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기능 중심 대수술’…109개 기관 통합·감축
물기술인증원·물산업클러스터등 ‘물산업진흥원’ 신설
LH는 기능별 2개 기관으로/ 발전 5사 한국발전 통합
정부가 인공지능(AI) 대전환과 기후위기, 에너지 안보, 공급망 재편, 저출생·고령화 등 복합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공공기관 기능개혁에 본격 착수한다.
이번 개혁의 핵심은 단순한 기관 수 감축이 아니라 유사·중복 기능을 통합하고 국가 전략산업의 역량을 결집하는 ‘기능 중심 구조개혁’이다.
정부는 ▲전략적 구조개혁 15개 기관 ▲유사·중복 기능 일원화 11개 기관 ▲자회사·소규모 기관 통합 83개 기관 등 모두 109개 기관을 통합·감축한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공공기관이 기능별로 지나치게 세분화되면서 유사 업무가 중복되고, 기관별 조직·인력·시설·관리비용이 증가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작은 기관을 많이 두는 방식’에서 벗어나 기능을 중심으로 규모와 역량을 재편하는 공공기관 운영체계로 전환한다는 구상이다.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한국전력 산하 발전 5사의 통합이다.
한국남동발전·한국남부발전·한국동서발전·한국서부발전·한국중부발전을 하나의 법인인 가칭 ‘한국발전’으로 통합한다.
발전 5사는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따라 발전부문을 경쟁체제로 전환하면서 각각 독립 법인으로 출범했다. 이후 발전설비 건설·운영과 연료 조달, 재생에너지, 연구개발 등을 별도로 수행해 왔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에너지 안보, 대규모 전력수요 증가, 재생에너지 확대 등 에너지산업 환경이 급변하면서 분산된 발전사 체계만으로는 국가 차원의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통합의 목적은 단순한 조직 축소가 아니라 재무·인적 역량을 결집해 재생에너지 투자를 확대하고 해외사업 경쟁력과 구매·조달 협상력을 높이는 데 있다.
특히 해상풍력 등 대규모 재생에너지 사업과 석탄발전 폐지 및 지역 산업전환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통합법인의 전략기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발전 5사 통합은 공공기관 효율화 차원을 넘어 석탄 중심 발전체계에서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산업 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거버넌스 개편이라는 의미가 크다.
물산업도 통합하여 ‘물산업진흥원’ 신설
물산업 분야에서는 분산된 인증·실증·기업지원·산업육성 기능을 하나로 묶는 가칭 ‘물산업진흥원’ 설립이 추진된다.
한국물기술인증원과 물산업클러스터, 물기자재성능인증센터, 물산업협의회 등 관련 기관과 기능을 통합해 물기업 지원체계를 일원화하는 방안이다.
현재 국내 물산업은 기술 인증과 실증, 기업지원, 산업육성, 해외진출 지원 등이 여러 기관에 나뉘어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지원체계를 파악하기 어렵고 기관 간 기능 중복도 적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통합이 이뤄지면 기술 인증→실증→사업화→시장 진출→해외 수출로 이어지는 기업 지원의 전주기를 하나의 체계로 연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의 용수 수요가 증가하고 기후위기로 물안보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물산업을 단순한 환경서비스 산업이 아니라 국가 물안보와 첨단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전략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현재 물산업 정책과 지원 기능은 환경부를 중심으로 한국환경공단, 한국수자원공사(K-water),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한국물기술인증원, 한국상하수도협회, 한국환경산업협회, 물산업협의회 등 여러 기관과 민간조직에 분산돼 있다.
이에 따라 이번 통합의 성패는 단순히 기관을 하나로 묶는 데 있지 않고 국내 물기업의 기술개발과 인증, 실증, 사업화, 해외진출을 실제로 연결하는 산업 플랫폼을 구축하느냐에 달렸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규제·인증·감독 등 공공성이 필요한 기능은 공공이 담당하되, 산업진흥과 기업협력, 시장개척 등은 민간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후·에너지 분야에서는 한국에너지공단을 중심으로 한국에너지재단과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을 통합한다.
에너지 정책 집행과 에너지복지, 정보·홍보 기능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 정책 집행력을 높이고 기관별 조직과 관리비용의 중복을 줄인다는 취지다.
생태·생물자원 분야에서도 국립생태원을 중심으로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과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을 통합한다. 생태계 조사·연구와 생물자원 보전·연구 기능을 통합해 연구 역량을 집중하고 기관 간 유사 기능을 줄인다는 방침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통합이 아닌 기능별 분리를 통해 조직과 재무구조를 재편한다.
택지개발·주택건설 기능은 가칭 주택도시개발공사, 주거복지·자산비축 기능은 가칭 주택도시자산공사로 분리하는 방안이다.
공공주택 공급과 주거복지라는 서로 다른 정책목표를 분리해 전문성과 책임성을 높이고, 주택공급 정책의 추진력과 주거복지 기능을 강화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 개혁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자회사와 소규모 기관이다.
정부는 모두 83개 기관을 대상으로 수평적 통합을 추진한다.
대표적으로 한국중소벤처기업유통원과 공영홈쇼핑을 통합해 가칭 ‘중소기업마케팅진흥공사’를 설립하고, 한국창업보육협회와 창업진흥원을 창업진흥원으로 일원화한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한국연구재단과 과학기술사업화진흥원을 통합해 연구개발과 기술사업화 지원체계를 단일화한다.
정책금융기관의 시설관리 자회사들도 통합해 기관별로 분산된 시설관리 기능을 공동화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국토교통 분야에서는 코레일 자회사들의 기능을 고객서비스와 유통·물류 분야로 묶어 통합하고, 자동차손해배상 관련 소규모 기관들도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으로 일원화한다.
해양수산 분야에서는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 등 지방별 항만공사를 가칭 ‘한국항만공사’로 통합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항만별 독립 운영체계에서 국가 차원의 통합적인 항만개발과 투자체계로 전환해 글로벌 물류환경 변화에 대응한다는 취지다.
문화체육관광 분야에서도 예술경영·공예디자인·문화공간 등 유사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들을 통합해 가칭 ‘한국문화예술산업진흥원’으로 재편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109개 기관의 통합·감축은 공공부문 구조개혁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기관을 합치는 것만으로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통합 과정에서 기존 기관의 업무와 인력, 지역 기반, 전문성을 어떻게 재배치하고 새로운 조직의 권한과 책임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
특히 발전 5사 통합은 에너지전환과 함께 기존 발전산업의 지역경제와 고용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 물산업진흥원 역시 기관 통합 자체보다 국내 물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해외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실질적인 산업 플랫폼으로 작동해야 한다.
정부는 각 부처가 기관별 기능개혁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고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통해 개혁안을 순차적으로 확정할 계획이다.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안은 국회와 협의해 입법을 추진하고, 지역과 노동계와의 협의도 병행한다.
통폐합 과정에서 임원을 제외한 직원의 고용승계를 보장하고 통합 전후 처우가 저하되지 않도록 한다는 원칙도 제시했다.
결국 이번 개혁의 평가는 ‘몇 개 기관을 없앴느냐’가 아니라 통합 이후 국민과 기업이 체감하는 서비스와 국가의 정책 수행능력이 얼마나 향상됐느냐에 달려 있다.
AI 대전환과 기후위기, 에너지·물안보, 인구구조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109개 기관의 통합·감축이 단순한 조직 슬림화를 넘어 국가 전략산업의 경쟁력과 공공서비스의 생산성을 높이는 구조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환경경영신문 https://ionestop.kr// 신찬기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