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석두봉 전위봉에서 조망, 화란봉, 그 뒤는 대관령
1984년 2월 20일 월요일, 맑음
아니 이제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친 듯이 산으로만 향했던 그 정열로 무엇
인들 못하랴. 나는 지금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아니 무엇을 버리고자 하는가? 지금까지
그 긴긴 산릉에 버려지지 않았던가?
한 발자국에 희망 한 점 버리고 한 발자국에 오기 한 점 버리고, 이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허허로운 가슴, 무엇으로도 메워질 수 없는 것, 난 이제 버린 것이 없다. 내려가자. 우선
마음을 가다듬고 배낭을 메고 일어났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자신 만만한 사람처럼.
눈 속에 허벅지까지 빠졌다. (…) 나는 산릉에 붙어서 오르고자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내려가고 싶었고 내려가고자 했는데. 그래,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있었다. 나는 그대
로 내버려두기로 했다. 산은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을 모양이다.
―― 남난희, 『하얀 능선에 서면』(1990)
주) 남난희는 1984년 1월 1일부터 3월 16일까지 76일간에 걸쳐 금정산에서 진부령까지
태백산맥 2천리를 단독으로 종주했다. 위 글은 미루어 보건데 삽당령에서 닭목재 구간인
것 같다.
▶ 산행일시 : 2022년 12월 4일(일), 맑음
▶ 산행코스 : 백두대간 닭목재,화란봉,석두봉,들미재,삽당령
▶ 산행시간 : 4시간 32분
▶ 산행거리 : 이정표 거리 15km(화란봉 하늘 전망대 0.37km 왕복 포함)
▶ 교 통 편 : 신사산악회(34명) 버스로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07 : 00 - 신사역 5번 출구, 버스 출발
07 : 20 - 죽전정류장( ~ 07 : 26)
08 : 54 - 평창휴게소( ~ 09 : 15)
10 : 15 - 닭목재, 산행시작
11 : 00 - 화란봉(花蘭峰, △1,070.0m)
11 : 18 - ┣자 갈림길 안부
11 : 34 - 1,001.3m봉
11 : 45 - 939.3m봉
12 : 16 - △987.1m봉
12 : 30 - 965.6m봉, 쉼터( ~ 12 : 38)
13 : 05 - 석두봉(石頭峰, 995.0m)
13 : 26 - △976.9m봉
13 : 45 - 들미재
14 : 18 - 857.7m봉
14 : 47 - 삽당령(揷唐嶺), 산행종료, 점심, 휴식
16 : 00 - 서울 향발
17 : 04 - 평창휴게소( ~ 17 : 20)
18 : 51 - 죽전정류장
19 : 13 - 신사역
2-1. 산행지도(화란봉,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구정 1/25,000)
2-2. 산행지도(석두봉,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구정 1/25,000)
▶ 화란봉(花蘭峰, △1,070.0m)
지난 2주간의 산행은 따지고 보면 매우 부실했다. 산행거리는 10km 언저리이고 산행시간
은 5시간 미만이었다. 새벽 4시 30분부터 서둘러 밤 10시까지 바친 투자치고는 참담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산행 중 드문 가경을 보는 것으로 스스로 위안은 했지만 그래도 억울
한 심정을 억누르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더 실속이 있는 산행을 하고자 했다.
백두대간 한 구간을 골랐다. 닭목재에서 삽당령까지 산행거리 15km, 산행시간 6시간.
아마 산행거리를 감안하면 그 시간도 물렁하지 않고 단단할 거라는 기대로.
설령 조망이 보잘 것 없더라도 대안의 기대는 있다. 요 며칠 동안 지속된 한파로 상고대
서리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화란봉을 가면서 보았던 덕순이들, 비길 데 없이 늠름
하던 금강송의 사열 등등. 그런데 결과는 참혹했다. 미리 말하자면 내 기억의 착각에서
비롯되었다. 믿을 것은 기억이 아니라 기록인 것을 그만 잊었다. 예전에 두 차례 화란봉과
서득봉을 삽당령에서 올랐다는 잘못된 기억에 기대었으니 조망도, 서리꽃도, 지금도 눈 감
으면 어른거리는 그 덕순이와 그 금강송은 없었다.
오늘 산행을 마치고 나서 예전에 화란봉과 서득봉을 오른 기록을 들춰보았다. 첫 번째는
15년 전에 왕산초등학교에서 배등(586m) 능선을 타고 939.3m봉에서 백두대간 길에 진입
하여 올랐고, 두 번째는 9년 전에 왕산면 목계리 목계교에서 599.2m봉, 690.4m봉을 넘고
△987.1m봉에서 백두대간 길에 진입하여 올랐다. 금강송과 덕순이는 15년 전 그때 닭목령
을 거쳐 맹덕에서 서득봉을 오를 때 만났다. 삽당령은 그 이전에 대화실산을 오를 때 갔다.
닭목재. 고도 약 700m. 준령이다. 영동고속도로 대관령을 넘은 버스가 강릉 IC까지 내려가
서 남대천에 이어 왕산천을 거슬러 오르는데 그 물이 다 밭고도 산굽이굽이 돌고 돌아 닭
목재다. 고개 모양이 닭의 목처럼 길게 생겼다고 한다. 닭목재를 한자화해서 계항치(鷄項
峙)라고도 한다. 풍수가들은 이곳의 지세를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길지로 보았는데,
이 부근이 닭의 목에 해당하기 때문에 ‘닭목이’라고 불렀다.
화란봉 2.1km. 버스에 내리자마자 냅다 줄달음하기 시작한다. 날씨는 그리 춥지 않아 겉옷
벗는다. 백두대간 길이 어디나 그렇듯이 잘 다듬었다. 임도 따라 오르는가 했더니 곧 옛날
도로와 만나고 소로의 산길이 시작된다. 화란봉까지 줄곧 오르막이다. 아무쪼록 내 걸음으
로 간다. 땅에 코 박는 오르막을 수대로 줄지어 낙엽 헤집으며 오른다. 먼지가 풀풀 인다.
마스크가 방역에 더하여 방한과 방진을 겸하는 다용도다.
백두대간 구간 산행은 고정 멤버들이 많고 그들의 주력은 여느 산에서와는 다르게 뛰어나
다. 긴 오르막에도 지친 기색이 없이 사뿐사뿐 간다. 젊은 여성분들 또한 준족이다. 여러
남자 잡기 알맞다. 여성이라고 얕보고 추월하려거나 같은 걸음을 유지하려다가 먼저 제풀
에 지쳐 나가떨어지기 십상이다. 그들이 나누는 얘기를 엿들었다. 마라토너다. 마라톤
42.195km 풀코스를 4시간 안팎으로 주파한다고 한다. 대단한 여걸들임이 분명하다.
오르고 또 오르고 숨 가쁘기 수차례다. 문득 갈림길과 만난다. 화란봉 0.13km, 화란봉 하늘
전망대 0.37km, 삽당령 11.9km. 화란봉은 등로를 그만큼 벗어났다. 배낭 벗어놓고 다니러
간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대개 백두대간 길은 줄달음하기 일쑤여서 등로 주변의 덕순이를
보지 못하는 수가 잦다. 15년 전에 손 재미 보던 일을 생각하고 펑퍼짐한 주변의 풀숲을
예의 살피며 간다. 이제는 눈이 어두워졌는지 빈 눈이다.
화란봉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방 키 큰 나무숲이 가려 아무 조망이 없다. 옆의 되똑한 바위
에 올라도 마찬가지다. 삼각점은 오래 되어 ╋자 방위표시 말고는 알아볼 수 없다. 화란봉
하늘전망대가 어디인가? 200m 남짓 더 가야 했다. 방향표시판이 보이지 않고 다수가 뒤돌
아가기에 나도 엉겁결에 뒤돌아가고 말았다. 백두대간 이 구간 중 최고의 경점이라는데
모르고 지나쳤으니 후회막급이다. 나중에 거기를 다녀온 일행에게 보여 달라고 했다. 고루
포기산, 안반데기, 능경봉, 만덕봉, 두루봉, 석병산, 동해 등등. 그러나 내 욕심에는 미치지
못하는 조망이다
3. 화란봉 정상 표지석, 화란봉 정상은 바위에 올라서도 아무 조망이 없다.
4. 따분한 백두대간 길, 그나마 노송 열주가 볼만했다
5. 낙엽송 숲, 그 옆은 고랭지밭이다
6. 석두봉 전위봉에서 조망, 멀리 가운데가 노인봉(?)
7. 멀리 오른쪽 끄트머리가 노인봉
8. 석두봉 전위봉에서 북서쪽 조망
9. 백두대간 등로 바로 아래는 이처럼 고랭지 밭이다
▶ 석두봉(石頭峰, 995.0m)
화란봉을 남진하여 내린다. 갈지자 그리며 뚝뚝 떨어진다. 닭목재에서 오른 만큼 내린다.
오른쪽으로 큰용수골(1.9km) 가는 ┣자 갈림길 안부에서 바닥 치고 완만하게 오른다.
1,001.3m봉. 등로에서 170m 벗어났다. 들른다. 일거다득을 노린다. 조망과 덕순이와 산행
거리 벌충이다. 잡목 헤치고 들렀으나 빈 손 빈 눈이다. 이 다음 옆구리봉(캐이 님 버전이
다)인 939.3m봉도 들른다. 산죽이 무성하여 가기 사납다. 아무런 인적이 없는 건 그럴 만
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별 볼일이 없다는 것.
939.3m봉 내린 안부는 고랭지밭 농로가 가깝다. 나무만 베어내면 밭이 될 정도로 넙데데
하다. 길게 오른 △987.1m봉이다. 산죽 숲이다. 등로에서 180m 벗어났다. 부토에 묻힌
삼각점은 오래되어 알아볼 수 없다. 길게 내렸다가 잠깐 오른 965.6m봉은 쉼터다. 통나무
벤치에 걸터앉아 쉰다. 첫 휴식이자 마지막 휴식이다. 군고구마로 요기한다. 석두봉이
수렴에 가렸지만 첨봉으로 보인다. 등로에서 벗어났더라도 들르리라 하고 다가간다.
석두봉은 쌍봉이다. 그 전위봉은 등로에서 약간 벗어났다. 들른다. 잡목 헤치고 바위에
오른다. 멀리 발왕산까지 보이는 오늘 최고의 경점이다. 그러나 별스런 특징이 없는 밋밋
한 조망이다. 석두봉 오름길은 돌계단을 놓았다. 석두봉에서는 북쪽과 동쪽으로 조망이
트이지만 그 전위봉의 조망만 못하다. 정상 표지석이라도 사진 찍는다. 석두봉 내림 길은
긴 데크계단이다. 모처럼 손맛 다신 첨봉의 오르내림이 싱겁기 짝이 없다.
이제는 들를 옆구리봉도 없다. 전후좌우 조망은 수렴은 가렸다. 등로 주변 풀숲이나 들여
다보며 걷는다. 사팔뜨기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널찍한 방화선 올라 △976.9m봉이다.
그 아래 안부는 들미재다. 들미재 몇 그루 노송이 볼만하다. 오른쪽 사면은 잣나무 채종원
이다. 우량한 잣나무 숲이 보기 좋다. 봉봉을 오르내리지만 워낙 잘 다듬은 등로라 어째 산
을 가는 것 같지 않다. 둘레길이다. 857.7m봉을 내린 안부에서 임도와 만나고 그 임도와
이웃한 능선을 간다.
삽당령이 가까웠다. 예전에 보았던 금강송과 덕순이를 곧 볼 수 있겠지 하며 주변을 둘러
보는데 낙엽송 숲 나오고 곧바로 대로로 떨어진다. 허망하다. 삽당령이다. 정상에 오르면
짚고 왔던 지팡이를 버리고 갔다 하여 ‘꽂을 삽(揷)’자를 썼다고 하고, 이설로는 정상에서
북으로는 대기로 가는 길과 서쪽으로는 고단 가는 길로 세 갈래로 갈라지는 삼지창과 같다
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오늘 산행도 고작 4시간 32분이다. 산행 중 점심밥 먹을 시간이 어중간했다. 삽당령 고갯
마루에 주막집이 한 곳 있다. 동동주를 판다고 하기에 술이나 한 잔 하려고 들어갔다. 거동
이 불편한 노모와 장년의 남자가 주인이다. 옥수수 동동주 2리터 한 병에 9천원이다. 밖에
나가 내 도시락 점심에 안주로 마시려고 했더니 한사코 안에서 드시라고 한다. 고마운 배
려다. 동동주가 아주 맛있다. 앉은뱅이 술이다. 내 뒤로 일단의 젊은 일행들도 들어와 메밀
전병에 동동주 주문한다. 한층 주막집 분위기가 난다.
금강송을 주막집에 본다. 벽에 색 바랜 노송도를 붙여놓았다. 화제도 있다.
바람 따라 짙게 흐르던 소나무 향은
백두대간 타고 삽당령 정상에 다다라
계절 옷 걸친 산신님도 멈추게 해
그리운 자연의 향기로 피어오른다
노송도 위에 시 한 수가 걸렸다. ‘제목 : 자꾸 간다 하기에, 글쓴이 : 모른다’라는 시다.
간다 간다 하기에 가라 하고는
가나 아니 가나 문틈으로 내다보니
눈물이 앞을 가리워 보이지 않아라
이 시는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因緣)』(샘터, 1996)의 ‘눈물’ 편에서 나오는 시다.
글쓴이를 알려줄까 하다가 그냥 나왔다. 저대로가 더 운치가 있다.
오늘 일행 34명 모두 16시 이전에 산행을 마쳤다. 당초 예정한 버스 출발시간 16시 30분을
30분 앞당긴다.
10. 석두봉에서 조망, 화란봉, 왼쪽 멀리 발왕산이 보인다
11. 석두봉 정상 표지석
12. 수렴에 가린 석두봉
13. 수렴에 가린 만덕봉
14. 들미재 노송
15. 들미재 노송
16. 오른쪽은 잣나무 채종림
17. 삽당령, 고갯마루에 놓인 표지석
첫댓글 갑자기 추억의 백두대간??
갈 데가 없어서 추억으로 가보았습니다.^^
날라다니시네요. 4시간 반만에 주파하시다니!!! 시간도 널널해서 생각이 맞았다면 거시기도 수확했을텐데, 아쉬웠겠습니다^^
둘레길이라 다 그래요.
이제는 눈도 희미해져서 ㅠㅠ
봉마다 정상석이 놓여있네요. 15km를 4시간 30분이라 ㅎㅎ 만덕봉-두리봉-삽당령-대화실산-사달산-노추산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설악의 사나이가 설악이 쉬니 심심하시겠네.^^
ㅎㅎ 백두대간은 웬일로 가셨나요...^^ 피천득님의 시가 애잔합니다.
금강송과 덕순이 보려고 갔는데 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