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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용수시설 “기업도 물 절감·재이용에 적극 투자해야”
“Reuse Water First, New Dams Last”신규 수원보다 물 재이용이 먼저
하수 재이용·누수 저감·농업용수 현대화
발전용댐·해수담수화 결합한 ‘국가 워터믹스’ 필요
반도체 산업의 초대형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산업용수 확보가 국가 물관리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막대한 물을 신규 댐 건설이나 기존 농업·발전용수의 전환만으로 확보하려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Reuse Water First, New Dams Last(물은 재이용 먼저, 신규 댐은 나중에)”라는 원칙을 반도체 용수 정책의 새로운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회물포럼이 8월 31일 개최한 ‘3대 메가프로젝트 반도체 산업용수 공급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는 수자원과 상하수도, 농업용수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이 참석해 반도체 용수 확보방안을 놓고 현장 중심의 토론을 벌였다는 점에서 주목됐다.
이번 토론의 핵심은 단순했다.
“댐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반도체 용수는 새로운 물을 무조건 만들어내는 방식에서 벗어나 기존 물의 손실을 줄이고, 하수처리수·농업용수·발전용수·해수,지하수 등 다양한 수원을 연결하는 ‘워터믹스(Water Mix)’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버리는 물부터 다시 써라”…하수처리수 재이용 확산
대한상하수도학회 김두일 회장은 신규 수원 개발에 앞서 “버리는 물부터 다시 써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하수처리수 재이용과 상하수도 및 농업용수의 누수 저감을 통해 기존 물자원의 효율을 극대화하고, 이를 위한 시설관리의 스마트 현대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수처리수는 강수량에 직접적으로 의존하는 신규 수원과 달리 일정한 발생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후위기 시대의 안정적인 대체수자원으로 평가된다.
도시에서 발생한 하수를 고도처리해 반도체 산업용수로 공급하고, 반도체 공장 내부에서도 공정수를 회수해 다시 사용하는 순환형 물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반도체 산업의 용수정책도 ‘취수→사용→방류’의 선형구조에서 ‘취수→사용→회수→고도처리→재이용’의 순환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누수된 물도 새로운 수원”하루 30만톤 확보 가능
상수도 누수 저감 역시 새로운 용수원 개발 못지않은 대안으로 제시됐다.
광주와 전남·전북 지역의 낮은 유수율을 개선할 경우 상당한 양의 물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역별 유수율을 일정 수준까지 높이면 하루 최대 약 30만톤 규모의 물을 확보할 가능성도 제시됐다.
핵심은 단순히 노후관을 교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블록시스템 구축과 유량·수압 계측, 첨단 누수탐지, 실시간 모니터링, AI 기반 관망관리 등을 결합해 물이 어디에서 공급되고, 어디에서 소비되고, 어디에서 사라지는지를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토론에서는 이를 함축적으로 표현해 “누수된 물도 새로운 수원으로 봐야 한다”는 물관리 패러다임 전환이 강조됐다.
신규 댐이나 대규모 취수시설을 건설하기 전에 이미 확보된 물이 새어나가는 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의미다.(지자체별 누수율 현황은 서울 2.2%에 비해 광주는 6.8%, 전남은 22.4%로 매우 취약하다./2024년)
용인 150만톤·호남권 65만톤…물 어디서 확보
토론의 최대 쟁점은 역시 공급 규모였다.(사진 좌로부터 기후부 김호은정책관, 농축산부 정혜련 정책관)
김호은 기후에너지환경부 물이용정책관은 정책발표를 통해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의 하루 용수 수요를 약 150만톤, 호남권 반도체 산단은 약 65만톤 규모로 제시하면서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다층적 물공급망 구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다목적댐과 지역댐 등 기존 수자원을 활용하는 동시에 하수재이용수와 발전용댐, 농업용댐 등 대체수자원을 연계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용인에는 화성·오산·수원 지역 하수처리장 재이용을 통해 하루 23만톤을 확보하고, 호남권은 광주하수처리장을 역삼투 방식으로 처리해 하루 30만톤을 확보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또 발전용댐과 농업용댐을 활용해 부족한 용수를 보완한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방식을 종합하면 용인은 하루 150만톤, 호남권은 하루 106만톤 규모의 다층적 수원 확보체계를 구축한다는 청사진이다.
문제는 ‘계산상 확보 가능한 물’과 ‘극한가뭄에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물’이 같지 않다는 점이다.
농업용수, 반도체가 일방적으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
농업용수 전환 문제는 토론회에서 가장 민감한 쟁점으로 부상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정혜련 식량정책관은 국가 수자원 이용량 가운데 농업용수가 차지하는 비중과 농업용 저수지의 노후화, 가뭄에 따른 저수율 저하, 영농기 물 수요 집중 등을 설명하며 농업용수 공급체계의 효율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농업용 저수지의 상당수가 노후화됐고, 개수로 중심의 공급체계에서는 물 손실과 말단부 용수 부족이 발생하는 만큼 스마트 관수로화와 정확한 계측을 통한 물 손실 저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반도체 산업과 농업을 대립시키기보다 농업용수 인프라 현대화를 통해 새로운 물을 만들어내자는 접근이다.
농업용수를 반도체 산업용수로 전환하기에 앞서 농업용수 공급 안정성, 대체수원, 농업인 보상, 시설 현대화 비용 등을 패키지로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특히 농업용수는 단순한 산업용 자원이 아니라 식량안보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일방적인 전환은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농업용수 현대화가 반도체 용수를 만든다”
이번 토론에서 주목할 만한 대안은 농업용수 현대화 자체를 반도체 용수 확보정책과 연계하자는 것이다.
개수로나 흙수로 중심의 농업용수 공급망을 관수로화하고 ICT 계측시설과 원격관리시스템을 도입하면 공급과정에서 발생하는 누수와 무효방류 등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절감된 물을 농업에 우선 사용하면서 잉여수량을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즉,“반도체가 농업용수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반도체 투자가 농업용수 인프라를 현대화하고 물 절감량을 다시 국가 물자원으로 전환한다”는 새로운 상생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만 TSMC 사례 “반도체 우선 공급에는 사회적 합의 필요”
대만의 TSMC 사례도 비교 대상으로 제시됐다.
대만은 극심한 가뭄 당시 반도체 산업의 생산 차질을 막기 위해 산업용수 공급을 우선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농업 부문에는 대규모 휴경 보상 등을 실시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한국이 대만과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우리나라 역시 극한가뭄이 발생할 경우 하천유지용수·농업용수·생활용수·공업용수 사이에서 어떤 순서로 감축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특히 반도체가 국가 핵심산업이라고 해서 공업용수를 무조건 최우선으로 보호할 경우 농업과 지역사회에서 강력한 반발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산업용수 공급을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업 스스로 물 사용량을 줄이고 재이용률을 높이는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반도체 기업, “정부에 물 달라고만 하지 말고 직접 투자해야”
이번 토론에서 보다 강하게 제기돼야 할 부분은 반도체 기업의 책임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댐과 관로, 하수재이용시설 등 대규모 인프라를 구축해 반도체 산업에 물을 공급하는 동안 정작 물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업이 물 절감과 재이용 시설에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준 건국대 교수는 국제적인 물관리 흐름인 ‘재이용 우선, 신규 수원 확보 후순위’를 강조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공정수 재이용 확대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도 생산시설 내 물 재이용률을 더욱 높이고, 하수재이용·공정수 회수·고도처리시설 등 관련 인프라에 직접 투자하는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기업에 단순히 ‘물을 아껴 쓰라’고 요구하는 차원이 아니다.
반도체 기업이 필요한 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기업 스스로 물순환 인프라를 구축하고 투자해야 한다는 ‘워터 오너십(Water Ownership)’의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발전용댐도 활용, 그러나 법적·지역적 기반 필요
발전용댐을 산업용수 공급에 활용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한국수력원자력 소승영 수력운영실장은 화천댐을 활용한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용수 공급 사례를 설명하며 기존 발전 운영방식을 조정해 산업용수 공급에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호남권에서도 발전용댐을 기존 수자원과 연계해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발전용댐의 다목적 활용 역시 일회적인 협조가 아니라 장기적인 제도화가 필요하다.
발전용댐의 용수 공급 근거를 명확히 하고, 수원지 주변 지역과 주민들이 정당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줄 수 있는 물과 보장할 수 있는 물은 다르다”
유철상 한국수자원학회장은 댐의 현재 저수량이나 이론적인 공급 가능량만을 기준으로 반도체 용수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농업용댐의 경우 산업용수와 농업용수의 공급 안정성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저수용량만 보고 산업용수 공급 가능량을 산정해서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극한가뭄에서는 현재의 물 공급량보다 ‘몇 년간 가뭄이 지속돼도 공급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결국 이번 토론에서 나온 중요한 문제의식은 다음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줄 수 있는 물과 가뭄에도 보장할 수 있는 물은 다르다.”
지하수,해수담수화·해양심층수까지…결국 ‘워터믹스’
대체수원으로 지하수, 해수담수화와 해양심층수 활용 가능성도 제시됐다.
특히 호남권은 해안과 가까운 지역이 많아 극한가뭄에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해수자원을 산업용수 공급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해수담수화는 에너지와 비용이라는 과제가 있지만, 반도체 산업의 특성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단순히 물 생산단가만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물 공급 안정성이라는 국가안보적 가치까지 포함해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해수, 하수, 지하수, 빗물, 댐, 하천, 농업용수, 발전용수,지하수 그리고 빗물 등 모든 수원을 상황에 따라 조합하는 ‘워터믹스’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극한가뭄, “무엇부터 줄일 것인가” 사회적 합의 필요
앞으로 반드시 공론화해야 할 문제로 극한가뭄이 닥쳤을 때 하천유지용수·농업용수·공업용수·생활용수 가운데 무엇부터 얼마나 줄일 것인가.
이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선택의 문제다.
생활용수는 국민의 생존과 직결되므로 최후까지 보호해야 하고, 하천유지용수 역시 생태계 보전을 위한 최소한의 유량은 유지해야 한다.
농업용수는 식량안보와 농가 생존에 직결되며, 공업용수 역시 반도체·전력 등 국가 핵심산업의 생산과 수출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앞으로는 단순한 ‘용도별 우선순위’만으로 물을 배분할 것이 아니라 가뭄 단계, 국민 생존, 식량안보, 생태환경, 국가 핵심산업, 기업의 물 절감·재이용 수준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새로운 물 배분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
대만의 사례를 그대로 답습할 수도 없다.
한국 국민이 극한가뭄 상황에서 반도체 산업을 위해 농업용수나 생활용수의 일부 제한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결국 정부의 사전 준비와 기업의 책임, 농민에 대한 보상, 국민적 신뢰에 달려 있다.
“Reuse Water First, New Dams Last”
반도체 용수 확보정책의 출발점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
정부가 먼저 댐을 짓고 기업에 물을 공급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첫째, 기업이 물 사용량을 줄이고,
둘째, 기업이 공정수를 최대한 회수·재이용하고,
셋째, 도시 하수를 고도처리해 산업용수로 재이용하고,
넷째, 상수도와 농업용수의 누수를 줄이고,
다섯째, 발전용댐과 농업용댐의 다목적 활용을 제도화하고,
여섯째, 해수담수화.지하수 등 대체수원을 확보한 뒤,
마지막 수단으로 신규 댐을 검토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이번 토론회가 던진 새로운 물관리 패러다임이다.
“Reuse Water First, New Dams Last.”
-물은 재이용 먼저, 신규 댐은 나중에.-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위해 안정적인 용수 공급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책임을 국가와 지역사회에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
반도체 기업 역시 물을 사용하는 주체에서 물순환 인프라에 투자하는 주체로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정부는 기업에 물을 공급하는 데 그치지 말고 기업의 물 절감·재이용 투자에 대한 의무와 인센티브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결국 반도체 용수 확보는 ‘물을 어디에서 가져올 것인가’가 아니라 ‘산업이 사용한 물을 얼마나 다시 물로 만들어낼 것인가’의 문제다.
신규 댐 중심의 공급 확대만으로는 기후위기 시대의 물안보를 지킬 수 없다.
반도체 용수 확보를 계기로 국가 물관리의 선형구조를 순환구조로 바꾸는 것, 그것이 진정한 물산업 혁신이며 국가 물안보 전략이다.
(환경경영신문 https://ionestop.kr// 이현동 전문기자, 상하수도기술사, 공학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