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듯 차거운 바람이 이마를 스치는 쾌적함을 느끼면서 버스에서 내린 나는
넓은 아스팔트 길을 지나 정말 가난한 도량, 무심사(無心寺)로 향해 올라 가고 있었다.
깊고 아름다운 푸른 산속에 있는 이 절은 어쩌면 우리들의 "상상속에 있는절(?)"일지도 모른다.
암자(菴子)라고 하기엔 크고 절이라고 말하기에는 사격(寺格)이 미치지 못함이기 때문이다.
종무소에 가서 그곳에 "근무하는 여인"에게 보시금을 지불하고 조그만 방을 배정 받았다.
그 '여인'은 어쩌면 그리도 불친절한지 마치 저자거리의 장사치를 연상하게하는 언행을 하였지만
일편으로는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겠지."하고 치부해 버리니 마음은 편했다.
꼭 3년전에 20일 가량 머물렀던 도량이라 낮설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변한것이 눈에 많이 띄었다.
대웅전 앞쪽의 요사채 옆으로 방을 한칸 붙인게 눈에 들어 왔고 경내 곳곳의 짜투리땅에 남김없이
배추와 무우를 심었으며 밤나무엔 밤이, 감나무에는 감이, 은행나무엔 은행이 풍성히 열려 있다.
그래 맞아! 그렇겠지.
밤나무에 밤이 열리고 감나무엔 감이 열리지 밤나무에 감이 열리고 감나무에 밤이 열릴리야 없겠지.
부처님이 우리들에게 말씀하신게 "자작자수(自作自受)"란 것이었겠지 뭐 다른 특별한 것이 있겠나,,,!
절집의 대중들은 대략 30여명 정도 되는데 수행은 두분야로 10명정도는 참선팀, 다른 10여명은
기도팀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리고는 행자두분 공양간 보살 부목, 부전스님 종무소직원등이다.
이 절의 가장 큰 특징은 <무문관(無門關)>이 있다는 것이다.
스님들이 1년이고 2년이고 4~5년동안 토굴에서 나오지 않고 오직 공부만 하는 것이다.
문이 잠겨있다는 사실 때문에 (밖에서 문을 잠그고 공양때 공양물만 배식구로 넣어주며 그안에
화장실등이 갖춰져 있음) 정신적 압박감으로 오래 있지 못하는 경우도 가끔은 볼수 있다고 한다.
그 스님들의 용기와 신심, 그리고 도(道)를 향하는 치열한 정진력이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나는 불교를 공부하고 도(道)를 이룰려면 그 정도의 용맹심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생(生)에서 이루지 못하면 어느생에서 성불(成佛)하겠는가 하는 처절한 구도심(求道心) !
그 분들의 목숨을 건, 이생(生)에서 사생결단하겠다는 의지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질 뿐이었다.
<나는 이 글을 법우님들이 읽으시고 수행(修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시라는 뜻으로
앞으로 7~8회에 걸쳐 이 공간에 게재할 예정인바 우리 법우님들의 많은 지도 편달을 바란다.>
첫댓글 _()()()_
_()()()_
진공님께서는 불교공부나 수행면에서 훨씬 앞서가고 계신다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좋은 글을 올려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_()()()_
_()()()_
감사합니다 _()()()_
_()()()_
늘 좋은 글, 많은 도움 되고 있습니다.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