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한·일병탄 조약 체결 직후 덕수궁 석조전 앞에서
조선총독부 관리와 이완용 등 매국노들과 고종과 순종)
1. 이근택
조선귀족을 6명 배출/ 이근택 5형제를 '5귀'라고 함/ 구한말 군부대신으로 을사늑약 조인/
1910년 한·일병탄조약 체결에도 관여/ 자작/ 아들 창훈에게 습작
/ 형 이근호 (남작 작위: 매국형 친일파)
후손 : 친일 재산 반환 소송 9건(2005까지))
- 장남 이상우 : 공주대 총장 역임(1998졸)
- 차남 : 공주대 물리학과 명예교수(현재)
2. 민영휘
(조선왕족/ 조선병합지지/ 자작/ 매국공채 5만원/ 부정축재-조선최대갑부 반열)
- 손 민병도 : 제일은행장, 한국은행총재 지냄
- 증손 민웅기 : 남이섬 소유
- 증손 민인기 : (대치동) 휘문고교 이사장(현/ 교정에 민영휘 동상 세워져 있음)
- 현손 민경현 : (인사동) 풍문여고 이사장(현)
* 기업체 경영 등 사회 각계로 진출한 민영휘의 후손들은 자신들이 친일파로 분류되는 데 불만이다.
휘문의숙을 세워 교육에 헌신한 공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제 때 이미, 조선총독부로부터 교육 관련 표창장을 받은 것을 보면,
그들의 교육사업 진출이 친일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자손들 간에 현재 김홍도의 인물도, 장승업의 병풍, 그리고 토지 등에 대한 재산 싸움이 한창이다.
3. 이병무
(1907년 대한제국 군부대신/ 군대 해산에 앞장 - 해산된 군대가 의병을 일으키자 강경 진압/
병탄 조약 체결에 협조/ 자작)
- 증손 이 진 : 12대 국회의원/ 환경처 차관/ 웅진그룹 환경경영담당 부회장(현)
4. 민병석
한·일병탄 조약 체결에 가담/ 이완용의 처사촌이자 친구/ 이토 히로부미 장례 조문사절단장/ 자작/
총독부 중추원 고문을 다섯 차례에 걸쳐 역임한 대표 친일파)
- 자 민복기 : 경성제대 법과를 나와 식민지 사법부에 진출/ 정부수립 후 제 5·6대 대법원장(우리나라 법조계의 거물)
- 손 민경성 (민복기의 1남) : 일본계 기업체 사장
- 손 민경택 (민복기의 2남) : 서울지법 판사, 서울지검 검사, 변호사(졸)
- 손 민경삼 (민복기의 3남) : 기업체 사장(서울대, 노스웨스턴대)
5. 박제순 (을사오적 중 1)
(을사늑약 전권대신으로 조인 총괄/ 1910년 내부대신, 병탄 조약 체결도 앞장/ 자작/ 중추원 고문)
- 자 박부양 : 중추원 서기관/ 이완용의 손자 이병길과 나란히 조선 귀족 모임인 동요회 이사를 지내면서
일제 강점기 내내 부귀영화를 누림)
- 손 박승유 : 서울대 음대와 남가주 대학 음대를 졸업 후 강원대 음대 교수 역임.
6. 이해승
(선족의 종친/ 후작/ 매국공채 16만원 받음/ 태평양전쟁 미화 등 적극적 친일/
광복 후 반민특위에 끌려갔지만 이승만 정부가 반민특위를 해체하면서 풀려남)
- 손 이우영 : 그랜드 힐튼 서울호텔 회장 겸 동원 inc 회장.
* 친일재산조사위원회는 이해승이 친일 대가로 경기도 포천에 조성한 토지 약 200만㎡(
시가 300억원대)를 국가 귀속하기로 결정.
7. 조중응
(명성황후 폐비 조처를 주도, 시해에 도움/ 10년간 일본으로 망명/
이완용 내각 농상공부대신으로 한·일병탄에 앞장/ 자작/ 은사금 10만원/ 중추원 고문)
* 정실부인을 서울에 두고 일본 여성과 도쿄에서 따로 결혼, 일
본 부인과 자녀가 조중응 사후 작위와 재산을 일본으로 가져감/ 멸문
8. 이완용
(구한말 내각총리대신/ 매국노의 상징/ 중추원 고문/ 백작/ 은사금 15만원/ 3·1운동 비난 담화를 발표/
후작으로 승작/장손자 이병길이 작위와 재산 받음)
- 증손 이윤형 : 광복후 은신, 60년대 대한사격연맹 사무국장/ 그 뒤 17년간 캐나다 생활/
80년대 말, 국내에 들어와 이완용 땅찾기 소송/ 승소, 수십억원을 챙김)
- 삼손 이병주 : 일본으로 밀항-귀화/ 일본 정부 환대
- 증손 이석형(이병주의 아들) : 1979년, 이완용 부부의 묘(전북 익산군)를 파내 화장함.
9. 송병준
(이완용과 쌍벽 매국노/ 구한말 농상공부대신, 내부대신/ 한·일병탄 때 친일 매국단체 일진회 총재 자격으로 병탄에 앞장/
백작/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왕실재산조사위원장을 맡아 전국 각지의 토지대장 수천만 평에 자기 이름 석 자를 새김)
- 자 송종헌 : 재산과 작위 물려받음
중추원 참의 - 조선농업주식회사를 설립해 전국적 세도가로 행세
- 손 송재구 : 일본 메이지 대학 졸업/ 홋카이도에 '조선목장'2640만㎡(약8백만평)경영/
광복 후 용인 99칸짜리 저택과 전답을 긴급 처분한 뒤 서울로 피신했으나 반민특위에 체포/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1949년 뇌일혈로 사망)
- 증손 송돈호 : 건설회사 운영(역삼동)/ 90년대 이후 서울·경기·강원 등 송병준 명의 토지 상속소송을 주도/
각종 사기 사건으로 2007년 4월 구속/ 2008년 초 보석/
헌법재판소에 친일재산 특별법 위헌소송 - 기각/ 여전히 땅 찾기에 집요)
10. 중추원 참의 출신들
(70여 명/ 1921년부터 3년 임기제-일제 식민지배 공헌도에 따라 돌아가며 역임/ 광복
후 사회·경제적으로 매국형 친일파보다 더 강고한 기득권을 구축)
1) 문명기
(일제 당시의 거부/ 제지업과 수산업, 금광 개발업/ 조선국방비행헌납회를 조직해 비행기 헌납운동/
가미카제 특공대를 옹호하는 친일 활동/ 해군 '헌함운동'도 벌이며 앞장서 자기의 광산을 일제에 기부/
이런 공로로 1941년 중추원 참의)
- 장손 문태준 : 7-10대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역임, 현재 남평 문씨 대종회장
2) 최준집
(강릉 갑부/ 중·일전쟁 발발 직후 회갑연 취소-국방헌금 1000원-매일신보에 보도/
1936년 중추원 주임참의에 임명된 후 1941년 연임)
- 자 최돈웅 : 8·14·16대 국회의원, 2002년 대선 때 대기업을 상대로 불법 선거자금을 거둔 혐의로 복역하다 특사로 풀려남.
3) 김연수
(호남 지방의 대지주/ 도쿄 제국대학 졸업/ 경*직 사장-총독부가 발간한 xxx/ 1940년 중추원 참의/
태평양 전쟁 때 거액의 국방헌금 +여러 친일단체 간부로 학병지원 연설/
광복 뒤 반민특위에 체포됐다가 특위가 해체되면서 풀려남/
1961년 전경련의 전신인 전국경제협의회장을 맡는 등 재계 원로로 행세) 7남6녀를 둠
- 장남 김상준 : 삼양염업 명예회장
- 차남 김상협 : 16대 국무총리
- 삼남 김상홍 : 현 삼양사 명예회장
- 오남 김상하 : 현 삼양사 회장
4) 현준호
(호남 부호/ 1920년 호남은?설립, 대표/ 한때 민족교육에도 관심을 보였으나,
1930년 중추원 참의가 되고부터 일제와 밀착 행보/ 1935년 에 이름 오름/
태평양 전쟁 말기까지 징병제 홍보와 학병지원 권유 등에 적극 가담/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 피살)
- 자 현영원 : 현대상선 회장(슬하에 4녀를 둠)
- 손 현양래 : 현우실업 대표
- 손 현정은 : 현대그룹 회장(현영원의 2녀)
* 현영원의 처인 김문희의 동생이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
(앞줄 왼쪽-손자 이병주, 가운데-이완용 본인, 안긴 아이는 손자 이병철, 뒷줄 왼쪽-손자 이병길,
뒷줄 가운데-차남 이항구, 뒷줄 오른쪽-손자 이병희, 출처: 위키백과)
( 이완용의 묘 : 친일행각에 분노한 지역주민들에 의해 그의 일가가 쫏겨나고.......
사람들에 의해 식칼이 꽂히기도 했다는 그의 묘는 파헤쳐져서 화장되었으며 그의 관뚜껑은 박물관에 보관되다....
같은 이씨인 이병도에 의해 불태워졌다는.....)
“아일랜드는 300년 만에 압박을 벗었고 유대 민족은 2천년을 나라 없이 떠돌아다녔으나,
그들은 민족의 전통을 상실하지 않았다.
우리가 불과 35년으로 이 지경까지 타락했었다는 것은 단순히 친일자들의 수치로만 끝날 일이 아니다.
민족 전체의 수치로서, 맹성은 물론 환골탈태의 결사적 고행이 수반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청산이 아니라 오히려 온존된 일제의 잔재는 이 땅의 구석구석에서 민족의 정기를 좀먹었고,
민족의 가치관을 학살하였다.
이 흙탕물을 걷어내지 못하는 한 민족의 자주는 공염불이요,
따라서 민족의 통일도 백일몽이다.”
- 재야사학자 故 임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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