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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7: 57. 아리마대 요셉 - 마 27: 60. 새 무덤
7. 무덤에 넣어 두다 ( 27: 57-61. 막 15: 42-47. 눅 23: 50-56. 요 19: 38-42 )
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58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59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60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61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마 27: 57. 아리마대 요셉 -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
날이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다.
마가복음 15: 43은 그가 존귀한 공회원이라고 말한다.
그도 예수님의 제자이었다.
1] 저물었을 때에
이때는 금요일이 끝나고 안식일이 시작되려는 오후 6시경으로 추측된다.
신 21: 22-23에 명한 계명을 철저히 준수하는 유대인들의 관습에 의하면 예수의 시신(屍身)은 밤새도록 십자가에 달린 채로 있어서는 안 되었다.
* 신 21: 22-23 – 22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다음날이 안식일과 큰 명절인 유월절이 겹치는 거룩한 날이었기 때문에 용납될 수 없었다.
로마인들의 관습은 십자가에 달린 죄수의 모습을 만인들이 다 볼 수 있도록 시신이 날짐승에게 뜯겨 먹히거나 부패할 때까지 그대로 십자가에 매달아 놓는 것이었다.
만일 그 시신을 장사지내고자 하면 로마의 지방 행정관의 용인(容認)하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장사지낼 수 있도록 청할 수 있는 자들은 대개 죽은 자들의 친구들과 친척들이었으며 그나마 대역(大逆)죄로 죽은 경우는 절대로 허용되지 않았다.
2]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아리마대'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대개 '리다'(Lydda)나 '라마다임'(Ramathaim 삼상 1: 1)으로 간주한다.
마가와 누가는 요셉을 산헤드린 공의회의 요직(要職)을 맡은 자로 묘사하고 있다.
* 막 15: 43 –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 눅 23: 50-51 – 50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누가는 그가 '의로운 사람'으로서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산헤드린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태만이 그가 '부자'임을 의식적(義識的)으로 밝힌다.
구약 예언의 성취라는 측면에 남다른 주의를 기울였던 마태는 이 사실을 밝힘으로써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라는 사 53: 9-12의 예언을 상기(想起)했을 것이다.
* 사 53: 9-12 –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지방에 있으면서도 예루살렘 근처에 자기 무덤이 있었다는 것(유대인들은 메시아의 때가 도래하기를 고대하며 사후에라도 그때에 대한 소망을 간직하기 위해 예루살렘 근방에 자기 가족묘를 마련해 두었다고 함)과 요한의 보고를 종합해 보면 요셉은 재물이 넉넉했음이 분명하다. 마태는 요셉을 예수의 제자, 곧 그의 추종자라 한다.
* 마 13: 52 -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 마 28: 19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비록 요셉이 사회적 신분 때문에 은밀(隱密)하게 예수를 좇았다고는 하나 그가 예수의 가르침에 깊은 감동을 받고 예수의 삶을 좇아간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마 27: 58. 예수의 시체를 달라 -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 주라 분부하거늘 )
그는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청했고, 빌라도는 내어주라 명하였다.
아무도 예수님을 동정하거나 도우려 하지 않는 것 같은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아리마대 요셉을 예비하셨고 그의 마음을 감동하셨다.
1] 빌라도에게 가서
지금껏 자신의 신앙을 노출시키지 않았던 요셉은 예수의 죽음을 통해 옛 예언들이 성취되는 것과 십자가에 달린 그분이 바로 메시아라는 사실을 재차 확신하고는 두려움의 그림자를 담대히 떨쳐버리고 예수와 가까운 자로 자처하며 그 시선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 요 19: 38 –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가서'(*, 프로설돈)란 긴급히 달려왔음을 암시하는 말로서, 죄수의 시체 관리 책임자인 총독에게 자신의 요구를 관철(貫澈)하기 위해 급히 총독 관저로 나아갔음을 시사한다.
그는 산헤드린의 일원으로서 율법 준수에 철저했을 것이다. 따라서 큰 명절에 즈음하여 이방인과의 접촉을 의도적으로 피해야만 했고 또 시체와의 접촉을 멀리해야 할 처지였다.
* 요 18: 28 -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그럼에도 그는 의식적(儀式的) 부정보다 예수의 장사에 더 관심을 가졌다. 신앙의 바른 도리에 입각한 자는 다른 어느 것보다 예수 사랑에 더 큰 비중을 둔다.
2]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마가의 보고에 의하면 이때 요셉은 '당돌히'(용감하게) 예수의 시체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지위와 명예에 치명적 손실이 가해질지도 모르는 그 상황을 결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참신앙의 용기를 보였다.
요셉의 이 같은 간청은 유대인들이 빌라도를 접견(接見)하고 난 직후로 판단된다.
* 막 15: 43 –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 요 19: 31 -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빌라도는 요셉의 요청에 따라 먼저 십자가 형장(形場)의 관리자인 백부장에게 예수의 죽음을 확인한 다음 시체를 내어주었다.
* 막 15: 44-45 – 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45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이처럼 까다로운 절차 없이 시체를 내어준 사실은 적어도 그가 예수는 반역죄로 처형된 것이 아님을 어느 정도 공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57절 참조).
마 27: 59. 정한 세마포 -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
요셉은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쌌다.
1]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요셉 혼자 예수의 시체를 장사 지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체를 옮겨가기 위해서는 우선 땅에 박힌 십자가를 뽑은 다음 손과 발에 박힌 못을 빼야 했고 시체를 옮기는 채비를 갖춰야 했다.
이와 함께 시체를 옮기는 일, 씻는 일, 몰약을 섞는 일 등 장례에 필요한 모든 일을 제한된 시간 안에 요셉 혼자 하기에는 사실상 벅찬 일이다.
2]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정한 세마포'란 질 좋고 깨끗한 아마(linen)를 가리키는 것 같다. 세마포는 주로 시체를 싸는데 사용되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를 밤에 찾아갔던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沈香)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와서 요셉을 도왔다고 한다.
* 요 19: 39 -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또한 요한복음에는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향품과 세마포로 쌌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본서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마 27: 60. 새 무덤 -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
아리마대 요셉은 바위 속에 판 자기의 새 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갔다.
예수님은 이사야 53: 9의 예언대로 부자의 무덤에 묻히셨다. 무덤은 죄인들이 그 죗값으로 들어가는 감옥과 같다.
그러나 죄가 없으신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인이 되셔서 무덤에 내려가신 것이다.
1]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59절의 '정한'이라는 단어와 '자기의 새 무덤', 그리고 '큰' 돌이라는 수식어는 마태복음에서만 강조어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새' 무덤이란 아직 죽음에 영향력이 그 공간을 침범치 못한 곳으로 영원히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몸을 가지신 예수의 시체를 안치(安置)하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었다.
* 행 2: 27 -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이곳은 부활 곧 '새' 생명을 준비하는 예수의 휴식처였던 것 같다. 이곳의 위치는 갈보리 언덕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한 현재의 성묘 교회(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가 서 있는 곳으로 추정된다. (Parrot). 그곳은 암석들로 구성되어 있어 돌로 깎은 무덤들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장소였다.
2]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요셉은 모든 것을 '놓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은 그의 신앙의 성격을 밝혀 준다.
왜냐하면 유죄 판결을 받아 처형된 사람을 이스라엘 조상들과의 연속성을 대표하는 무덤에 장례하는 것은 유대 법에 어긋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산헤드린의 결정에 의해 사형을 받은 시체를 산헤드린 공회원이 장사지냈다는 것은 형언(形言)할 수 없는 진한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장면이다.
이같이 주께서 누군가를 필요로 하실 바로 그때 그곳에 주님 곁에 있을 수 있는 신앙인이 참 신앙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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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별일 없이 사는게 큰 행복입니다.
오늘도 순탄한 하루 되시고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설교 감사합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