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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1 : 3 권세를 받은 두 증인
계 11 : 3 권세를 받은 두 증인 -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
본문은 요한계시록에서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 중 하나이다. 말씀하는 자는 그리스도이시라고 보인다.
두 증인이 나타나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간, 즉 3년 반 동안 말씀을 전할 것이다. 두 증인의 증거는 확실한 증거로 여겨진다.
예수께서는 전도자들을 둘씩 내보내셨다.
* 눅 10: 1 -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굵은 베옷은 금식하며 회개할 때 입는 복장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죄를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며 기도할 것이다.
3-1) 두 증인 [11: 3-6]
(1) 여러 견해.
Ⓐ 에녹과 엘리야다. (에녹서 90:11, Tertullian).
에녹과 엘리야는 죽지 않고 승천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 모세와 엘리야다. (Charles, Smith, Gundry, Barclay).
당시 유대인들의 보편적인 신념이다. 2세기까지 교회의 일반적인 견해였다.
모세와 엘리야의 다시 올 것에 대한 성경의 증거를 말한다.
* 신 18: 18 -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 말 4: 5 –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 마 11: 14 -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 막 9: 11 -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 요 6: 14 -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 요 7: 40 -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 율법과 선지서를 상징한다.
두 증인을 상징화한다.
율법의 대표자인 모세와 선지자의 대표자인 엘리야를 상징하여 하나님을 증명하는 두 증인이라고 한다.
Ⓓ 미래의 두 예언자다 (Beckwith).
Ⓔ 베드로와 바울을 가리킨다 (Mounce).
Ⓕ 교회를 상징한다.
두 증인의 정체가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는 말씀을 근거로 한다.
Ⓖ 교회 안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대표자다 (Rissi).
Ⓗ 종교 개혁기까지 복음을 증거한 증인들이다.
A.D. 533년부터 종교 개혁 이전까지의 로마 교황이 통치하는 기간에 그리스도를 증거한 여러 증인들을 말한다.
Ⓘ 일천이백육십 일과 같이 정해진 기간 혹은 교회의 전 기간을 통해 증언하는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 (Bruce, Morris, Johnson, Minear, Beasley - Murray, Hendriksen).
Ⓙ 모세와 엘리야의 정신을 계승한 증인이다.
두 증인은 상징이다.
모세와 엘리야의 정신을 계승한 주의 종들이 일어나 대 환난기의 전반부에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
둘은 법정적 의미이다.
* 신 17: 6 -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으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
* 요 8: 18 -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 계 22: 6 -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신약에서 두 증인의 맥이 흐르기 때문이다.
* 마 17: 3 -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 눅 24: 5 -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 행 1: 10 -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증인의 수가 둘이라는 사실은 실제 증인의 수를 의미하기보다는 증인이 증거하는 증언의 진실성을 시사한다 (Hughes).
구약이나 신약에서 증인이 둘이라는 사실은 증언의 진실성을 의미하고 있다.
* 신 19: 15 -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 요 8: 17-18 - 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보내실 때 둘을 함께 보내셨다.
* 막 6: 7 -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 눅 10: 1 -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 요 8: 16-18 – 16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18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2) 저자의 견해
종말의 대환난기 전반부에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는 사명자들이다.
① 두 증인을 해석하는 열쇠
엘리야와모세의정신을 계승한 자라야 한다.
두 증인의 권세를 보면 모세와 엘리야의 사역과 유사하다.
구분 :율법의대표 - 모세 : 능력의 대표 – 엘리야
권세: 물이 피 되게 함 : 입의 불로 원수소멸. 하늘을 닫아 비 오지 못함.
예언:신 18: 18. : 말 4: 5-6.
* 신 18: 18 -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 말 4: 5-6 –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성취:요 4: 25-26. : 마 11: 14. 막 9: 12-13. 눅 1: 17 참조.
* 요 4: 25-26 –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 막 9: 12-13 – 12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마 11: 14 -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 눅 1: 17 -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② 두 증인은 순교자다.
죽었던 자나 하늘로 이끌려 올라간 자가 될 수 없다.
③ 두 증인은 두 선지자다.
요한의 관점에서 볼 때 교회가 될 수 없다.
성경 어디에도 교회를 선지자로 표현한 곳이 없다.
두 증인은 짐승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나 교회는 죽을 수 없다.
* 마 16: 18 -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④ 종말 추수기의 참된 종이다.
두 사람의 동행 사역으로 볼 때 종말의참된 종을 대표한다.
두 증인이 함께 예언하고, 고난받고, 죽고 부활하여 승천한다. 두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일로 추수기의종들의 무리로 본다.
짐승과 전쟁하는 하나의큰 집단이다. 사건의 결과인 죽음의상황으로 입증된다.
* 계 11: 9 -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⑤ 성경으로 지지 받는 두 증인의 맥이 있다.
* 창 19: 1 -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 수 2: 1 -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 막 6: 7 -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 눅 7: 19 -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 눅 10: 1 -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 눅 24: 5 -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 행 1: 10 -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3-2) 두 증인의 모습과 권세 -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예수님이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신다.
두 증인은 종말에 일할 하나님의 종들을 말한다. 그렇지만 새 시대의 개념을 보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광야로, 그리고 광야에서 가나안땅으로 빼내실 때, 타락한 구약교회에서 신약교회로 빼내실 때, 그 다음에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종이였다. 그러나 광야의 성막 시대와 가나안 땅의 성전 시대를 거쳐 타락한 이스라엘 속에서 새로운 신약교회를 세우셨다.
그 다음에는 마지막 음녀 바벨론, 여기서는 새 하늘과 새 땅, 새로운 영적 세계가 열린다. 구약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 주셨다. 그리고 신약은 이 세상 가운데서 또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신약교회를 통하여 다 보여 주신다.
이스라엘이 종살이 할 때 하나님이 첫 번째 하신 일이 무엇인가?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를 먼저 지도자로 세우셨다. 주의 종을 세우신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신약교회를 세울 때 첫 번째 하신 일이 열두 제자를 세우는 일이었다.
마지막에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우리가 가야 할 천국을 갈 때 누구를 세우시는가? 바로 두 증인을 세우신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종말할 것 없이 다 같은 하나님의 종들이다. 그러므로 주의 종이 얼마나 중요한가? 실감할 수 있어야 한다.
주의 종은 양들을 위해서, 성도를 위해서, 바로 이 자체를 위해서 일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사랑하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종들을 세우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종들을 세우신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른다.
예수님은 종을 친구와 같이 대면하셨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너무도 사랑하셨다. 예수님이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라고 호칭하셨다.
너무 중요하니까 '두 증인' 그러지 않고, '나의 두 증인'이라고 말씀하셨다.
계시록 22장 16절에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라고 했다. 이것은 교회가 덜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교회를 이야기할 때는 '내'자를 사용하지 않으셨다. '내 사자를 보내리니' 이것은 하나님의 종들을 사랑하시고 종들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것을 강조한다.
지금 무교회주의나 무목자주의는 전부 사이비들이다. 교회가 세속화되니까 교회도 필요 없다. 목회자들이 자꾸 세속화되니까 목사들도 필요 없다.
아무리 교회와 종들이 타락해도 하나님께서는 타락하지 않은 종들을 통하여 진리를 계승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며 자기 백성들을 이끌어내신다. 할렐루야!
마지막 때도 똑 같다. 하나님의 종으로 명칭상 두 증인이라고 한 것이다.
왜 두 증인이라고 했는가? 두 증인이라는 것은 법적 증인수이다.
신명기 19장 15절에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요한복음 8장 17절에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그러니까 두 증인이라는 것은 반드시 두 사람을 말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같은 진리를 외칠 때 그것을 인정하고 법적으로 승인한다는 법정적 용어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아니다.
창세기 19장 1절에 소돔성이 멸망 당할 때 천사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두 천사를 보냈다. 이것도 같은 개념이다.
여호수아 2장 1절을 보면 여리고 성에 정탐꾼을 보낼 때 열두 지파지만 두 사람씩 보냈다.
마가복음 6장 7절에도 열두 제자를 두 사람씩 짝지어 보냈다. 꼭 두 사람만이 아니다. 마지막 시대에 일할 하나님의 종들을 말한다.
누가복음 10장 1절에 70인을 전도인으로 파송할 때도 두 사람씩 보냈다. 누가복음 7장 19절에도 세례 요한이 제자들을 보낼 때도 두 제자를 보냈다.
누가복음 24장 5절에 보면 주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실 때 나타난 천사가 두 천사였다. 그리고 사도행전 1장 7절에 주님이 승천하실 때 공중에 나타난 천사 역시 두 천사다.
천사는 원래 날개가 없다. 날개를 단 것은 가짜다. 헬라 신화, 헬라의 미신, 그런 우상 신전에서 나오는 얘기다.
가톨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날개 달린 천사도 잘못된 것이다. 천사를 여자로 그린 것도 잘못이다. 여신숭배, 마리아 숭배 다 잘못된 것이다.
천사는 여자 남자 구별되지 않는 그런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신다.
계시록 13장 15절에 거짓 선지자의 권세가 나온다. 마지막 대 환난 때 거짓 선지자, 용, 짐승이 엄청난 권세를 가지고 나타난다.
사탄의 무리도 마지막 이 한 판에 전부 쏟아버린다. 세상의 전쟁에서도 최후 결전에 힘을 쏟을 때 어떻게 합니까?
이쪽의 모든 힘과 무기를 다 동원하고 저쪽에서도 남은 병력과 무기를 총동원하여 완전히 쏟아버린다.
그때는 자기 있는 것 다 동원하여 남은 힘을 남김없이 쏟아버리는 것이다. 마지막 때 이 세상이 끝이 난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가 가까워지면 마귀 사탄들도 거짓 선지자들에게 엄청난 권세를 준다. 그래서 용의 권세, 짐승의 권세가 기세를 부린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에게 주시는 두 증인의 권세는 이 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엄청난 권세로써 모세의 권세와 엘리야의 권세를 합친 것과 같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빼낼 때 모세에게 실로 엄청난 권세를 주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냈다.
말이 바로이지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의 애굽의 문화로 왕의 권세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모세를 물에서 건져낸 바로의 딸이 여왕이 되었다. 아들이 없었다. 모세가 궁중에 있었으면 자연히 왕이 된다.
당시는 애굽이 천하를 지배했을 때였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엄청난 부귀영화를 버렸다. 모세가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장정만 60만 정도, 전체 인원으로는 200만 이상이나 되는 백성들을 이끌고 나올 때는 모세에게 능력과 권세를 주셨기 때문이다.
열 가지 재앙의 권세를 주셨고 바로 앞에 담대히 나가서 '바로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광야로 보내라고 하신다.'라고 강하게 외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주셨다.
그러나 오늘 날은 그 권위가 무너져간다. 대통령의 권위, 목사의 권위, 부모의 권위까지도 사라져 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권세를 주신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별별 사람이 다 있는데 이들을 이끌어가려면 보통 권세를 주였겠는가?
12제자들도 이 세상 구약의 타락한 교회를 신약교회로 이끌어내는데, 로마의 핍박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바위를 뚫고 살았겠는가?
로마가 세계를 지배할 때 이에 대항해 예수를 전하다가 잡히면 죽게 된다. 그런데 누가 감히 목사라고 지도자라고 가서 전도하고 예수를 전파하겠는가?
성도(양)는 절대로 스스로 살 수 없다. 목자 없는 양은 존재할 수 없다. 제 아무리 똑똑한 장로, 권사, 집사라도 목자가 없으면 안 된다.
12제자가 초대교회 성도들을 어떻게 이끌었겠는가? 열두 제자들에게 권세를 주어서 그들을 이끌 수 있었다.
로마에 가면 ‘베드로 잠스터’라는 돌이 있다. 베드로가 로마에서 너무 핍박이 심하니까 피신하였다.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쿼바디스)' 하니까 '네가 떠난 로마로 향하여 내가 가노라.'하며 환상 중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타난 것이다.
전해진 이야기는 베드로가 '주여! 용서하소서. 내가 다시 가겠나이다.' 하고 로마로 들어가서 전도하다가 잡혀 죽었다.
그 때 베드로의 목을 단두대 같은 돌에 올려놓고 작두 같은 칼로 목을 쳤던 자리가 교회가 되었다. 베드로의 목을 쳐 머리가 톡톡 튄 핏자국마다 표시해놓았다. 바로 이런 상황 가운데서 불신자들을 교회로 이끌어내야 했다.
마지막 때도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신다. 이 권세는 최고로 막강한 권세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서 '처처에 환난이 있으리니 창세 이래로 이후에도 이런 환난은 없을 것이다'고 했다.
재림 때는 좋은 것도 최고지만 나쁜 것도 최고다. 악한 사람은 무지하게 악해지고, 좋은 사람은 신앙이 더 좋아 진다.
계시록은 좋은 권세 일곱 가지와 나쁜 권세 일곱 가지의 싸움이다.
나쁜 권세는 계시록 13장 8절 만국을 다스리는 적그리스도 짐승의 권세, 14장 12절 짐승의 권세, 13장 용의 권세, 9장 10절 황충의 권세, 9장 3절 전갈의 권세, 13장 5절 마흔두 달 일할 권세, 13장 15절 거짓 선지자의 권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쪽에도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 2장 26절, 12장 10절 그리스도의 권세, 16장 9절 하나님의 권세, 20장 4절 심판하는 권세, 20장 6절 둘째 사망을 다스리는 권세, 22장 14절 성안에 들어가는 권세, 11장 3절 마지막에 두 증인 권세를 주셨다.
믿습니까? 아멘!
(1) 권세를 받은 두 증인 -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 신 19: 15 -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 요 8: 17 -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2) 굵은 베옷 -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 이것은 두 증인의 복장이다.
굵은 베옷은 욘 3: 5(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과 관련하여 볼 때 회개의 옷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회개를 상징한다. 옷을 찢는 행위는 회개할 때 마음을 찢는 것에 대한 예표이다.
예루살렘 성전에 가면 통곡의 벽이 있다. 거기를 보면 성전 터가 있는데 정말로 거대하다. 대부분 로마가 훼파해 버리고 겨우 한쪽 벽, 서쪽의 통곡의 벽만 남아 있다.
이것을 왜 남겨놓았을까?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이 이 성터를 봄으로써 로마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것을 남겨놓았다.
유대인들이 여기 와서 회개하는 곳이다. 예수님을 모르니까 그런 것이다.
그리스, 터키, 로마에 가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헬라가 지배했을 때 세계 곳곳에 신전들을 세워놓았다. 헬라의 제우스, 비너스, 바카스(술신)이나 황제 신전들을 세워놓았다.
로마가 기독교화 되니까 신전들이 전부 교회가 되었다. 그러나 오스만제국이 지배할 때 교회가 회교사원으로 바꾸어졌다. 예수가 사라져 버렸다.
한국 땅에 예수가 머문 것에 감사하시기 바란다. 예수 안에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고,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는 일곱 영의 역사, 즉 성령을 통한 회개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난다. 그러므로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회개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할렐루야!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가? 무시로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러므로 회개가 최고다.
우리는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 우리들도 자녀들이 잘못했을 때 '아빠! 제가 잘못했어요.'라고 용서를 빌면 그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다.
'오냐, 너 잘못했냐? 알았다. 너 한번 죽어봐라. 이렇게 말하는 부모는 절대 없다. 이처럼 하나님의 마음도 우리의 부모의 마음과 마찬가지다.
* 욜 1: 8. 13 – 8 너희는 처녀가 어렸을 때에 약혼한 남자로 말미암아 굵은 베로 동이고 애곡함 같이 할지어다. 13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제단에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 옷을 입고 밤이 새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다.
* 욘 3: 6-8 – 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7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3) 두 증인의 사역기간 -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1,260일을 예언하리라.'고 했는데, 마지막 대 환난이다.
마태복음 24장에도 환란 전반부가 '환난의 시작'이라고 언급되고 환란 후반부가 나온다.
그 다음 환란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말씀하셨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게 되면 환란의 시작이다. 그때는 완전히 적그리스도가 지배하는 시대다.
1,260일은 이 부분이다. 대게 좋은 것은 1,260일을 사용하고 나쁜 경우를 말할 때는 마흔두 달, 후 삼년 반을 말할 때는(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흔두 달이라고 한다.
계시록 11장 1절에서 지팡이 같은 갈대를 받고 제단과 성전을 척량할 때, 마당은 마흔두 달 동안 버려두어라.
그 말은 이 환난기 후반부에 짐승표가 나타나 통치하면 이때 '그냥 두어라.'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두 증인들은 환난기 전반부에 활동하고 순교한다. 그러면 1,260일 동안 두 증인들이 활동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잠잤던 교회들이 깨어나고 감추었던 복음들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때는 성도들이 양과 염소로 갈라지고 진리와 비진리로, 빛과 어두움이 전부 갈라지는데, 하나님의 두 증인들이 권세를 받아 진리의 횃불을 붙들고 1,260일 동안 외치는 것이다.
과거 역사를 보면 구약 교회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타락했다. 그런데 열 두 제자들이 나타나서 진리의 횃불, 복음의 횃불, 예수 그리스도 횃불을 들고 격렬하게 싸웠다.
바리새인들도 예수님과 그 사도들에 맞서 강렬하게 싸웠다.
마지막 때도 두 증인들이 1,260일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외친다. 두 증인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종말의 하나님의 종들을 상징한다.
이제 우리는 목자관을 분명히 가져야 한다. 올바른 목자관은 올바른 믿음을 준다. 우리는 목자를 영적으로 만나야 한다. 말씀과 예배로 만나야 한다.
* 계 7: 9-14 = 환난에서 나온 흰옷 입은 무리. -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 요 3: 3-5 –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 약 5: 17-18 –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4) 척량 받은 두 증인
① 하나님의 인 맞은 종 십사만 사천이다.
②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계 11: 4)
신의 역사를 받아(참 감람나무 예수의 진액을 받은 자(*) 마지막 때에 쓰일 완전한 종이다.
* 롬 11: 17 -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 슥 4: 11-14 – 11 내가 그에게 물어 이르되, 등잔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12 다시 그에게 물어 이르되, 금 기름을 흘리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니 13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는지라.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14 이르되, 이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니라. 하더라.
말세의 어두움이 조금도 없고 빛 가운데 행하는 신령한 교회다.
'굵은 베 옷'은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이 입던 옷으로 회개나 애곡을 나타낸다.
* 사 20: 2 -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니라.
* 슥 13: 4 - 그 날에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그 환상을 각기 부끄러워할 것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도 입지 아니할 것이며
이것은 두 증인의 사역이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믿도록 하여 더 이상 교만하지 아니하고 겸손히 그리스도를 주로 확신하도록 하는 것임을 시사한다. (Hughes, Beasley-Murray, Joh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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