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 댐 건설은 정권 넘어 국가가 책임져야
윤석열 정부 14개 신규댐 중 이재명 정부 5곳 건설 확정
정권 바뀔 때마다 뒤집는 수자원 정책, 국가 경쟁력 훼손
기후위기가 일상화하면서 홍수와 가뭄에 동시에 대응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수자원 인프라 확보가 다시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댐과 광역상수도 등 수자원 시설은 계획 수립부터 완공까지 장기간이 소요되는 국가 기간산업인 만큼 정권의 성격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건설 여부가 반복적으로 뒤집혀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사진 섬진강댐 보조여수로)
윤석열 정부가 2024년 발표했던 신규댐 14곳 가운데 이재명 정부가 정밀 재검토와 공론화 등을 거쳐 5곳은 건설을 추진하고, 2곳은 대안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나머지 7곳은 건설을 중단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건설을 추진하는 곳은 △지천댐(충남 청양·부여) △아미천댐(경기 연천) △병영천댐(전남 강진) △회야강댐(울산) △고현천댐(경남 거제) 등 5곳이다. 반면 감천댐(경북 김천)과 가례천댐(경남 의령)은 댐 건설 대신 기존 시설 활용과 하천정비 등 대안을 추진한다.
당초 14개 신규댐 건설에 약 4조7,500억원으로 추산됐던 사업비도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정부는 중단 및 대안 추진 등을 통해 7개 전체 사업비가 약 1조6,700억원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댐 정책도 바뀌어야 하나
문제는 이번 결정 자체보다 우리나라 수자원 정책이 정권 변화에 따라 지나치게 흔들려 왔다는 데 있다.
댐은 일반적인 SOC 사업과 달리 입지 선정, 환경영향 검토, 주민 협의, 기본계획, 실시설계, 보상, 착공과 준공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한 번의 정치적 결정으로 건설을 추진하거나 중단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는 의미다.
특히 기후변화로 강수 패턴이 극단적으로 변하면서 과거의 홍수·가뭄 통계만으로 미래 수요를 판단하기 어려워졌다. 집중호우는 짧은 시간에 폭발적으로 발생하고, 반대로 긴 기간 비가 내리지 않는 가뭄도 반복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댐 정책은 ‘댐을 지을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정치적 찬반 논쟁에서 벗어나 어떤 지역에 어느 규모의 수자원 시설이 필요하며, 홍수·가뭄·생활용수·산업용수를 어떻게 하나의 국가 수자원 체계로 연결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번에 건설이 확정된 5개 댐 역시 단순한 저수시설이 아니라 지역별 홍수와 용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정됐다.
지천댐·아미천댐은 홍수방어에서 용수공급까지 확대하여 건설한다.
금강권역의 지천댐은 당초 홍수방어 중심으로 검토됐지만 이번에는 충청권 메가프로젝트 등에 따른 신규 용수 수요를 고려해 다목적댐으로 추진된다.
지천댐이 건설되면 하루 약 18만㎥의 물을 청양·부여를 포함한 금강권역에 공급하면서 100년 빈도 수준의 극한 강우에 대응할 수 있는 홍수방어 기능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아미천댐 역시 홍수방어와 용수공급을 동시에 수행하는 다목적댐으로 추진된다. 연천 시가지의 홍수를 방어하는 동시에 자체 수원이 부족한 연천·파주 등 임진강 유역의 용수 수요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아미천댐 건설 시 하루 약 8만㎥의 용수공급 능력을 확보하고 100년 빈도의 홍수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강진 병영천댐과 울산 회야강댐은 기존 식수댐에 홍수조절 기능을 추가한다. 회야강댐은 기존 여수로에 수문을 설치해 약 810만㎥의 홍수조절용량을 확보하고 하류 시가지 홍수량을 약 20% 줄이는 방안이 추진된다.
거제 고현천댐은 기존 댐을 증고하고 수문을 설치해 최대 62만㎥의 홍수조절용량을 확보한다.
반대로 김천 감천댐은 인근 김천부항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하천정비를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공론화위원회 의견에 따라 신규댐 건설 대신 대안을 추진한다. 의령 가례천댐 역시 기존 저수지와 수로를 연계 운영해 홍수방어 능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전환됐다.
이는 댐 건설을 무조건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는 건설하고, 기존 시설로 대체 가능한 곳에는 대안을 적용하는 선택적 국가 수자원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도체 시대에는 ‘홍수용 댐’만으로 부족하다
더 중요한 것은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새로운 물 수요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양의 안정적인 용수를 필요로 한다. 공장이 가동된 이후에는 하루 단위가 아니라 사실상 24시간 연속으로 안정적인 물 공급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생활용수와는 공급 안정성의 개념부터 다르다.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서남권 신규 반도체 산업단지에 하루 65만㎥의 용수를 공급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계획은 △동복댐 30만㎥ △주암댐·장흥댐 여유량 15만㎥ △보성강댐 10만㎥ △나주댐 10만㎥ 등 기존 수자원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광주 제1하수처리장의 하수재이용수를 역삼투막 처리해 하루 최대 30만㎥을 활용하는 방안도 마련됐다.
특히 동복댐은 기존 여유량 5만㎥에 댐 증고를 통해 25만㎥을 추가 확보해 하루 30만㎥을 공급하는 구상이다. 주암댐과 장흥댐의 여유량, 보성강댐 발전용수 전환, 나주댐 농업용수 재배분 등도 활용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기존 수자원의 재배분과 활용 효율화만으로 미래의 반도체 산업용수 수요까지 장기적으로 감당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실제로 최근 보도에서도 반도체 용수 공급계획은 동복댐 증고, 농업용수 대체시설, 발전용수 전환시설, 하수재이용시설과 취·도수관로 등 추가적인 인프라 구축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실제 공급까지는 시설 확충이 필요하다는 점이 지적됐다.
‘물 재배분’과 ‘수자원 확보’는 구분해야
반도체 산업이 수십 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할 국가 전략산업이라면 단기적으로 남아 있는 물을 찾아 배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산업단지가 확대되고 생산라인이 증설되면 용수 수요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또한 기후위기로 가뭄의 빈도와 강도가 커질 경우 현재 여유량으로 계산한 수자원이 미래에도 동일하게 존재한다는 보장도 없다.
실제로 광주·전남 지역은 과거 극심한 가뭄을 경험한 지역이다. 최근에도 동복댐과 주암댐의 저수 상황에 따라 취수 비중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으로 생활용수를 관리하고 있다.
따라서 반도체 용수정책은 단순히 ‘현재 확보 가능한 물의 총량’을 계산하는 수준을 넘어 가뭄이 장기화됐을 때에도 공급 가능한가, 산업용수와 생활용수 수요가 충돌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추가적인 반도체 팹이 들어설 경우 어디에서 물을 확보할 것인가까지 포함한 국가 수자원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
댐 건설은 정치적 사업이 아니라 국가안보 인프라
댐을 둘러싼 환경·지역사회 논쟁은 충분히 존중돼야 한다. 주민의 재산권과 환경 영향을 외면한 일방적인 개발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반대로 정치적 반대가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필요한 수자원 시설 건설을 장기간 미루는 것 역시 기후위기 시대에는 국가적 위험이 될 수 있다.
특히 물은 전력과 함께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등 첨단산업의 핵심 인프라다. 산업단지를 유치하면서 전력과 부지는 확보하고도 물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국가 산업정책 전체가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댐 건설 찬성’이나 ‘댐 건설 반대’가 아니다.
국가가 최소한의 수자원 확보 기준을 정하고, 정치권과 정부가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장기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국가 수자원계획을 만드는 것이다.
정권마다 뒤집히는 국가 기간산업 계획, 이제는 끝내야
윤석열 정부가 추진했던 14개 신규댐 가운데 이재명 정부가 최종적으로 5곳만 건설하기로 결정한 것은 각 사업의 필요성과 대안을 다시 검증했다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교훈은 앞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규댐 건설계획이 전면 재검토되고, 다시 다음 정권에서 또 다른 수자원계획이 나오는 구조라면 국가의 장기적인 물 관리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댐 하나를 건설하는 데만 수년에서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현실에서 5년 단위 정권의 정책주기로 국가 수자원 인프라를 결정해서는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향후 국가 수자원위원회 또는 범정부 차원의 장기 수자원계획을 통해 홍수·가뭄·생활용수·농업용수·산업용수를 통합 관리하고, 주요 국가산업단지의 미래 용수 수요까지 반영한 20~30년 단위의 물 인프라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댐을 건설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도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과학적 데이터와 경제성, 환경성, 지역 수용성, 국가 산업전략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한 번 결정된 국가 기간산업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원칙과 절차에 따라 일관되게 추진돼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물은 단순한 환경정책이 아니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방재 인프라이자 반도체·첨단산업의 생산기반이며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산업안보 자산이다.
댐 건설을 둘러싼 정치적 찬반을 넘어 이제는 국가가 책임지고 장기적인 물 공급 능력을 확보해야 할 때다.
특히 호남권 반도체 메가프로젝트처럼 국가의 산업지형을 바꿀 대규모 투자가 추진된다면 ‘현재 물이 있는가’가 아니라 ‘30년 뒤에도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수자원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정권은 바뀌지만 댐은 수십 년을 사용한다.
국가의 물 정책도 정권의 시각이 아니라 국가의 시각으로 설계해야 한다.
(환경경영신문 https://ionestop.kr// 이현동 전문기자, 상하수도기술사,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