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랑 항일민족시인'의 삼남 김현철 기자가 미국서 보내온 김삼화 취재기 비화 | |||||||||
| |||||||||
한국에 계시는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미국에 살고 있는 김현철 기자가, 다시 인사드립니다.
제가 서울 MBC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미국 내 우리말 일간지 주재기자로 이민한 게, 만 38세였던 1974년 봄이었습니다. 그러고서 벌써 42년이 흘렀군요.
그 후, 미국 내 우리 말 신문인 한국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겨레신문 등 주재기자와, 미국 내 동포 신문들의 지사장 등으로 일하다가, 마이애미에서 전 플로리다 거주 동포들을 위한 신문인, ‘우리소식‘과 ’한겨레저널‘ 등 주간지를 창간해서,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근무하던 중, 만 65세 때 은퇴했습니다. 은퇴 후에도, 칼럼니스트로 계속 국내와 미국 내 동포신문에 투고해왔습니다.
서울에서 한겨레가 창간될 당시, 한겨레 초대 발행인 겸 편집인었던 송건호 선배 앞으로, 미화 1만 달러를 보내 창간 주주가 되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건강했던 몸에 성인병들이 생겨 고생을 해왔으나, 최근에는 많이 건강이 호전하고 있습니다만, 술을 한모금도 마시지 말 것, 스트레쓰를 피하기 위해 비판성 글을 쓰지 말 것, 장거리 운전을 피할 것, 과격한 운동을 하지 말 것 등, 모든 스트레쓰를 유도하는 일은 적극 피해야 한다는, 전문의의 권고로, 이제는 늙은이답게 조심스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선친인 김영랑시인은, 6.25 전쟁의 서울 탈환 시가전에서, 만 47세라는 젊은 나이로 포탄 파편에 희생당하셨습니다.
그 분은 일반인들에게, ‘모란이 피기까지는’,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 ‘ 등, 주옥같은 시로 인해, 순수서정시인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평소 그 분의 머릿속에는, 항일과 조국의 독립이 항상 자리하셨기에, 일제 강점기 때 신사참배, 창씨개명, 삭발령 등을 끝내 거부한 탓으로, 일본 정보담당 형사로부터 끝없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또, 대표적 항일 시 ‘독을 차고’를 비롯해서, ‘춘향’ ‘거문고’ 등을 쓰시는 등 항일 의지를 계속 표출하셔, 지금도 대표적 항일시로 국문학도들에게 많이 읽히고 있습니다.
한국육필문학 보존회장이신 이양우 시인이 사재를 털어, 그 분의 고향인 충남 보령 산꼭대기에, 대리석으로 세운, 김영랑,심연수,오일도,윤동주,이육사,이상화,한용운 등, 일곱분의 명단이 새겨진, ‘항일민족시인 추모분향단’을 세웠는데, 이걸 보더라도, 당시 항일 시인의 수가 열손가락 을 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집안에서는, 자식들에게 너무도 엄격한 아버지셨기에, 인자한 아버지라기보다는, 호랑이 같이 무서운 아버지였다는 게 저의 추억입니다.
어려서부터 많은 형제 중, 저는 가장 반항적이었던 이유로, 억울하게 매를 맞게 되는 경우, 다른 형제들은 빨리 잘 못했다며 비는데, 저는 단 한번도,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잘못에 빌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보다 호된, 아버지의 매를 맞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덕분에, 엄격한 부모의 자식들은, 자라서 못된 짓은 못하는 반면, 모든 어른들 앞에서는, 자신의 의사를 꿋꿋하게 밝히지 못하고, 꿀먹은 벙어리처럼 머뭇거리는, 똘똘치 못한 자식들이 되더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터득하면서, 저는, 아이들 교육을 엄격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는데, 다행히 자식들은 한 놈도 부모를 실망시키는 처신을 한 적이 없었으니,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꼭 엄격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체득한 셈입니다.
그럼, 저의 인터뷰의 주인공인 김삼화씨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당대의 유명한 우리 전통무용가요, 영화 양산도,대심청전,논개 등 16편의 영화 주연배우였던 김삼화씨는, 신혼 가정인 상태였음에도, 박정희의 성폭력과 그에따른 강제이혼, 35년 연상의 말이 안 통하는 유대계 미국인 노인에게, 강제 결혼 후 미국 마이애미로 추방당하는 등, 악당박정희 때문에, 통한을 안고 일생을 보낸 비운의 주인공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서울의소리 출판사에서 내 놓은, ‘시대의 어둠을 밝힌다’는 책에, 제가 자세히 밝혔습니다만, 못 보신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신의 과거가 창피했던 탓으로, 김삼화씨는 동포사회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마이애미에서, 미국 지방정부 주최로 처음 열리는 ‘한국의 날’ 국제행사에 출연해 달라는, 정부 공관의 간곡한 요청을 끝내 거부했습니다.
그러다가, 당시 제가 발행하던 신문 애독자였던 김삼화씨는, 공관의 협조 요청을 받은 저의 집요한 설득 끝에, 결국 출연을 승낙했고, 그 행사를 대성공으로 이끈 것을 계기로, 그 분은 가정을 가진 저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45세 때의 일입니다.
평소 저는, 김삼화씨가 당시, 잘 나가던 국내의 영화 배우 생활과, 김삼화전통무용학원의 운영을, 하루 아침에 접고 갑자기, 말이 전혀 안 통하는 35년 연상의 미국 노인과 결혼해, 마이애미에 와서 숨어 산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터라, 그 분의 과거를, 언젠가는 밝혀내야겠다는 기자의 욕망이 항상 잠재해 있었습니다.
이미 신랑은 몇해 전 노환으로 세상을 떠, 독신 생활 중이던 그 분은, 한국의날 행사 전 후, 저를 자꾸 집으로 초청했고, 감성적으로 제게 너무 기울어 버린 그 분을, 활용해서 그 분의 과거를 취재히게 되었습니다. 당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쓰라린 과거를 고백하던, 김삼화씨의 쓰라린 과거를 들으며, 저 역시 같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밝힌 영상 조회수가, 최근 4백만건을 기록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습니다. 더구나 이대로 가면 1년 후면 5백만 건을 넘어 간다니, 이는 전 국민의 10%에 달하는 수라 어안이 벙벙해 집니다.
당시, 취재 결과는 깜짝 놀랄만한 특종 기삿감이었지만, “자기 죽기 전에 보도되면 박정희 잔당에게 자신이 죽게 되니, 자기 죽기 전에는 절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그 분의 간곡한 요청을 저버릴 수 없었기에, 결국 그 분이 세상을 뜬 직후에 기사가 공개되느라 33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의 이러한 행각을 알고, 다시는 이런 수 많은 피해자가, 악한 독재자로 인해 양산되는 나라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깨우침이, 각자 국민들 가슴 속에 각인되길 바랄 뿐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좀더 현명했다면, 이 글을 퍼간 분들을 기소해서 재판에 붙여, 1심에서 3심까지의 예고 기사 및 재판 결과를, 여러차례 보도해 국민의 관심을 자꾸 자극할 게 아니라, 그냥 모르는 척 내버려 두었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조회수가 이토록 올랐겠습니까? 결과적으로, 현 정부는 혹 떼려다 혹 하나를 더 붙이고 만, 우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또 하나는, 수많은 여성들이, 박정희의 안가라는 궁정동으로 끌려갔다는 사실은 세상에 많이 알려졌는데도, 그 여성들이 어떻게 당했다는 사실은, 단 한번도 알려진 적이 없던 터에, 김삼화씨의 눈물 속 고백은, 많은 국민들에게 너무 큰 충격을 주었고, 따라서 너도 나도 지식층 분들이, 그 영상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생각입니다.
미국 동남부 맨 남쪽에 있는, 마이애미의 집을 떠나, 서울의 집에 가려면, 모두 24시간이나 걸립니다. 건강도 그렇고, 국내 정치도 독재정치가 자행되는 마당에, 지금 귀국한다는 게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거짓 없는 사실을 쓴 기사를 퍼 옮겼다는 이유만으로, 대한민국 대법원은, 퍼 옮긴 정의파 인사들에게 5백만원이라는 벌금형을 때린 나라라면, 미국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언론, 표현의 자유를 짓밟는 후진국이라며, 웃습니다. 더구나, 원글을 쓴 저는 기소도 못하면서, 퍼간 사람들을 그렇게 괴롭히는 나라라니, 아직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까 하는 생각에 우울해 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친일인명사전’이 발간 되듯, ‘반민주인명사전’의 발간은, 민주사회 건설을 위해 절대로 필요한 요건이라 믿습니다.
꼿꼿하게 독립해야 할 사법부도, 입법부도, 이제 국민의 의식수준이 옛과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지난 4.13 선거 결과를 봐서라도, 독재 정부 수장의 눈치를 볼 게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3권 분립의 원칙을 지키며, 제 길을 꿋꿋하게 가야 할 것입니다.
저는 만 80이 되던 작년 9월에, 100여명의 친지들을 모시고, 이곳에서 “80회 생일 축하 겸 미리하는 장례식”파티를 열었습니다. 앞으로 몇 해를 버틸지 모르지만, 그 날까지는, 내 조국의 민주화를 위한 모든 행동을, 힘닿는 데까지 실천하려고 합니다. 그게, 이번 생애 마지막에 제가 해야 할 일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외국에 살고 있는 정의로운 동포들과 함께, 건전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굳건히 세워나가는 데, 함께 힘을 모읍시다.
현재 막말과 교활한 언어로 국민을 기만해서 민주주의 발전을 해치고 있는 TV조선 타도를 위해 어려운 여건에서도 ‘서울의소리’가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미력하나마 저는 ‘시대의 어둠을 밝힌다’에서 나오는 인세의 전액을 이 사업에 보태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이 사업이 끝내 성공할 수있도록 적극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안녕히들 계십시오. | |||||||||
|
첫댓글 정인숙 뿐이아니고 ? 김삼화 꺼정 ? 차지철 이자식 부관참시 해야 허것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