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악화 막을 방법 찾았다”… ‘의사과학자’의 세계
고규영 기초과학연구원 혈관연구단장
‘뇌의 하수구 퇴화로 치매 발생’ 올해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
코로나19 감염 경로 최초로 밝혀… “백신, 코에 뿌리는 방식으로 대체”
의대 졸업생 1%만 의사과학자 되면 국가 富 창출 의료산업 발전 계기
고규영 기초과학연구원 혈관연구단장은 “어릴 적부터 과학자가 꿈이었는데 공부를 잘하는 바람에 의대로 간 학생이 많다”며 “그런 의대생 중에서 창의적인 것을 좋아한다면 의사과학자가 적성에 더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사람의 머리는 두개골-뇌수막-뇌의 순으로 돼 있다. 뇌를 감싸고 있는 뇌척수액은 뇌를 보호하고, 뇌의 대사로 만들어진 노폐물을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뇌척수액의 양은 평균 150mL. 하루 450∼500mL가 새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450∼500mL는 매일 배출되는 셈인데, 150년간 어디로 나가는지 미궁에 빠져 있었다. 4년 전 고규영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연구단장 겸 KAIST 특훈교수 연구팀은 뇌 아래쪽 림프관을 통해 뇌척수액이 빠져나가는 걸 최초로 발견했다. 이른바 배수구인 셈이다. 나이가 먹으면 림프관의 배수능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뇌의 노폐물이 밖으로 나가지 못해 쌓이고, 결국 치매 등의 원인이 된다. 고 단장은 이 연구로 올해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을 5일 수상한다. 그를 4일 줌으로 인터뷰했다.》
―뇌수막 림프관과 치매 관련 후속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4년 전 연구는 생쥐를 실험한 것이고, 올해부터 충북 오송의 국가영장류센터와 협력해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하고 있다. 림프관을 통한 뇌척수액의 이동 경로는 서로 비슷한 것으로 나왔다. 11월경에 이와 관련된 새로운 연구 결과 등을 발표할 예정이다.”
―치매 관련 신약을 기대해도 좋은가.
“치매는 대표적인 퇴행성 질환으로 베타 아밀로이드와 타우 등 독성 단백질이 천천히 쌓이면서 해마의 신경세포를 파괴해 생긴다. 독성 물질을 담은 뇌척수액의 배출을 원활하게 만들어주면 자연스럽게 증상 악화 방지와 예방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일종의 ‘뇌 청소’를 하는 것이다. 미국 바이오젠이 최근 개발한 치매 치료제 ‘레켐비’는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신속 승인을 받아 국내에도 들어올 예정인데 효과가 20% 정도라고 한다. 우리 방식으로 개발되는 향후 치료법과 병합하면 보완 효과를 이룰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과 연계해서 개발하나.
“새로운 치료 개념이기 때문에 우선 연구원들이 특허를 갖고 스타트업 창업을 한 뒤 큰 기업과 협력하도록 할 생각이다.”
―목 주변을 마사지하면 치매 예방에 좋은 ‘꿀팁’이 있다고 하던데….
“뇌에서 나온 뇌척수액이 우리들이 발견한 뇌막 림프관을 통해 배출되고 목에 있는 200∼300여 개의 림프절에 모인 뒤 전신순환으로 들어간다. 턱 밑 목 부위를 마사지해주면 뇌척수액 흐름이 원활해진다. 아침저녁으로 10∼15분 손으로 턱 밑 목을 잡고 어루만지면 된다. 나중에 이를 도와주는 기기의 제품화도 검토 중이다.”
그는 30여 년 연구 경력의 대부분을 모세혈관과 림프관 연구에 매진했다. 인간의 전체 질환 중 혈관 관련 질환이 3분의 1이 넘는다. 초기에는 암에 주력했으나 암 치료율이 70%를 넘어가면서 치매 등 머리 관련 질환으로 방향을 바꿨다. 아직 치료율이 20∼30% 미만인 것들이다. 특히 눈 코 목 등의 혈관과 림프관 연구를 통해 다양한 가지치기 연구가 이뤄졌다. 코로나19 백신도 대표적인 사례다.
―코로나19 국내 유행 전에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트위터에 올린 것이 국내 전문가로선 처음이어서 화제가 됐다.
“(중국의) 양상을 보니 비말로 인한 호흡기 감염이 확실해 보였다. 그러면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와 국민이 과학적 사실을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전문가가 나서야 한다.”
―코로나 감염 경로에 대해서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고 하던데….
“2년 전 코로나바이러스가 콧속 섬모상피세포에 자리 잡고 증식한 뒤 다른 장기로 퍼져 나가는 걸 확인했다. 콧속 혈관과 림프관 연구가 돼 있어 가능했다. 올 4월엔 한 단계 높은 연구 결과를 네이처 심순환계 연구 표지 논문으로 냈다. 콧속 혈관과 림프관을 3차원(3D)으로 구현한 정밀지도를 통해 어떻게 약물이 흘러가는지 파악했기 때문에 감염 예방 방법을 찾았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팬데믹이 다시 온다면 백신을 근육주사가 아닌 코 안에 뿌리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부작용이 적고 95%의 면역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가 코로나 백신 개발이 굉장히 늦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화이자의 경우 의사, 보건학자, 인공지능(AI) 기술자 등 전문가 100여 명이 팀을 구성해 집중적인 연구 끝에 빠르게 백신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기업 규모에선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 기업 학계가 빠르게 협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전북대 의대를 나와 환자를 보는 임상의사의 길로 가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해 의사과학자가 됐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고교 때 원래 문과였는데 방학 때 전국 무전여행을 한 뒤 폐결핵을 앓아 1년간 휴학했다. 그때 결핵환자들의 불쌍한 모습에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의대에 와서 교수님이 ‘한 사람을 살리는 의사도 중요하지만 신약을 만들어 수많은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라’고 조언한 것 때문에 방향을 바꿨다. 지금도 ‘속았다’고 주변에 얘기한다(웃음).”
―의사과학자가 임상의사에 비해 수입이나 대우가 낮아 하려는 의대생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
“요즘 (대우가) 많이 나아졌다. 본인이 연구를 잘하면 여러 혜택이 있다. 의사과학자가 많으면 좋겠지만 연간 4000명 배출되는 의사 중 1%인 40명만 의사과학자가 돼도 충분하다. 무엇보다 신념이 필요하다. 항상 연구는 실패의 연속이고 연구비 걱정에 시달리는데 ‘내 연구로 많은 사람을 살린다’는 의미 부여가 필요하다.”
―그래도 파격적인 대우가 있어야 좋은 인재가 갈 것 아닌가.
“파격적 대우라는 건 결국 좋은 치료제와 방법을 갖고 특허 출원, 회사 창업 등으로 크게 성공하는 것이다. 앞으로 그런 사례가 점점 나올 것으로 본다. 개개인에 대한 대우보단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더 필요하다. 미국 보스턴 롱우드 거리의 바이오클러스터 같은 게 좋은 사례다. 우리의 국력이나 인재를 감안할 때 연구 중심 바이오메디컬단지의 형성이 늦은 감이 있다.”
―그동안 연구한 것 중에 사업화나 제품화된 것들이 있나.
“대표적인 건 ‘앱타(Abtaa)’라는 항체다. 우리 연구 결과를 국내 기업이 손을 댔다 실패했고, 지금은 글로벌 회사와 협력해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황반변성과 같은 망막 질환에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한다.”
―KAIST가 연구 중심 의대를 만든다는 건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대형 병원 빅5도 연구 중심을 강조하지만 환자가 많기 때문에 의사과학자도 다시 임상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가 KAIST 첫 의사 출신 교수였는데 지금은 10여 명 된다. 현재 상황에선 연구 중심 의대와 병원을 별도로 만드는 것도 의미가 있다.”
―초등학생들도 의대 준비반에 다니는 등 의사 쏠림 현상이 너무 심하다.
“전국 의사가 13만 명인데 그중 3만 명이 피부와 성형 분야라고 한다. 반면 흉부외과 전문의인 제 친구는 당직을 서다 숨지기도 했다. ‘공부 잘하면 적성 상관없이 의대 간다’는 쏠림 현상을 단기적으론 막을 방법이 없고 중장기적으로 정부가 잘 조정할 수밖엔 없다. 다만 지금 우수한 인재가 몰리는 만큼 의료산업을 활성화하기 좋다는 점을 거꾸로 활용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수명이 길어지면 ‘질 높은 삶을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해진다. 그를 뒷받침할 의료산업이 국가 부를 창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각광받을 것이다.”
―국내 과학자 중 노벨상 후보군에서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노벨상은 어떤 분야의 첫 문을 획기적으로 열어젖힌 과학자들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 그에 부합하는 쟁쟁한 분들이 많지만 뇌수막 림프관 논문은 인용횟수가 연 100회 이상이 넘을 정도로 이 분야에선 독보적이다. 후보에 낄 수 있다면 영광이다.”
고 교수의 아들인 고봉인 씨는 1997년 차이콥스키 국제청소년 콩쿠르에서 첼로 부문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유명한 첼리스트이자 미국 하버드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의과학자다. 현재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아버지처럼 혈관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혹시 아들과 협업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고 교수는 “본인이 알아서 잘 성장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제자와 아들에겐 항상 이런 말을 해준다고 한다. “헝그리 정신으로 집중, 또 집중해라.”
약력
△전북대 의대
△전북대 대학원 석·박사
△미국 인디애나주립대 선임연구원
△전북대 의대 교수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교수
△KAIST 생명과학과 교수
△학술원 회원
수상 이력
△경암학술상 생명과학부문
△아산의학상
△호암상 의학상
△올해의 과학자상
서정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