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프(salaf)는 아랍어로 ‘조상’ 또는 ‘선조’를 뜻한다.
이슬람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시기’라는 7세기 이슬람 초기 공동체의 세 세대, 즉 예언자 무함마드와 그의 교우들(sahaba), 그리고 제3세대까지의 계승자들(tabaiyun)을 가리킨다.
살라피야(salafiyyah) 즉 살라피즘은 그때의 원칙과 정신으로 돌아가, 후세의 일탈과 왜곡을 일체 배격하자는 수니파 복고 정통주의다.
살라피야의 가장 명확한 출발점은 18세기 중반 와하비즘의 대두다.
압드 알와하브는 무함마드 시대로 돌아가 코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며 성지 순례나 묘비까지 배격하는 등 극단적으로 엄격한 교리를 주장했다.
“이를 따르지 않는 자에게는 죽음이 마땅하다”
라고도 했다.
와하브는 네지드 사막의 족장 이븐 사우드와 동맹을 맺고 주변 지역을 공격해 ‘개종이냐 죽음이냐’는 공포의 선택을 강요했다.
동맹은 1801년 이라크의 성도 카르발라를 점령해 5천여명을 학살했다.
메카와 메디나에서도 무덤과 성지를 파괴했다.
오스만튀르크와 이집트에 쫓겨 사막으로 사라졌던 이들은 20세기 초 종교 민병대 ‘이크완’(아랍어로 ‘형제들’)으로 돌아왔다.
사우디 왕국 건설의 주력군으로 파죽지세로 아라비아 반도를 휩쓸었던 이크완은 생포한 모든 남성을 참수했다.
그 과격성에 위협을 느낀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에 의해 이크완은 1930년 궤멸한다.
2006년 결성된 극단적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도 살라피즘은 절대적이다.
‘이슬람국가’는 100년 전, 200년 전처럼 빠르게 세를 넓히고, 납치와 참수 등으로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사우디의 한 살라피 성직자는 “‘IS’는 살라피야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물론,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 인구의 절반, 사우디 인구의 23%쯤인 살라피스트들이 모두 그 추종자는 아니다.
살라피야에는 과격 근본주의 말고도 이슬람을 현대화하려는 모더니즘 운동 등 다양한 사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