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601) - 호주 오픈 4강으로 감동과 환희를 안겨 준 정현 선수
오늘 아참은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 영하 10도 이하의 매서운 한기가 전국을 강타하고 호남 서해안에는 눈발이 흩날린다. 이렇게 추운 날, 종가 댁 형수의 장례식에 참석 차 고향마을을 찾았다. 동네는 새하얀 눈밭, 눈길 걸어 조심스레 문상을 마치고 서둘러 집에 돌아와 TV를 켰다. 내용인즉 대한민국의 떠오르는 테니스 스타 정현(22세)이 새해 첫 메이저 대회인 호주 오픈에서 세간의 예상을 깨고 기라성 같은 강호들을 제치며 남자 8강에 올라 오전 11시부터 준결승 진출을 다투는 빅 이벤트를 보기 위함이다.
집에 오기 전 스마트폰을 살핀 결과 1세트를 6;4로 잡은데 이어 2세트도 7;6으로 이겨 한결 가벼운 마음, TV를 켜니 3세트를 2:1로 앞선 상황에서 네 번째 게임의 브레이크 상황(상대방의 서비스 게임에서 한 포인트 따면 승리하는 경우)이다. 손쉽게 네 번째 게임을 따낸 정현이 두 게임씩 주고받은 후 5:3에서 승리 확률이 높은 서비스게임이다. 기대 한대로 손쉽게 세 포인트를 앞선 매치포인트여서 쉽게 끝나는 가 했더니 연속 세 포인트를 잃어 듀스를 허용하고 브레이크를 맞는 등 접전을 벌이다가 여섯 번 째 매치포인트에서 대망의 승리를 확정지었다. 이로써 이전에 한국인 누구도 밟지 못한 메이저대회 남자 8강 진출에 이어 준결승의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것, 2002 한일 월드컵 4강 진출에 버금가는 쾌거가 불안한 국내외정세와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시름에 잠겨 있는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과 용기를 안겨준다.
한국 선수로는 사상 첫 호주오픈 4강에 오른 정현은 26일 생애 처음으로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와 맞붙는다.
이에 앞서 16강에서 맞붙은 선수는 전 세계 1인자로 호주 오픈에서 6회나 왕좌에 오른 조코비치, 명성과 관록에서 한참 뒤지는 정현 선수의 선전을 기대하였지만 일반적인 예상은 조코비치의 우세였다. 그러나 정현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매 세트 접전을 벌이면서도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3;0의 완승을 이끌어 내 일거에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조코비치는 위대한 선수, 그는 정현의 승리를 높이 평가하며 자신을 압도한 상대방을 극찬하는 성숙한 매너를 선보여 박수를 받았고 정현은 1만 5천여 관중 앞에서 유창한 영어로 위트가 섞인 감동적인 메시지를 선사하여 진한 감동과 환호를 이끌어냈다.
3년 전 광주에서 대학생들의 스포츠축제인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렸다. 그 대회의 테니스경기장이 내가 사는 아파트 가까운 곳에 있어서 경기장을 여러 차례 찾았다. 그때 정현 선수가 출전한 시합을 지켜보며 승리의 순간을 함께 한 적이 있다. 정현 선수는 U 대회에서 남자 개인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 후 그가 국제대회에서 여러 차례 좋은 성적을 거두는 소식을 접하며 대견하게 여겼는데 이처럼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을 목도하며 한결 뿌듯한 마음이다.
1998년 IMF 위기로 온 국민이 실의에 빠졌을 때 박세리 선수가 US 오픈 여자 골프대회에서 맨발의 투혼을 발휘하며 우승의 영예를 안아 온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는 온 국민의 힘으로 IMF를 가장 성공적으로 이겨내고 경제적으로 재기하였다.
2002 월드컵 때 우리는 열광하였다. 16강에 오르기만 하여도 대성공이라 여겼는데 유럽의 강호 폴란드와 포르투갈을 꺽고 16강에 조 1위로 올라 한 수 위의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차례로 꺾고 4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나는 그때 동료교수부부들과 유럽여행을 갈 계획이었는데 8강에 오른 후 여행을 취소하고 감동의 순간을 끝까지 지켜보기로 하였다. 그때 경기를 지켜보면서 기록한 글을 책자로 엮어 펴낸 것이 ‘아들아, 대한의 골키퍼가 되라’였다. 월드컵이 끝난 후 떠난 유럽여행에서는 4강에 오른 한국축구 덕분에 코리아의 위상이 크게 향상된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1988년 하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대한민국은 6.25 전쟁의 상흔과 극심한 경제 후진국의 이미지를 털어내고 지구촌의 총아로 떠올랐다. 88 서울올림픽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LA 올림픽이 동서 양 진영이 갈라선 절름발이 참가였는데 서울올림픽을 통하여 양 진영이 대거 참여하는 성공적인 무대이기도 하였다.
보름 후에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에 우여곡절 끝에 북한이 참가하기로 하여 남북긴장완화와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큰 이벤트로 도약하기를 바란다. 정현 선수의 호주 오픈 쾌거가 마중물이 되어서 스포츠를 통한 국격 향상과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밑거름이 되면 좋으리라. 남은 경기에서 그의 분발과 도약을 온 국민과 더불어 성원한다.
* 2018 AFC 중국 U-23 챔피언십에서 베트남을 결승에 진출시킨 박항서 U-23 축구 감독의 지도력이 베트남에서 크게 부각되고 있어 반갑다. 월드컵 4강을 이끈 히딩크 감독 밑에서 코치를 맡은 박항서 감독이 뒤늦게 진가를 인정받는 셈, 정훈 선수가 조코비치 선수를 꺾은 후 그를 지도했던 코치에게 카메라 렌즈를 통하여 ‘캡틴, 보고 있나?’라며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각계에서 스승보다 빼어난 제자들의 성취가 이어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