 관습을 비판했다. 장 루이 코몰리(Jean Louis Comolli),
장 루이 보드리(Jean Louis Baudry) 등은 영화 장치의 이데올로기, 심리적 성격을 지적했다(Baudry, 1986).
영화기호학의 아버지 크리스티앙 메츠(Christian Metz)는 영화가 관객의 '결여된 욕망'을 드러내는
'상상적 기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Metz, 1977).
또한 198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은 리얼리즘의 근본적 한계를 지적한다. 장 보드리야르
(Jean Baudrillard)는 현대적 삶의 조건에서 하이퍼리얼리티가 리얼리티를 지배한다고 말한다.
시뮬레이션된 복제 이미지가 실제 현실에 우선한다는 사상은 리얼리즘 미학의 현실 재현 논리를 뒤흔든다.
반면,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현실과 이미지의 이분법 자체에 반대한다(Deleuze, 2004). 그는
영화 이미지가 현실을 모방하고 복제한다는 리얼리즘 미학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하이퍼리얼한
이미지가 현실을 압도한다는 포스트모던적 허무주의도 부정한다.
들뢰즈는 철학적 일원론에 근거해 현실과 이미지 사이의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그는 시네마의 살아 있는
이미지가 지닌 긍정적 성격에 주목한다. 들뢰즈는 영화 이미지의 창조적 구성을 통해 현실에
주체적이고 실천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디지털 시네마의 대두와 함께 리얼리즘 논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영화 리얼리즘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가 논점이다. 스티븐 프린스(Stephen Prince)는
디지털 시네마 시대에 영화의 리얼리즘이 강화된다고 주장한다(Prince, 1996). 디지털 기술의
도움으로 영화 제작자는 더욱 생생하게 현실을 재현할 수 있다. 또한 관객은 보다 리얼하게
현실을 '지각'하게 된다.
하지만 데이비드 노먼 로도윅(David Norman Rodowick)은 이러한 '지각적 리얼리즘(perceptual realism)'은
디지털 시네마의 존재론적 본질을 간과한다고 주장한다. 디지털 시네마는 필름 영화와 다른 메커니즘을
갖는다. 필름의 사진술은 입력과 출력이 동일하다. 즉, 촬영 전의 실재와 촬영 후의 이미지는 동일하다.
반면, 디지털은 대상의 이미지를 수학적 계산을 통해 변환(transcoding)한다. 디지털 이미지는 데이터의
'입력과 출력이 분리'되는 메커니즘을 갖는다(Rodowick, 2007).
디지털 시네마는 더 이상 실제의 현실을 단순히 모방하고 재현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진술에 기초한
복제예술이라기보다 컴퓨터 합성과 이미지 변형의 미학이 된다. 이제 영화의 미학은 사진 리얼리즘
으로부터 합성 리얼리즘으로 나아간다. 결론적으로, 디지털 시대에 영화 이미지는 리얼리스틱해지면서
점점 더 실제의 현실과 멀어진다. 디지털 시네마는 현실적인 동시에 허구적인 영화 리얼리즘의 역설을
한층 더 강화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3. 우문인가 현문인가?
“기생충” 때문에(덕택에?)조국도 새삼스럽게 국제 뉴스로 부각되었다. 해서 다시 가지게 된 의문은 작금에
우리 삶을 뒤 흔들고 있는 일련의 정치적인 사건들을 되씹어 보면, 그런 사건들이 세월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는 퇴영적이고 시대 착오적이며 무모한 abnormal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new normal 과
super realism 을 아우른 초 첨단의 창조 전위에 앞장서 가고 있는 “이제까지 겪어 보지 못한 나라” 라는
콘티를 누군가가 그리고 제작하고 있단 말인가? 초짜가 아니라 타짜가 ?
첫댓글 나는 영화를 우연찮게 오래전에 보기는 했는데...내 취향이 음악영화이어서 그런지 스토리도 그렇고,착상 자체가 더러워서 누구한테 추천도 안한 사람입니다.단지 송강호 배우의 온 몸을 던지는듯한 배역 소화력은 일품입니다.
아내가 졸라도 저는 아직 보질 않았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지 모르겠군요.
저는 '한국영화'에 대해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습니다.
불필요한 욕이 지나치게 많고 감정적 과장이 심하고 실제 현실을 모르거나 왜곡/과장하는 대본과 연기!!!
블랙 코메디래나? 그 영화, 그 장면에 그게 왜 등장하지 싶을 뿐인데.
5백만 1천만 동원했다는 영화들, 특히 송강호의 연기가 의존하는 그런 공통점.
뭘 보고난 후 카타르시스, 여운, 감정적 승화는 고사하고, 보는 시간 내내 '내가 왜 이딴 걸 보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드니.
제가 한국영화를 잘 안보게 만들었습니다.
몇 사람에게 듣기로는 기생충도 예외가 아닌 듯
그런 다시 보고 싶지 않은 한국 영화들의 공통점.
뭘 과장할 때마다 배우들이 구사하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
개봉 직후 관람했고 매스껍고 찝찝한 내용의 영화라 치부했었는데 .....
난 영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