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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2월 20일
문세광의 사형을 사형 확정 사흘만에 집행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을 시도했던 재일 한국인.
일본식 통명은 난조 세이코(南條世光)이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을 일으켰다.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은 실패했으나,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총에 맞았고 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사망했다.
문세광은 현장에서 체포되어 재판을 받아 사형을 선고받았고,
1974년 12월 20일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향년 2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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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칼의날
박정희 대통령이 기념사를 낭독하던 중 뛰어나오면서 총을 발포하였으나, 대통령의 암살에는 실패했고, 그 와중에 육영수 여사가 총에 맞아 사망했다.
문세광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문세광은 즉시 체포되어 중앙정보부 조사실로 압송되었다.
그러나 쏟아지는 구타에도 불구하고 완강히 입을 열지 않아 전혀 수사가 진행되지 못했는데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의 법무비서관이던 김기춘 검사가 투입되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8월 초순 김기춘은 가족과 함께 대천해수욕장으로 여름 휴가를 가서 막 한국어 번역판이 나온 자칼의 날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한다.
그가 휴가에서 돌아온 지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이 사건을 맡게 된 것이다.
임무를 맡은 김기춘은 하루빨리 범행 동기와 배후세력 등을 파악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8월 16일 김기춘은 일본어를 구사하는 정보부 수사관을 대동하고 문세광을 첫 대면했다. 그 때까지 문세광은 30시간 동안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김기춘: 소설 「자칼의 날」을 읽었지요?
문세광: 네, 읽었습니다. 선생님도 읽었습니까?
김기춘: 나도 재미있게 읽었소. 그런데 당신이 바로 자칼이 아니오?
문세광: 그렇습니다. 내가 바로 자칼입니다.
김기춘: 당신의 사상은 무엇입니까?
문세광: 나는 공산주의를 신봉합니다. 나는 공산혁명을 이룩하려는 한 수단으로 여기에 왔습니다.
김기춘: 그렇게 혁명을 하겠다는 사람이 왜 이렇게 비겁하게 입을 다물고 있소이까?
이렇게 김기춘은 회고에서 문세광에게 "'내가 소설 자칼의 날을 읽었는데, 당신이 자칼이 아니냐'고 추켜세우자 문세광이 여기에 감명 받아 술술 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저런 방법보다는 고문 등의 강압적 방법으로 불게 했다고 보고 있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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