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용산 마을의 아전
정약용
아전들이 용산 마을에 들이닥쳐
소를 찾아내 관리에게 넘겨주니
소를 몰고 멀리멀리 가는 것을
집집마다 대문엥 기대어 바라만 보네
고을 사또 노여움 풀기만 급급하니
약한 백성의 고통을 그 누가 알아주리
유월에 쌀을 바치라 하니
고달프기가 수자리 서기보다 더하네
좋은 소식은 끝내 오지 않고
수많은 생명 다 죽어 가니
궁박한 백성들이 참으로 애처로워
차라리 죽는 편이 더 낫겠네
남편 없는 과부와
자손없는 영감은
우는 소를 바라보며 흘러내리는 눈물이
적삼과 치마를 다 적시네
마을 형편은 피폐하고 쇠락하는데
아전은 어찌 눌러앉아 돌아가지 않는가
쌀독은 바닥난 지 이미 오랜데
무슨 수로 저녁밥을 지으라는 것인가
백성들 살아갈 길 끊어 버리니
마을마다 목메어 흐느끼네
소를 잡아 포를 떠서 세도가에게 바치면
거기에서 인재가 드러난다네.
龍山吏(용산리)
吏打龍山村(이타용산촌) 搜牛付官人(수우부관인)
驅牛遠遠去(구우원원거) 家家倚門看(가가의문간)
勉塞官長怒(면색관장노) 誰知細民苦(수지세민고)
六月索稻米(유월색도미) 毒痛甚征戍(독통심정수)
德音竟不至(덕음경부지) 萬命相枕死(만명상침사)
窮生儘可哀(궁생진가애) 死者寧哿矣(사자영가의)
婦寡無良人(부과무양인) 翁老無兒孫(옹노무아손)
泫然望牛泣(현연망우읍) 淚落霑衣裙(누락점의군)
村色劇疲衰(촌색극피쇠) 吏坐胡不歸(이좌호불귀)
甁甖久已罄(병앵구이경) 何能有夕炊(하능유석취)
坐令生理絶(좌령생리절) 四隣同嗚咽(사린동오열)
脯牛歸朱門(포우귀주문) 才諝以甄別(재서이견별)
[어휘풀이]
-泫然(현연) : 눈물을 흘리는 모양. 泫(현) : 이슬이 내리는 모양, 눈물 흘리는 모양.
-甁甖(병앵) : 단지, 항아리, 甖(앵) : 술 단지. 항아리, 단지
-已罄(이경) : 이미 비다. 이미 다하다. 罄(경) : 비다. 다하다. 공허하다.
-朱門(주문) : 예전에 고관이나 부자의 집은 붉은 색칠을 하였으므로
고관이나 부호의 집을 이름.
-甄別(견별) : 뚜렷하게 구별하다. 甄(견) : 질그릇, 녹로, 가마.
[역사이야기]
용산리는 ‘용산 마을의 아전’이란 뜻으로 전문 24행 5언 고율의 한시이다. 유배 중에 강진에서 목격한 사실에 근거하여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다산은 여기에서 아전들이 마을에 찾아와 고를 빼앗아 가는 수탈 현장과 피폐한 백성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시의 제목에 차두운경오유월(次杜韻庚午六月)이라 병기하여 두보의 시에서 차운(次韻)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두보의 시는 석호리(石壕吏)로 두보가 석호촌에 들어가 하룻밤을 묵는데 아전이 찾아와 백성들을 징병해 가는 참혹한 상황을 그리고 있는 시다. “영감은 담을 넘어 달아나고 할멈이 나와서 관리와 대화하는 내용으로 세 아들이 징병으로 끌려가서 두 아들은 전사하고 집안에는 갓난 손자 외에 더 이상 남자가 없으니 할멈이 전쟁터에 따라가서 개벽밥 짓는 일이라도 거들겠다고 하소연하는” 내용이다.
다산의 이에서는 아전은 관리에게 관리는 사또에게 사또는 권문세가로 이어지는 부패관리의 먹이사슬을 통해 아래로부터 맨 위까지 부패한 벼슬아치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하는 횡포를 보여 주고 있다. 이렇게 사실에 근거하여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다산이 벼슬하면서 암행어사와 우부승지 등의 고관직에 있었던 경험이 바탕이 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아가서 이러한 관리들의 부패를 척결하고자 하는 열망이 유배 중의 대표 저술인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저술하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출처 : 한시와 함께하는 우리나라 역사 『노을빛 치마에 쓴 시』
지은이 : 고승주. 펴낸 곳 : 도서출판 책과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