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니콜슨 주연, 로만 폴란스키 연출의 할리우드 영화 '차이나타운'(1974)은 미국 국회도서관에 국가영화로 소장된 125편 가운데 하나이며, 시나리오는 교묘한 플롯, 멋진 대사, 시각적 상징, 참을 수 없는 욕망의 요소 등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에게 교과서로 여겨져 왔다.
각본가로 큰 족적을 남긴 '차이나타운'의 작가 로버트 타운이 8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고 AP 통신과 버라이어티 등 미국 매체들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대변인은 고인이 전날 로스앤젤레스(LA)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고인은 '차이나타운'으로 아카데미(오스카상) 각본상을 받았다. 또 비슷한 시기에 집필했고 니콜슨이 주연한 '마지막 지령'(1973)과 주연 배우 워런 비티와 함께 집필한 '샴푸'(1975)로 세 차례 연속 오스카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네 번째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로 지명된 것은 '그레이스토크(Greystoke): 타잔의 전설, 유인원의 제왕'(1984)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너무 자주 오스카상 후보로 오르내리는 것을 마뜩찮아 해 '그레이스토크'에는 PH 바작(Vazak)이란 가명을 사용했는데 그의 헝가리 목양견 이름이었다.
1997년에는 미국작가조합(WGA)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1960년대 TV 방송사에서 일하다 할리우드에 데뷔한 그는 범죄 영화 '보니와 클라이드'(1967), '대부'(1972) 등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일명 '극본 닥터'로 기존 시나리오에 첨삭 지도를 하는 역할이었으나 이름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다가 '차이나타운'으로 큰 명성을 얻었다.
이 작품은 필름 느와르의 고전인 오손 웰스의 '상하이에서 온 여인'의 마지막 배경을 인용했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주인공들이 결국 죽음을 맞이한 곳이 바로 차이나타운이었다. 마지막 크레인 쇼트는 웰스의 또 다른 필름 느와르 '악의 손길' 도입부 크레인 쇼트를 오마주한 것이었다.
타운은 이 영화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어 감독으로 데뷔해 '퍼스널 베스트'(1982)와 '불타는 태양'(Tequila Sunrise, 1988)을 직접 연출했다. '불타는 태양'은 멜 깁슨과 미셸 파이퍼가 호흡을 맞췄다. 두 작품 모두 흥행에 실패했고 평단에서도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그 뒤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 돈 심슨과 제리 브룩하이머 사단에 합류해 '폭풍의 질주'(Days of Thunder, 1990) 등 상업영화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이 영화에서 인연을 맺은 배우 톰 크루즈와 손잡고 '야망의 함정'(The Firm, 1993) 각본을 집필했고, 세계적인 흥행작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1편과 2편의 각본을 썼다.
젊은 시절 참치잡이 배에서 일하기도 했던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각본 집필을 낚시에 비유하며 "'젠장, 오늘은 (물고기가) 한 마리도 안 무네'라는 생각이 들어 순전히 (잡힐 것이라는) 믿음만으로 버티는 경우가 때때로 있었다"고 말했다.
타운은 영화가 끝날 때 올라가는 크레딧에 이름이 올라가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대부' 때도 그랬다. 작가 겸 감독이었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이 작품으로 1973년 오스카 각색상을 수상하면서 알 파치노와 말론 브란도가 정원에서 대화를 나누는 결정적이며 "아주 아름다운" 장면을 "그것은 타운의 장면"이라고 말하며 감사를 표했다.
타운은 또 생전에 '차이나타운'을 연출한 폴란스키 감독과 집필과 제작 과정 내내 격렬하게 논쟁을 벌인 사실을 인정했다. "우리는 매일 모든 것을 놓고 싸웠다."
그는 두 차례 결혼했다. '퍼스널 베스트'를 연출하며 패트리스 도넬리, 마리엘 헤밍웨이와 염문을 뿌렸다고 일간 뉴욕 타임스가 보도한 일이 있다. 하지만 첫 결혼 상대는 여배우 줄리 페인이었다. 두 번째 아내로 맞아들인 루이사와 사이에 두 딸 키아라와 캐서린을 유족으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