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李仲燮) 2
김춘수
아내는 두 번이나
마구간에서 아이를 낳고
지금 아내의 모발(毛髮)은 구름 위에 있다.
봄은 가고
바람은 평양에서도 동경에서도
불어오지 않는다.
바람은 울면서 지금
서귀포(西歸浦)의 남쪽을 불고 있다.
서귀포의 남쪽
아내가 두고 간 바다
게 한 마리 눈물을 흘리며, 마구간에서 난
두 아이를 달래고 있다.
(시집 『남천(南天)』, 1977)
[작품해설]
이 시는 불행한 삶을 살았던 화가 이중섭의 서귀포 생활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이중섭은 1916년 평남 평원에서 태어나 오산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 도쿄문화학원 재학 시절인 1937년 일본의 전위적 미술단체의 ‘자유미협전’에 출품하여 ‘태양상’을 수상하면서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이중섭은 1945년 귀국, 원산에서 일본 여성 ‘이남덕(본명 山本方子)’과 결혼하고, 원산사범학교 교원으로 있다가 6.25때 월남하였다. 그는 종군 화가 단원으로 활동한 후 부산, 제주, 통영 등지를 전전하며 작품 활동을 하였으나, 재료가 없어 담뱃갑 은박지를 화폭 대신 쓰기도 하였다. 그는 1952년 부인이 생활고로 두 아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후, 부두 노동을 하다가 정부의 환도(還都)와 함께 상경하여, 1955년 미도파 화랑에서 단 한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 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예술에 대한 회의, 생활고로 인해 정신 분열 증세를 나타내다가, 1956년 간염으로 타개하였다.
1951년 한 해 동안 서귀포에서 생활하면서 이중섭은 적은 양의 배급과 고구마, 그리고 바다에 나가 잡아 온 게로 연명을 하면서도 작품 창작에 몰두하여 「피난민과 첫눈」 · 「서귀포의 환상」 · 「섶이 보이는 서귀포 풍경」 · 「바닷가의 아이들」 등을 창작하였다. 특히 이 때 오랜만에 평온한 눈빛을 가진 소를 목격하고는 다시 소 그리기에 열중하였다고 한다. 아내가 두 아이를 데리고 일본으로 떠난 후, 이중섭은 그들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담은 여러 작품을 창작하는데, 그 대표적 작품이 제주 생활을 체험으로 한 「물고기와 노는 세 아이」 · 「가족」 등이다.
「이중섭」 연작시(1~7)는 바로 이 그림들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이다. 김춘수는 이 연작시를 통해 가난한 시대에 문학에만 매달려 있는 자신의 생활의 어려움과 그런 어려움 속에서 문학하는 참 의미를 탐구하고자 하였다. 말하자면 예술가로서 불행하게 살다 간 이중섭의 삶과 예술의 의미를 통해 자신의 그섯들을 점검해 보고자 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특히 「서귀포의 환상」과 「물고기와 노는 세 아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서귀포의 환상」은 낙원에의 열망과 평화와 풍요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평화로운 자연에서 노는 아이들을 환상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물고기와 노는 세 아이」에는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큰아들이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과 일본에 가 있는 두 아이에 대한 그리움이 잘 나타나 있다.
처절할 만큼 가난했던 시적 화자의 아내는 ‘두 번이나 / 마구간에서 아이를 낳고’는 지금은 먼 곳으로 떠나 버린 상태이다. 화자는 ‘구름’을 닮은, 아내의 ‘모발’을 떠올리며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다. 고향인 ‘평양’에서도 아내가 가 있는 ‘동경’에서도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 같은 외로움 속에서 다만 아내의 그리움만이 마치 서귀포 남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인 듯 끊임없이 몰아쳐 온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그 시절, 아내와의 사랑이 고스란히 서려 있는 서귀포 바다, 아이들과 함께 게를 잡으며 줄겁게 놀던 추억이 온전히 남아 있는 그 곳을 떠올리며 화자의 그리움은 마침내 서귀포 남쪽 바다를 건너 간다. 아이들도 그 때를 그리워하며 아빠가 보고 싶어 울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화자는 아이들이 좋아하던 게가 되어 아이들의 울음을 달래 준다. 이렇게 이 시는 이중섭의 예술 세계와 함께 그것에 깃들여 있는 그의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잘 나타낸 작품이다.
[작가소개]
김춘수(金春洙)
1922년 경상남도 통영 출생
일본 니혼대학 예술과 중퇴
1946년 『해방 1주년 기념 시화전』에 시 「애가」를 발표하여 등단
1958년 제2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59년 제7회 아세아자유문학상 수상
대한민국문학상 및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
경북대학교 교수 및 한국시인협회 회장 역임
시집 : 『구름과 장미』(1948), 『늪』(1950), 『기(旗)』(1951), 『인인(隣人)』(1953), 『제1집』(1954), 『꽃의 소묘』(1959),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1959), 『타령조(打令調)·기타』(1969), 『처용(處容)』(1974), 『김춘수시선』(1976), 『남천(南天)』(1948), 『비에 젖은 달』(1980), 『처용 이후』(1982), 『꽃을 위한 서시』(1987), 『너를 향하여 나는』(1988), 『라틴 점묘』(1988), 『처용단장』(1991), 『돌의 볼에 볼을 대고』(1992),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1993), 『서서 잠자는 숲』(1993), 『김춘수시선집』(1993), 『들림, 도스토예프스키』(1997), 『의자와 계단』(1999), 『가을 속의 천사』(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