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 프로야구의 고인물팬이라면 특히 프로야구 창단때부터 함께한 이 세 원년구단의 팬이라면 무수히 봐왔을 이 사진의 주인공들 이야기를 간략하게 해보도록 하겠음.
사진의 주인공은 왼쪽부터 해태타이거즈(현 기아타이거즈)의 선동렬,롯데자이언츠의 최동원,삼성라이온즈의 김시진.이 세명은 1980년대 3대투수라고 불리기도 하고 멍게,참치,꼴뚜기라는 별명으로 해산물시리즈로 불리기도 함.
+참고로 사진을 잘 보면 등번호 18+11=29 라는 재미난 이야기도 있음
가나다순으로
김시진 (1958년생) 우투우타 김시진의 경우 한양대 졸업 후 원래는 당시 실업팀인 포항제철 야구단에 입단하려 했으나, 1980년 국제대회 당시 입은 어깨 부상 때문에 포철은 계약금을 1500만원으로 깎으려 했고 대학야구 스타로 자리매김하던 김시진에게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기에 결국 김시진은 육군에 입대했음. 결국 제대후 1983년 삼성라이온즈 1차 1순위지명. 입단 첫 해에 17승을 거두며 일약 에이스로 부상, 이후 꾸준히 10자리대 승을 거둠. 1985년, 김시진은 같은 팀 김일융과 함께 각각 25승을 기록하며 공동 다승왕을 수상, 탈삼진, 승률에서도 최고순위에 오르는 대활약을 펼치고 47경기 25승 5패 10세이브, 10완투 269.2이닝 ERA 2.00을 기록하며 단연 리그 최고의 투수로 군림하게 되었음.1987년 KBO 리그 최초 개인통산 100승을 달성했으며 23승으로 두 번째 다승왕 타이틀 획득. 1987년까지 삼성에서만 도합 111승을 올렸음. 이는 당시 투수들 중 최다승이었으며, 김시진은 1987년 KBO 골든글러브를 받았음. 1988년 롯데 자이언츠의 최동원이 포함된 충격적인 4:3 트레이드로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후 은퇴.
선동렬 (1963년생) 우투우타 선동렬의 경우 입단까지 이야기가 무척 긴데 대학을 마친 초특급 투수를 놓치지 않으려는 해태는 구단의 사정이 좋지 않아 최대한 계약금을 깎아보려고 하였지만 선동열 측은 최소 3억을 요구했고, 해태는 난색을 표했음.선동열은 빡쳐서 당시 실업야구팀인 한국화장품 야구단과 계약해 유니폼을 입어버렸고 해태팬들은 난리가 나서 해태 사무실과 선동열의 집에 있는 깨질만한 물건들은 죄다 박살이 나는 분위기가 되었는데 그럼에도 해태와의 협상불발.결국 설득 끝에 1억 5천으로 입단 했지만 데뷔 첫 해(1985년) 한국화장품 야구단과의 이중 계약 파문으로 후반기부터 출전했음. 데뷔 2년차인 1986년에는 평균자책점 0.99 262이닝 24승 6패 6세이브 214삼진 19완투 8완봉 WAR 14.89 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우며 프로야구를 초토화시켰고 이듬해인 1987년에는 162이닝 동안 14승 2패 6세이브에 평균자책점 0.89 WAR 9.39를 기록하며 2년 연속 0점대 방어율이라는 독보적인 활약을 펼치며 해태의 KBO사상 첫 2년 연속 우승에 힘을 보탰음. 1988년도 역시 16승 5패 10세이브 평균 자책점 1.21 WAR 11.79를 기록하면서, 에이스로서 전후기 통합리그로 치뤄진 단일 시즌 첫 해 우승을 견인.중간에 주니치드래곤즈 생활을 하였고 결국 타이거즈 역사상 첫번째 영구결번을 달며 은퇴하였음.
최동원 (1958년생) 우투우타 대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최고 수준인 3,000만 원의 계약금을 받고 1981년 실업야구팀인 롯데 자이언트에 입단했음.그때부터 롯데 자이언트의 에이스가 되었고 1981년 롯데 자이언트가 소화한 팀 이닝이 36경기 324이닝이었는데 그 중 206이닝을 신인이었던 최동원이 소화, 17승 4패를 기록하며 팀을 코리안시리즈에 올려놓았음.1981년 실업야구 코리아시리즈 6경기중 6경기 등판 42⅓이닝 2승 1패 1세이브. 방어율 2.45 롯데의 우승과 더불어 최동원은 실업야구 최우수선수, 다승왕(17승), 신인투수상을 수상하며 3관왕을 차지했음. 최동원의 프로야구 첫 시즌은 '부진했다'는 평을 받았는데 부진했다는 성적이 208.2이닝(5위) ERA 2.89(11위) 9승 16패 148삼진(4위)..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5경기 등판 중 홀로 4승(1패)을 거두며 롯데를 창단 첫 우승으로 이끈 기록도 있는데 이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국내 유일한 기록임. 최동원의 선수 생활 중 중대한 고비를 맞이한 것이 1988년으로, 바로 이 때 가장 먼저 선수협을 만들려고 했는데 이 때 최동원은 선수들의 복지를 위해 선수협을 구성하려 했으나, 당시 7개 구단들의 반대로 실패로 돌아갔음.이 사건 이후 연봉협상 등의 이유로 마찰이 심하던 롯데 구단과 완전히 틀어지게 되었고 선수협의 여파로 최동원은 삼성의 김시진 등의 거물투수와 트레이드를 당하게 됨.이 당시의 트레이드는 규모와 네임 밸류에서 역대 최고.그후 미국으로 진출하려 했으나 혹사와 여러문제로 결국 은퇴.하지만 롯데자이언츠의 유일한 영구결번으로 남게 되었음.
첫댓글 영화 퍼펙트 게임 본 거 생각나네
최동원은 진짜 다시 없을 투수야 그리고 다신 없어야 하는 투수고... 한국 시리즈 4승이 말이냐
그리고 괜히 무쇠팔 무쇠팔 하는게 아님 세기의 대결이라고 불렸던 선동열이랑의 대결에서 209개 던지고 4일 휴식하고 나온 것만 해도 미친거지
선동렬은 진짜... 어떻게 저런 성적을 낼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