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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회(UR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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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시, 낭송시 스크랩 `우리詩` 343호의 시와 흰광대나물
홍해리洪海里 추천 0 조회 147 17.01.05 14:26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안개 속에 갇혀 - 임미리

 

나무는 절정의 마지막 몸부림을

아름다운 단풍빛으로 토해냅니다.

겨울의 초입을 찬서리로 물들이고

사그락 사그락 마을을 흔들어 깨우는 산야

그 소리 귓전에 맴돌아 밤새 잠 못 이룹니다.

오늘은 는개비 내리는 산야를

외로이 바람처럼 떠돕니다.

걷힐 듯 걷히지 않는 산등성이

안개에 둘러싸인 나무의 몸부림

가까이 가면 저 만치 사라지더니

돌아서면 손짓하여 나를 부릅니다.

안개 속에 갇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더니

밤새 마을을 흔들었던 산야는 몸을 숨깁니다.

는개비 내려 멀미나는 겨울날

나뭇잎처럼 온몸이 촉촉하게 물들어

갈 길을 잃고 안개 속에 갇힙니다.

산야는 배후처럼 한마디 말이 없습니다.

     

 

잡어 - 고훈실

 

팔짱을 끼고 어떤 놈을 고를지

고민하는 순간

그것은 한때 돌돔이고 방어였다

나를 통과하는 고기떼, 무수한

유선형의 고통은

찰과상 아래 비늘을 흘린다

나비 꿈을 따라 내가 그것들을 만난

확률에 접안했을 때

고기인지 나비인지 모를 펄에 박힌다

뜰채가 수족관을 오르내리고

나는 물고기들의 후생을 헤엄친다

네모난 바다 한 켠

관성으로 눌어붙은 눈동자들

새벽이면 길고양이들이 한 알씩 빼간다

한 생이 도마에 얹혀지고 칼이 부산하다

갯펄에 묶인 나비 꿈

찢긴 날개로 허우적대는 밤은 황홀하다

물고기로 나비를 살아 꼬리가 축났다

잦은 입질로

날개를 찢는 자질구레한 족속들이

저마다 은밀하게

횟집 앞에서 손 사냥을 한다

싱싱한 놈으로 잘 고른 눈들이

초장 없이 입맛을 다진다

수조 안에서 보면 모두 다 잔챙이들,

뿌연 거품 밖

자잘한 씨알들이 입을 껌벅인다

우화를 잊은 생은

한사코 멸치 떼를 이루어

자기를 닫는다

크고 실한 회 몇 점

이빨 사이로 착 감기고

말간 돌돔 눈알이

오래도록 날 헤엄친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 심우기

 

   영하의 시베리아 북극 혹등고래의 배를 가른다 인간의 저편을 되짚어가는 여정 중앙아시아 건너 파미르를 지난 바람이 대륙 북단에 닿아 폭설이 된다 우랄 알타이에 길들여진 돌과 나무가 뒹군다 사람을 만든 흙과 물이 뒤섞여 길을 따라 덜컹거리는 철로가 놓인다

 

   파편된 희미한 기억이 고대 역사처럼 가물거린다 창밖으론 얼어?은 침엽수와 나무의 헐거운 껍질들이 떨어진다 대륙열차 선로를 따라 굶주린 늑대의 절규가 메아리친다

 

   설원으로 오로라가 펼쳐지고 순록의 뿔이 가리키던 횡단길은 불씨와 언어를 가지고 베링해협에 이르른다 시베리아는 유형과 감금의 쇠사슬, 포로의 발목을 잡는 깊은 덫이다 빠져나오려 울부짖는 대륙의 기차를 백 년에 한 번 피는 북반구의 꽃이 따라붙는다

 

   모든 것을 이루어 주기에는 툰드라는 너무 멀다 침묵하는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진다 모스크바에 다가갈수록 시선이 안으로 고정된다 분주한 발걸음 사이로 잊어버린 러시아 인사말을 찾는다 즈드라 스트부이째

     

 

흔적2 - 우정연

 

흔적이 사라집니다

살아서 죽었고 죽어서 흔적이었던

그들이 조금씩 나눠집니다

 

물속으로 땅속으로 햇살 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진 그들이

어느 순간 꽃이 되기도 합니다

흔적은 사라진 게 아닙니다 흩어진 듯

또 한순간 오묘한 빛이 되기도 합니다

애써 머물려 하지 않은 그들은

물 흐르듯 다시 이어 갑니다

그렇게 섞이고 섞인 흔적이 새 생명을

잉태합니다

이슬 받으며 별빛 받으며 바람 사이로

태어납니다

흔적은 또 다른 흔적이 되기 위하여

한 걸음씩 물러서 있을 뿐입니다

나도 한때는

누군가의 흔적이었습니다

     

 

왕송 수변 길 - 정유광

 

익숙한 길이 좋다

 

왕송 수변 길엔 나무도 나도 마음과 몸이 가뿐해진다

 

나뭇잎 떨어지듯

 

제멋대로 아래로 서서히 내려놓는 배짱이 두둑하다

 

이렇게 부서져도 괜찮아

 

사인이 올 때 난 바람을 눕히고 싶다

 

모르는 척 비켜서서

 

방황을 들켜도 시치미를 뗀다

 

알몸으로 거센 폭풍 겪고 나면

 

저절로 삭아 세상살이 알게 될 것을

 

겨울로 그렇게 달려 갈 것이다

 

쉬지 않고

   

 

 

들깨 단 - 김현희

 

초여름 어린 모종 싱그럽게 자라

누가 봐주지 않아도 꽃피워 맺은 열매

근심도 아닌 데 탈탈 털린 들깨 단

마른 풀 빛바랜 밭둑에 모로 누었다

 

인생의 푸른 시절 간 곳 없는 그녀

평생을 지켜 서서 지켜낸 삼남매

이런 일 저런 일에 주고 또 준 빈 마음

급기야 다시 시작한 아들 사업에

주는 것이 습관이라 땅문서마저 내준 빈손

 

골다공증 심한 다리 주무르다 잠이 들면

갚을게요 잘 할게요

귓가에 이명소리 꿈에서도 믿어본다

 

찬비에 검게 웅크린 깻단 같은 몸

야윈 명치끝에 깨알처럼 박힌 한숨

지상에서 거두는 그녀의 상급인지

 

지나간 수많은 계절 가지런히 잊혀지고

벌써부터 내년 농사 계산하는 마른 손가락

찬바람도 고단한지 창을 흔들다 웅크린다

     

 

월악산(月岳山) 월악가든 - 이재부

 

둥근 감자전 안주로 놓고

잔 가득 술을 채우면

달도 산도 술잔에 드는 집[]

 

풍류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월악산정을 가슴에 안고

음풍농월을 즐기는 옥()

 

평상에 앉아 영봉을 바라보며

동동주 그득 따라 한잔 들면

산경 달빛에 취하는 당()

 

산새소리 같은 주인 몸놀림에

전설을 말하는 미륵불상도

슬며시 넘겨다보는 궁()

 

집이요, ()이고

()이며 궁(),

산중 명소가 월악가든이다.

 

정을 나누며

쉬어가는

나그네 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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