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린고비의 유래
어느 날은 동네 사람이 어쩌나 보려고
생선 한 마리를 조륵의 집 마당으로 던졌는데,
이것을 발견한 조륵이 “밥도둑놈이 들어왔다!”
하고 법석을 떨면서 냉큼 집어 문밖으로 내던졌다.
조륵은 일 년에 딱 한 번 고기 한 마리를 사는데,
다름 아닌 제사상에 놓을 굴비였다.
그리하여 제사를 지내고는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밥 한 숟가락 뜨고 굴비 한 번 보고,
또 밥 한 숟가락 뜨고 굴비를 보았다.
식구들이 어쩌다 두 번 이상 보면, “얘,
너무 짜다. 물 먹어라.” 하고 소리쳤다.
어느 날은 장모가 놀러왔다가
인절미 조금 남은 것을 싸갔는데,
나중에 알고는 기어코 쫓아가 다시 빼앗아 왔다.
이렇게 일전 한 푼도 남에게 주거나 빌려주는 일이 없고,
인정도 사정도 눈물도 없이 모으고 또 모으다 보니
근동에서는 둘도 없는 큰 부자가 되었다.
그렇게 자린고비로 방방곡곡 소문이 날 대로 난
어느 날, 전라도에서 유명한 자린고비가 찾아와서
“조선생, 나도 전라도에서는 소문난 구두쇠인데,
어느 정도 구두쇠여야 큰 부자가 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조륵은 전라도 구두쇠가 묻는 말에
쓰다 달다는 말도 없이 한참을 있다가,
“그러면 나와 같이 나갑시다.”
하고는 전라도 구두쇠를 데리고 충주 탄금대까지 갔다.
가는 길에 전라도 구두쇠는 신발을 아낀다고 교대로
한짝은 신고 한짝은 들고 가는데, 조륵은 아예 신발
두 짝을 모두 들고 갔다.
그것만 봐도 조륵이 한 등급 높은 자린고비가 분명했다.
조륵은 탄금대에 오르자 전라도 구두쇠한테,
시퍼런 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강물 쪽으로 뻗은
소나무가지에 매달리라고 하였다.
전라도 구두쇠는 영문을 몰랐지만,
큰 부자가 되고 싶은 일념에 소나무가지에 매달렸다.
그러자 조륵이, “이제 한쪽 팔을 놓으시오.” 하였다.
그대로 따라했더니 한참 후에, “됐소. 이젠 한쪽 팔도 놓으시오.”
한다. 전라도 구두쇠는 시퍼렇게 질려서, “아니, 그러면
저 강물에 빠져죽지 않습니까?” 하고 소리쳤다.
아니나 다를까, 몇십 길 되는 낭떨어지 밑에는
시퍼런 강물이 굽이치며 혀를 낼름거리고 있었다.
전라도 구두쇠는 얼른 두 손으로 나뭇가지를 붙들더니
죽을 상이 되어 벌벌 떨었다. 그제야 조륵은,
“그러면 이제 올라오시오.” 하고는, 전라도 구두쇠가
땀을 뻘뻘 흘리며 나뭇가지에서 벗어나자,
“큰 부자가 되려면 예사로운 구두쇠 정도로는 안 됩니다.
방금 전 나뭇가지에 매달려 죽게 되었을 때의
순간을 잊지 마시오. 만사를 죽기를 각오하고
실행한다면 목적한 일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오.”
하고 말했다. 전라도 구두쇠는 조륵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전라도 구두쇠는 조륵의 사랑방에서 자게 되었는데,
몇 년을 내버려두었는지 창구멍이 뚫어져서 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전라도 구두쇠는 주머니에 들어 있던 창호지 조각을 꺼내어
저녁밥을 먹을 때 남긴 밥풀 몇 알을 붙여서 대강 창구멍을 가리고 잤다.
그러고는 아침에 조륵의 집을 나서면서,
“조공! 문에 발랐던 종이는 내 것이니 뜯어 가렵니다.”
하였다. 조륵은 눈빛 하나 변하지 않으면서,
“암요, 떼어 가시오.” 하였다.
그리하여 전라도 구두쇠가 많은 것을 배웠다는
기쁨에 활개를 치며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와 무슨 일인가 하고 돌아보니
조륵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전라도 구두쇠 앞으로 온 조륵은 턱에 받친 목소리로,
“그 창호지는 손님 것이니 가져가도 좋지만,
종이에 묻은 밥풀은 우리집 것이니 떼어놓고 가야 마땅하지 않소.”
한다. 전라도 구두쇠가 할 수 없이 창호지를 내어주자,
조륵은 준비해 온 목침 위에다 종이를 펼쳐 놓더니,
칼로 밥풀자리를 박박 긁어내어
주머니에 담아 가지고 갔다.
전라도 구두쇠는 “과연! 과연!”
하고 탄복하며 고향집으로 갔다.
이렇듯 지독한 자린고비 행색이 마침내 조정에까지 알려졌는데,
조정에서는 조륵의 이러한 행위가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판단하고는,
정확한 사실 여부를 알기 위해 암행어사를 파견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씨 성을 가진 암행어사가 과객 차림을 하고
조륵의 집에 가서 며칠 묵으며 사정을 알아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암행어사가 며칠 묵는 동안 보아하니,
조륵은 한양에서 소문으로 듣던 그 자린고비
조륵이 아니었다. 암행어사라고 눈치챈 것 같지는 않은데
식사때마다 진수성찬에 술까지 대접하고,
그야말로 칙사대접이 따로 없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서 수소문해 보니,
조륵이 환갑이 되는 해부터 누구에게나 후하게 대하고,
어려운 이웃을 보면 불러다가 돈도 주고 쌀도 주는 등
아주 딴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암행어사가 사정을 알고 그만 떠나려고 인사를 하자
조륵은, “아니, 이삼 일만 더 있으면 내 환갑이니,
기왕이면 좀더 쉬다가 잔치나 보고 가시오.” 하였다.
그리하여 못 이기는 체하며 잔칫날까지 묵게 되었는데,
그날 조륵은 잔치에 모인 사람들에게, “여러분,
그 동안 나는 나 혼자 잘 살려고 구두쇠 노릇을 한 게 아니오.
오늘 찾아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평생을 근검절약하며 재산을 모았소.
환갑날인 오늘부로 내 일은 모두 끝났소.”
하면서 전재산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암행어사는 임금께 조륵의 이러한 선행을
자세하게 고하였고, 임금도 기특하게 생각하게 친히
가자를 내리고 칭찬하였다.
그 후 조륵에게 도움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조륵을 ‘자린고비’가 아닌 ‘자인고비’라고 부르며 칭찬하였는데,
여기에서 ‘고’자는 “나를 낳아준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