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랑한 꾀꼬리 소리와 구성진 뻐꾸기 소리가 겹쳐지는 초여름이면 올망졸망 머리를 맞댄 딸기가 단내를 풍기며 붉게 물이 듭니다. 슬슬 늘어나는 밭일에 몸은 분주해도 시절인연으로 만나는 이웃과 더불어 마음의 여유를 누립니다. 산방을 찾는 이웃 중에는 귀여운 다람쥐도 있습니다. 산방 출입이 빈번한 다람쥐는 ‘세상만사 돌고 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옛말을 떠올리게 하며 큰 웃음을 줍니다.
웬일인지 4월로 접어들면서 화단과 딸기밭 곳곳에 들깨 싹이 돋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들깨 싹은 수돗가, 비닐하우스, 산으로 이어지는 언덕까지 언뜻 눈에 들어오는 것만도 수십 개입니다. 가을걷이한 들깨를 마당에서 말리기는 했지만 어떤 연유로 사방에서 들깨 싹이 돋아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 일부러 씨앗 한 줌씩 심어놓은 것처럼 한 곳에 돋은 싹은 두 손으로 감싸 안을 만큼 수북하니 수상한 일이지요.
자연 발아한 들깨 싹이 손가락 두 마디가량 자랐을 때, 늦가을 이후 기척이 없던 다람쥐가 마당 주위를 집요하게 돌아다니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 몸짓이 뭔가를 찾는 것 같은 눈치였습니다. ‘왜 저럴까?’ 갸웃하면서 살피던 중에 다람쥐가 뱅뱅 도는 그 자리에 수북하게 자라 있는 들깨 싹을 보는 순간, 무릎을 쳤습니다.
‘오호라! 네가 지금 들깨를 찾고 있구나!’
다람쥐는 지난 가을, 볕에 말리던 들깨알을 물어다 그곳에 숨겨둔 겁니다. 양 볼이 볼록해지도록 물어 날랐으니 어지간히 모아놓았을 겁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숨겨놓은 들깨가 파릇하게 싹을 틔운 줄은 꿈에도 모르겠지요. 작은 산짐승의 당찬 솜씨는 은연중에 사람살이와도 비교가 됩니다. 맨몸으로 야생에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그들에 비하면 사람의 홀로서기는 몹시 둔하고 더딘 듯합니다.
자연이 가꿔준 양식이니 나눠먹는다 생각하면 아까울 것이 없는데, 다람쥐가 가져간 들깨 알은 농부에게 되돌아옵니다. 다람쥐 눈을 피한 들깨는 싹을 틔우고 탐스럽게 자라서 ‘나 여기 있어요.’ 하며 손짓을 합니다. 솎아먹기도 하고, 일부는 밭에 옮겨심기도 합니다. 들깨 파종은 대개 6월 중순에 하니 깻잎은 여름이 무르익어야 거둡니다. 다람쥐 덕에 일찌감치 맛보는 들깨 순은 각별한 맛에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재미까지 더해줍니다.
다람쥐가 탐하는 들깨는 흰 들깨입니다. 검은 들깨와 나란히 두어도 흰 들깨만 물어 나릅니다. 그럴 만 한 것이 흰 들깨는 검은 들깨보다 알도 굵고 향도 더 진합니다. 흰 들깨로 기름을 짜면 색이 맑아 음식이 깔끔하고, 향이 진해서 적은 양으로도 깊은 맛을 낼 수 있습니다. 볶으면 더 고소하고 향긋해 지는 들깨는 강정이나 과자를 만들고, 가루를 내어 탕과 나물무침에 곁들이면 밋밋한 음식도 한순간에 감칠맛 나게 변합니다.
영양 간식으로 더할 나위가 없는 들깨두부과자는 재료도 단순하고 만들기도 간단합니다. 두부 한 가지만으로도 바삭하고 고소하게 만들 수 있지만 들깨를 넣으면 영양은 배가 되고, 진한 들깨 향이 기분 좋게 퍼집니다. 볶은 들깨와 두부를 섞어 매끈하게 치댄 뒤, 한 입 크기로 썰어 기름에 튀깁니다. 튀겨도 느끼하지 않고 뒷맛이 깔끔한 과자의 풍미는 두부와 흰 들깨가 빚어낸 맛입니다. 검은 들깨나 검은깨를 활용하거나, 두부 대신 삶은 콩을 갈아 넣어도 먹음직한 과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튀김은 바삭해야 제맛이 납니다, 중약불에서 충분히 튀기고, 식은 후 밀폐용기에 담아놓으면 시간이 좀 지나도 눅눅해지지 않습니다. 두부과자반죽은 냉동 보관했다 해동하면 처음 반죽한 그대로 말랑말랑합니다. 여유 있게 준비해두면 출출할 때 간식으로, 갑작스런 다과상에 담기도 좋습니다.
- 들깨두부과자 -
재료준비
두부 100g
밀가루 200g
달걀 1개
흰 들깨(또는 검은 들깨, 검은깨) 3큰술
소금 2/3작은술
황설탕 1큰술
식용유
만드는 방법
- 들깨순 통밀전무침 -
재료준비
간추린 들깨순 100g,
집간장으로 만든 *맛간장 1큰술
멸치육수 1큰술,
고춧가루 1½큰술,
쪽파 5~7줄기, 다진 마늘,
반반 섞은 들기름과 참기름, 통깨
만드는 방법
들깨는 씨앗 뿐만 아니라 잎도 영양가가 풍부하고 맛있게 먹는 방법이 다양합니다. 어린 순을 솎으면 향긋한 나물로 먹고, 크게 자란 잎은 쌈을 싸거나 장아찌를 담급니다. 자연 발아한 들깨 싹은 향이 진하고 부드러워서 나물요리에 제격입니다. 데쳐서 집간장으로 조물조물 무치거나 기름에 볶아도 맛있고, 생채를 만들면 풍부한 영양과 진한 향을 즐기기에 더 좋습니다. 들깨순만 무쳐도 맛깔스럽고, 한 입 크기로 썬 통밀전을 섞어 무치면 양념이 밴 밀전은 쫄깃한 식감과 어묵 분위기도 살짝 풍겨서 색다른 맛을 안겨줍니다. 보약이나 다름없는 들깨로 영양 간식과 감칠맛 나는 반찬을 만들어보세요.
자운(紫雲)
강원도 횡성으로 귀농하여 무농약·무비료 농법으로 텃밭을 일구며 산다. 그녀 자신이 현대병으로 악화된 건강을 돌보고자 자연에 중심을 둔 태평농법 고방연구원을 찾아가 자급자족의 삶을 시작했던 것. 건강이 회복되면서 직접 가꾼 채소로 자연식 요리를 하는 그녀의 레시피는 블로그 상에서 인기만점이다. 농사 노하우와 요리 비결을 묶어 『산골농부의 자연밥상』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http://blog.naver.com/jaun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