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최우성 기자]
한국의 보물섬인 제주에는 본토와 다른 이국적인 풍광과 기후로
많은 육지인들이 언제나 찾고 싶은 낙원 같은 곳 보물섬이다.
하지만 예전에 제주는 말을 키우고 살기는 적당하지만
사람은 살기 어려운 곳이라는 생각이 컸고, 실제로 삶이 그러했다.
그런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사람들은 살아왔고,
그 사람들이 가꾼 문화는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가 되어서
이제는 서구문명에 지배당한 육지에서는
다 사라진 수많은 전설들을 간직하고 있어
한국의 신화와 전설의 보고가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제주에 살던 사람들은 강인한 여인들의 이야기가 많이 전한다.
한라산의 산신은 설문대할망이고,
그 할머니가 낳은 자식들이 제주를 지배하였다는 이야기에서부터...
그런 전설을 간직한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특히 여인들의 강인한 삶이 제주를 지탱해온 원동력이었다.
지금도 세계에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해녀라는 직업이 있는 곳이 제주만의 특징이니...
그런 전통을 이어받아 지금도 나이 많으신 할머니가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인 섭지코지의 한 모퉁이에
직접 집농장에서 재배한 제주감귤을
머리에 이고와서 파는 장면을 만나게 되었다.
허름한 헛간 같은 비닐을 치고
제주의 거센 바닷바람을 막고서 집에서 가지고 온
감귤들을 내놓고 한봉지 2,000원씩 팔고 있었고,
노구임에도 직접 바다에서 따왔다는 파래말을 말려서 팔고 있었다.
할머니는 연세가 85세라고 하셨고, 집에는 할아버지가 계신다고 했다.
할머니는 일찍이 결혼하여 슬하에는 잘 키운 아들 딸이 5남매가 있고,
할아버지와도 큰 탈없이 60년이 넘는 세월을 잘 지내고 있지만,
할머니는 그냥 집에서 빈둥거리기가 싫어서
매일 같이 이곳 섭지코지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이곳은 찻길에서 한참을 걸어와야 하는 곳이라,
무거운 감귤박스를 짊어지고 오는 것이 힘들지만,
그래도 와서 사람구경도 하고,
얼마 안되지만 소일거리로 용돈도 벌 수 있으니,
힘이 있는 동안에는 이곳에 꼭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머리에 이고 오는 무거운 밀감박스를
누군가 거들어주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아무도 거들어주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해로하는 할아버지는 집이나 노인정에서 시간을 보낼 망정,
힘들게 머리에 이고 가는 감귤박스는 도와주질 않는다고 한다.
기자는 그런 할머니가 몹시나 안스럽게 보였다.
85세가 되었으면 집에서 집안 일만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구태여 먼 이곳까지 나와서 뭔가 살림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며,
그도 모자라 물때가 맞으면
1주일에 한 두번은 얕은 바다속으로 물질까지 한다고 하니...
기자는 오늘 그 강인한 제주여인의 표상을 보는 것 같았다.
다만 아쉬움이란,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할머니를
집안에 계시는 할아버지가 내몰라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이고,
더구나, 집안에서도 모든 일은 자기가 다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자는 궁금하여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몇가지 더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16세에 결혼하여 바닷속에 들어가
해녀생활로 벌어서 자신보다 더 어린 할아버지를 가르쳤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육지로 나가서 고등교육을 받으시고 사회생활도 하였으며,
이제는 퇴직하여 제주에 산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누구나 영원한 것은 아닌데,
잠시 함께 살다가, 언젠가 떠나야 할 이곳에 살면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끼리는 서로를 도와주고 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비록 할머니가 내놓고 파는 감귤들은
크기가 작은 편이고 상품가치는 크지 않았지만,
그 감귤들은 할머니의 손길이 닿아서 자란 귀한 감귤들이었다.
기자는 할머니의 정성으로 자라난 감귤 한소쿠리로 점심을 대신하여 먹으며,
할머니와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는 오늘 오후에는
물때가 맞아서 물질을 하러 가야한다면 바삐 짐을 정리했다.
돌맹이가 많아 척박하여 농사짓기 어렵고 바람많고
여자가 많다는 제주도를 사람사는 아름다운 곳으로 일군 것은
내가 오늘 만난 이 할머니 같으신 분들의 공로가 아닌가 싶다.
아름다운 해변 섭지코지의 자연을 감상하며
오늘 만난 할머니의 만수무강을 기원해 보았다.
아름다운 자연속에 허름한 비닐 움집이
자연경관을 해치게 만드는 것 같은 할머니의 모습이었지만
할머니와 대화를 하고나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포인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