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선택받은 사람의 징표다.”
어느 날 아내가 요즘 베스트 셀러 <니체의 초월자>를 사 왔다. 책의 구성은 4장 77편의 단문이 실려 있다. 문체가 간결하며 쉽사리 다가오는 내용이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저자가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어 삶을 살아가는 데 지침이며 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정보화 시대에 데이터와 속도, 자본과 효율이 기준이 된 시대 속에서 방황하며 길을 잃기 쉽다. 이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지식이 아니라 자기만의 기준과 중심이다. 니체는 그 중심을 세우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니체 철학의 가장 큰 요구는 자기 삶의 정체성과 자기 주도성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누구의 눈치를 보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치를 세우고 자기 극복으로 나아가는 삶이 바로 초월자라고 했다.
그 중에서 한 단편의 문장을 필사해본다. “고통은 선택받은 사람의 징표다.”
누군가는 평생 큰 고통 없이 살아가고 누군가는 짧은 시간 안에 모든 무게가 한꺼번에 쏟아진다. 그 차이는 얼핏 보면 잔인하게 느낄 수 있지만, 삶은 결코 무작위로 고통을 나누지 않는다. 견딜 수 있는 사람을 먼저 알아본다. 고통은 인간을 구분하는 잣대다. 약자를 짓밟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누가 끝까지 자신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것이다. 쉽게 주저앉는 사람에게는 큰 시련이 가지 않는다. 삶은 그들이 무너질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짐은 감당할 수 있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고통이 없는 삶은 매끄럽지만 얕다. 거친 표면에서만 빛이 반사되듯 인간도 부딪히고 깎일 때 깊어진다. 쉽게 얻은 평온은 오래가지 않고 시련을 통과해 만들어지진 평온만이 진정한 가치를 가진다. 어떤 사람은 고통이 오래 오면 무너지고 어떤 사람은 고통 속에서 더 강한 초월자를 만들어 낸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은 재능도 환경도 아니다. 그저 고통을 바라보는 태도의 차이다. 고통을 벌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움츠러들지만, 그것을 성장의 거대한 신호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두렵지 않게 된다. 그 순간부터 더 이상 고통의 피해자가 아니라 삶이 선택한 고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삶은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무게만 준다. 그 무게가 너무 무겁다고 느껴질 때조차 내 안에서는 나도 모르게 숨어 있던 힘이 꿈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행복할 때는 누구나 다 비슷하다. 그러나 고통 앞에서는 본모습이 드러난다. 세상을 탓하는 사람, 자기 자신마저 속이는 사람, 조용히 견디는 사람,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고통은 인간의 깊이를 잴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러면 진짜 강한 것은 무엇인가. 진짜 강함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강한 시련이 찾아오면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진짜 강한 사람은 즉, 선택받고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초월자들은 다시 일어선다.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게 되는 것도 넘어지고 일어서는 과정에서만 가능하다. 나의 한계의 폭이 점점 넓어지는 순간 고통은 더 이상 적이 아니라 스승이 된다.
고통은 부정할 것이 아니다. 나에게만 유독 큰 시련이 찾아오는 것은 삶이 야속한 존재라서가 아니다. 너는 이 무게를 견딜 수 있겠는가? 삶이 나에게 묻는 것이다. 고통은 나의 편이다. 내 가능성의 증거다. 삶이 나를 시험한다는 건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견디는 일은 힘들지만, 그 힘 듦 속에서만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를 배운다. 고통은 징벌이 아니라 선택이고 삶이 나에게 건넨 하나의 기회다. 고통의 무게가 클수록 그 사람의 가능성도 크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