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일기
“평소 생활할 때는 가뭄의 심각성을 잘 모릅니다. 오히려 비 오는 날은 습하고 번거로워서 더 불편하게 여기지요. 하지만 이대로 가뭄이 지속된다면 생활용수까지 제한될 수 있습니다. 농가에서는 이미 가뭄 피해를 겪고 있지요. 기상청의 현황 데이터에 따르면 전국 대부분 지역이 가뭄상태…” 우리 집에 들어오는 일간지 종편 채널기상 게스트가 쓴 지난 주말 ‘날씨 레터’ 중 일부이다.
나는 퇴근 후 저녁 시간 텔레비전을 시청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른 아침 자고 나면 그날의 날씨가 궁금하다. 새벽녘 인터넷 검색이나 종이신문으로 그날의 날씨를 살핀다. 그러다 출근시간대 공중파 뉴스 시간 일기예보 꼭지는 눈여겨 살핀다. 매일 아침 같은 얼굴의 여성 기상 게스트가 의상을 달리해 그날 날씨를 전한다. 어떤 날은 야외 현장으로 나가 날씨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오늘 아침 기상 게스트가 전한 날씨 소식 포인트는 자외선이 강하다는 것과 고온 현상이 지속된다는 것이었다. 기상 게스트는 아침마다 가뭄 소식을 전하기가 지쳤는지 그 예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전국적으로 가뭄이 혹심한데도 당분간 비가 온다는 소식은 없었다. 예년 같으면 이맘때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안 일대 장마전선이 형성되어 비가 오락가락했는데 올해는 그 소식도 없다.
매일 개미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이다. 아직 아침 최저기온이 20도를 넘지 않아 활동하기엔 아주 쾌적한 편이었다. 얼마 전까지 긴팔 겉옷을 입어야 했으나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된다. 반팔 셔츠만 입고 마직으로 된 중절모를 쓰고 현관을 나선다. 내가 겨울철에 모직 헌팅캡을 쓰고 다님은 이마가 시려와서고 여름철에 모자를 쓰지 않으면 햇볕에 노출되는 이마가 따가워서다.
아파트 뜰에선 나이가 지긋한 경비원이 주차 차량 주변에서 쓰레기를 쓸었다. 최근 우리 아파트단지 경비원들이 동을 바꾸어 순환 배치되어 얼굴이 낯선 분이었다. 인사를 건넸더니 반갑게 받아주면서 내 차림을 보곤 학교에 나가시느냐고 물어왔다. 그러자 자기 형님도 시내 어느 학교 교장으로 퇴직한 분이라 했다. 그분 성함을 일러주는데 나는 초등에 계신 분은 잘 모른다고 했다.
창원스포츠파크를 거쳐 폴리텍 대학 구내를 지났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은 가을날 같았다. 음력으로 오월 스무날을 지난 하현은 낮달이 되어 하늘에 걸려 있었다. 어제 아침에 들려오던 뻐꾸기소리가 멀리서 또 들려왔다. 잿빛 콘크리트 건물과 검은 아스팔트로 포장도로인 도심에서 아침마다 뻐꾸기소리를 들을 수 있음이 신기했다. 자연의 음향은 기계음이 비길 수 없으리라.
나는 여느 아침과 마찬가지로 교육단지를 관통하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공단으로 출근하는 회사원이나 자녀들을 등교시켜 주는 학부모들 차량들이 지나쳤다. 나처럼 걸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학교 교문이 가까워지자 충혼탑 방향에서 버스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가왔다. 보도에는 먼지가 일지 않은 편이었다. 눈에 띄지 않았지만 대기에 떠도는 먼지는 많을 테다.
교문을 들어서면서 지킴이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지킴이 선생님은 아침마다 학생들의 안전한 등교를 돕느라 수고했다. 오늘은 어느 학원에서 광고 판촉물을 나누어주려고 학생들의 통학로를 가로막아 비켜주십사고 안내를 하고 있었다. 교문에는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이 간간이 보였다. 우리 학교의 자랑거리인 잔디운동장은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셨다. 싱그러움이 한결 더했다.
어제 오후였다. 뙤약볕에 밀짚모자를 쓴 행정실 직원이 소화전 호스로 운동장잔디에 물을 쏘아댔다. 그간 가느다란 호스로 수돗물을 받아 잔디에 물을 주어왔는데 가뭄이 심해 양이 차지 않은 듯했다. 그렇게 소화전 물세례를 받은 잔디여서인지 밤새 생기를 되찾아 있었다. 어제 하교 때 인성부장은 교내 방송을 내보냈다. 잔디가 가뭄으로 시들었으니 운동장 출입을 삼가라 했다. 17.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