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이 주는 의미
매주 금요일이 기다려진다. 금요일에는 콘서트홀에서 ‘김지세의 클래식 이야기’와 함께 영상으로 보는 오페라 공연이 있기 때문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세는 공연에 앞서 오페라의 내용과 배경을 설명해 준다. 그의 설명을 들은 뒤 두 시간 동안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편안해진다.
나는 이곳에 와서 서양음악과 클래식을 처음 접했다. 처음에는 오페라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하나둘 공연을 접하면서 아름다운 음악에 조금씩 빠져들게 되었다. 음악을 듣고 공연을 감상하는 동안 마음이 차분해지고 안온해지는 느낌이 참 좋았다.
예전에는 주로 금요일에 고향에 가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금요일 공연을 기다리게 되었고, 고향에 갈 일이 있어도 공연을 보고 오후 늦게 출발하거나 아예 토요일에 가곤 한다. 그만큼 금요일의 클래식 공연이 내 일상에서 작은 즐거움이 되었다.
오늘은 네덜란드 왕실과 인연이 있는 앙드레 류가 지휘한 오페라 공연이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공연과는 여러모로 색다른 모습이었다. 보통은 지휘자가 지휘하고 객석에서는 관객들이 조용히 앉아 공연을 감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오늘 공연에서는 앙드레 류가 지휘뿐만 아니라 직접 연주에도 참여했다. 악단원들의 의상 역시 정해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다채로웠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관객들의 모습이었다. 관객들은 단순히 앉아서 음악을 듣고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흥이 나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도 하고, 연주자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사라지고 연주단과 관객이 하나가 되어 공연을 즐기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관객들의 옷차림이었다. 모자와 머플러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온통 오렌지색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복장에 특별한 규제가 없는데도 한결같이 오렌지색을 선택한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네덜란드 국민들이 오렌지색을 좋아하는 것은 왕실과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오렌지색이 지닌 밝고 활기찬 이미지처럼 네덜란드 사람들도 낙천적이고 음악과 문화를 마음껏 즐기는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전통이 떠올랐다. 우리는 예부터 ‘백의민족’이라 하여 흰옷을 즐겨 입었다. 흰색에는 순수함과 깨끗함, 그리고 순백의 의미가 담겨 있다. 옛날 우리 앞 세대의 어른들은 흰색 한복을 즐겨 입었고, 멋을 아는 신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색으로 차려입기도 했다.
그런 멋진 신사가 거리를 걸어가면 나는 길을 가다가도 걸음을 멈추고 그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참 동안 바라보곤 했다. 그때의 흰옷은 단순한 옷차림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서와 멋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지난 8월 중순, 이곳 라우어에서 열렸던 ‘순백 썸머 나이트’ 축제도 떠오른다. 축제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흰색으로 차려입고 청명원에 모였다. 초대 가수의 흥겨운 노래에 맞춰 주민들이 함께 춤을 추며 하나가 되었고, 무더운 여름밤을 즐겁게 보냈다. 그날의 모습 역시 우리에게는 흰색이 단순한 색깔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오렌지색으로 하나가 되어 음악을 즐겼고, 우리는 흰색으로 하나가 되어 축제를 즐겼다. 색깔은 서로 다르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어쩌면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들의 문화를 사랑하고 함께 즐기며 하나가 되는 마음이다.
오늘의 공연은 단순히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오렌지색으로 물든 객석을 바라보면서 다른 나라의 문화와 국민성을 이해할 수 있었고, 동시에 우리에게 익숙했던 흰색의 의미와 우리의 전통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 나는 음악을 통해 다른 나라의 문화를 만났고, 색깔을 통해 우리의 문화를 다시 돌아보았다. 그래서인지 오늘의 공연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음악은 마음을 하나로 만들고, 문화는 서로 다른 민족을 이해하게 한다. 그리고 색깔은 그 문화를 기억하게 하는 아름다운 언어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