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 했겠지요. 이리 저리 불려 다니고 보금 자리 꾸며야 했고 그리고 날 위해
또 뛰어 다녀야 했으니까요. 고맙네요.
조용한 기분으로 성탄절을 보냈습니다. 한 창 바빴기 때문에 그 날은 그냥 철수
와 단 둘이 조용히 있고 싶었습니다. 성탄절 기쁜 마음으로 사람들 많은 대학로
로 갔다가 둘 만 있고 싶어 율전으로 내려 갔었습니다. 새로 난 4호선의 지하철
보다는 다소 멀지만 겨울 풍경을 찻 장으로 감상할 수 있는 국철을 타기 위해 신
도림까지 갔었습니다. 전철 속에도 추억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
를 지켜주려 했던 그의 배려가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지금 졸음에 겨운 듯
한 쪽으로 고개를 기우리고 눈을 감고 있습니다. 휴일이라 전철안의 사람들이 적
었습니다. 그는 내 곁에 앉아 졸음을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저녁 빛이 물들고 사람들의 불 빛이 찻장 속에 그려 집니다. 기차의 바퀴소리
가 또한 정겹네요. 나는 율전으로 가는 동안 내 곁에서 졸고 있는 철수의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오래 전 일도 아니지만 그의 방에서 그와 마주 앉아 차 잔속에 이야기를 담던
것이 벌써 추억과 그리움이 되어 있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있기 때문일까요.
곁에 있어도 그리움이 되는데 잊혀지다 떠오를 땐 그 느낌이 어땠을까요. 슬펐겠
지요.
"집에 안 갈거야?"
"우리 그냥 여기서 자자."
"이 여자가... 저 번처럼 그럴려구?"
"아니."
"헤헤, 그럼?"
"넌 바닥에서 난 침대에서."
"같이 자는게 아니구?"
"아직 결혼 전이다?"
"그래요? 그럼 집에 갑시다."
이거 못 믿을 녀석이네. 얼굴에 실망스럽다는 게 역력하네요.
"너 내일 학교 나가야 되지 않니?"
"나 장가 갈 때까지 연구실 땡이야."
"응? 너 장가 가니?"
내가 못마땅하냐? 눈초리가 뭐 그래.
"부조금이나 준비해요."
"얼마나? 신부될 사람 예뻐?"
"누나 보단 예쁘지."
"그럼 엄청 예쁘겠다. 혹시 천사 아니니?"
"아니, 봐줄만은 해."
"어쭈? 결혼식이 언젠대?"
"허허! 유치하게 놀고 싶냐?"
"응. 재밌는데."
"진지하게 묻겠는데..."
"물어 봐."
"결혼하면 나 뭐라고 부를거야?"
"철수."
"우쒸. 지아비가 무슨 친구냐."
"그럼 자기?"
"그건 좀 낯간지럽구."
"그럼 뭐?"
"서방님."
"하여튼 남자들이란... 넌 뭐라 부를건데?"
"많지. 누나, 은정씨, 여보야, 그리고..."
"그리고?"
"마누라."
그래 니 맘대로 하세요. 애 하나 키우는 걸로 하죠 뭐.
집에 가기 싫었습니다. 왠지 집에 가면 허전할 것 같았거든요. 철수와의 잠시
간 헤어짐이 허전한 것이 아니라 이제 떠나야 할 가족의 품이 허전하게 느껴질
것 같았습니다. 철수와 같이 있다면 집에서 뭐라 하지 않겠지요. 이제 결혼식 날
짜 보름 남았습니다. 오늘은 그 걸 잊고 예전의 한 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서방님? 오늘은 늦었으니 여기서 자고 갑시다."
"유혹하는 겁니까?"
"아니옵니다. 서방님은 땅바닥에서 주무세요."
"싫은데?"
"많이 컸다?"
"그래 보름만 참는다."
"후후. 뭘 참는데?"
뉘앙스가 아까부터 좀 그렇네요. 흑흑, 나도 곧 아줌마네요. 하지만 결혼에 대
한 회의는 아직 느끼지 못했습니다 철도 없었고 바빴기 때문에 그런 생각들 가
질 여유가 없었어요. 바쁘지 않았다면 많은 상념 속에 쌓일 뻔 했겠어요. 급하
게 일을 꾸미지 않았다면 회의를 느꼈을 수도 있었겠네요. 사랑한다면 오히려 정
신없이 후딱 헤치우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뭐해?"
"이불 깔잖아."
후후, 어떻게 변할 지 확신은 서지 않지만 그는 여전히 내 말을 잘 듣는군요.
그 날 밤 철수 방에서 만화책을 보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기분으로 인형 하
나 던져 주었습니다.
다음 날 오전에 서울로 올라 왔습니다. 내려 갈 땐 이런 느낌 들지 않았는데 연
속으로 이러니까 기분이 별로네요.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지요. 지하철 안, 좋아
하는 사람 곁에 두고 어떻게 잠을 잔답니까. 철수는 또 잠이 들었습니다. 이제
곧 같이 산다 이거지? 내 어깨까지 빌리고 태연하게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래,
오늘은 참지만 다음에도 이러면 내 가만히 안 있을거다.
4호선 안이었습니다.
아, 저런 걸 지아비라고 모시고, 아니다 참, 데리고 살아야 되다니... 철수는
전철 문 밖에서 두리번 거리다 불쌍한 표정으로 나를 떠나 보냅니다. 이별이 슬
픈 듯, 아쉬운 눈망울로 천천히 멀어지는 나를 보며 울상을 짓고 있습니다.
"너 바보지?"
"그렇다고 암 말 않고 보고만 있었냐."
"급작스레 뛰어 가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하하."
"웃지 마. 바보 같애."
"하하, 4호선이라 헛갈렸지."
"걱정된다 진짜. 도대체 무슨 생각한거야?"
"꿈 꿨지."
"내가 곁에 있는 거 생각 못했어?"
"내가 누나 꿈 꿨거든."
"응?"
"아쉬웠던 적이 있었지."
"뭐가?"
"나하고 전철 같이 타고 오다 누나가 어떤 놈 따라 몰래 내려 버리잖아."
"뭐야 너."
"아직 불안한 존잰가?"
"그럼, 나한테 잘해라."
"그러지. 근데 그 새끼가 왜 또 나타났지?"
"누구?"
"승주 그 새끼가 왜 내 꿈에 나타 났을까? 기분 나쁘네."
"에구, 이런 놈을 믿고 살아야 되는 내 팔자가..."
"누가 일찍 하재요?"
"이게? 물릴까 보다 씨."
"물려 봐."
"어?"
"농담으로도 그런 말은 하지 맙시다. 물린다는 말보단 잘 살아야지, 이런 말이
좋잖아."
"니가 먼저 그랬잖아."
"나는 한다는 것에는 토를 달지 않았어."
"나도 뭐."
바보같은 짓 해놓고 짐짓 심각한 표정이네요. 이제 물릴 수 없으니까 물린다는
농담을 할 수 있는거야.
철수는 내 어깨에 기대어 잘 자다 전철이 역에 정차하니까 눈을 떴습니다. 그리
고 갑자기 일어 나 문이 닫히기 전에 나가 버리더군요. 나는 놀랬습니다. 쟤가
왜 저러나 하고 궁금해 했어요. 나는 그런 철수 따라 내리려 일어 섰고 철수는
나를 보고 다시 타려 했지만 전철은 그냥 모른 척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문을
사이에 두고 철수와 난 마주보며 아쉬운 작별을 했었어요. 나 괜히 다음 역에 내
려야 했습니다. 철수는 잠결에, 국철에 익숙했던 탓이었겠죠, 철수는 아마도 역
이 지하였기 때문에 신도림을 지났다고 판단했나 봅니다. 앞 뒤 생각없이 그냥
내려 버렸습니다. 내가 곁에 있는지도 생각 못할 만큼 꿈에 취해있었어요. 내 꿈
이라 참는다. 안산선이 뚤렸지만 철수는 옛 추억이 있던 국철의 바깥 풍경을 기
억하고 있었나 봅니다. 바보 같은 놈.
"너 때문에 자리 뺏겼잖아."
"한치 앞도 알수 없는게 인생이야. 알겠어요?"
무슨 말 하는거야.
철수는 이틀 뒤 다시 학교로 내려 갔었어요. 함들고 올 놈들 섭외하러 간다고
학교로 내려 갔습니다.
"내가 바보 같은 놈들로 잘 섭외 할게."
"섭외 안해도 다 그런 놈들 뿐이잖아."
"어허! 어디 지아비 친구 분들을?"
"그래 봤자 내 후배잖아."
"그럼 고등학교 친구들로 한다?"
"니 맘대로 해."
"하여튼 말 잘 듣는 놈들로 할게."
"후후. 나도 오후에 한 번 가볼까?"
"안 바빠요?"
"몰라."
"그럼 시간 되면 내려 와요."
섭외는 무슨... 함은 키가 큰 승헌이가 질 것 같고 꼬장 부리는 역할은 아마도
낯이 두꺼운 동엽인가 걔가 하겠지요. 눈에 훤하다 짜식아.
오전에 어머님 따라 주단 보러 갔다 온 뒤론 조금 한가합니다. 피곤한 탓에 내
방에 누워 율전 내려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때마침 배선배에게서 연락이 왔
어요.
"논문 제출했다고 보기가 꽤 힘드네."
"저 바쁘잖아요."
"준비는 잘 되어가?"
"네."
"후회 안 해?"
"아니요."
"잘 살아."
"후후, 그럴게요."
"왜 웃어?"
"선배 말투가 꼭..."
"좋아하는 마음 있었어."
"후후, 그래요 그 말투에요."
"에구, 난 언제 노총각 신세 면해 보나?"
"학교에요?"
"아니, 이제 가 볼려구."
"그래요? 그럼 저 좀 데리고 가요."
"학교 오게?"
"학교는 못 들어 갈거에요."
"철수가 율전 있나 보네."
"네."
"알았어. 그 쪽 들렸다 가지 뭐."
"고마워요."
해 질 녘에 철수 방에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철수 방에는 철수를 포함 네 명
이 모여 있더군요. 두 녀석은 이름까지 아는 녀석이고 한 녀석은 좀 낯선 놈이었
어요.
함 배달 준비로 모였다는 녀석들은 소주 댓병 있죠? 그 걸 중앙에 놓고 옥신 각
신 하고 있더군요. 비암! 소주 병 안에는 비암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것 들이 진
짜.
저 번에 승헌이에게 들은 적이 있지요. 공돌이 녀석들 진짜... 나한테 먹인다
고 해 놓고선 저들끼리 먹고 얼굴이 빨개져 있었어요.
철수에게 두 번 감격했어요. 한 번은 그 뱀소주를 철수가 날 위해 친구들의 구
박에도 불구하고 들고 튀었다는 거죠. 어디다 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삼분의 이도
더 남은 그 뱀소주를 나에게 마시게 할 수는 없다며 분개하고선 갖다 버렸습니
다. 비암은 어디서 구했을까?
두번 째는 내가 좀 많이 감격 했어요.
저녁 8시경에 율전을 출발했습니다. 마침 배선배가 퇴근을 할 시간이라 배선배
신세를 좀 졌죠. 철수는 아직도 배선배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더군요. 쫌생이 녀
석이죠.
우리 사고 났었어요. 성남 부근이었나봐요.
차 안에서 배선배는 말이 많았어요. 난 배선배 바로 뒤에 앉았고 철수는 내 옆
에서 아까 먹은 술 탓인지 빨간 얼굴로 헤롱되고 있었죠. 난 철수 신경쓰랴 배선
배 말에 답하랴... 배 선배는 쉴세 없이 저와 철수에게 말을 걸더군요. 뭔가 재
밌다는 듯 배 선배는 우리 사이의 일들을 묻고 자기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깜
깜한 밤, 그렇게 배선배는 국도를 운전 해 오다 마주 오던 트럭의 헤드 라이트
에 놀라 차선을 벗어나는 우를 범했습니다. 불 빛에 놀라 헨들을 꺽지 못했죠.
다행히 천천한 속도 였고 주위에 장애물이 없어 큰 사고는 일어 나지 않았습니
다. 배선배가 몰던 차가 국도를 벗어나 비탈길을 불안하게 걸쳐서 달리더니 그대
로 논 두렁에 처 박혔습니다. 배선배가 베스트 드라이버였는지 아무도 다치지도
않았고 차도 그렇게 망가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차는 볼쌍스럽게 앞부분이 그대
로 논 두럼에 처박혀 뒷 꽁지를 들어 버렸습니다.
철수는 안전벨트를 하고 있었지만 전 하지 않고 있었거든요.
차가 한동안 흔들렸고 논두렁에 처박히면서 몸이 앞으로 기울어 졌지만 전 배선
배 쪽으로 밀려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짧은 찰라 철수는 날 꼭 껴안고 있었습니
다.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면 난 아마도 타박상 정도 상처를 입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게 중요한게 아니죠. 철수의 마음이 중요했습니다. 어떻게 그 순간
날 껴안을 생각을 다 했을까? 철수는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내 허리와 내 한팔을
붙들어 날 보호하려 했었습니다. 그리고 난 철수 덕택에 몸이 앞으로 쏠려 가지
않았습니다.
견인차가 올 동안 철수와 난 배선배를 홀로 두고 택시를 잡아 탔죠. 미안해요.
아니다 배선배 때문에 처녀 귀신 될 뻔 했잖아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어?"
"그 새끼 일부러 그랬을꺼야."
"응?"
"차가 앞으로 처 박히면 누나가 밀려 잘하면 자기에게로 후딱 디비져 떨어질 수
도 있을거다. 그런 꼴은 내 못 보지. 그런 식으로 한 번 안아 보려구? 그렇게는
안되지, 암! 내가 그 놈 수를 미리 읽었다고나 할까. 하하!"
에구, 그냥 나 보호하려는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일었다고 말하면 오죽이나 좋
을까. 그 생각 진짜 너 답다.
장가 가기 전에는 다시 내려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서울서 봐도 되는데 동엽
이가 거기 있다는 이유로 승헌이를 비롯 얼마 전에 제대한 공돌이자 아직 군발
이 티가 무성한 현구란 놈이랑 율전으로 가는 전철을 타게 되었다. 전철 안 셋
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가 오고 갔다. 이 새끼들이 날 아저씨라고 놀렸다. 부러우
면 부럽다고 하지. 아직 제대로 된 애인하나 없는 것들이...
"나 있어 임마."
"나도."
"승헌인 사자 머리 사귀고 있는 걸 알지만 넌 의외다?"
"사자 머리 아니라니까. 걔 머리 풀었어."
"한 번 사자머린 영원히 사자 머리다. 현구 너 군대 가기 전 솔로였잖아. 제대
한지도 얼마 안되었구..."
"송우 다방 백양이라고 있어. 제대했지만 편지 주고 받기로 했다."
"바보 같은 새끼. 같은 공돌이지만 너무한다 새꺄."
말 잘했다 승헌아.
"걔 예뻐 임마. 걔 때문에 내 말년이 편했어."
"걔가 너 기억할 줄 아냐? 걔들은 민간인 상대 안해. 오르지 못할 나무는 포기
해. 편지는 무슨... 에구 한심한 놈아."
승헌이는 그 말과 함께 현구의 등을 도닥거려 주었다. 현구는 진짜?라고 묻는
표정으로 불쌍하다. 이런 것들이 내 친구라니...
점심 시간이 지나고 동엽이가 내 방을 찾았다. 저 새끼 같은 원생으로서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진짜 의문이 드는 놈이다.
"그 뭐냐?"
"승헌이가 만들어 오랬어."
"뭔대?"
"피로연 때 쓸거야."
"응?"
"뱀 술. 뱀 잡으러 한 동안 다녔지. 겨울잠 자나? 안 보이길래, 이건 사서 넣은
거야."
미친놈, 모형 장난감 뱀을 소주병에다 담궈 놓으면 그게 뱀술이냐. 이것들이 진
짜. 내가 생각해도 이 것들 곧 25살 될 놈들 맞는지 의심이 든다. 처음엔 진짠
지 알고 몸 보신 할겸 마셨더니 그냥 소주였다. 비암? 젓가락으로 억지로 꺼내
봤더니 플라스틱 모형 뱀이었다.
"에이 몹쓸 새끼야. 너 또 대마초 폈지?"
"그 대마초 얘기 자꾸 하는데, 하나 사줘 봐라."
"이게 제 정신에 할 짓이냐?"
"뱀이 없는 걸 어떡 하냐 임마."
소주 한 잔씩 마셔가며 함 짊어질 사람은 승헌이, 흥정 할 사람은 동엽이, 그리
고 현구는 군발이 특유의 버티기 정신으로 어떤 유혹에도 참고 견디며 자기들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을 때 배째는 역할을 맡기로 했다.
"대충 해라. 너무 뻐팅기면 나 너네 편들어 주지 못한다?"
"야, 학생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돈 버냐. 안 그냐 승헌아?"
"응. 이번에 성공하면 최신형 컴퓨터로 바꿔 볼까?"
"나는 복학 등록금을 마련해야지."
"나는 그 돈으로 철수 여행가는데 따라 갈까?"
이것들이 미쳤나.
계속.
연하가 뭐 어때.82회
해가 바뀌었다. 새로운 한 해가 밝았다. 딩, 딩. 텔레비전에서 타종식 장면을
보여준다. 옛 기억이 떠 올라 웃어 보았다.
수희가 나를 보며 안됐다는 미소를 보여준다. 내가 측은하게 보인다며 라면을
끓여 주었다.
"고맙다."
"아디오스!"
"무슨 말이냐?"
"이제 총각 오빠는 어디서 보지? 화려했던 오빠의 청춘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
겠지?"
"나 화려하지 않았어. 불쌍했지."
"쯔쯧, 좋니? 일찍 아저씨 되는게 좋아?"
"응."
"우리 오빠지만..."
"뭐?"
"아니다. 나는 이만 잘테니까 오빠가 설거지 해. 오빠가 오늘은 우울해 할 줄
알았어. 의미있는 한 해가 가버렸는데... 저렇게 좋을까? 에구."
수희는 등을 보인 채 섰다가 고개를 흔들고 혼잣말을 하면서 내 방을 떠났다.
내 방에 혼자 앉아 라면을 먹었다. 밖은 어둠이지만 미래는 밝다. 하하. 내 년
에는 수희가 아닌 다른 여자가 라면을 끓여 줄 것이다. 설거지? 나 안하지. 내
가 왜 해.
반갑다. 1998.
어머니 멋 있습니까?
"가서 잘 해. 경망스럽게 굴지 말고, 어른들 말씀 잘 듣고 소란 피우지 마."
어머니는 아들의 옷 매무새를 봐 주며 걱정이시다. 뭐가 걱정일까?
"애들이 곧 올거에요."
"내 걔들에게는 따로 잘 말하마."
"그러세요. 경험이 없어서 뭘 모를거에요."
"너는 경험 있냐?"
"제가 제일 먼저 가는데 있을리 없죠."
"자랑이다 임마."
"그럼요. 저 태어나 처음으로 일등 하는 거 같애요."
"좋겠다. 좋겠다 짜식아."
"아니, 어머니. 그건 아버지 말투신데..."
"하여튼 가서 잘해."
"그러겠습니다. 그럼 소자 이만."
가자 함 받으러!
아버지께 들렸더니 금일봉을 주셨다. 오늘은 대충하고 내일이나 모레 시간 내
어 친구들 섭하지 않게 하라는 말씀이다. 걔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면
깜짝 놀라실텐데...
오후는 누나 집에서 다과상을 앞에 놓고 장인 어른의 말씀을 들으며 꿇어 앉아
있었다. 딸 데려가는 죄인? 그 것 때문에 꿇어 앉은 것이 아니다. 아버님이 어른
에게 술잔을 받을 때는 꿇어앉아 받아야 된다 하셨다. 한의사인 우리 아버지는
양주를 무척이나 좋아하시는데 양약을 취급하는 아버님은 약주로 집에서 담그는
고유 국산주를 좋아하셨다. 도자기 술 잔에 도자기 주전자에서 흘러 나오는 고
운 노란 빛의 국화주. 딱 한 잔만 마셨다. 한 잔 더 주셔도 되는데...
누나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가 말이야. 결혼이 장난이야 뭐야.
함 받는 날 신부 될 사람이 어딜 싸돌아 다니는 거냔 말이다. 아버님 인생 덕담
을 들으며 두 시간을 보냈다.
누나 집에는 남자가 아버님 뿐이었다. 처형 될 사람도 없었고 처남도 없었다.
내 친구들 뻐띵기면 무슨 수로 데려 올까?
밖이 어둠으로 내려 앉을 무렵 전화가 왔다. 동엽이다.
"야, 출발한다?"
"조심해서 들고 와."
"알았다. 봉투 많이 준비했냐?"
"나는 잘 모르지. 대충 해라, 내 맛있는 거 사줄게."
"대충은 임마."
"세 명 가지고 되겠냐?"
"충분하다. 우리는 배 짼다는 각오이기 때문에 괜찮다."
"그 여자 친구들 무서워. 진짜 배 짼다 말이다."
"열사가 되는 한이 있어도 우리는 요구사항을 관철 시킬테다."
"될까?"
누나는 친구들과 함께 저녁 먹을 시간에 집에 왔다. 다들 여자다. 혹시나 승
주, 아니면 배군을 데려 올 것도 같았는데 순전히 여자들 뿐이다. 미인계를 쓰려
나? 정희 누나도 지 남편은 어디 갔는지 혼자 왔다.
"오랜 만이야. 기집애 연락 좀 하고 살지."
"호호."
"안녕하세요. 지수와 친하다 들었어요."
"네."
모르는 사람도 데려 왔나 보네. 지수씨와 정희 아줌마는 누나 때문에 알게 된
사이니 서로 모르는 친구가 있을 수도 있다. 여자들 틈에서 나는 별말 못하고
저 들 노는 거 구경만 했다. 호호, 여자들 여섯이 모이니까 진짜 말 많고 별 것
도 아닌것에 많이 웃는다.
"저 송혜정이에요. 나 잘 모르겠죠."
"네? 네."
아까 정희 누나와 인사한 여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어떻게 아남.
"한 번 놀러 오지 그랬어요."
"네?"
"호호."
"혜정씨만 믿을게요."
키가 좀 크고 예쁘장한 그 여자에게 누나가 야릇한 미소로서 한 마디 하자 그
여자도 야릇한 눈 빛으로 고개를 끄덕거려 준다. 둘이 친구는 아닌가 보다. 저
누나는 지수씨와 친한 사이일 뿐인가 보다. 나랑 별 상관없는 여자가 내게 친한
척 한다는 건 내가 멋있기 때문이지. 하하. 그럼, 정장 빼 입고 왔는데...
아버님은 자리를 피해 약국으로 다시 가셨고 누나는 주방으로 왔다 갔다 하며
바빴다. 거실에는 아녀자들의 웃음과 소곤거림? 아니 졸라 떠드는 거에 가까운
재잘거림이 있었다. 나? 남자는 나 하나 뿐이었다. 거실 한 구석에 앉아 그녀들
의 대화에 안주가 되다가 눈치 봐서 실 누나 방으로 들어 가 버렸다. 침대에 누
워 천정을 보며 눈만 껌뻑 거렸다. 향기가 좋다. 내 침대 이불과는 차원이 틀리
다. 자주 들어 와 봤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지만 이 방은 왠지 내게 잦은 가슴 떨
림을 준다.
방에 있는데 누가 들어왔다. 내 마누라 될 사람이다.
"너 여기 있었니?"
"응."
"여자 침대에 그렇게 맘대로 누워도 되는거야?"
"자기는 안그랬나."
"거실에 가 있어."
"싫어. 여자들 모아 놓으니까 참 말이 많네."
"후후, 치. 남자들은 안 그렇니?"
"꽤 바쁜 척 하네?"
"너네 친구들하고 내 친구들 입이 몇이냐."
"누나 요리 잘 해? 자취할 때 보니 영 아닌거 같던데?"
"특별히 맛있는 거 안해 먹었잖아. 나중에 맛있는 거 많이 해 줄테니 감탄하지
나 마라."
"뭐 잘하는 데?"
"노코멘트."
장가가서도 내가 밥해 먹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너네 친구들 바보 맞지?"
"좀 그런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금방 전화 왔어. 근처 까진 왔는데 집을 못 찾겠대."
"그 녀석들 참. 내가 나갈까?"
"너랑 나는 집에 있어야지. 정희가 데리러 갔어."
"푸우!"
"너 거실에 가 있어."
"왜?"
"나 옷갈아 입어야 돼."
"갈아 입어."
"안나가?"
"이불 뒤집어 쓰고 있을게."
"서방님? 나가 주세요."
거실에 앉아 또 여자들의 안주거리가 됐다. 설버라.
잠시 후 정희 누나가 히죽 웃으며 돌아 왔다. 그리고 멀리서 들리는 함성!
"함 사시오!"
자식들, 내 덕인줄 알아라. 그 나이에 그런 거 해 보겠냐. 친구 잘 만났는 줄
알아야 할텐데...
"왔다!"
여자들 일제히 일어 나더니 우르르 나간다. 정희 누나가 어머님께 봉투 몇 개
를 받더니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 녀석들 어디쯤 왔을까? 현관 쪽으로 나가 보
았다. 보이지 않는다.
한 복 입는건가? 내 마누라 될 사람은 단아한 한복으로 갈아 입고 거실로 나와
다소곳이 자리에 앉는다. 가슴 옷고름을 매만지며 청아한 미소를 머금고 나에게
손짓 한다. 현관에 서 있다 그 모습을 보았다. 헤, 그려 내 그대 옆으로 가 앉
아 주리라.
누나 옆에 앉아 녀석들을 기다렸다. 어머님은 나오셨다 웃으며 다시 주방으로
가셨고 아줌마는 현관에서 기웃거렸다.
많이 뻐팅기면 안되는데...
오분 만에 승헌이가 들어 와 나를 보며 머쩍게 웃는다.
"야, 너 어떻게 된거야?"
"응? 하하! 나이 많은 여자들 진짜 너무한다."
"승헌씨, 이리 와 앉아요."
에구, 완전 어린애 취급하면서 존칭은...
"함은?"
"현구가."
"넌 왜 들어 왔어?"
"누나, 우리 막내 누나 알아요?"
"나는 잘 몰라요. 그냥 우연히..."
"지수 누나와는 친해요?"
"고등학생일 때 단짝이었어요."
"그래요? 근데 왜 존댓말로..."
"내 모습이 양반댁 규수같지 않아요? 어떻게 후배라고 막 할 수 있겠어요."
푸헤! 누나 말하는게 웃기다. 그리고 세상 참 좁네.
"야! 아무리 누나를 만났다고 바로 들어 와?"
"나 많이 시달린다고 했지? 막내 누나가 젤 무서워."
"에구 한심한 놈아."
"이런 경우가 어딨냐? 함들고 온 사람 귀를 잡고 빨리 안 들어 와? 이러는 경우
가 어딨냐고!"
"나도 좀 황당하다. 다른 놈들은 잘 뻐팅기고 있냐?"
그 말과 동시에 밖이 북적거리더니 두 놈이 여자들 틈에 둘러 쌓여 현관문 앞
에 떡 들어섰다. 이상한 모습을 보았다. 동엽이는 현관문을 잡고 안 들어 오려
고 애를 쓰고 있고 함을 맨 현구가 그를 안으로 잡아 당기고 있었다.
"나는 못 가. 배신자들!"
"이쯤 하자 동엽아!"
"십분을 못 버티냐?"
정희 누나가 그 모습과 같이 들어 온다. 정희 누나는 나갈 때 들고 있던 봉투
를, 그러니까 몇 개 빠진 것 같지도 않다. 그대로 들고 나를 보며 웃는다. 내 친
구들 완전 초보였다. 하긴 아저씨가 한 명도 없으니 여자들에게 약할 수 밖에.
공돌이의 한계다.
등록금? 컴퓨터? 바보 같은 놈들, 그들은 참으로 쉽게 안으로 인도 되어졌다.
"현구 넌 왜 그래?"
"누나들이 다 예쁘잖아. 헤. 그리고 동아리 선배도 있더라. 내 어떻게 힘을 쓰
리."
동엽인 아직도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다.
"넌 그래도 꿋꿋했네?"
"승헌이와 현구에게 나 진짜 실망했다."
"너도 약대생 소개 시켜준다니까 솔깃 했잖아."
"나는 그래도 버텼다."
무슨 소리 하는거야. 도대체 함 들고 들어 오면서 무슨 흥정을 한 거야.
(약 오분전 은정이 집 앞.
정희와 은정이 연구실 후배 한 명은 동엽이와 쪼그려 앉아 흥정을 벌이고 있고
함을 맨 현구는 누나들에게 둘러 쌓여 헤헤 거리고 있다.
"너 이제 제대 했니?"
"그럼요. 누나는 졸업했죠?"
"응, 동아리 방에서 보다 여기서 보니까 신기하다."
"몇 년 만이야?"
"일 년 넘었다 그지?"
"하하, 안녕하세요. 정보공 93 안현구입니다."
현구는 누나들에게 둘러 쌓여 이리 저리 인사를 하고 있다. 쑥쓰러운 듯 머리
를 긁적이면서...
"여기 우리 학교 아닌 누나들도 있으니까 잘 보여."
"하하. 그러지요. 잘 부탁합니다."
"남주 동아리 후배야? 잘하면 은정이처럼..."
"무슨 소리야. 현구 너 그냥 들어 갈거지?"
"그럼요. 참, 누나 많이 예뻐졌네요."
"호호, 다음에 내가 저녁 한 번 살게."
한 편 그들과 조금 떨어져 쪼그리고 앉은 동엽이는
"95학번에 이 소라라고 알아요?"
"응, 나하고 친한 후배야."
"그래요? 걔 소개 시켜 줄 수 있어요?"
"걔가 점찍어 둔 애야?"
"네."
"혹시 짝사랑?"
"그건 알 거 없구요."
"걔가 누군데?"(정희)
"예쁘고 키 큰 애 있어요."
"걔 소개 시켜 줄 수 있냐구요?"
"근데 걔는 애인이 있는 걸로 아는데?"
"에?"
"다른 애 소개시켜 주면 안돼?"
"나 못들어 가!"
)
아무리 연하 남편이지만 분위기가 영 이상하다. 좁은 학교 탓일까? 학교 내 약
대 여학생들이 공대생의 관심을 많이 받았기 때문일까?
두 명을 제외하곤 모두들 내 친구들에게 반말이었다. 내 친구들은 꼬박 존댓말
이고... 이런 경우가 어딨냐. 뒤바꼈다. 시중도 내 친구들이 하고 있다.
음식상을 앞에 두고 내 친구들이랑 누나 친구들이랑 모여 앉아 재밌는 시간들
을 주고 받았다.
"네 친구는 벌써 이런데..."
"누나 걱정이나 해. 여기서 누나가 제일 딸린다."
"이 새끼가."
"욱!"
승헌이 막내 누나 진짜 무서웠다. 승헌이를 사정 없이 패 버렸다. 쯔쯧, 나이
많은 여자 조심하라더니 좀 이해가 간다. 은정씨는 부드러워, 걱정 마. 아니다,
예전 누나가 날 저런식으로 때린 적이 있다. 애인 했다가 그만하자 했을 때. 헤
헤, 그거야 뭐.
"누나도 나 때릴거야?"
"왜 때리니. 오손도손 잘 살아야지."
"그렇지. 하하."
처음엔 마주 앉아 있다가 어느새 섞여 버렸다.
"걔 진짜 애인 있대요?"
"응."
"안되는데..."
"내 다른 애 소개시켜 줄게."
"누나는 92에요?"
"응. 은정이 언니와 같은 연구실에 있어."
"간혹 놀러가도 될까요?"
"놀러 와. 밥 사줄까?"
"하하, 내가 철수같진 않죠. 밥은 제가 살테니까 누나는 간혹 영화를 보여 주던
지 차를 사주던지... 하하."
"그럴까? 근데 어쩌니 나 애인 있거든."
"우쒸!"
동엽이 녀석은 아무래도 노총각으로 늙을 것 같다. 예전 누나 꼬시는 법이라고
가르쳐 줄 때부터 조짐이 보이더니...
"누나는 졸업했죠?."
"응. 넌 올해 복학 할거니?"
"네. 누나 있을 때가 참 좋았는데."
"연락처 알려 줄테니까 연락 해."
"그러죠. 누나도 곧 시집 가겠네?"
"아직은. 나도 연하나 한 번 사귀어 볼까?"
"충성! 안 현 구"
"조용히 해 임마!"(동엽)
연하가 뭐 어때.83회
하루 하루가 지나갔다. 철수와 은정인 결혼식 준비와 여행 준비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 바쁘세요?"
"어째 장가갈 놈은 넌데 내가 이렇게 바쁘냐?"
"원래 그런거에요."
"뭐야 이놈아."
"아버지는 한 번 해 보셨고 저는 처음이잖습니까.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일을 맡
아야죠."
"허허, 결혼식이 낼 모렌데 넌 어찌 그리 태평하냐?"
"모르니까요. 제가 할 일은 청첩장 돌리는 거 하고 결혼식날 출석만 잘하면 되
는 거 아니겠습니까."
"쯔쯧."
"당일에는 제 친구들이 또 도와줄거잖아요.
"참, 부조금 받을 놈들에겐 단단히 이야기 해 놓았냐?"
"그럼요. 공돌이들이 그런 단순한 일은 잘 해요."
"그래. 저쪽은 누가 한다던?"
"형제가 귀해서 아마 아버님 약국 약사들이 도울 거 같아요."
"흠, 너 걔한테 잘해라. 이런 너하고 살겠다는 용기가 가상하지 않니? 그리고
아닌 것 같아도 널 아주 대단케 생각해서야. 기대 꺾이지 않도록 잘 해."
"위하며 잘 살겠습니다."
"혼자 커서 어떤 때는 가여워 보이기도 해."
"감사합니다. 아버지."
"뭘?"
"누나 생각해 주시는게요."
"어구 이 놈아. 걔도 이제 한 식구야. 그리고 누나라고 그러지 마. 언제까지 그
럴래?"
"고치겠습니다."
"장가가면 달라져야 된다. 니 스스로 살 수 있어야 돼."
"네."
철수는 서류 같은 걸 펼쳐 놓고 뭘 적고 계시던 아버지 옆에 앉아 한 쪽으로 치
워논 약재를 매만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철수의 얼굴은 계속 헤헤, 거리고 있
었고 아버지는 아들이 아직은 불안해 보이는지 쯔쯧,거리고 계셨다.
결혼식 이틀 전 여행사의 예비소집이 있었다. 예비소집에 나온 사람들은 곧 여
행을 떠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얼굴이 모두 밝다.
여행 일정에 대한 공지와 출발 당일 모이는 장소를 통고 받은 사람들은 설렘으
로 가득찬 얼굴로 돌아 갈 준비를 했다.
"박철수씨, 홍은정씨는 잠깐 남았다 가세요."
안내원 한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
"당신 잘못한 거 있어요?"
"아니. 근데 왠 당신?"
둘은 모였던 일행들과 떨어져 안내원을 따라 갔다. 안내원은 서류를 살피면서
철수와 은정일 꼬아 보았다.
"같은 방으로 해 달라셨죠?"
철수는 헤헤, 웃고 은정인 고개를 끄덕거렸다.
"좌석도?"
"당연하죠."
철수가 헤헤 거리며 답을 했다.
"두 분 어떻게 되시는..."
"우리 떨어지면 안돼요. 죽을 때까지 붙어 살아야 되는데요."
은정이는 살포시 미소지으며 답을 하고 있는 철수를 쳐다 본다. 안내원은 다시
물었다.
"남 녀가 같은 방을 쓴다는 게... 일행들 시선이 곱지 않을텐데요."
"그런거 상관 없어요. 님도 오실래요?"
"네?"
"모레 우리 결혼식이거든요. 부조금 안 받을테니까 와요."
"두 분 그럼."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하며 살아야 할 사이요."
"신혼 여행이세요?"
"그렇죠. 하니문 베이비 만들어야 되거든요? 같은 방을 꼭..."
철수는 신나게 답을 하다가 은정이의 제재를 받았다. 철수가 어디를 꼬집혔는
지 대답 중간에 말을 끊고 얼굴을 찌푸렸다. 은정이가 약간 무안하게 웃으며 안
내원을 바라 보았다.
"호호. 같은 방으로 잡아 주실 수 있죠?"
"그럴게요. 두 분 진짜?"
"마누..."
철수는 답을 하려다 은정이 눈치를 살피고 머뭇거렸다. 히죽 웃고 있는 그의 입
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염려가 되었는지 은정이가 답을 했다.
"맞아요. 우리 신혼 여행 가는 거에요."
"아앙, 하하, 좋아 보이네요. 티씨더러 특별히 신경 쓰라고 해야 겠어요."
"티씨가 남자여 여자여?"
철수는 또 꼬집혔다.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온 터라 철수는 머리 속에 많은 상상을 했다. 은정
이의 차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그의 머리 속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다. 비행기
뜰 때 느낌이 어떨까? 처음 갈 곳이 영국인데 영국 여왕은 예쁜 딸이 몇이나 있
을까? 길 거리에서 뽀뽀해도 쯔쯧, 소리 안들을까? 해변을 나가보면 젖가슴을 자
랑하고 돌아 다니는 여자들이 실제로 존재할까? 그리고... 기타 등등.
"예비 마누라."
"한 가지로만 불러."
"우리가 처음 갈 곳이 런던이랬잖아."
"응."
"영국 놈들은 미국 놈들이랑 거의 같지?"
"뭐 비슷하겠지."
"우리 길 거리에서 뽀뽀 한 번 해 보자."
"으이그, 우리 서방님 언제 철들래?"
"해보자니까 씨."
"기회되면."
"헤헤. 기회야 만들면 되지 뭐. 그리고 곧아줌마?"
"야, 호칭 통일시켜."
"연습하는거야."
"무슨 연습?"
"누나 소리 안하기."
"치. 자연스럽게 바뀔거야."
"둘이 있을 땐 모르지만 어른들 앞에선 바로 바껴야 돼."
"지금 둘만 있어."
"연습하는 거라니까."
"그래, 서방님 맘대로 하세요."
"홍여사."
"이게 진짜."
"어허, 서방님보고 이거라니."
결혼식 전 날, 참으로 바쁜 날이었지만 바쁜 것은 양가 부모님들이었고 철수와
은정인 오히려 다른 날보다 한가했다.
결혼식 전 날 오후에 둘은 자신들이 결혼식을 올린 호텔의 커피숖에서 커피잔
을 기울리는 여유를 갖고 있었다.
"야, 호텔이 상당히 고급스럽네. 돈 많이 줬겠다."
"벌써 그런거 신경쓰니?"
은정인 호텔을 둘러 보는 철수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런 건물 지을려면 얼마나 필요할까?"
"졌다."
"새댁은 결혼하고 나면 일 년동안은 나 먹여 살려야 되는데 앞으로 계획은?"
"잘살테니까 걱정 마."
"삶이 그리 만만한 줄 알아요? 나 일년 동안은 소위 밥만 축내는 놈이야. 누나
가 번 돈으로 생활해야 되는데 나 구박하지 않고 잘 살 자신 있어요?"
"구박안할테니까 공부나 열심히 해."
"그리고 올 한해 동안은 학생이니까 내 생활에 너무 간섭 말아요."
"뭘 간섭 말라는 거야?"
"혹시나 미팅 건수 들어 오면 나 나갑니다. 그리고 당구장 가는 것도 시비 걸
지 마요."
"그럼 나도 뭐. 예전에 찼던 남자들 만나고 돌아 다니고 학생 때처럼 배선배랑
드라이버도 가고..."
"쓰... 그건 안돼지. 누나는 나 신경 쓰야지."
"그런 법이 어딨냐?"
"나는 학생일 때 결혼 할 생각이 없었어. 그러니까 누나가 많은 부분 책임을 져
야 돼."
"치, 물린다?"
"이씨."
"미안, 그런 말은 하지 말랬지 참."
"해도 돼. 물릴 수 있으면 물려 봐. 내일이 결혼식인데 니가 무슨 수로 물릴
래?"
"너? 또 니가라고 했어."
"내가 결혼하고 나면 누나더러 존댓말 쓰라고 할 참이었어. 그건 내가 양보한
다. 하지만 이제부터 내게서 예전처럼 깍뜻한 존칭은 기대하지 마."
"허! 너도 별수 없구나."
"그래도 더 위하고 살테니까 걱정마요. 참, 학기 중엔 나 보러 자주 내려 와
요. 서울 갈 때 데리러도 와야 돼."
"알았어."
"그리고 보니 우리 주말 부부 되겠네."
"걱정마. 자주 내려 갈테니까."
"헤헤. 잘 삽시다."
"잘 살아야지. 근데 좀 걱정된다."
"걱정 거리는 나눕시다. 하하."
"내일 잘 해?"
"당연하지."
철수와 은정이는 저녁을 먹고 일찍 헤어졌다. 각자 자기 방에 누워 설렘과 두근
거림을 안고 잠을 청했다.
"여보세요? 나."
"누나도 잠 안와요?"
"응. 많이 긴장 돼."
"누구나 처음엔 다 그래."
"치, 꼭 해 본 것처럼 얘기한다?"
"다 이런 말 하더만. 내일 아침에 뭐 할거요?"
"미용실 가야지."
"내일 많이 예쁘겠네?"
"평상시는 안 예뻤니?"
"겸손할 줄도 좀 알아라."
"내일 드디어..."
"피로연 끝마치면 우린 바로... 헤헤."
"음흉하긴."
"마누라하고 같이 잔다는 생각이 음흉한 것이면 아휴 세상엔 전부 음흉한 놈들
뿐이네."
"그런 걸 티를 내니?"
"그럼. 내일 결혼식이야 대충 해도 돼. 난 첫날 밤이 중요하단 말이야."
"제대로나 할 수 있을까?"
"이 여자가 씨."
"기분이 좀 묘하다."
"나는 기분이 야한데."
"좀 진지하게 받아 들여."
"이런 기분일 때 진지해지면 더 가라앉아. 가볍게 웃어요. 웃어봐요."
"히..."
"좀 산뜻하게 웃어라. 살포시 미소짓듯..."
"보이니?"
"느낌이라는게 있잖아요. 여자가 무드가 없냐."
"..."
"미소 지었어요?"
"응."
"편안히 자고 내일 봅시다. 사랑해요."
"그래, 나도."
"하늘 땅 별 땅 만큼 사랑하니까 푹 자요."
"나도 하늘 땅 별 땅 만큼 사랑해."
"27살 먹은 여자가 참 유치하네요."
"씨."
"이제 그만 자요."
"응. 잘 자."
연하가 뭐 어때.마지막
밤이 깊었지만 철수도 은정이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철수는 걸지 않을 전화기를 들었다 놓는 것을 반복하더니 이불을 뒤집어 쓰고
끼끼 거렸다. 그러다 벌떡 일어 나 태권도 발차기 같은 걸 하더니 또 이불을 뒤
집어 쓰고 낄낄 거렸다. 잠이 들었다 싶었는데 또 벌떡 일어나 뺨을 꼬집고 헤
헤 거렸다. 그렇게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철수는 결국은 옥상으로 올라
갔다.
"잘 삽시다!"
뒷 집을 향해 큰 소리를 질렀다. 하늘에 두팔을 벌리고선 멋있게 외쳤다.
"어떤 놈이여!"
철수는 급히 옥상 난간에 몸을 숙이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고개를 조금 내 밀
고 뒷집을 빼꼼히 쳐다 보았다. 쌈쟁이 할머니가 무슨 일인지 잠이 들지 않고 밖
을 나와 있었다.
그 시간 은정이도 잠을 못 이루긴 마찬가지였다. 침대에 누워 이리 뒤척이다 저
리 뒤척이다 결국은 잠을 포기하고 방에 불을 밝혔다. 그리고 사진첩을 꺼내 침
대에 앉았다. 어린 시절 철수를 모르던 때의 사진첩을 펼쳐 놓고 부모님과 함께
있던 작은 소녀를 보고 그리운 미소와 작은 눈물이 맺히는 가슴떨림을 느꼈다.
자기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모습을 떠 올리며 고운 시선으로 생각에 잠기
는 표정이다. 방에 걸려 있는 가족 사진을 보고 눈을 붉혔다. 철수와 알게 된 시
절의 사진첩을 펼쳐 보면서 살포시 웃음을 맺었다. 그러고도 잠이 안 오는지 은
정인 조용히 거실로 나왔다. 주방에는 내일 결혼식에 필요한 것인지 보자기에 쌓
인 물건들이 많았다. 은정인 그 것을 보고 또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은정인 주
방 한 구석에 담궈 놓은 과일주 유리병에서 술을 한 잔 따랐다. 그 술잔을 들고
자기 방에 들어 가 내일 입을 웨딩 드레스를 보며 쭈욱 들이켰다. 그리고 히죽
웃다가 입술을 떨다가 눈물을 맺기도 하면서 또 미소짓곤 했다.
둘이 언제 잠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새벽 두 세시는 넘긴 거 같다.
날이 서서히 밝아 온다. 아직은 주위가 어둡다. 하지만 철수네와 은정이네는 새
벽부터 불을 밝히고 부산하다.
"오빠 일어 나."
"으응... 아직 해도 안떴는데... 새벽부터 왜 그래?"
"안 일어 날거야?"
"나 늦게 잠 들었어."
"안일어 날거야?"
"쫌만 더 자자. 무슨 일인데 깨우는거야?"
"엄마!"
철수방으로 들어 왔던 수희가 그 소리를 듣고 쪼로로 달려 나간다. 철수는 왜
저럴까? 의아해 하면서 부시시 이불을 밀치고 일어 났다. 아직 잠에서 덜 깼는
지 허리멍텅한 표정으로 담요 위에 앉아 있는 철수에게로 엄마와 수희가 다가왔
다. 둘 다 동시에 혀를 찬다.
"쯔쯧, 저거 오늘 결혼 할 놈같이 보여?"
"아니. 엄마 나는 저런 사람에겐 시집 안 갈거야."
"그래 내 딸은 저런 놈에게 시집 안 보내지. 암."
"에이쒸! 서운하면 서운하다 그래요. 저 정신 차렸어요."
"니가 할 일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일찍 일어 나 있어야지. 우린 바빠. 아침 먹
을 준비 해."
"알았어요."
엄마와 수희는 철수가 일어 나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걸 보고 주방으로 돌아 갔
다.
철수는 세수를 하고 난 다음 식탁으로 와 앉았다. 아버지는 평상시처럼 식탁에
앉아 신문을 보신다. 아직 식탁 위에 밥은 올라와 있지 않다.
"오늘 네 평생의 가장 중요한 날이다. 잘 해라."
"아버지, 저에게 시선을 주시고 말씀해 주세요."
아버지는 철수 말대로 눈은 신문에 가 있었다.
"장가가는 게 뭐 그리 대수냐? 나도 갔었다 임마."
"앞의 말씀하고 틀리잖습니까."
"너야 뭐. 사돈 댁에선 많이 서운하겠다."
"저도 따로 나가 살거잖아요"
"이 놈아. 당분간만이야. 나중엔 같이 살아야지. 하지만 은정인 그게 아니잖
아. 딸자식하고 사내는 달라."
"구세대시군요."
"그래, 나 구세대다. 신세대야! 잘 살아 임마."
"네."
"먹자."
밥 그릇과 국 그릇이 식탁 위에 놓여지자 아버지는 신문을 놓으시고 말씀하셨
다.
"제 총각 시절 마지막 식사네요."
"묘하냐?"
"기분이요? 그렇죠 뭐."
"허허, 대답이 영... 오손도손 잘 살아. 우리 집엔 이혼 같은 거 없다? 한 번
가족이 된 이상 끝까지 우리 사람이다. 알았냐?"
"인내하며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조금 철 든 말같다."
"하하."
은정인 아침부터 바빴다. 새벽에 술을 약간 마셨던 탓인지 늦잠을 잤다.
"좀 깨워 주시지 그랬어요."
은정인 식탁에 앉자 마자 빵을 먹는 듯 마는 듯 입에 넣고는 바로 다시 일어 섰
다.
"잘한다. 이런 중요한 날 늦잠이니?"
엄마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딸의 볼을 두 손으로 감싸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은정인 엄마와 같은 미소로 답을 한다.
"잘 살아."
"네."
"미용실은 누가 따라 갈 거니?"
"정희가 온댔어요."
"그래. 나는 병원 갔다가 먼저 식장에 가 있으마."
"아빠는요?"
"출근하셨어."
"벌써요? 나 일어 나는 것도 안 보구요?"
"너 자고 있는거 보고 가셨어."
"흠. 저 너무 서둘렀을까요?"
"아니야. 늦어지면 아빠도 나도 더 힘들었을거야. 너도 그랬을거구."
"동생 하나 낳지 그랬어요."
"흠, 그게 맘대로 안돼더라."
"고마워요."
"그래, 이렇게 예쁘게 키웠으니 그 말 들을 자격은 되지. 흠... 내가 미용실까
진 태워 줄게."
"참, 외할아버진..."
"내일 도착하신데."
미용실 은정이는 꼼짝을 못하고 있다. 은정이 헨드폰이 울리자 책을 보고 있던
정희가 대신 받았다.
"왜 누나가 받아요?"
"신부 화장 때문에 바빠."
"많이 예뻐지고 있어요?"
"그래."
"조금 있다 간다고 전해 줘요."
"알았어. 결혼 축하 해. 이제 아저씨네."
"아직 안했어요."
"후후. 이제 나 아줌마라 놀리지 마?"
"생각해 보고."
붉은 카페트가 깔려져 있고 원탁의 테이블들이 놓여진 호텔의 웨딩 홀에는 사람
들이 한 둘 찾기 시작했다. 호텔 직원들이 테이블에 음식들을 갖다 놓고 있을
때 철수는 결혼 예복으로 갈아 입고 입구에 섰다. 어머니가 철수의 옷 매무새를
봐주며 그 옆에 서 있다. 그때 은정이의 어머니가 나타났다. 철수는 무언으로 환
한 표정을 보이며 허리를 숙였고 옆에 서 있던 어머니가 은정이의 어머니를 맞았
다.
"오셨어요?"
"네. 신랑이 믿음직 해 보이네요."
"철없는 자식에게 귀한 딸자식을 맺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네."
"은정인 아직 안왔나 보네요?"
"아직 미용실에 있나 봅니다."
어머니 둘은 철수만 남겨 놓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왔냐?"
"야, 제법 멋있네."
"그럼 새꺄."
"우린 어디 앉아 있어야 되냐?"
"저기 자리 줄테니까 돈 잘 받아?"
"신랑이 그런 거 밝히면 안돼."
"승헌이는 그런대로 봐줄만 한데 동엽이 넌 영..."
"그렇냐? 내가 양복이 없잖아. 울 형 거 입고 왔더니 좀 그렇다."
"너네들은 부조금 없어?"
"야, 일 봐주잖아."
"그래도 낼 건 내야지."
"학생인디?"
"나도 학생이야."
"외상."
시간이 다가 오자 양가 귀빈들이 하나 둘 식장에 입장을 하기 시작했다. 철수
는 잘 알지 못하지만 성의를 다해 인사를 드렸다. 옆에 서 있는 아버지가 허허
웃는다.
"아들을 참 잘 두셨네요."
"하하, 과찬이십니다."
"하시는 일은 잘 되시죠?"
"네."
철수는 긴장이 되기는 하지만 여유있는 표정으로 귀빈들을 맞았다. 계단 쪽이
웅성거렸다. 철수는 고개를 들어 그 쪽을 쳐다 보았다. 아버지께서 손을 잡아 끌
어 내린다.
"나중에 봐도 돼."
"신부 오는 거에요?"
"평생 같이 살 사람인데 좀 있다 봐."
은정이는 화사하게 화장을 하고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신부 대기실로 들어 갔
다. 철수는 하객들과 인사를 하면서도 시선은 방금 문이 닫힌 신부 대기실로 가
있다.
"어?"
"축하 해."
"형 오랜만이에요. 저한테 온 거 아니죠?"
"그럼, 난 신부 하객이지."
"하하, 미안합니다."
"뭐가? 은정인 네 인연이었나 보지 뭐."
"잘 오셨어요."
철수에게 승주가 와 악수를 하고 갔다.
"오빠! 결혼 축하해요."
"은정이구나."
"금방 신부 보고 왔어요."
"넌 내 하객이잖아."
"호호, 그러니까 신부가 궁금하죠."
"참, 승주형 봤는데... 그 형 자주 만나지 않았냐?"
"신부 대기실에 같이 들어 갔다 왔어요."
"승주가 먼저 봤어? 나도 아직 제대로..."
작은 은정이 뒤에 승주가 나타나 히죽 웃는다. 철수는 하던 말을 멈추고 입만
쭝긋 내밀 뿐이다.
화환들이 입구 쪽에 많이 놓여 있다. 성균*대 정보공학과 **연구실 일동. 성균*
대 약학과 **연구실. 두개는 붙어 있지만 나머지 화환들은 패를 지어 나눠 대치
하고 있었다. **한의원 누구. 한약사 협회** 기타 등등. **제약회사. 전국 약사
협회 누구. **약국 누구. 기타 등등.
방송으로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려 왔다.
긴장 된다. 신랑측 푯말 앞에 서서 신부 대기실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예쁜 미소를 머금은 하얀 천사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았다. 다들 그 모습을
부러워 하는 표정이다. 하하, 진짜 예쁘다. 그녀가 지금 내게로 오고 있다.
사회자를 내 불쌍해서 내 친구들 제쳐 두고 배군으로 했다. 잘해야 되는데...
"마이크 테스트! 신랑 신부 준비 하세요. 테스트! 테스트!"
잘못 시켰다. 제기랄...
누나 친구들의 경호(?)를 받으며 신부가 풍선으로 만들어 놓은 식장 입구 쪽으
로 다가 왔다. 나는 넋을 놓고 그 모습을 쳐다 보았다. 그녀는 말도 못 붙일 만
큼 예뻤다. 나는 아마도 선녀의 옷을 훔치고 바위 뒤에 숨어 있던 동화속의 그
사람 같은 모습일게다. 옆에 계시던 아버지가 날 떠밀었다. 따지 듯 실 고개를
돌렸다.
"넌 안들어 갈거야?"
아 맞다. 내가 저 여자 신랑이구나.
신부 옆에 가 섰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미소와 다른 무언가를 담은 표정으
로 다소곳하다. 그녀와 팔짱을 꼈다. 그녀가 날 쳐다 보며 어색하게 입을 열었
다.
"아직 아니야."
꼈던 팔짱을 풀고 주위를 살피며 머쩍은 웃음을 지었다. 처음엔 다 그러는거지.
"신랑 입장!"
드디어 입장이다. 브이자를 그리며 여유있는 모습으로 입장하고 싶었지만 사람
들의 시선 때문에 다소 굳은 모양으로 앞만 보고 걸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나
와 누나의 미래를 축하해주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다. 엄숙해 보였다.
"신부 입장."
피아노와 현악 오중주. 오중주는 아닌 거 같다. 네 명뿐이다. 제법 거창하네.
드디어 신부가 내게로 오고 있다.
"이제 팔짱 껴도 되지?"
"들려."
"헤헤."
원래 큰절 하는 거 아닌가?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신랑은 큰절을 하던데... 사람
들이 웃었다. 처음엔 다 그렇지 뭐.
옆에 아름다운 신부를 두고 주례사를 들었다. 아버지 선배 분으로 한의학계에
서 알아 주시는 분이었다.
"... 산삼은 오래 되야 효력을 발휘하고 가치가 높 듯 결혼생활도 마찬가집니
다. 조급하지 말고 세월을 감싸며 오래 된 산삼처럼... ... 요즘 같은 인스턴트
시대에 화톳불에 약탕기를 올려 놓고 쓴 연기를 불어가며 약을 다리던 예전 어머
니같은 그런 모습의 신부가 되기를 바라며 바로 약효를 기대하고 화학 작용으로
언젠가는 부작용을 야기하는 양약 같은 그런 사람은 되지 말고 지긋하게 익어가
는 한약처럼..."
여기 저기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 왔다. 여기 약사 분들이 참 많을텐데...
주례사를 마치고 부모님과 같이 하는 시간이 왔을 때 누나의 눈물을 보았다. 여
자가 평생 흘리는 눈물 중 저 눈물은 분명 베스트 파이브에 들어 갈 것이다. 고
운 눈물이다.
후우, 폐백식 까지 마치고 나니까 좀 정신이 드네요. 아침부터 힘들었어요. 예
쁘게 보이는 것도 좋지만 신부 화장 참 오래 하더군요. 머리 손질도 그렇고...
옷 입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배가 다 아프네요.
한복 차림으로 하객들이 모여 있는 뷔페 식당을 다녀 오고 나면 결혼식 행사는
끝이 납니다. 에구, 저 아줌마네요.
엄마, 아빠를 보니 눈물이 났어요. 그냥요. 감사의 눈물이겠죠.
피로연 장이다. 철수 친구 네 명과 은정이 친구 다섯 명이 모여 간단하게 피로
연을 가졌다.
"피로연이 무슨 필요가 있나. 그냥 가서 자면 되지."
철수는 공개적으로 그렇게 떠벌렸다. 그러나 친구들은 그런 철수의 마음을 몰라
주며 은정이에게 술을 권했다. 그리고 은정이 친구들은 후배, 동생들의 하는 짓
이 귀여운 지 재잘거리며 철수 친구들에게 호응을 했다.
"야, 송승헌. 그만 줘 임마."
"에이쒸. 신랑이 분위기 깨네. 신부만 있으면 되니까 쟤는 갖다 버려."
"뭐야 임마!"
둘이 말다툼 하고 있을 때 동엽이가 술 잔을 은정이에게 갖다 바친다.
"재수씨 제 잔도 한 잔 받으세요."
"너 생일 언제야 임마."
"다 그러는 거야. 안 그래요 재수씨?"
"후후, 그래 오늘은 봐준다. 하지만 동엽씨? 제가 선배거든요. 다음에 재수씨
그러면 죽을 줄 알어?"
"무섭네요?"
"그래, 너 철수씨에게 잘해?"
"철수씨? 철수야 너보고 철수씨랜다."
"이 새끼가 분위가 파악을 전혀 못하네. 그럼 신부가 신랑한테 씨자 붙이는 거
당연하지."
철수는 동엽이를 후딱 밀어 버렸다.
"에구구."
동엽이는 땅바닥에 픽 꼬꾸라 지면서도 헤헤 거리며 즐거운 표정이다. 벌써 술
에 취한 듯 하다. 철수는 못마땅했다. 벌써 11시가 넘었는데 파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야 되는데... 오늘 하루가 피곤했던 이유보다 철수에겐 다른
큰 이유가 있었다.
"안 피곤해요?"
철수는 친구들과 즐거운 은정이의 허리를 푹 찔렀다.
"응? 헤헤, 너 피곤해?"
"안 잘거야?"
"헤헤, 자야지."
은정인 술을 많이 마신 것 같다. 하긴 주는 술 넙죽 넙죽 다 받아 먹었으니까.
은정인 기분이 좋은가 보다. 그리고 뭔가 달래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
피로연은 자정이 다 되서 끝이 났다. 철수는 정신이 헤롱한 은정이를 부축하고
호텔 로비로 들어 섰다.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됐어요. 제 신부에게 손 대지 마요."
"네?"
"열쇠나 좀 갖다 줘요."
엘레베이터 안 철수는 자기 부축을 받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은정이를 보며
히죽 거리고 있다. 엘레베이터 거울에 얼굴을 비추며 웃어보고 이빨도 비추어보
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야! 누나 방 분위기 죽이지 않아요?"
"음냐."
철수는 호텔방의 아늑함과 고급스러움에 환한 말을 내 뱉었지만 은정인 눈이 풀
려 있었다. 그래도 철수는 기대했다. 은정일 침대에 눕혀 놓고는 자기는 바로 샤
워를 하러 들어 갔다.
"룰루 랄라! 크크크레이지 러브..."
노래를 불러 가며 온 몸에 비누거품을 묻히고 엉덩이를 실룩거렸다. 그리고 자
신 있게 수건으로 아랫 부분만 가리고 침대 앞으로 나왔다.
"뭐야 이거!"
은정이는 철수가 눕혀 논 그대로, 그 옷차림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었
다.
"음냐."
"누나? 일어나요."
"아이씨."
"아이씨? 첫날 밤인디?"
"불 꺼."
"플리즈. 제발 눈 좀 떠 봐요."
"나 졸려. 불 끄고 자자."
"에? 옷은 벗고 자야지."
"박철수?"
"왜요."
"헤헤, 사랑해."
"미툰데... 그냥 자는거야? 내가 옷 벗겨 줄까?"
"으으응. 빨리 불꺼."
철수의 손이 은정이 가슴으로 가자 은정인 몸부림 치며 등을 돌려 버렸다. 철수
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흑흑, 알았어요."
철수는 불을 꺼고 은정이 옆에 누웠다.
"이씨."
"음냐."
"에이쒸."
"음냐."
철수는 잠을 청하려다 도저히 안되었던지 벌떡 일어 났다. 그리고 불을 켰다.
은정인 등을 돌리고 철수 몫의 이불까지 다 뺏어 돌돌 말아 자고 있다. 히터가
켜져 있지만 다소 추워 철수는 구비된 잠옷을 입었다. 그리고 과감하게 은정이
를 일으켜 세웠다.
"누나? 겉옷은 벗고 자요."
은정이는 일으켜 세워졌으나 철수의 손이 떨어지자 마자 다시 픽 쓰러졌다. 철
수는 그런 은정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은정인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
철수는 노력해서 은정이의 겉 옷을 벗겨 주고 그녀가 말고 있던 이불을 빼앗아
다시 잠을 청했다.
"우쒸!"
철수는 누웠다 다시 벌떡 일어 났다. 멀뚱히 은정이만 쳐다 보다가 긴 한 숨을
내 쉬었다.
"야이 나쁜 놈아."
"새벽에 전화해서 무슨 말이야. 첫날 밤 어땠냐?"
"니가 제일 나쁜 놈이야. 니가 제일 많이 먹였지?"
"응?"
"니가 누나에게 술 제일 많이 권했잖아. 나중에 니 결혼식 때 보자."
"잘 안됐냐?"
"송승헌! 그렇게 살지 마 새꺄."
철수는 한 참을 침대에 앉아 있다 승헌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나서 또
전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어? 수고하십니다."
"누구세요?"
"저 오늘 결혼 한 박철수라고 하는데요."
"아, 아. 근데 이 시간에 어쩐일로...?"
"누나 있으면 좀 바꿔 주실래요?"
"지금 자는데..."
"중요한 질문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그 참, 잠시만 기다려 봐요."
"감사합니다."
철수는 새벽 두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에 정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 철숩니다. 잘 들어 갔어요."
"응? 오늘도 챙겨주는거야? 고맙네."
"씨이. 내가 누나를 왜 챙기나."
"그래 신혼 첫날 밤에 아줌마에게 왠 전화?"
"뭐 좀 물어 봅시다."
"물어 봐."
"은정씨 그러니까 내 신부가 지금 술에 취해 그냥 자빠져 자거든요."
"그래서?"
"그냥 자야 되는거에요?"
"헛! 완전 맛이 갔니?"
"응. 아주 맛이 갔어."
"좀 많이 마신다 했다."
"깨울까?"
"그냥 자."
"첫날 밤인데?"
"할 수 없잖아."
"에이 쒸."
"에구 박철수!"
철수는 첫 날밤 그냥 잤다. 그 꿈꾸던 가슴도 한 번 못 만져 보고 억울함과 분
통함에 못이겨 이를 바득바득 갈며 어느 꿈나라로 가 있는지 모를 은정이 옆에
서 그냥 잤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은 일어나자 마자 바빴다. 호텔을 나오자 마자 부모님께 인
사 하느라 바빴다.
"나 어때? 괜찮아 보여?"
"어제보다는 낫네. 에구 불쌍한 박철수."
"니가 왜?"
"첫날 밤이었는데..."
"혼자 심심했어?"
"첫날 밤인데... 꺼이 꺼이."
"그럼 깨우지 그랬어."
"깨워? 깨워서 뭐 하게?"
"응?"
오전에는 철수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려야 했고 또한 여행 출발 준비도 해야 했
다. 그리고 오후에는 은정이 외할아버지가 한국에 오셨다.
결혼 식 다음 날 오후에는 외할아버지를 맞으며 처가댁에서 철수와 은정인 자리
하고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은정이와 참 격이 없었다. 철수는 그런 외할아버지
께 은정이에게 못되게 굴면 용서치 않겠다는 으름장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덕담
도 들었다.
철수는 저녁까지 처가댁 신세를 지고 저녁 8시경에 자리에서 일어 섰다.
"자네도 여기서 자고 가."
아버님이 그런 철수를 붙잡았다.
"내일 일 때문에 준비할 게 많아요."
"그럼 은정이 너도 따라 가."
"할아버지 오셨는데?"
"은정씨는 여기서 자고 와요."
"너 혼자 갈거야?"
할아버지와 붙어 있던 은정이가 철수를 쳐다 보며 말했다.
"쓰으, 말버릇 고쳐."
어머님이 따끔하게 은정이를 꾸짖었다.
"새로 살 집에 가 봐야죠. 은정씨는 그럼 내일 아침 일찍 그 곳으로 와요. 집
에 들렸다 그리 가 있을게요."
"잘 가."
'서러버라.'
철수는 잠시 집에 들렸다 아버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다음 은정이와의 미래
를 꾸밀 보금자리로 갔다.
그 곳에서의 느낌은 좋았지만 철수는 지금 혼자다. 베낭을 챙기며 많은 상상들
을 하고 웃고 있지만 억울하다는 듯 간혹 우쒸,라는 말을 뱉어냈다.
"우쒸, 오늘도... 어떻게 된게 결혼하고 바로 권태기여 뭐여. 전화도 없어? 설
버라."
철수는 짐들을 다 챙겨 두고 침대에 누웠다. 하얀 형광등이 불을 밝히고 있는
천정을 보며 넓은 침대에 홀로 누워 눈을 말똥거리고 있다.
"더블 침대라 좋다. 누나는 뭐 하고 있을까?"
철수는 불을 켜 둔채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딩동!"
철수는 벌떡 일어 났다. 그리고 시계를 보았다. 새벽 3시 17분. 철수는 그걸 보
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딩동!"
철수는 다시 일어 났다.
"딩동! 딩동!"
철수는 달려 나가 문을 열었다. 은정이가 작은 가방을 들고 들어 와 웃는다.
"헤헤, 나 보고 싶었지?"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이긴 낭군님 보고 싶어 왔지."
"아, 여기 누나하고 내가 살 집이지 참. 할아버님은?"
"주무셔. 몰래 나왔어."
"허허."
"짐 챙겼어?"
"응. 누나 것은 다시 한 번 점검 해."
"알았어. 잤니?"
"응."
"씨."
"왜?"
"난 네가 보고 싶어 잠이 안오던데. 그래서 달려 왔는데..."
"헛! 그런 사람이 어제는 그렇게 퍼질러 잤냐? 첫날밤인데 씨..."
"오늘 첫날밤 하면 되지."
"정말?"
철수는 갑자기 신났다.
"너 어디가?"
철수는 방으로 들어 가지 않고 욕실로 가며 윗도리를 벗으려고 하고 있다.
"첫날 밤 하자며?"
"준비할 게 많잖아. 내일 아침은 우리집 가서 먹어야 돼. 할아버지께 인사는 하
고 가야지. 그리고 자기 집에도 가야 되잖아."
"첫날 밤 하고 준비하면 안될까?"
"왜 그리 밝히니? 시간 별로 없어."
"내 것은 다 챙겼어."
"방으로 들어 와."
철수는 할 수 없이 짤래 짤래 은정이를 따라 방으로 들어 갔다.
"야 좋다. 여기가 철수와 내가 잠들고 깰 방이란 말이지?"
"그 철수라 부르지 말고 서방님으로 해 주면 안될까?"
"흠, 하는 거 봐서. 베낭이나 들고 와 봐."
"그러지요. 근데 누나?"
"왜?"
"옷 안 갈아 입냐?"
"무슨 옷?"
"야한 잠옷."
"으이그."
철수는 베낭 두개를 은정이 앞에 놓아 두고 침대에 앉았다. 베낭 둘 다 여유가
있어 보였다. 신혼 여행이라 보통 베낭 여행 보다는 여유로운 자금이 있다. 베낭
의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먹을 것이 이 둘에게는 빠져 있었다.
"큰 베낭 둘은 낭비다."
"그럼?"
"하나는 작은 베낭으로 바꾸자. 베낭 때문에 괜히 번거롭게 하지 말자구."
은정이는 철수가 챙겨 두었던 베낭 속의 짐들을 하나 둘 씩 꺼내기 시작했다.
철수는 시계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숨을 내 쉰다.
은정이는 큰 베낭 하나를 치우고 학교 가방을 들고 왔다.
"그건 아무래도 댁이 짊어 질 것 같수."
"맞아. 속옷이나 양말 같은 건 이리 줘."
짐이 배분 되었다. 철수가 짊어 질 베낭은 아까보다 더 뚱뚱해지고 무거워 졌
다.
"나는 더 번거롭게 됐는데?"
"너 남자잖아. 이 것도 못 드냐? 옷이 많아서 보긴 저래도 안 무거워."
"말 잘했다. 베낭 여행인데 무슨 옷이 그리 많냐?"
"신부가 예뻐 보이는게 싫어?"
"자기 짐은 자기가 들고가기 하자."
"여전히 속이 좁구나? 부부는 일심동체 몰라? 니거 내것이 어딨냐."
"내가 안 좁아지게 됐냐?"
"왜?"
"그제 결혼식 올렸는데... 언제 첫날 밤 할겨?"
"푸우! 너 디게 밝힌다. 총각 땐 안그랬잖아."
"그때는 내가 누나를 조심해서 그런거구. 이젠 누나 말처럼 부분데."
"씻고 올까?"
"지금 시계 봐라."
"다섯시 반이네?"
"누나집 갔다 우리집 갔다 9시반까지 공항 도착하려면 지금 나갈 준비 시작해
야 돼."
"그러네."
"씨."
"후후, 철수씨?"
"왜?"
"잠시만 누웠다 가자."
"뭐하려구?"
"한 번 안겨 보게."
동이 터 오른다. 침대 위에는 철수가 은정이에게 팔 베개를 해 주며 웃고 있
다. 은정이는 그런 철수에게 안겨 있다.
'하하, 잘 살아야지. 암. 사랑하며 눈 감는 그 날까지 그대는 내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가슴이나 함 만져 볼까?'
'따뜻하다. 그래 사랑하는 사람의 품은 따뜻하다. 그의 가슴이 항상 따뜻하도
록 내 그대를 위하며 살겠습니다. 근데 어떻게 잡고 살지?"
창 밖은 아직 어둠이지만 이제는 아침이다. 은정이와 철수는 침대에 누워 마주
보며 웃고 있다. 저렇게 계속 안고 있으면 아침이 참 바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