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운 때
오늘 우리는 머리에 재를 받으며,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것을 다짐하며 사순시기에 들어갑니다.
이 시기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 묵상하고, 십자가로 대표되는 고통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는 시기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 고통 없는 영광이 있을 수 없음을 확인하고 고백하는 시기이며, 고통을 삶의 일부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가운데 우리의 순수한 모습, 우리의 본래 모습을 되찾는 시기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이 시기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길 또는 방법을 일러줍니다. 자선과 기도와 단식입니다. 자선과 기도와 단식의 의미를 모르지는 않으나, 중요한 것은 그 자세입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어야 합니다. 사람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의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자선이란 하느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행위, 다시 말해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행위이어야 하며,
하느님을 향한 기도란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이루려는 노력을 겸비한 행위이어야 하며,
하느님을 향한 단식이란 설령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 죽더라도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는 행위, 철저한 자기 비움 행위이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향한다는 것은 이웃을 향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웃을 향한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어야 합니다.
이웃을 향한 자선이란 그야말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재물만이 아니라 시간과 재능을 나누는 행위를 말하며,
이웃을 향한 기도란 내 뜻 이상으로 이웃의 뜻을 존중하고 살피는 행위를 말하며,
이웃을 향한 단식이란 이웃과 동일한 공동 운명체임을 마음에 새기고 음식만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삼가고, 필요하다면 끊는 행위를 말합니다.
하느님을 향하고 이웃을 향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향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나를 향한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어야 합니다.
나를 향한 자선이란 하느님과 이웃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배려하고 있는지를 다시금 확인하는 행위를 말하며,
나를 향한 기도란 하느님과 이웃이 나와 뜻을 함께 하고자 얼마나 인내하고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는 행위를 말하며,
나를 향한 단식이란 하느님과 이웃이 나와 하나 되고자 무엇을 버리고 끊고 있는지를 다시금 살피는 행위를 말합니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이웃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진정 나를 사랑한다면, 최소한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의 부족한 점들만이라도 하나씩 하나씩 고쳐나가는 자세를 앞세워야 할 것입니다.
이기적인 나에서 이타적인 나로 나아가는 모습, 그것이 바로 하느님이 당신 모상대로 창조하신 우리 본래의 모습, 순수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번 사순절 하느님과 이웃, 끝내 나를 향한 자선과 기도와 단식으로 나의 순수한 모습을 되찾는 은혜로운 시기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머리에 재를 받으며,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것을 다짐하는 가운데 힘차게 출발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