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문학과 표절
'불륜’을 다룬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소설은 무엇일까? 김동인의 ‘마음이 옅은 자여’(1919)가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내용은 간단하다. 당시 일본에서 불어 닥친 ‘연애’ 열풍 속에서 신학문을 공부한 유부남 ‘나’가 사랑이 없음에도 미혼여성과 ‘연애’를 시작하는 ‘정체불명’의 기묘한 ‘사랑’ 이야기이다. 여기서 ‘정체불명’이라는 말은 주인공 심리만이 아니라 작품 제목에서부터 내용 전개에 이르기까지 소설과 관련된 전반적 상황에 적용된다.
당시 조선에는 없던 ‘마음이 옅다’라는 표현에서 발견되는 언어의 ‘국적불명성’은 내용의 전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여주인공을 둘러싼 두 가지 중요한 에피소드, 예를 들면 자궁염으로 인한 불임(不姙)상태라거나, 연못 속의 거문고 환청을 듣는 것 등은 같은 시기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아리시마 다케오의 ‘어떤 여자’(1919)의 여주인공 관련 에피소드를 조잡하게 수용한 것이었다. 또한 작품 중반부 갑작스레 등장하는 두 남자 간의 깊은 우정의 에피소드는 일본 근대문학의 거두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1914)에서 상당 부분을 차용하고 있었다.
'마음이 옅은 자여’에서 발견되는 일본소설의 모방이나 차용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광수, 주요한, 나도향, 현진건 등 식민지 작가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일본 근대문학 작가들 역시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장한몽’의 원작인 오자키 고요의 ‘금색야차’는 영국소설에서 모티프를 빌리는 등, 초기 일본 근대문학 작가 역시 영국. 독일, 러시아 문학에 의존하고 있었다. 1800년대 중반의 일본과 1900년대 초반의 조선에는 새로운 문물, 새로운 문학이 서구를 통해서 물밀듯이 밀려들고 있었고, 두 나라 작가들은 서구문학 양식을 전범으로 삼아 새로운 자국의 문학을 만들어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일본 작가들이 국가의 든든한 지원을 등에 업고 서구로 유학하여 선진문화를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에 반해서, 조선 작가들이 처한 상황은 너무나 열악했다. 빈사상태에 빠져 있던 식민지 조선이 그들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광수, 김동인 등 조선 근대문학 작가들은 일본이 수용한 서구 근대문학의 새로운 전범과 부딪치면서 홀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문학을 얻기 위해서 사투를 벌여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 모두 이제 겨우 스물을 넘은 나이였다. 우리의 초기 근대소설에 나타난 일본문학의 차용은 ‘표절’이 아니라,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새 길을 만들어가던 작가들의 외로운 ‘사투’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눈물겨운 사투 속에서 우리 근대문학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한 사투가 필요 없는 현 시점에서 발생한 신경숙의 일본문학 표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신경숙이 뭇매를 맞고는 있지만 솔직히 ‘표절’은 신경숙에게서만 한정되어 나타난 것은 아니다. ‘표절’은 우리 문화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어온, 그러나 절대 수정되지 않고 있는 고질적인 지병이다. 여기에는 인맥, 학맥, 지연의 내적 카르텔이 지배하는 문화계와 학계의 폐쇄적 시스템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작가, 비평가, 출판사로 이어지는 문화계 카르텔과 지도교수와 제자로 이어지는 학맥과 인맥의 학계 카르텔은 견고하기 그지없다.
100년 전 우리 근대소설 작가들의 진지하고 성실한 ‘사투’의 혼을 지금 우리의 문화계와 학계에서는 왜 찾을 수가 없을까. 몇몇 개인의 진지함과 성실함만으로는 그 견고한 카르텔을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문화계와 학계 전반에서 표절에 대한 진정한 성찰이 이루어져야 할 때다. (아래 책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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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일본 게이오대 방문교수 /
출처
:
매일신문 2015.06.2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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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의 근대문학] 한국 근대문학과 표절
새벽애(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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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02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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