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따뜻한 마음으로
/이옥형
(우리)부부를 잘 알고 지내는 후배가 남편 장례식을 마친 후 보낸 이메일이다.
"남편은 불과3년 전 파킨슨과 경도 인지장애 진단을 받았으나, 의사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서서히 이 병이 진행됐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의 와병 과정을 지켜보면서 벌써 오래전부터 주변 분들께 알게 모르게 실수했을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그동안 남편과 원만치 못한 관계를 경험하셨다면, 그의 상황을 고려해 깊이 헤아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짧지만 남편에 대한 애정과 그간의 노고, 그리고 남들에 대한 배려가 오롯이 담긴 예절 바른 글이었다.
일 년 전,
남편이 프리 알츠하이머(preclinical Alheimer) 진단을 받았다 MRI 검사에서 뇌 윗부분에 흰색 베타 아밀로이드가 살짝 그러나 선명하게 덮여 있었다. 은퇴 전 다니던 회사 이사회에 참석하고 친구와 바둑을 두거나 당구를 치면서 무난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어 남들은 잘 모르지 싶지만, 나는 이미 몇 해 전부터 그의 인지 능력을 염려하고 있었다.
의심은 지리 감각이 둔해진 것부터 시작됐다. 이사를 했는데, 한번 갔던 골목길을 잘 찾지 못했다. 요즘엔 자주 다녔던 곳도 문득 생소하다며 허등댄다. 30년 넘게 살았던 선릉역 근처, 역에서 지하로 연결된 잘 알려진 빌딩의 약속 장소도 어떻게 가야 할지 몰라 수시로 묻곤 한다. 이러다 급기야 집까지 못 찾는 일이 생길까 두렵다. 자신도 불안한지 서울시 전도를 사놓고 잃어버린 머릿속 지도를 되찾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애처롭다.
평소 언변이 좋았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인지 적절한 단어를 사용하지 못했다. 대화에서도 언뜻 떠오르지 않는 고유명사 대신 대명사를 자주 사용해 의사소통에 오해가 생기기 일쑤다. 적절한 단어를 빨리 생각해 내지 못해 대화가 답답하다. 겉으로는 나이 탓으로 돌리면서 당당한 척하지만. 신문을 꼼꼼히 읽고 컴퓨터로 글을 쓰면서 사라지는 언어를 붙잡으려 고심한다. 그러나 그의 기억은 조금씩 휘발되고 있는 듯했다.
감정 조절이 잘 안 되어 상대를 곤란하게 할 때도 있었다. 그가 경험한 상황이 기분 나쁜 것은 이해하지만, 그렇게 공격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없는데도 전과 다르게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하여 상대를 당황하게 만든다. 때론 나도 감당하기 벅찬데, 밖에서 절제되지 않은 감정을 분별없이 터트릴까 걱정이 태산이다.
마침 병원 인지치료 시작 단계에서 의사에게 이를 하소연했더니 분노 조절 심리치료를 주선해 주었다. 다른 치료 효과는 아직 잘 모르겠는데, 감정 통제는 상당할 정도로 회복돼서 지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