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입는 컴퓨터'로 방송을 타면서 괴짜 천재, 시대를 잘못 만난 인물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정우덕. 전기차 오너이자 마니아이며 데이터 분석가이기도 한 그를 통해 들어본 전기차 이야기는 사뭇 진지하고 꽤나 흥미롭다
전기차를 사볼까 고민한다고요? 그럼 충전 여건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전기차는 충전이 가장 중요해요. 아파트라면 충전기는 몇 대나 있는지, 그 충전기를 사용하는 전기차가 많은지, 아파트나 공용 주택이 아니라면 가까운 곳의 충전시설과 상황을 면밀히 살피고 확인해야 합니다. 이게 생각보다 큰 문제예요."
2018년부터 쉐보레 볼트 EV를 타고 있는 정우덕 차장. 캐나다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 졸업 후 소프트웨어 1인 벤처회사를 세우기도 했던 그는, 1999년부터 2002년까지 IT기술 전문가로 활동하며 <초보자를 위한 인터넷 홈페이지 만들기 길라잡이> 등 여러 권의 컴퓨터 책도 썼다.
대학 시절 ‘웨어러블 컴퓨터 개발자’로 화제를 모아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출연한 적도 있다. 당시 방송을 봤던 내 기억 속에, 그는 기발하고 독창적이며 재미있는 인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십수 년이 흐른 지금, 전기차 오너이자 전문가인 그와 마주 앉았다.
20여 년의 세월은 괴짜 천재를 얼마나 바꿔놓았을까? 서울대에서 전력경제를 전공한 그는 지금 한국전력거래소에서 국내의 원활한 전력 수급과 공급을 책임지고 있다. 더 자세히는 대외협력팀에서 국제협력과 국제행사를 총괄한다.
업무 이외에도 그의 관심사는 풍성하다. 다양한 관심 분야의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직접 설계해 만들기도 한다. 틈틈이 전국을 누비며 천체를 관측하고 사진도 찍는다. 괴짜 이미지는 다소 옅어졌지만, 여전히 유쾌한 천재다.
"2018년부터 볼트 EV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에 한국에 출시됐죠. 그해에 바로 오너가 되고 싶었는데 아쉽게 탈락했어요. 2017년 첫해 국내 들어온 볼트 EV는 겨우 400대였어요. 그에 비해 구입하려는 사람은 너무 많았습니다. 결국 아쉽게도 다음 해인 2018년에 오너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제 구입 기준에 부합하는 전기차가 많지 않았어요. 적어도 한 번 충전으로 주행가능거리가 400km는 되어야 한다는 게 제 기준이었습니다."
땅덩이가 넓지도 않은 한국에서 긴 주행거리가 그렇게까지 중요할까? 그럼에도 그는 400km를 넘어 500km는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넉넉한 주행거리에 대한 이유는 명확하다. 일단 충전 강박을 줄이고 심리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아직 충전시설이 부족한 국내에서 500km라는 숫자는 상징적이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겨울철 배터리 효율은 떨어진다. 그걸 감안하면 500km는 되어야 여유 있는 실제 주행거리 400km를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고속충전기로 빠르게 채울 수 있는 충전량은 약 80%다. 당분간 충전 인프라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감안하면 주행거리 500km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전기차 구입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요? 경제적 측면으로 보면 이미 지났습니다. 제가 볼트 EV를 샀던 2018년이 가장 좋았어요. 주행거리 400km에 가까운 전기차가 등장했지만 당시 보조금 정책도 정점이었으니까요. 이제는 다른 측면으로 생각해봐야 합니다. 기술 발달로 효율성 좋은 배터리와 넉넉한 주행거리를 모두 갖춘 다양한 전기차의 등장, 고속충전기가 더 발전하고 충전 인프라가 늘어나는 시기 등을 두루 고려하면 3~5년 뒤에 다시 한번 전기차 구입 적기가 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합니다. 그때쯤이면 각자의 상황과 취향에 맞는 전기차를 선택할 수 있을 것도 같고요."
다방면에 두루 관심과 취미를 지녔지만 그가 전기차에 본격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2010년 즈음부터였다. 하나둘 전기차가 등장하고 충전 인프라가 공론화되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러면서 전기차 오너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2016년 아이오닉 전기차가 등장했지만 채 200km가 안 되는 주행거리가 문제였다. 그렇게 차근차근 전기차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최근 다양한 전기차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다른 전기차를 타고 싶은 욕심이 없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쉐보레가 말한 8년 또는 16만 km 보증기간 동안은 열심히 타기로 했습니다. 제조사가 말하는 보증기간 동안의 다양한 테이터를 축척하고 전기차와 배터리의 효율성 등을 면밀히 살펴보는 중입니다. 한 달 평균 주행거리가 2000km쯤 됩니다."
인터뷰 중 갑자기 휴대폰을 열어 프로그램을 보여준다. 엑셀을 활용해 직접 만든 프로그램이다. 주행거리와 충전 관련 내용 몇 가지만 입력하면 전비, 배터리 효율은 물론 볼트 EV의 각종 데이터를 자동으로 계산하고 그 값을 축적하는 고도화된 차계부다. 수치뿐 아니라 효율성 측면을 분석한 데이터가 그래프로도 표시된다. 이쯤 되면 앱으로 출시해 전기차 오너들에게 제공해도 좋겠다 싶은 수준이다.
"전기차 장점은 참 많아요. 저렴한 유지비는 기본입니다. 충전 비용이 해마다 조금씩 오르긴 하지만 여전히 저렴한 편이에요. 전기차를 타면서 매번 느끼는 장점은 쉽고 편한 운전입니다. 가속 응답이 시원해 움직임과 반응이 명료하고 직관적입니다. 동력 손실도 내연기관차들에 비해 적고 기계적 저항과 손실이 적어 조용하고 안락합니다. 차라기보다 움직이는 전자제품을 다룬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주유하며 기름 냄새 맡지 않아도 되고 정비와 관리도 편하죠. 와이퍼나 워셔액 정도 신경 써야 할까요? 회생제동장치를 적극 활용하면 타이어나 브레이크 패드 교체 시기도 늦출 수 있습니다. 감속기 오일은 교체해야겠지만 무교환이라는 제조사 말을 믿고 따르고 있어요."
전기차 오너이자 전문가로서 말할 수 있는 장점은 수십 가지다. 하지만 장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충전 인프라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시설관리가 부실하다. 고장이거나 통신 불가 등 결함 발생이 흔하다. 구매자 입장에서 점점 줄어드는 보조금도 아쉽다. 나아가 보조금 지급 구조도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 전기차 보조금은 중앙정부가 지급하는 국가보조금과 지자체 예산의 지방보조금을 합쳐 집행한다. 문제는 지방보조금 예산이 떨어지면 국가보조금이 남았어도 보조금 지급이 안 된다는 것이다. 지역 예산 편차가 큰 국내 실정을 감안해 지방보조금을 소진하더라도 국가보조금이 남았다면 전기차 구입을 원하는 이들에게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보조금을 좀 덜 받더라도 전기차를 사고 싶은 이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리 있고 실용적인 제안이다.
그는 실제 전기차 오너가 된 2018년부터 그간 경험을 통해 확인한 전기차 정보와 사용 노하우를 인터넷 커뮤니티에 풀어놓기 시작했다. 수많은 질문에 꼼꼼히 답하고, 필요하다 싶으면 따로 작성해 게시판에 올렸다. 3년 동안 써올린 글만 1만6000건이 넘는다. 하지만 매번 반복되는 질문과 전기차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은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전기차 오너들에게 꼭 필요한 책을 출간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바로 <전기차 상식사전>이다. 2018년부터 온라인에 써 올린 수많은 본인의 글과 자료에다 최신 정보를 더하고 보완해 펴냈다.
"초보 전기차 오너들의 가장 흔한 질문은 충전과 관련한 것들입니다. 전기차의 진짜 대중화는 충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는 그때이지 않을까 싶어요. 주유가 아니라 충전이라는 생소한 과정과 물리적 시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유는 3분, 아무리 길게 잡아도 5분이면 끝납니다. 전기차는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최소 10분 이상 걸릴 거예요. 충전에 대한 새로운 개념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생경함이 익숙함으로 변하는 시간과 과정이겠지요. 지금이 그 과도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볼트 EV를 9만km 가까이 타면서 축척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볼트 EV 전기차의 실생활 배터리 열화 추이 분석> 논문까지 발표한 정우덕 차장. 쉐보레가 보증하는 16만 km를 향해 데이터를 쌓으며 열심히 달리던 그에게 제동이 걸렸다. 배터리 문제로 인한 쉐보레의 자발적 리콜로 새 배터리 무상 교체를 통보받은 것.
전기차의 핵심이자 소모품인 배터리를 새로 교체받는 건 기쁜 소식이지만, 그가 목적한 주행거리 16만 km의 배터리 효율 관련 테스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물론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데이터를 쌓으며 다시 달릴 것이다. 그의 지적 호기심과 사용자들의 궁금증 해소를 위하여.
CREDIT
EDITOR : 이병진 PHOTO : 이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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