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평화로운 농촌의 넓은 논과 그 속에 뒹구는 여인의 시체

[姜山]

4월에 정모가 열리지 않아 오랜만의 정모여서 모두들 반가웠고 그래서인지 영화도 더욱 재미있었다. 우리 모임도 서서히 한국영화 보기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것 같다. 작지만 그것이 우리 영화를 살리는 데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며 이제는 우리 영화도 제법 볼만하다고 모두가 인정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자 제법 괜찮은 한국 영화, <살인의 추억>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

사람들은 살아오면서 한번쯤은 어떤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때가 있을 것이다. 물론 주변에 있는 적대관계에 있는 사람이 그 대상이겠지. 만약 그런 충동을 느껴보지 못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그러나 자기가 대단히 싫은 사람이 있다고 충동대로 막 죽여 버릴 수 있을까? 물론 그러지 못한다. 사람들의 양심에는 도덕성이 있고 또 법이란게 있어서 그런 행위에 대하여 큰 제재를 받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은 일어난다. 대부분의 살인은 면식범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한다. 강력계 형사를 하시던 우리 형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살인사건에서 죽은 사람은 다 나름대로 죽을 이유가 있더라!" 즉 죽음을 당할 정도로 남한테 원한을 샀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종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불특정인을 노리는 살인, 살인 그 자체의 쾌감에 탐닉하는 살인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미친 놈 칼 든 것이라고, 사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살인을 하는 것이 가장 공포스럽다. 그래서 어떤 평론가들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공포영화로 <헨리, 연쇄살인범의 초상>을 선정하기도 한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표정 없이 막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그런 살인이 연이어 일어나면 우리는 그것을 연쇄살인이라고 부른다. 그 희생자는 대부분 여자, 아이, 매춘부, 할머니 등과 같은 약자들이다.

1986년부터 수년 동안 경기도 화성에서 무참히 강간, 살해당한 여인들의 시체가 연이어 발견된다.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난 지역에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고, 구 반장을 위시하여 토박이 형사 박두만(송강호)과 조용구, 그리고 서울 시경에서 온 서태윤(김상경)이 배치되고 육감으로 대표되는 박두만은 동네 건달들을 족치며 자백을 강요하고, 서태윤은 사건 서류를 꼼꼼히 검토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지만 스타일이 상반된 두 사람은 처음부터 갈등을 겪는다. 용의자가 여럿 나타나지만 수사진이 당황해할 정도로 범인은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살해 도구는 피해자가 입었던 브래지어나 팬티이다. 결국 겨우 알아낸 단서라고 하는 것이 비 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피해자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형사들이 벌인 함정수사에도 걸려들지 않고 또 다른 살인을 태연하게 벌이는 범인 앞에 형사들의 무능이 지적되고.......

봉준호가 만든 <살인의 추억>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스릴러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86년부터 수년간 경기도 화성에서 노파에서 여중생까지 10명의 여성이, 비가 오는 날 붉은 옷을 입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입에 재갈이 물린 채 피해자의 브래지어나 팬티 등의 옷이 살인 도구화되어 살해된 살인사건이다. 그 뒤 더 이상 살인사건은 발생하지 않고 아직까지도 미결상태인 살인사건이다. <살인의 추억>은 한국적 스릴러의 모델을 구축한 매우 뛰어난 품질의 영화이다. 영화는 음산한 공포감의 색채을 제시하는 데이비드 핀쳐의 <세븐>의 분위기를 풍기지만, 영화 내용의 구도는 노만 쥬이슨의 <밤의 열기 속으로>를 많이 닮아 있으며 한국적 형사 캐릭터를 나름대로 구축했다는 점에서 느와르풍을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영화 <밤의 열기 속으로>의 두 형사, 롯드 스타이거와 시드니 포이티어는 같은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도 둘 사이의 인종차별 의식으로 갈등하지만, <살인의 추억>은 두 형사, 송강호와 김상경의 사건을 처리하는 수사 방법의 차이, 박두만은 육감에 의존하고 서태윤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수사를 펼쳐나가면서 서로 갈등한다. 그러나 두 영화 다 살인사건을 수사해 나가면서 서서히 화해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살인사건을 다룬 대부분의 영화들은 범인이 희생자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허점을 노린 뒤 살인을 계획하며 대부분 사건의 해결을 향해 극적 구조가 전개되면서 동시에 살인자의 이상심리 이면에 숨겨진 어린시절의 학대나 근원적 공포를 드러낸다. 하지만 <살인의 추억>에는 이런 일반적 공식은 제시되지 않는다. 신예 봉준호는 영화를 전체적으로 tension과 relaxation의 화음을 절묘하게 배합하면서 장르의 공식 안에서 나름대로 비범한 작가주의적 재기를 자랑한다. 영화의 시작과 끝이 벼가 누렇게 익은 넓은 논을 배경으로 서로 매치시키며 교차편집과 클로즈업도 공포심을 상당한 수준으로 조장하며 시골 농촌 길과 산길, 비가 오는 농촌의 밤, 희생자를 추적하며 주시하는 범인의 시점샷의 디테일함의 연출실력은 뛰어나다. 영화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조연배우들인데 그들은 주로 살인 용의자들이다. 살해된 여성의 뒤를 쫒아 다니며 스토킹했던 바보(박노식)나, 독실한 기독교인이며 아내의 병구완을 지극 정성으로 하고 있지만 여자 속옷을 입고 있고, 살해된 장소에서 여자의 속옷을 펼쳐 놓고 자위를 하는 변태 조병순(류태호), 부드럽고 가는 손을 갖고 있는 공장기술자 박현규(박해일) 등의 유력한 용의자들이 그 빛나는 조연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용의자일 뿐 살인자라는 증거가 없다. 형사들이 용의자들을 차례로 연행해서 살인했다는 자백을 받기 위해 고문하고 심문하는 과정이 영화의 주요 줄거리이다. 이 영화는 80년대 식 비인간적인 수사방법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그 형사들에게서 인간적인 냄새를 맡는다.

<살인의 추억>은 제목이 주는 묘한 환기력으로 우리를 고민하게 한다. 범인은 나타나지 않고 찾을 수 없는 가운데, 연출자는 관객인 우리들을 범인의 입장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세 형사는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관객들을 유심히 살핀다. 그들이 정면을 쳐다보며 관객을 묘하게 쳐다보는 눈초리에서 그러함을 직감한다. 그러한 표현은 인간의 비이성적 행위인 살인의 무모함과 부당함을 고발하고 있다. 영화의 촬영과 조명의 뛰어난 앙상블로 이뤄진 실감나는 화면, 감정의 낭비나 사치를 찾아볼 수 없는 절제된 영상미, 신인답지 않게 tension과 relaxation의 교차를 뛰어나게 구사하고, 그리고 두 말할 것도 없는 연기자들의 탁월한 연기,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평론가들이 말하는 한국 스릴러 영화 최고의 완성작이 생산되었다.

뛰어난 주인공 외에 80년 후반 농촌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이 영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이면서도 영화가 한국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게 하는 것은 80년대라는 시대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농촌의 넓은 논과 그 가운데에서 뒹구는 여인의 시체, 연쇄살인을 얘기하면서도 범인이 누군지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알 수가 없고 또한 한가롭고 평화로운 농촌과 그 속에서 발견되는 시체의 서로 상반된 이미지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살인의 추억>은 잔인한 살인사건을 맡아서 특유의 감각과 실력으로 치밀하게 사건을 처리해 나가는 일반적인 형사 스토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해 나간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연쇄살인이라는 초유의 사건과 마주친 형사들은 그들이 그 사건을 감당하기에는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저 좌절할 뿐이다. 결국에는 그들 형사들은 모두 같은 모습으로 좌절과 절망 속에서 서로를 닮아간다.

영화에는 세 명의 유력한 용의자가 등장하지만 범인이라고 결정짓지 않는다. 그저 우리들은 심정적으로 그들이 범인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 중에서 박해일은 더욱 그렇다. 그의 묘한 표정은 그가 범인인지 아닌지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조연 중 그의 연기는 더욱 뛰어나다. 결국 정신없이 사건을 따라가다 결국은 범인을 놓치는 형사들은 허탈해 하고 우리들은 분노한다. 아니 분노라기보다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사건에 대한 미묘한 수수께끼를 가지면서 한편으로는 우려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숙제를 상기시키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주인공 송강호와 김상경은 영화의 중심에 서 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영화를 끌어나가는 영화의 주된 힘이다. 한편 이런 긴장의 연속에서 필요했던 이완은 유머러스한 분위기이다. 그것은 주로 송강호의 힘이다. 최선을 다하는 형사들의 모습, 그것은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하며 그들의 능력 바깥에 있었던 전대미문의 사건에 부딪쳐 처절하게 망가졌던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들은 우리 자신들의 무능력한 모습을 보면서 분노를 느낀다. 송강호와 김상경을 보노라면 버디무비의 형태를 느낀다.

봉준호는 <양들의 침묵>과 같은 지적 스럴러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살인의 추억>은 실제 그 자체만으로도 괴이하기도 하고 동시에 대단히 공포스러운 것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평범한 일상이 아닌, 끔찍한 현실의 아픈 기억을 똑바로 그리고 있다. 당시 경인일보 박 모 기자의 말을 참고로 적어본다. "범인은 너무나 차분하게 일을 진행했어. 그 어둠과 추위 속에서 말이야. 거기엔 어떤 격정도 없었어. 그는 강간을 하고 사람을 죽인 다음에도 그 시체를 유기하고 그것을 적당한 형태로 은폐해 놓는, 끝까지 냉정함을 잃지 않는 대단한 놈이야. 여자들이 어둠 속에서 그 싸늘함을 만나면 아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어버릴 거야. 오히려 알아서 옷을 벗겠지. 그게 그의 공포야."

[칼라]

대단하세요. 정말 잼있네요.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보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점들을 고려하고 생각해서 영화를 보겠습니다. 정말 잼있겠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