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강론
송영진 모세 신부 ・ 23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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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강론>(2025. 3. 8. 토)(루카 5,27ㄴ-32)
<“너는 건강하냐?” 라고 주님께서 물으십니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밖에 나가셨다가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다.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루카 5,27-32)”
1) ‘레위’는 ‘마태오 사도’입니다.
“나를 따라라.”는 “나의 제자가 되어라.”입니다.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라는 말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제자가 되었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말로 해석됩니다.
이 말을, 글자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부르심이 있었고,
부르심을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곧바로 모든 것을 버려둔 채
따라나섰다는 것을 나타낸 말로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그랬다면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지는 못했을 텐데,
아마도 마태오 사도는 그 전부터 예수님을 믿고 있었을
것이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고,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부르심을 받았을 때
곧바로 응답했고, 응답한 뒤에 잔치를 베풀었을 것입니다.
2) 여기서 ‘큰 잔치’는 동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서,
또 자기를 제자로 불러 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리기 위해서
베푼 잔치로 생각됩니다.
그 잔치에 동료 세리들이 참석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마태오 사도의 가족들, 친구들, 친지들도 참석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한 잔치이기도 했으니까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참석한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라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말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을 보니 당신들도 죄인들이다.” 라고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하는 말입니다.
당시에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면 부정하게 되고, 같은 죄인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전염병자와 접촉하면 전염병에 걸린다는 생각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이방인들이나
세리들과 전혀 접촉을 하지 않았을까?
만일에 실제로 그랬다면, 사회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
되는데, 사실 실제 상황에서는, 친구로 사귀거나 어울리지는
않았더라도, 그들도 이방인들이나 세리들과 접촉했습니다.
3)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라는 예수님 말씀은, 병자를 고쳐
주려면 그 병자와 접촉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죄인을 회개시켜서 구원하려면 죄인과 만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전염병 환자라도, 그 환자를 치료하려면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는, “그렇게 비난하고 있는 너희는
건강하냐? 너희도 ‘병자들’이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라는
말씀에(루카 6,41.42ㄴ) 연결됩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자신은 의인이라고 자처하는 것은
교만죄를 짓는 일이고, 다른 사람들을 자기 마음대로
죄인 취급하고,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비난하는 것은,
심판관이신 하느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신성 모독죄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 라는 말과 “너는 죄인이다.” 라는
말은, 둘 다 죄를 짓는 말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기준으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세리들보다 더 큰 죄인들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세리들은 자기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의인이라고 자처하는
위선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4)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라는 말씀은, 당신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오신
메시아라는 것을 암시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는 “나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왔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만난다.”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또 이 말씀에는 “의인이라고 자처하면서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위선자들은 구원받지 못한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 회개하는 사람만이 구원받는다.”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자기들도 죄인이라는 것을,
또는 병들었음을 부정하는 죄인들(병자들)이었고,
자기들이 위선자라는 것을 부정하는 위선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꾸짖으셨습니다(마태 21,31-32).
먼저 회개하는 사람이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회개를 끝까지 거부하면 그 나라에 못 들어갑니다.
병자라는 것을 부정하고, 치료받기를 거부하는 병자는,
아무리 뛰어난 명의라도 고치지 못하는 것처럼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위선자들은 예수님도 어떻게 하실 수가 없습니다.
<사순 시기는 자기 안에 숨어 있는 위선들을 찾아내고,
반성하고,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시기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