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장에서 잘나가던 아모레퍼시픽은 올들어 매장 90여 개를 줄인다. 지난해 이미 40여 개 점포를 정리한 그룹 산하 브랜드인 이니스프리에 이은 대규모 점포정리다.
글로벌 유명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화장품 브랜드인 레블론도 중국 시장에서 파산한다.
레블론의 경우 2013년에도 매출 부진으로 중국 사업을 철수한 경험도 있다. 거대한 소비시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3년 만에 권토중래했지만 코로나 19라는 파도에 넘어진 셈이다.
프랑스 로레알 그룹도 산하 클라리소닉(Clarisonic)브랜드와 로저앤갈레(Roger&Gallet)를 철수하며 몸집을 줄이는 중이다. 알리바바 그룹 내 티몰 사이트에 있던 클라리소닉 플래그십 점포 문을 닫는 한편 아마존 울트라뷰티 코스트코사이트에서 50%를 할인 행사를 펼쳐 재고정리를 마친 상태다.
로저앤갈레도 비슷한 처지다. 프랑스 지주회사인 임팔라(Impala)측에 매각할 예정이라고 지난 2월 밝힌 바 있지만 이후 진행 상황에 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영국 여성 화장품 브랜드인 스페이스 NK도 지난 5월 말 중국서 철수한다. 지난해 매출은 1억900만파운드로 전년 대비 6% 늘었지만 순익이 300만 파운드로 5% 줄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유명 패션의류 업체인 ETAM은 ‘광쿤제’ 전날인 11월10일 상하이 법원으로부터 중국법인 파산 선고를 받고 재고 정리에 들어간다. 1994년 중국 시장에 진출해 2014년 6월 점포를 3083개로 늘리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할 정도다.
ETAM의 글로벌 점포 4246개 가운데 70%를 중국에 냈다는 이야기다. 2013년 이후 중국 온라인 시장이 커지고 ZARA GAP H&M 등 경쟁 브랜드의 진출을 억제하려고 점포확장에 속도를 올린 결과다.
ETAM은 내의 사업을 시작한 2015년에는 중국시장서 740만 유로의 적자를 기록한다. 이듬해 적자는 940만 유로로 늘어난다. 점포 641개를 정리하고도 실적이 호전되지 않자 2018년 5월 중국 시장 철수를 결정하고 이번에 모든 점포를 정리하기에 이른다.
1993년 중국 시장에 진출한 진웨스트도 지난 1월 파산을 선언한 후 청산 절차를 진행 중이다. 2013년 전성기에는 중국 전역에 2500여 개에 이르는 판매점을 구축하고 50억 홍콩달러 매출을 자랑하던 평상복 업체다. 이후 매출이 매년 급감하자 결국 인력을 정리한 데 이어 폐업을 결정한 것이다.
진웨스트와 동시에 중국에 진출한 에스프리도 지난 5월 말 중국 시장 철수를 결정한다. 이미 2월부터 인터넷을 통한 재고 정리를 시작했고 4월에는 티몰서 마지막 할인 행사를 벌인다.
에스프리 모회사인 에스프리 아레나는 중국 무상그룹에 사업권을 넘기기로 지난해 말 합의했으나 지난 7월 결국 없던 일이 된다. 그만큼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는 반증이다.
GAP그룹 산하 올드내이비도 중국에 진출한 지 6년 만인 지난 3월 중국 시장 철수를 결정한다. 이미 북미지역 350개 점포의 문을 닫고 직원 8만 명에 대해 무급 휴가를 보낸 GAP그룹의 중국 자회사 정리는 놀랄 일도 아니다.
이밖에 파산한 패션 브랜드는 라사펠을 비롯해 H&M 일본의 여성 브랜드인 어스뮤직&에콜로지 등 다양하다. 수퍼드라이도 지난 7월부터 직영점과 브랜드 플래그십을 정리한다.
지난 8월에는 유럽 브랜드인 C&A도 중국 업무를 베이징(北京) 사모펀드인 중커퉁융(中科通融)에 넘긴다. 유명 신발 브랜드인 다푸네도 중국에서 철수하기로 한다.
패션과 화장품 부진으로 인해 글로벌 유통 업계도 혹독한 코로나 19 시련기를 보내고 있다.내로라하는 글로벌 유통업체가 철수하고 현재 중국에 남은 외자 유통업체는 월마트와 미니스탑 정도다.
테스코는 지난 2월 중국 화룬(华润)에 완전히 넘어간다. 화룬그룹과 2014년 합자회사 게인랜드(Gain Land)를 설립하고 보유했던 지분 20%를 모두 팔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옥션그룹도 지난 10월 말 옥션과 다룬파를 알리바바에 30억 유로에 매각하고 중국사업을 정리한다. 독일 매트로도 중국 경영권을 우메이(物美)에 넘겼고 까르푸는 수닝(苏宁)이 인수한 상태다.
수퍼에 이어 백화점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라이브커머스가 급부상하고 있는 데다 하이난 면세점 등 중국 소비시장 상황이 바뀐 결과다.
하얼빈에서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치우린(秋林)백화점그룹은 지난 3월 18일 상장 폐지되는 수모를 당한다. 연속 2년 순 자산이 마이너스를 기록하자 상하이 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우루무치왕푸징(乌鲁木齐王府井)백화점을 비롯해 푸저우왕푸징(福州王府井)백화점에 이어 4월 말에는 상하이파리춘텐(上海巴黎春天)백화점 훙커우(虹口)점이 폐점을 결정한다. 6월 신스지(新世纪)백화점의 난핑(南坪)상가 점이 문을 닫더니 7월 말에는 루이어우(芮欧)백화점 그리고 8월 말에는 청두메이메이리성(成都美美力诚)백화점도 차례로 파산한다.
마이칼백화점 칭다오(青岛) 서해안 점도 12월 16일 폐점한다. 이 백화점에 입점한 업체는 현재 점포를 정리하고 있다.
중국 백화점 업계는 그렇지 않아도 인건비와 임대료 상승에다 온라인 업계의 공격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어오던 터다. 올 상반기에만 52개 대형 백화점 가운데 매출 순익 다 증가한 곳은 3개에 불과할 정도다. 매출과 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하락한 곳이 41곳이다.
요즘 중국서 잘나가는 신선식품도 코로나 19 사정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오프라인으로 구매하는 업체인 다이루어보(呆萝卜)는 지난 3월 11일 허페이(合肥)중급법원에서 파산 선고를 받는다.
생선을 당일 주문하면 익일 배송을 받으며 인기를 끌던 업체다. 2016년 허페이에 진입한 이후 안후이성은 물론 장수(江苏) 허난(河南) 후베이(湖北) 지역 19개 도시에 1000개의 점포를 개설할 정도로 급성장 한다.
1만여 개 마을에서 월 1000만 건을 주문받는 실적으로 바탕으로 2019년 7월에는 증시에서 수억 위안의 자금도 조달한다. 당시 전국 50개 도시에 만여 개의 점포를 내겠다는 계획도 발표한다. 그러나 2019년 11월 22일 이 업체는 경영 부진과 자금난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실을 공개하며 무너진다.
다이루어보에 이어 이궈성센(易果生鲜)도 파산 신청을 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10월 13일이다. 싱가포르 연합보에서 상하이이궈(上海易果)와 공급업체인 상하이윈상(上海云象) 물류업체인 상하이안셴다(上海安鲜达) 가 이미 지난 7월 30일 파산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원인은 중국 소비시장 침체다. 렌상(联商) 인터넷소비연구센터 자료를 보면 중국의 의류 상장 기업 52개 중에 올 상반기 이익을 낸 곳은 야과얼(雅戈尔) 단 한 곳 뿐이다.
여기에 중국에서 1995년 이후 출생한 신세대들의 국산품 애용심리도 한 몫 거둔다. 중국 브랜드가 외국 브랜드에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진 비중이 66%를 넘기 때문이다.
마치 수십 년 전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중국 시장 진출 붐이 이제 철수 붐으로 바뀐 듯한 모양새다.
[현문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