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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도 시(詩) 제 11 호(十一 號) 해석 - 김유섭
그사기컵은내骸骨과흡사하다. 내가그컵을손으로꼭쥐엿슬때내팔에서는난데없는팔하나가接木처럼도치더니그팔에달린손은그사기컵을번쩍들어마룻바닥에메여부딧는다. 내팔은그사기컵을死守하고잇스니散散이깨어진것은그럼그사기컵과흡사한내骸骨이다. 가지낫든팔은배암과같이내팔로기어들기前에내팔이或움즉엿든들洪水를막은白紙는찌저젓으리라. 그러나내팔은如前히그사기컵을死守한다.
- 오감도 시 제 11 호 전문 -
이상이 오감도 연작시에서 보여주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작법은 너무나도 화려하고 눈부셔서 그가 왜 천재인지 그리고 그 천재라는 수식어 하나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이상은 정말 놀라운 시인이다. 시를 정밀한 구조물보다도 더 치밀하게 만들어 독자에게 보여준다. 자신이 만든 시로 독자를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경이로운 세계로 데리고 간다. 그래서 독자가 그 세계에 빠져 울고 웃고 실컷 놀고 즐기다가 돌아서는 순간에 먹먹한 감동으로 마음 깊은 곳이 물들게 한다. 그러나 이상이 28세라는 짧은 생을 살았던 시기가 우리 민족에게는 절망과 불행의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지배 아래 놓였던 때였음이 가슴 저미도록 안타깝기만 하다. 물론 이상의 시가 보여주는 불꽃으로 타오르는 민족의식과 인간이 인간을 파괴하는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격렬한 저항과 결사항거의 시들은 민족을 넘어 인류애에 도달해 있다.
그러나 이상이 해방된 조선에 살았더라면 감히 누구도 상상 하지 못하는 새롭고 놀라운 또 다른 시의 세계를 보여주었을 것인데..... 언제, 먼 미래에라도 우리가 이상 같은 위대한 천재 시인을 만나게 될지 캄캄하기만 하다.
오감도 시 제 11 호는 이상이 펼쳐내는 새로운 룰을 적용한 게임이다. 다른 오감도 연작시와 마찬가지로 상징과 상징으로 연결된 문장이 하나의 은유를 만들고 그 은유의 문장들이 유기적으로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더 큰 은유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이 거대한 상징으로 독자의 머리와 가슴에 떠오르게 한다. 이것이 이상이 연작시 오감도 10호까지에서 보여준 시작법이다. 그런데 오감도 시 제 11 호는 조금 다르다. 구조적인 큰 틀은 바뀌지 않았지만 게임의 룰을 살짝 바꾼 것이다. 지루하지 말라는 배려일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상이 만든 한자가 없다는 것이다. 즉 한자 사전에 없는 단어를 만들어 상징의 고리를 풀어내게 하는 단서나 은유의 단서를 주는 장치가 없다. 더구나 시의 중요한 상징으로 보이는 단어들이 대부분 한글이다. 그리고 한자 사전에 있는 단어들 역시 사전에 있는 의미를 무시하고 문맥에 맞는 의미를 찾아내서 상징의 고리를 풀어야 하는 것이 두어 개 정도가 의심될 뿐이다. 그런데 시의 내용이 모호하고 안개에 싸여있다. 문맥도 매끄럽게 잘 맞지 않는다. 시의 주제가 무엇인지 즉 시가 무엇을 상징하고 은유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역시 시를 있는 그대로 읽으면 오독이라고 이상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은 친절한 시인이다. 오감도 시 제 11 호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쉽게 읽히게 만들어 두었다. 그것은 오감도 시 제 7 호 구조와 닮았다. 다소 투박하지만 논리 구조를 보여주면서 단서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이상이 가르쳐 주는 대로 따라가자.
“그사기컵은내骸骨과흡사하다. 중략..... 그러나내팔은如前히그사기컵을死守한다.”
논리 구조는 매우 간단하다. 내 해골은 사기컵과 흡사하고 나는 여전히 그 사기컵을 사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좀 더 세밀하게 풀면 내 해골은 사기컵과 흡사한데 무엇인가가 방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 사기컵을 사수한다. 따라서 시의 내용은 간단하다. 무엇이 내 해골과 흡사한 사기컵과 나와의 관계를 방해하고 또 그 방해의 방법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 오감도 시 제 11 호의 기본적인 구조다. 이 구조 속에서 이상이 만든 상징과 은유를 풀면 격렬한 시의 주제가 명확하게 드러나게 된다.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이 “사기컵”이 무엇인가? 이다. 더구나 “컵”이라는 외래어를 왜 “사기” 뒤에 붙였을까?
이상이 영어나 외래어를 시에 도입하는 것은 낯설지 않은 일이다. 기하학, 물리학, 숫자, 그림, 등등 무엇이 나와도 놀랄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무수하다. 그런데 그것들이 시를 해석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관점에서 외래어 “컵”이 오감도 시 제 11 호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재미있고 궁금하다. 더구나 모두 여섯 번이나 사용된 “사기컵”을 푸는 것이 해석의 첫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시로 들어가자.
“그사기컵은내骸骨과흡사하다.”
이 문장에서 납득할 수 없는 단어가 역시 “사기컵”이다. 느닷없이 등장한 “사기컵”은 무엇인가? 희미한 상징과 은유의 실루엣을 보여주는 듯도 하지만 해석을 막막하게 하기도 한다. “사기컵”은 모두 “그컵”을 포함에서 여섯 번이나 진술된다. 그것은 “사기컵”이 오감도 시 제 11 호의 주제이거나 아주 중요한 상징이면서 시를 푸는 단서라고 이상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기컵”은 한글과 외래어로 표기되어 있다. 이상이 만든 한자도 아니고 한자 단어도 아니다. 그래서 한문사전의 뜻을 찾아 문맥에 맞추는 작업 또한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기컵”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풀지 못하면 첫 문장이 은유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그것은 시 전체를 모호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굳이 그대로 “사기컵”의 상징 의미를 푼다면 조선 전통방식 흙으로 구운 컵 정도일 것이다. ‘조선 전통방식 흙으로 구운 컵은 내 해골과 흡사하다’로 문장을 정리하면 문맥은 어울리는듯하지만 정확하게 무엇을 은유하는지는 역시 흐릿하다. 다만 외형적으로 조선 전통방식 흙으로 구운 컵이 내 해골과 흡사하다. 라는 의미로 읽힐 뿐이다. 덧붙여서 더 나가면 내 정체성은 조선 전통방식 흙으로 구운 컵과 흡사하다. 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사기컵”이 그냥 일반적인 사기컵이고 그 생긴 모양이 내 해골과 흡사하다는 해석에서 더 나아가야 할 어떤 이유나 근거도 오감도 시 제 11 호 안에 없다는 반론에 직면할 수 있다. 때문에 기존 오감도 연작시 해석 방법으로는 오감도 시 제 11 호를 풀 방법이 벽에 부딪힌다. 그러나 이상은 치밀하면서도 친절한 시인이다. 왜 여섯 번이나 반복되는 단어에 외래어 컵을 붙였을까? 바로 “사기컵”이 단서라고 가리켜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게임의 룰을 살짝 바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뀐 룰이란 무엇인가? 외래어 컵 앞에 붙어있는 “사기”는 한자음이다. 즉 한자 沙器의 음을 한글로 표기한 것이다. 그래서 뒤에 “잔”을 붙이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이상이 굳이 “컵”이라는 외래어를 붙인 까닭은 “사기컵”을 “사기잔”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즉 한글 사기를 한자 沙器로 바꿔서 문맥에 맞는 의미를 찾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뀐 룰이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한글로 표기된 한자음을 다시 한자로 바꿔서 의미 찾기를 하는 룰이다. 그리고 바뀐 룰은 더 있다. 뒤에 설명하겠다. 장난꾸러기 이상이다.
과연 그런가? 한자 沙器를 오감도 방식으로 풀어보자. 이것을 한자 단어 의미를 그대로 풀면 당연히 안 된다.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한글 사기나 한자 沙器나 의미는 같다. 단어의 의미를 무시하고 한자 沙와 器의 의미 중에서 오감도 시 제 11 호의 문맥과 맞는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沙: 봉황(봉황 사)
器: 존중하다.
즉 한자사전의 의미 중에 문맥에 맞춰 풀면 沙器는 ‘봉황을 존중하다.’가 된다. 따라서 “사기컵”은 ‘봉황을 존중하는 컵’이 된다.
그러면 봉황이 무엇인가?
<봉황(鳳凰)은 동아시아의 신화 및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오 앞에 봉황을 탄 피리부는 신선이 있다. 삼족오 뒤에는 용이 있으며, 고구려 고분 벽화에 따르면 봉황은 개벽의 상징이다.[1] 중략....봉황의 몸의 각 부분에는 다섯 가지 의미가 있는데, 가슴은 인(仁)을, 날개는 의(義)를, 등은 예(禮)를, 머리는 덕(德)을, 배는 신(信)을 나타낸다고 한다. 또 우주 전체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머리는 태양을, 등은 달을, 날개는 바람을, 꼬리는 나무와 꽃을, 다리는 대지에 각기 해당한다. 중략.... 조선 시대에는 봉황의 생김새와 행동거지가 임금이 마땅히 지녀야 할 덕목이라고 여겨 임금의 상징으로 삼아 현 왕조 시대가 태평성대임을 강조하였으며, 지금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사용되고 있고, 중략....> 출처- 위키백과-
상상의 동물 봉황은 중략... 현재도 국새 손잡이에 조각되는 봉황이나 대통령의 전용 휘장 문양으로 볼 수 있으며, 청와대 정문에도 두 마리의 봉황이 마주보고 배치되어 있다. 중략.... -[네이버 지식백과] 봉황 - 어진 성군의 덕치 (유물 속 동물 상징, 한국문화재재단, 윤열수) -
고대 중국에서 신성시했던 상상의 새로 기린·거북·용과 함께 사령(四靈)의 하나로 여겼다. 수컷을 봉(鳳), 암컷을 황(凰)이라고 하는데 그 생김새는 문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중략... 조선왕조가 개창되면서 봉황은 성군의 덕치를 상징하는 의미로 노래나 춤에 쓰였다. 조선 초기에 윤회(尹淮)가 개작하였다는 「봉황음(鳳凰吟)」은 송축가(頌祝歌)로서 조선의 문물제도를 찬미하고 왕가의 태평을 기원한 노래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봉황 [鳳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봉황은 조선왕조에서는 어진 성군의 덕치를 상징하고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사기컵”은 ‘조선왕조 어진 성군의 덕치를 존중하는 컵’이다. 시로 돌아가면
“조선왕조 어진 성군의 덕치를 존중하는 컵은 내 해골(骸骨)과 흡사하다.” 라고 해석된다.
여기서 해골(骸骨)을 사전적 의미 그대로 해석하면 문맥에 잘 맞지 않는다. 해골은 죽음 이후의 상황이고 시는 현재 시점에서 진행되는상황이다. 따라서 앞뒤 문맥과 맞지 않는다. 骸骨을 오감도식 한자 풀이를 해야 한다.
骸: 몸뚱이, 신체(身體)
骨: 인품(人品), 됨됨이
따라서 해골(骸骨)을 풀면 ‘몸의 인품’이다.
그러면 “그 조선왕조 어진 성군의 덕치를 존중하는 컵은 내 몸의 인품(骸骨)과 흡사하다.” 로 해석된다. 따라서
“그사기컵은내骸骨과흡사하다.”는 풀면,
“그 조선왕조 어진 성군의 덕치를 존중하는 컵은 내 몸의 인품(骸骨)과 흡사하다.” 가 된다.
즉 내 몸의 인품은 조선왕조 어진 성군의 덕치를 존중하는 것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흡사하다.”가 다소 의아하다. “흡사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거의 같을 정도로 비슷하다.’이다. 시 제 11 호까지 이어져 온 오감도 연작시의 격렬한 민족의식의 내용으로 보았을 때 당연히 내 몸의 인품은 조선왕조 어진 성군의 덕치를 존중하는 것과 ‘같다.’가 되어야 하는데 놀랍게도 “흡사하다”이다.
이것은 이상의 국가관 즉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에서 우리 민족이 해방된 이후의 국가관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흡사하다”는 해방 이후의 우리 민족의 국가 통치 방식이 조선왕조로 되돌아가는 왕정복귀를 이상은 원하고 있지 않았던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이것은 어쩌면 당시 상해 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지하고 해방의 희망을 가슴에 품었던 조선 민족 즉 “아해”의 공통된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내가그컵을손으로꼭쥐엿슬때내팔에서는난데없는팔하나가接木처럼도치더니그팔에달린손은그사기컵을번쩍들어마룻바닥에메여부딧는다."
“접목(接木)”과 “도치더니”가 문맥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 접목(接木)의 농원예사전적 의미는 잘라 낸 접본(椄本)의 물관부와 껍질 사이에 접지(椄枝)를 밀착하게 하여 헝겊으로 감고 겉에다 흙을 바르는 방법으로서 번식, 개화, 결실기를 빨리 할 수 있다.
즉 잘라낸 접본에 다른 접지를 붙이는 것이 접목인데 “도치더니”가 붙어있다. 도치다는 사전에 없는 말이다. 다만 ‘돋아나다’의 잘못 표기된 말로 설명하고 있다. 더구나 당시 경성 옛말, 또는 사투리인지에 대해서는 필자가 더욱 알 수 없다. 그러나 ‘돋아나다’라고 해석하면 앞서 보았던 접목(接木)과 문맥이 맞지 않는다. 자르고 붙이는 접목(接木)과 돋아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때문에 이것은 이상이 또 다른 바뀐 룰을 적용하라는 장치로 생각된다. 즉 한글을 한자로 바꾸라는 것이다.
따라서 “도치”를 앞뒤 문맥을 살펴 찾으면 적용될 단어는 ‘거꾸로 뒤바꾸다.’의 의미를 가진 ‘倒置’ 하나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倒置는 한글 도치와 의미가 달라진다. 때문에 한자 하나하나의 의미를 찾아가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도치”는 倒置 즉 ‘뒤집어 바꾸다’로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살펴보아야 할 것이 접목(接木)이다. 접붙이기 기술은 중국이나 중동 등에서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그 이후로 꾸준히 발전되고 전수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09년 채소·식물·과수·화훼의 대량 생산 및 양질의 결실을 위해서 『접목신법전』이 편찬되기도 했다.
일본의 재접법(栽接法)과 서양의 원예술(園藝術)을 서술한 서적을 참고하여 편찬한 것이다. 그러나 한일합방 이후 제국주의 일본의 수탈의 행태는 임업자원에도 그 검은 손을 뻗어왔고 대대적인 일본 원산지 수종 교체와 접목 등의 임업 기술을 수탈을 위해 보급했다. 그러나 접목(接木)이 당시 독자들에게 제국주의 일본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 것이었는지에 대해 필자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문맥의 흐름으로 볼 때 접목(接木)은 제국주의 일본의 폭압 정책을 상징하고 은유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근거의 미약함으로 여기까지 밝혀두는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차선으로 “접목(接木)” 즉 ‘잘라 붙이는 나무’로 해석을 이어가겠다.
“내가 그 조선왕조 어진 성군의 덕치를 존중하는 컵을 손으로 꼭 쥐엿슬 때 내 팔에서는 난데없는 팔 하나가 잘라 붙이는 나무(接木)처럼 뒤집어 바꾸(도치)더니 그 팔에 달린 손은 그 조선왕조 어진 성군의 덕치를 존중하는 (사기)컵을 번쩍 들어 마룻바닥에 메여부딧는다.”
지속적으로 대명사 “그”가 반복된다. 왜일까? 시적 화자가 자신의 팔에서 일어나는 일을 진술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상이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즉 시적 화자인 나는 객관적 관점으로 내 팔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무슨 말인가? 내 팔은 실제 팔이 아니라 팔로 은유된 정신적 가치관이나 관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앞서 참고 자료에서 봉황의 날개는 의‘義’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다. 義는 유교의 도덕 범주 가운데 하나로 행동의 올바름, 사람이 국가나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공통 규범에 합치하는 행동을 스스로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봉황을 존중하는 컵과 흡사한 나의 팔은 봉황의 날개로 읽어 해석할 수 있다.
투박하지만 좀 더 확대해석한다면 그것을 국가관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시적 화자인 나의 국가관이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지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그런 의미와 상징을 밝히는 것에서 멈추고 해석은 팔로 돌아가서 이어가겠다.
“난데없는 팔”의 등장은 시적 화자인 내가 내 팔을 통제하거나 제어할 수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역시 오감도 시 제 10 호 나비가 거울의 주인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내 팔의 주인은 내가 아닌 것이다. 때문에 난데없이 팔이 나타나서 내 팔을 잘라 붙이는 나무처럼 뒤바꿔 버려도 속수무책인 것이다. 그리고 그 난데없는 팔이 내 팔이 들고 있는 내가 존중하는 조선왕조 어진 성군의 덕치를 존중하는 내 몸의 인품을 마룻바닥에 메여부딧는 폭력과 악행을 저질러도 어쩌지 못하는 처지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난데없는 팔의 정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난데없는 팔의 정체가 무엇이이기에 내 팔을 잘라내고 접붙이는 나무처럼 나타나서 내 팔이 들고 있는 조선왕조 어진 성군의 덕치를 존중하는 내 몸의 인품을 마룻바닥에 메여부딧는 것일까? 1930년대 초반으로 가보자.
<1910년 전에는 일본 거류민들을 위해서 민간에서 건립과 유지를 주도하였지만, 병합 후에는 조선총독부의 보호와 육성 아래 신사의 관 ·공립적인 성격이 강화되고 동화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인에게까지 신사참배와 신도신앙을 강요하였다. 1930년대에 들어 대륙침략을 재개한 일제는, 이를 뒷받침할 사상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 각종 행사를 개최하고 기독교계 사립학교에까지 다시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시작하였다.> - [네이버 지식백과] 신사참배 [神社參拜] (두산백과)
<황국신민화정책[ 皇國臣民化政策 ]
...중략, 일본이 한국식민통치 제3기(만주사변 이후부터 일본 패망기까지)에 적용한 이념통치정책이다. 대륙침략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수행하였던 일본은 이 시기에, 가장 극도에 달하는 탄압정책을 실시하였다. 이 정책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물자와 인력의 수탈정책이었으며, 나아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말살하여 아예 일본민족에 통합하려는 민족말살정책(民族抹殺政策)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황국신민화정책 [皇國臣民化政策] (두산백과)-
만주사변이 일어나기 3개월 전인 1931년 6월 총독에 부임한 육군대장 우가키 가즈시게는 1920년대 이후 더욱 황폐화된 한국의 농촌을 중략... 통치체제를 전체주의적 동원체제로 재편성하고 ‘일선융합(日鮮融合)’, ‘내선(內鮮)일체’ 중략.... 한국의 인력을 식량증산과 대륙침략전쟁에 총동원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일제강점기의 제3기 (두산백과)-
자료에서 제국주의 일본의 신사참배, 일선융합, 내선일체 따위의 폭압적인 황국신민화정책으로 조선 민족을 말살하려는 만행이 이어졌고 그것은 사상적 정신적 가치관과 국가관마저 일본식으로 뒤바꾸기 위해 혈안이 되어 극악으로 치달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난데없는 팔”의 정체는 제국주의 일본의 신사참배와 내선일체, 일선융합 등의 민족말살정책과 황국신민화정책임을 알 수 있다. 이것으로 굳이 팔을 봉황의 날개 ‘義’로 해석하지 않아도 민족적 가치관이고 국가관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한다.
“내팔은그사기컵을死守하고잇스니散散이깨어진것은그럼그사기컵과흡사한내骸骨이다.” 풀면,
“내 팔은 그 조선왕조 어진 성군의 덕치를 존중하는 컵을 사수하고 있으니 산산이 깨어진 것은 그럼 그 조선왕조 어진 성군의 덕치를 존중하는 컵과 흡사한 내 몸의 인품이다.”
제국주의 일본이 폭압적으로 민족말살정책과 신사참배 등 일본식 황국신민화정책을 접목처럼 잘라 붙이려고 해도 그것을 거부하는 시적 화자의 저항이 치열하다. 내 팔을 자르고 난데없는 팔이 내 팔을 뒤바꿔서 내 팔이 들고 있던 민족적 가치관을 마룻바닥에 산산이 깨어버린다. 그러나 무슨 짓을 해도 조선왕조 어진 성군의 덕치를 존중하는 내 민족적 가치관과 국가관을 결코 깨뜨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 난데없는 팔이 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의 인품을 산산이 깨어버리는 정도일 뿐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 민족적 가치관과 국가관은 바뀌지 않고 또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 몸의 인품이 산산이 깨어지더라도 나는 내 민족적 가치관과 국가관을 사수할 것이라는 결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가지낫든팔은배암과같이내팔로기어들기前에내팔이或움즉엿든들洪水를막은白紙는찌저젓으리라. "
“가지낫든 팔은”은 다시 살펴야 한다. 이 가지낫든 팔은 앞서 “난데없이 도치더니”의 그 팔이다. 때문에 “도치더니”를 ‘뒤바꾸더니’로 해석했으므로 당연히 “가지낫든”은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또 하나의 장치로 이상은 바뀐 룰을 가르쳐 주고 있다. 바로 조사 “은”이다. 뒷 문맥과 맞지 않는다. 조사 “은”이 아니라 조사 “이”가 붙어야 문맥이 맞다. 이것은 “가지낫든” 뒷문장 중간 부분 “前에” 역시 살피라는 것이다.
우선 “가지낫든”을 바뀐 또 하나 룰에 따라 한자로 바꿔보자. 물론 한자음이 아니니까 한글의 의미를 한자로 바꾸는 작업이다. 즉 가지 枝, 그리고 낫든 生으로 풀어야 한다. 枝生이다.
필자가 만든 단어가 아니다. 이상이 만든 한자 사전에 없는 단어다. 필자는 이상이 가리키는 곳으로 걸어갔을 뿐이다.
枝: 육손이
生: 만들다
즉 ‘육손이 만들었든’이다.
또한 앞서 “前”을 살피라고 이상이 가르쳐 주고 있다고 했다. 살피면
前: 자르다.
그리고 한자 “或”의 의미를 한글로 풀면, ‘그러할 리는 없지만 만일’이다. 또한 “백지(白紙)”는 닥나무로 만든 조선종이로 푼다. 전체 문장을 풀면,
"육손이 만들었(가지낫)든 팔은 배암과 같이 내 팔로 기어들기 자르기(前)에 내 팔이 그러할 리는 없지만 만일(或) 움즉엿든들 洪水를 막은 닥나무로 만든 조선종이(白紙)는 찌저젓으리라."
여기에서 또 한번 이상의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조롱이 나온다. 제국주의 일본이 아무리 폭압적으로 내 민족적 가치관과 국가관을 잘라 일본식 신사참배 등의 황국신민사상을 접목하듯 붙이려고 해도 그것은 육손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조선왕조 어진 성군의 덕치를 존중하는 조선 민족의 민족적 가치관과 국가관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제국주의 일본의 신사참배 등 조선 민족말살정책과 황국신민화정책은 육손이를 만드는 어리석은 행위일 뿐이라고 일갈하면서 조롱하고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 아래 살고 있는 조선 민족의 운명이란 너무나도 절망적이고 위태로운 것이라서 민족적 가치관과 국가관을 지키려는 것이 마치 홍수를 막고 있는 닥나무로 만든 조선종이의 형편이라는 것이다. 바람 앞에 등잔불도 아니고 홍수를 막고 있는 닥나무로 만든 조선종이라는 것이다. 이상다운 격렬한 표현이다. 이런 비유, 은유를 또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제국주의 일본의 정신적 사상적 조선 민족 말살정책은 끝임 없이 내 팔로 기어들기 자르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잔악하고 반인류적인 범죄행위에 처참하게도 막다른 처지에 몰려있는 너무나도 위태로운 조선 민족의 비극적인 현실을 이상은 절규하고 있다. 지구 위에서 조선 민족이 사라져 버릴 위기를 느끼는 것이다.
때문에 조선 민족의 민족적 인품은 산산이 깨어지고 있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움직이거나 흔들리면 홍수에 떠밀려갈 상황이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홍수를 막는 것이 조선종이(白紙)라는 것이 재미있다.
아무리 거대한 홍수로 제국주의 일본의 조선 민족 말살정책과 황국신민화정책이 밀려와도 조선종이(白紙)로 막을 수 있는 하찮은 것이라는 것이다. 조롱이다. 그러나 동시에 조선 민족에게도 이상은 외치고 있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움직이거나 흔들리면 닥나무로 만든 조선종이는 찢어질 것이고 그것으로 조선 민족은 지구상에서 사라질지 모르는 현실임을 자각하라는 것이다.
"그러나내팔은如前히그사기컵을死守한다."
“그러나” 차분하고 단호한 이상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 팔은 여전(如前)히 그 조선왕조 어진 성군의 덕치를 존중하는 컵을 사수(死守)한다.” 무엇으로도 제국주의 일본의 조선 민족 말살정책과 황국신민화 정책은 성공할 수 없을 것임을 이상, 아니 “아해”는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