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가 서거정에게 물었다.
“임금이 부처에게 절을 해도 되는가?”
서거정은 이렇게 답했다.
“옛날에 송나라 태조가 상국사란 곳에 행차했을 때 ‘과인이 부처에게 절을 해야 하는가?’ 하고 묻자, 찬녕이란 승려가 말하기를 ‘현재의 부처는 과거의 부처에게 절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태조는 웃으며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임금이 부처에게 절하지 않는 것이 바른길이고, 절하는 것은 임기응변입니다.”
<임하필기>에 실려 있는 일화다.
부처를 믿지 않으면 절하지 말라고 하면 될 것을, 군주를 ‘현재의 부처’라고 치켜세운 건 권력에 대한 극심한 아부다.
서거정이 뛰어난 문인이라지만 이런 아부의 오점은 역사에 길이 남는다.
아부와 용비어천가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조선시대 한 권세가가 선비들을 불러 주연을 베풀고 시를 지으며 놀았다.
그가 자작시를 읽으면 도열한 선비들이 앞을 다투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했다.
그가 또 다른 자작시를 낭송하려 할 때, 가장 말석에 앉은 선비가 목을 쭉 빼고 상석의 권세가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천하의 절창이십니다!”
시를 읽기도 전에 이런 고함이 나오자 권세가는 언짢아서 호통을 쳤다.
“네 이놈, 내가 아직 시를 읽지도 않았는데, 이 무슨 망발이냐!”
말석의 선비는 지지 않고 외쳤다.
“쇤네가 죽을 죄를 졌습니다! 하지만 낭송 전이 아니면 쇤네 같은 말석이 어찌 대감님의 걸작을 찬양할 기회라도 있겠습니까!”
이 ‘쇤네’는 아부가 극성 창궐하면 어떻게 모독으로 변하는지 보여주었다.
경북 구미에 5m짜리 박정희 동상을 세운 남유진 구미시장이 박정희를 반인반신(半人半神)이라 부른 건 대단한 ‘혜안’이다.
죽은 이를 신으로 숭배하는 건 한국엔 없는 일본풍이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친일 행적을 고려해 동상 앞에 반일반한(半日半韓)의 신사를 세우면 ‘혜안의 완성’이란 소리를 들을 것이다.
조갑제씨는 ‘김일성 배지’를 흉내 내어 ‘박정희 배지’를 달자고 한다.
김일성 개인숭배 방식을 따라 박정희 개인숭배를 만들어내자는 발상은 문자 그대로 ‘종북’이다.
아부가 극에 이르면 모독으로 변하지만, 아부꾼들은 그게 모독인 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