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강론>(2025. 3. 6. 목)(루카 9,22-25)
복음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22-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22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십자가는 의무와 멍에가 아니라, 은총이고 특권입니다.』
1)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은 ‘밀알 하나’를 심는 일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이 말씀에서 ‘많은 열매’는 ‘많은 사람의 구원’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당신을 하나의 씨로 심어서 ‘많은 사람의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은 일입니다. <‘모든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인 것은,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뒤를 따르면서 각자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은 ‘나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지만, 우리는 ‘내가’ 구원받으려고 십자가를 집니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십자가로 끝나지 않고 부활과 생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십자가는 신앙생활의 목적이 아니라, 과정일 뿐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과 생명에 참여하려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이, 곡식 단 들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시편 126,5-6).”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주님의 재림 때까지 참고 기다리십시오.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리는 농부를 보십시오. 그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맞아 곡식이 익을 때까지 참고 기다립니다. 여러분도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가지십시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야고 5,7-8).”
만일에 십자가만 바라보고 부활과 생명을 보지 않는다면, 그 신앙생활은 힘들기만 하고 아무 기쁨이 없는 생활이 될 것이고, 기쁨 없이 생활한다면 그것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노동을 하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의사가 병자를 살리기 위해서 수술을 권할 때, 병자 쪽에서 살고 싶으면 그 권고를 받아들여서 수술을 받을 것입니다. 또 의사가 어떤 약을 처방할 때, 병자는 살고 싶으면 그 약이 아무리 쓴 약이라도 먹을 것입니다. 십자가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수술과 약이 십자가라는 뜻이 아니라, 힘들어도 수술을 받아들이고 약을 먹는 일이 십자가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어쩔 수 없이 실천해야 하는 의무가 아니라 은총이고, 신앙인들을 부활과 생명으로 연결해 주는 특권과 같은 것입니다.
2)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1베드 1,6ㄴ-9).” 이 말은,
십자가로 생각되는 여러 가지 고난과 시련을 겪을 때, 그것을 참고 견뎌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말이기도 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십자가를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라는 말은, ‘힘들어 할 수밖에 없다.’로 생각할 수도 있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받아들여야 할 십자가는 누구에게나 괴롭고 힘든 일입니다.
그럼에게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여서 지고 가는 것은, ‘내 신앙’의 단련과 정화를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십자가를 통해서 ‘영혼의 구원’을 얻기 때문이고, ‘그날’이 되면 예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의 말씀에서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대해서만 집착하면서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는 관심 갖지 않는 사람”입니다. “목숨을 잃을 것이고”는, 그런 사람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 자신이 얻으려고 하지 않아서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현세적인 것들과 물질적인 것들을 모두 버리는 사람”입니다.
<‘잃는’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뜻으로는 ‘버리는’입니다.> “목숨을 구할 것이다.”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입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허무하게 사라질 이 세상 것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