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구속사 강해
여자의 후손이 건설할 새로운 나라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가인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며 자기 나름대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해 나갔다. 인간이 이 세상에 사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인 이성을 적절하게 발현하여 이 세상을 다스리어 하나님의 거룩하신 지혜와 영광을 이 땅에 현시하기 위함이다(창 1:26-30). 그러나 가인의 후손들은 그러한 인간이 추구해야 할 본연의 존재 목적과는 상관없이 독자적인 존재의 의미를 구축해 나갔는데 그들이 추구한 세계의 모습에 대하여 매우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을 가인의 족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 가인이 건설한 인간의 나라
가인이 성을 쌓았다는 것은 인간이 거주하기 위해 간단히 주택을 짓는 것과는 달리 상당한 재력과 건축술과 노동력이 필요한 일이다. 더욱이 그 당시의 상황에서 성을 쌓았다는 것은 어떤 힘을 상징하고 있다. 가인이 하나님을 향해 애원하는 말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가인은 그 땅을 떠나야 한다는 현실에 대하여 매우 불안해하고 있었다(창 4:14). 그래서 가인은 자기의 불안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성을 쌓고자 한 것이다. 또한 성을 쌓음으로서 자기의 힘을 과시하여 혹 아벨을 살해한 것에 대하여 보복을 당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를 만방에 표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가인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가 세운 성을 의지하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가인은 성을 쌓아 자기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통치권을 상징하는 하나의 국가를 건설하였다. 가인은 한 나라의 군주가 되었고 따라서 그 누구의 도움이나 통치를 받지 않고 자기 독단적인 통치 형태인 독립된 나라를 건설해 나가게 된 것이다. 이것은 가인이 하나님의 나라와는 별개의 나라를 건설하였음을 상징하고 있다.
가인이 건설한 세계의 단적인 모습은 가인의 4세손인 라멕의 노래에서 찾을 수 있다(창 4:23-24). 라멕의 시대에 이르러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유지할 수 있는 육축 방법과 악기와 음악이 발전하여 문화적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아울러 각양 편리한 기계를 만들어 사용할 정도로 매우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사회를 건설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미 라멕의 시대에 와서 하나님을 떠난 가인의 세계가 하나님의 능력이나 도움 없이도 버젓이 완전한 형태의 산업 사회를 형성하고 조직적인 국가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처럼 훌륭한 산업 사회를 형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인의 세계에는 라멕이 선포한 별개의 원칙이 그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라멕이 자기의 아내들에게 자신에 대하여 말한 것처럼 가인으로부터 시작된 뱀의 후손들은 줄곧 하나님의 의와 사랑에는 상관하지 않고 자기 세계의 원리인 힘을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선 힘이 곧 길이고 진리고 통치의 방편이었다. 누구든 힘이 있는 자가 그 세계에선 유일한 법이었다. 자기가 당한 조그마한 상처를 보상하기 위해 사람의 생명을 무참하게 살상하는 것을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세상을 그들은 구축해 나갔던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한 가인의 세계가 건설한 포악한 나라의 모습이었다.
2. 여자의 후손이 건설할 새로운 나라
한편 하와에게서 난 여자의 후손들의 세계는 가인의 후손들과는 별도의 세계를 형성해 나가고 있었다. 특히 “아담 자손의 계보는 이러하니라”(창 5:1)고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의 기자(記者)인 모세는 지금까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 가운데 있는 인간 세계로부터 하나님의 구원의 세계에로 관심을 돌리게 하기 위하여 새롭게 아담으로부터 시작하는 계보를 기록하고 있다.
창세기에서는 지금까지의 역사를 종합하여 정리하고 이제부터는 무언가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고자 하는 경우에 족보를 의도적으로 기술하고 있다(창 2:4; 5:1; 6:9; 10:1; 11:10, 27; 25:12, 19; 36:1; 37:2). 따라서 모세가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까지 이르는 계보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의 계획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함이다. 그 동안 창세기 3-4장을 통하여 범죄한 인간들이 처한 상황의 극단적인 모습은 라멕의 노래를 통해 이미 밝힌 바와 같이 힘 즉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였다. 그러나 이제 아담으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여자의 후손들의 세계는 그것과 상반되는 통치의 원리가 있음을 모세는 시사하고자 한 것이다.
아담의 계보에서 특징적인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수행하고 완수해야 할 사명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다(창 5:1-2). 이러한 모세의 선언은 이미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선언하신 천지창조의 목적(창 1:26-30)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이 계보야말로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서 구현할 거룩한 혈통임을 의도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임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 아담의 후손들은 창세기 3:15에 나타난 여자의 후손(들)의 계보임을 의미하고 있으며 이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성취되어 나타날 것임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특성은 므두셀라의 아들 라멕이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고 명명하는 데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라멕은 자기의 당대에 이르러 무엇인가 역사적인 대 변환 점을 이루게 될 것을 예견한 인물이었다. 창세기 5:29에서 보듯이 죄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이 세상에 살면서 수고로이 일하여야만 먹고 살 수 있다는 현실이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본래 의도가 아니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으로서 마땅히 수행해야 할 사명, 즉 인간으로서의 본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본분을 성취하는 일보다는 여전히 먹고사는 일에 대하여 수고로이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현실에 얽매여 있다는 것은 그 자신이 여전히 죄의 영향력 아래 빠져 있다는 사실을 표해주고 있는 것이다.
라멕은 죄의 세계에 임하는 하나님의 저주로 인하여 땅이 척박해졌다는 사실과 그 때문에 인간이 마땅히 가야 할 삶의 도리에 전념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자기들의 생존에 필요한 양식을 저주받은 땅에서 얻기 위하여 수고로이 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 치유 방법은 땅에 임한 하나님의 저주를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이 땅에서부터 수고로이 일하는 처지에서 안식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땅이 척박해진 상태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죄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류가 죄로부터 구원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라멕이 노아를 통해 이 땅에서 수고로이 일하는 인류들에게 안식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소망은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저주가 끝이 나고 사람들이 안위를 얻기 위해 하나님께서 죄를 철저히 심판하실 것을 전제로 한다.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시지 않고 이 땅에 안식을 주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저촉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들어 온 죄악에 대하여 철저히 심판하시고 그 형벌을 완벽히 수행하심으로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하시고 이 땅에 내린 저주를 거두실 것이다.
라멕이 노아의 시대에 그와 같이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적극적인 심판이 행하여 질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라멕은 조부인 에녹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웠음을 익히 알고 있었다. 유다서에서 보는 것과 같이 강포한 그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결코 멀지 않았음을 이미 에녹이 선포하였던 것이다(유 14-16). 따라서 라멕은 노아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사실이 구체적으로 구현될 것을 소망하고 마침내 죄로부터 자유롭게 해방되는 날이 속히 올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서 죄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이 땅에서 수고로이 일하며 생존을 유지했던 하나님의 백성이 죄의 권세를 깨뜨린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자유를 얻고 비로소 창조의 목적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나가는 위치에 오르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노아에게 걸었던 것이다.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이름을 노아라 하며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창 5:29)고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아담의 계보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완성하는 것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을 통해 구원에 대한 소망을 열망하는 세계를 구축해 나왔던 것이다. 이것은 가인의 세계와는 다른 아담의 세계 곧 여자의 후손들이 구축해 나가는 세계의 특성이다.