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날의 일기(방송국 출연)
2021년 해가 바뀐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다.
며칠 겨울답지 않은 푸근한 날씨였는데, 오늘은 눈이 내리는 중에 강풍이 불어 종일 사나운 날씨였다. 며칠간 또 강추위가 계속된다는 일기예보다.
보름 전쯤인가 여의도 사는 지인에게 어떤 요청이 왔다.
평화방송에 출연하여 노래 한 곡을 불러보라는 얘기였다.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며칠이 지나 방송국과 지인이 연달이 전화로 부탁하는 전화가 이어져 결국 출연하기로 했다.
여의도 지인과 방송국 PD는 서로 잘 아는 사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 생긴 프로그램인 ‘청춘 어게인’라는 프로에 나를 초청한 것이다. 이번 설 특집으로 시니어들의 장기자랑의 테마로 진행된다고 들었다. 설 특집이어서 내가 부를 곡목을 생각하다가 코로나로 인해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우리 가곡 ‘고향의 노래’를 부르기로 하고 방송국 직원에게 그렇게 내 생각을 전했다.
다음 날 여의도 지인에게 또 전화가 왔다. 이왕이면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다. PD의 생각을 전한다는 말과 함께.... 처음엔 장르에 관계없이 선곡해도 상관없다고 하더니 생각이 바뀌었나 생각했다. 3 ~ 5분 소요되는 노래면 좋겠다고 한다.
내가 부를 수 있는 아리아 중에서 5분 정도라면 두 곡이 떠올랐다. 도니제티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남몰래 흐르는 눈물’Una frutiva lagrima)과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 1막에서 미미를 향해 로돌포가 부르는 아리아 ‘그대의 찬 손’(Che gelida manina)이다. 두 곡 모두 5분 가까이 소요되는 곡이다.
생각하다가 후자로 결정해서 그렇게 전했다. 남몰래 흐르는 눈물보다는 난이도가 훨씬 높은 곡이지만 청춘 어게인 프로에 걸 맞는 곡이라 생각했다.
오래 전부터 꼭 불러보고 싶은 곡이었고 2018년 연말 콘서트를 비롯해 몇 차례 발표 경험이 있어 특별히 렛슨이 필요하지 않아 택한 곡이다. 테너라면 누구나 꼭 불러보고 싶은 곡이고, 이 노래를 부르려고 하면 HC까지 소리를 내기 위해서 상당한 연습이 필요한 곡이다. 아름답고 극적이고,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아리아다. 반주자는 내가 동반한다고 전했고 바로 전날 렛슨을 받고 출연하게 되었다.
집사람 주은에게 출연하게 된 동기를 설명했고 쾌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힘이 되었다. 바로 D day! 1월 28일 10시에 집을 나섰다. 5호선 전철이 하남풍산 역까지 연장 운행할 때부터 내 걸음으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나는 거의 걸어서 전철을 이용하고 있다. 운동하는 시간을 따로 내지 않고 전철역까지 오가면서 그날의 운동을 대신해 왔다. 오늘도 걸어가기로 하고 집을 나선지 5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눈보라가 치며 사나운 날씨에 위축이 되었다. 걸음을 되돌려 버스를 이용할까 생각하다가 그냥 걸어서 전철역으로 가기로 했다. 강한 바람과 함께 내리는 눈보라는 스산한 그 자체였고 마음은 위축되었다.
2호선 을지로 3가역에서 하차하여 반주자와 만나 방송국에 1층에 있는 나주 곰탕집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고기의 양도 질도 좋았고 깍두기와 김치도 맛있었다.
5층으로 올라가 담당자와 만났고 같이 출연할 분들과 앉아 반장을 정하고 급훈도 정했다. 급훈은 ‘빛은 어둠을 이긴다.’로 정해 코로나로 인해 힘든 과정을 필히 이겨내라는 뜻을 담았다. 나는 출연자 중 청일점이었다. 여자 네 분, 그리고 나. 또 한분의 남자 출연자가 있었는데 갑자기 몸이 나빠져 출연하지 못했다고 한다. 반장은 여자 분이 네 명이니 여자 중에서 뽑으면 되겠다고 내 의견을 제시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한참을 기다리니 메이컵의 순서가 왔다. 옆 방에 있는 메이컵 실로 가서 근사하게? 얼굴을 만들었다.
모두 메이컵을 마치고 1층에 있는 녹화실로 내려갔다.
녹화 스튜디오는 그리 넓지는 않았고 촬영기계들과 전선, 책걸상과 기타 많은 물건들이 복잡하게 진열 되어 있고 방송국 직원들이 열심히 그리고 바삐 움직이며 다니는 것을 보며 내 마음은 산란하기까지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상황도 적응하게 되었다. 창- 하모니카 연주 - 성악 - 한국무용 - 퓰륫 순서로 리허설이 진행되었고 나는 세 번 째로 리허설을 할 수 있었다. 발성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르는 노래는 힘들었다. 드디어 녹화 타임이 왔다. 이정민 아나운서가 진행하였고 장르마다 출연진과 인터뷰도 했다. 발표를 하기 전, 자기소개와 출연동기 등을 말하고 자신의 장기를 발표하는 형식이다.
나도 내 소개와 ‘그대의 찬 손’이 어떤 노래인지를 간단히 설명하고 반주에 맞추어 모든 힘을 다해 끝까지 잘?? 불렀지만 그래도 한편 허전한 느낌은 감출 수가 없었다. ‘삶은 결함 있는 자아와 끊임없이 싸우는 과정’이라는 말로 스스로 위안을 해보았다.
1시부터 6시 가까이 녹화를 위해 동분서주 하는 직원들에 비해 출연자들은 편한 상태에서 지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어 서로 인사를 나누며 헤어지는 시간, 많은 스탭들이 나에게 주는 찬사를 들으며 반주자와 함께 큰길로 나와 닭갈비로 저녁을 먹으며 오늘의 일을 정리했다. 일기는 아침과 마찬가지로 사나웠지만 다행이 눈이 쌓이지 않아 미끄럽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4가에서 5호선으로 환승하여 집에 도착하니 8시 30분이었다.
컨디션이 또 다운된 주은을 보니 오늘 방송국에서 일어난 일들을 설명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하지만 오늘은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특별한 경험을 한 날이다. 한 순간을 위해 많은 시간 몰입한다는 것은 어제의 나보다 조금은 더 괜찮은 나를 재탄생시키는 것 같아 스스로 만족하게 되는 오늘이다.
2021. 1. 19. 아침에....
첫댓글 2월 12일 설날 아침 7시부터 방송된다고 한다.
과연 내 모습과 노래는 어떻게 나올지? 많이 궁금하다.
2월 12일은 마침 주은과 내가 결혼한 결혼 기념이이다.
이런 묘한 일치도 있을까....
상연형; 오랫만에 인터넷 해보네 그간 휴대폰만 사용하다가 노트북이 있어서 당신 연주 내용보냐 대단하네그려 다시한번 축하하고 우리 친구의 건강함과 내공에 탄복했네 누구던지 즐거움을 공유하게 봉사 하시게나 고맙소이다 신축년 설명절 복 많이 받으시고 내외간에 행복과 건강을 기원 합니다 화 이 팅 문종이가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