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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9장 20절 ~ 23절
O 그러므로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보낸 너희 모든 사로잡힌 자들은 주의 말씀을 들으라. 20)
Hear ye therefore the word of the LORD, all ye of the captivity, whom I have sent from Jerusalem to Babylon: 20)
이전 말씀에는 바빌론으로 끌려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에게 말씀하시고, 이제 바빌론으로 끌려가 있는 자들에게 말씀이 전해지는 모습입니다. 위 말씀에 "내가"에서 나타난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을 바빌론으로 끌고간 것은 느부캇넷살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백신에 속은 것도 일루미나티에 의해 속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과정을 겪은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박해와 핍박의 고난이 올때 일루미나티와 같은 사탄숭배자들의 악함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사탄숭배자들을 통하여 우리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용한 점집에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의도치 않게 방문을 하면 그날은 그 점쟁이가 점을 칠수 없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을 본다면 점쟁이가 모시는 귀신과 하나님을 믿는 성도중에 누가 더 강한 것입니까? 이렇게 약한 귀신이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 성도들을 괴롭히고 죽이기도 하는 것은 느부캇넷살처럼 그들이 하나님의 사용하심을 받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과정이고, 또 이것이 피조물인 우리의 가장 큰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는 콜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키야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을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그들을 너희 눈 앞에서 죽이리라. 21)
Thus saith the LORD of hosts, the God of Israel, of Ahab the son of Kolaiah, and of Zedekiah the son of Maaseiah, which prophesy a lie unto you in my name; Behold, I will deliver them into the hand of Nebuchadrezzar king of Babylon; and he shall slay them before your eyes; 21)
시드키야는 왕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예언자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O 바빌론 왕이 여호야킨의 아버지의 동생 맛타냐를 여호야킨을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시드키야로 바꾸었더라.
열왕기하 24장 17절
여호야킨왕의 작은 아버지인 맛타냐의 이름을 시드키야로 바꾸고 그를 왕으로 삼습니다. 바빌론이 바꿔준 시드키야라는 이름의 뜻은 의외로 여호와는 나의 의로움, 나의 구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나오는 시드키야와 아합은 예언자입니다.
아합과 시드키야를 죽이는 것은 느부캇넷살이지만 그로 하여금 아합과 시드키야를 죽이도록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바빌론에 있는 유다의 모든 사로잡힌 자들이 그들을 저주거리로 삼아 말하기를 "주께서 너를 바빌론 왕이 불에 구워 낸 시드키야와 아합같이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리니 22)
And of them shall be taken up a curse by all the captivity of Judah which are in Babylon, saying, The LORD make thee like Ahab, whom the king of Babylon roasted in the fire; 22)
아합과 시드키야는 하나냐의 거짓 예언을 주장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침략자인 바빌론이 멸망하고 이스라엘이 곧 회복되어 사로잡혀간 사람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주장인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들은 느부캇넷살은 당연히 화형을 시켰겠지만 이러한 화형조차도 느부캇넷살을 쓰신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에서 상스거운 짓을 행했으며 그들의 이웃의 아내들과 음행하였고 내가 그들에게 명하지 아니한 거짓된 말들을 내 이름으로 말하였음이라. 내가 알고 내가 증인이니라. 주가 말하노라. 23)
Because they have committed villany in Israel, and have committed adultery with their neighbours' wives, and have spoken lying words in my name, which I have not commanded them; even I know, and am a witness, saith the LORD. 23)
adultery ① 간통 ② 부정(不貞) ③ 간음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장하는 것이 거짓됨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아합과 시드키야가 이스라엘에서 행실이 좋지 못했던 것같습니다. 이웃의 아내들과 음행하였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들이 실제로 음행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예는 조선시대에 아이가 생기지 않는 아녀자가 절에 가서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치성드리러 가서는 중의 아이를 임신하는 것과 닮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종교지도자은 종교적인 권위로 음행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정명석도 이러한 모습이라고 보여집니다. 여자들을 성착취하는 음행을 저지르면서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위장하여 사람들을 지배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이처럼 거짓된 예언을 하는 예언자는 그들의 삶의 열매가 드러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종교 권위자들을 그들의 권위로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결과물인 삶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합과 시드키야의 주장과 예레미야의 주장을 동시에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는 그 역사를 알기 때문에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지만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을 구별할 결과가 나타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합과 시드키야의 삶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유용한 힌트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입장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똑같습니다. 즉 지금의 상황에서는 우리도 결과를 모르는 것입니다.
백신이 도입되었을 때에 그것을 맞으라는 사람도 있었고 그것의 위험을 경고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때는 백신에 대한 결과가 이스라엘처럼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에 분별은 그 사람의 삶이 힌트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짐승의 표와 비슷한 것들이 나올 것입니다. 부정하고 음행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그 주장이 틀렸다는 증거가 당장 없더라도 경계하고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해서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려운 분별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감춰진 비밀을 어렵게 알아내야 구원에 필요한 분별이 이뤄진다면 하나님께서 약한자를 골라내어 버리시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일루미나티들의 정보들을 분석하는데 시간을 쓰는 것은 시간낭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루미나티들의 정보는 일루미나티가 흘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꼭 필요한 분별할 것들은 아주 쉽게 선명하게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이 진리를 원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위의 영상으로 아주 쉽게 천주교가 가짜고 그들의 메시지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거짓된 천주교의 생각이라는 것이 보입니다. 이러한 분별을 하면되는 것이지 148카드니 일루미나티의 카드들에 매달려 시간을 보낼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위의 영상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된 주장을 하는 자들의 모습은 조금만 진리를 갈구하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정명석은 성폭행으로 형을 살다나온 인간입니다. 드러났는데 계속 속는 사람들은 속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대적한다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단의 목적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자기 조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이단의 목적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단 조직에 참여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면 그의 천 배인 천 명정도가 하나님을 오해할 수 있도록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단의 목적은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길을 더럽게 보이게 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앞으로 나아오는 것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단의 피해자가 사실은 이단의 원래의 목적에 부합하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단의 피해자이지만 그 이단의 본질의 목적인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오염시키는 데에까지 이용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정명석에 대한 폭로가 넷플릭스를 통해서 나오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넷플릭스는 사탄적인 콘텐츠가 유통되는 곳입니다. 그런 자들이 정명석의 이단문제를 내세운 것은 이단문제를 바로잡고자함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더럽게 보이도록 오염시켜서 훼방하는 진정한 이단의 목적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한국 너무 싫다” 세종시 목사 사무실에도 ‘일장기’ (msn.com)
이는 아합과 시드키야가 음행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분별은 이처럼 선명하고 분명하게 우리에게 드러납니다. 저 사람은 스스로 목사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하나냐와 아합과 시드키야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천주교나 정명석이나 일장기를 내건 목사라는 사람이나 모두 그들의 열매를 보아야 합니다. 공통적으로 모두 사람들의 환멸을 일으키는데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백신을 분별함과 천주교를 분별함과 정명석을 분별함과 일장기를 내건 목사를 분별함이 어렵습니까?
생명이 걸린 분별은 매우 쉽고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제쳐두고 일루미나티를 분석하는 것은 일루미나티들이 바라는 행동입니다. 그 분석에 쓰이는 정보들은 모두 그들이 제공한 것입니다. 그리고 일루미나티들은 사탄숭배자들로 불완전한 인간입니다. 그들이 막강한 권력과 재물을 가지고, 진심으로 어떤 일을 하려고 해도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루미나티가 애매하게 정보를 알리고, 일이 터지고 난뒤에 꿰어 맞추는 현상도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단이 만들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의 주장을 함으로 권위를 내세우고 사람들을 지배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그런데 하나냐의 주장과 아합과 시드키야의 주장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의 교회들의 생각 방식과 하나냐와 아합과 시드키야의 주장이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이스라엘의 자존감에 합당한 자기 주장이고, 지금으로보면 이스라엘 국뽕과 같은 주장입니다. 지금의 한국교회에도 교회운영이라는 자존감이 작동하며, 그것이 교회문화라는 권위로 진리보다 더 위에 군림하는 느낌이 듭니다.
진리는 사람의 생각과 편의와 유익을 반드시 추구하지 않습니다. 진리란 사람의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우리곁에도 하나냐와 아합과 시드키야들이 있고, 그들은 선명하게 보입니다. 이는 백신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선명한 진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선명하게 보이는 것을 외면하고, 애매한 것들을 매달리는 것은 우리도 진리를 거부하고 대적하는 것이 됩니다. 짐승의 표가 드러나는 모습도 백신처럼 선명할 것인데 그때에도 일루미나티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짐승의 표를 제쳐두고, 일루미나티를 분석할 것입니다. 그때에도 그들은 (사람의)필요가 있으면 짐승의 표를 받으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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