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나님
김춘수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詩人)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女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아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여리디 여린
순결(純潔)이다.
삼월(三月)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두빛 바람이다.
(시집 『처용』, 1974)
[작품해설]
‘인식의 시인’ 김춘수는 일상적인 사물이나 구체적인 설명 방법으로 무엇인가 말하려 하지 않는 대신, 이랗다 할 의미를 갖지 않은 ‘무념의 관념’을 풍경의 묘사를 통해 구체롸하는 시작 태도를 견지해 오고 있다. 이 시도 ‘나의 하나님’이란 존재를 뚜렷한 의미를 배제한 ‘무념의 관념’에 의한 선명한 감각적 이미지만으로 보여 주고 있다.
시인은 신에 대한 경외심 또는 절대적 가치를 높임법의 종결 어미로 예찬하는 기존의 시작 태도를 따르지 않고, 신에게서 떠오른 여러 이미지을 특유의 신선한 비유에 의해 압축시켜 보여 주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나의 하나님’은 먼저 ‘늙은 비애’라는 추상적 개념에서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과 ‘슬라브 여인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라는 구체적 사물로 실체화된다. 이렇게 가시화되었던 ‘하나님’은 다시 ‘여린 순결’로 모호해지는 변화를 거쳐 마침내 느릅나무 새순을 돋게 하는 ‘삼월의 연둣빛 바람’으로 분명해진다.
이렇게 본다면 ‘나의 하나님’을 이루고 있는 이미지들은 7행을 중심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다. 전반부의 ‘비애’·‘살점’·‘놋쇠 항아리’는 슬픔 또는 고통의 정조라는 연관성을 지닌 반면 후반부의 ‘순결’은 맑고 깨끗한 느낌을, ‘연둣빛 바람’은 가볍고 밝은 느낌으로 ‘순결’을 구체화시킨다. 또한 전반부의 ‘걸다’·‘가라앉다’ 등은 하강과 무거움의 의미를 갖고 있는 반면, 후반부의 ‘벗다’·‘일다’ 등은 상승과 가벼움의 의미를 갖고 있다. 결국 무거움과 가벼움, 늙음과 젊음, 어둠과 밝음이라는 모순된 의미의 총체가 바로 이 작품에서의 ‘나의 하나님’인 것이다.
이것을 보고 ‘하나님’이라는 거룩한 존재가 어떻게 ‘비애’가 되며, 어떻게 ‘커다란 살접’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시인이 ‘하나님’에게서 만난 그만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대상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게 되었는가 하는 인식의 문제는 전적으로 시인의 몫이며, 독자에게 주어진 몫은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것을 함께 향유하는 것일 뿐이다. 물론 이 ‘하나님’을 단순히 신적(神的) 존재로만 국한시킬 필요도 없다. ‘나의 하나님’은우리가 꿈꾸는 삶의 가치일 수도 있고, 시인이 추구하는 시 정신일 수도 있다.
[작가소개]
김춘수(金春洙)
1922년 경상남도 통영 출생
일본 니혼대학 예술과 중퇴
1946년 『해방 1주년 기념 시화전』에 시 「애가」를 발표하여 등단
1958년 제2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59년 제7회 아세아자유문학상 수상
대한민국문학상 및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
경북대학교 교수 및 한국시인협회 회장 역임
시집 : 『구름과 장미』(1948), 『늪』(1950), 『기(旗)』(1951), 『인인(隣人)』(1953), 『제1집』(1954), 『꽃의 소묘』(1959),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1959), 『타령조(打令調)·기타』(1969), 『처용(處容)』(1974), 『김춘수시선』(1976), 『남천(南天)』(1948), 『비에 젖은 달』(1980), 『처용 이후』(1982), 『꽃을 위한 서시』(1987), 『너를 향하여 나는』(1988), 『라틴 점묘』(1988), 『처용단장』(1991), 『돌의 볼에 볼을 대고』(1992),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1993), 『서서 잠자는 숲』(1993), 『김춘수시선집』(1993), 『들림, 도스토예프스키』(1997), 『의자와 계단』(1999), 『가을 속의 천사』(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